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04)
폭풍(2)
“류큐에 북해도를 가져가고….. 광산이랑 철도 부설권…”
적어도 현재, 전쟁은 내 몫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은 일본의 장기를 솜씨 좋게 털어가는 것.
그리고 일본 문제가 일단락되면 중국에도 개입해서 그쪽 장기도 더 털어가야지.
세포이 항쟁의 진압이 끝나면 더 많은 병력을 극동에 동원할 수 있을 거다. 적어도 한국군에게 의존하다시피 하는 상황은 끝낼 수 있다.
‘그리고 예산도…….’
예산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하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있다.
노후준비.
물론 내가 가난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영국에서도 최상위급 부자일 거다. 정확한 액수가 얼마인지는….. 플로렌스에게 물어봐야겠네.
내가 쓰는 건 이래저래 많지만 그 몇 배로 벌어들이고는 한다.
하지만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은퇴하고, 죽으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나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아무튼 간에 내가 영국의 제국주의 확장에 기여할 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이니 세실 로즈처럼 제국주의자라고 하지 않겠는가?
내 이름 뒤에 제국주의자, 전쟁광 딱지가 붙는 불명예를 얻으면 내가 죽은 뒤에도 억울해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세실 로즈마냥 영국을 대표하는 제국주의자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내 진짜 깨끗한 마음을 전해줄 뭔가를 남겨야 한다.
“주방 하인들을 좀 족쳐야겠네요.”
“………?”
“언니가 아무리 몸조리 중이라지만 대체 감독할 사람 없다고 음식에 뭔 짓을 했길래… 아니, 라일라 언니는 뭘 했대요?”
“메이드장도 주방 일에 크게 간섭할 수는 없는 게 관습이야. 그리고 오늘 음식에는 이상 없었는데?”
“음식에 조미료로 아편을 뿌린 게 아니라요?”
“아편 그거 생으로 먹으면 죽거든?”
고종이랑 순종이 아편 넣은 커피 먹고 골로 갈 뻔하지 않았던가.
“….. 아니, 공사님이 대체 어딜 봐서 반제국주의자인데요?”
“난 식민지배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식민지는 무조건 비효율적인 존재가 되거든? 두고 봐, 100년 뒤에는 이 식민지들 다 독립하게 될 거다. 당장 영국이 식민화시켜도 된다고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나라들 중 내가 담당한 국가들 가운데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가 있냐?”
“….. 류큐는요.”
“거… 그 조그마한 섬나라 하나는 좀 봐줘라. 걔들 인구가 100만은 되냐. 그리고 거기는 진짜 요충지라서, 당장 너희들도 구해줬잖아.”
“………. 중국은 뭔데요.”
“영토를 뜯겨서 그렇지 식민지가 된 건 아니잖아.”
그럼그럼, 내가 식민지를 만든 적 있냐? 내가 주도해서 식민화한 나라 있으면 이름 하나만 대 봐라. 당장 내가 손 댄 국가들은 자업자득이 아니라면 전부 근대화하고 있잖아? 일본이야 우리 국민을 베어죽인 시점에서 자업자득이고. 아편전쟁은 솔직히 그걸 갖고 내 책임이라고 하면 너무 추하지 않을까?
그러니 식민지 면하고 열강의 말석에라도 들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한국이랑 베트남은 솔직히 날 국부쯤으로 여겨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데요……”
당신의 양심, 어딘가에 떨어트리지 않으셨습니까. 대충 그렇게 묻는 듯한 눈빛을 무시하면서 나는 빈 종이뭉치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이걸 만들려고 하지.”
“이게 뭔가요?”
“만국공법.”
국제법의 시초는 30년 전쟁의 종결 시점에 있었지만, 이게 아직 성문화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걸 싹 정리하고, 동시에 국제적인 표준을 제정한다.
“그리고 국제연합의 창설을 제안할 생각이다.”
“그게 뭔가요?”
“문자 그대로 하늘 아래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연맹 형태의 회의기구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억제장치고, 불량국가가 있으면 회원국들이 합심해서 응징하고.”
난 절대 전쟁광이 아니다. 평화주의자지.
“물론 이게 책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후대에는 반드시 이 비슷한 법률이 만들어질 거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내 명성은 대기권을 돌파하고도 남을 거다.
국제법의 아버지, UN의 아버지.
그런 명예면 충분하다.
“강대국의 이익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약소국이 마냥 찍어눌리지만은 않게 체제를 만들 거다.”
“쉽지 않을걸요?”
“이미 생각해둔 건 많다.”
먼저 총 4개의 조직을 유엔의 구성요소로 만든다.
유엔 행정국, 국제재판소, 유엔 총회, 유엔 상임이사회.
행정국은 세부적으로 셋으로 나뉘는데, 국제연합군과 세계은행, 유엔 국제위원회다. 물론 국제위원회는 각종 유엔 산하 조직과 관료집단들을 한데 묶어놓은 것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유엔 국제재판소는 각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재판 및 국가 단위의 재판, 국제법에 관련된 재판 등을 할 권한이 있으며 모든 재판은 단심제다. 판사들은 유엔 총회에서 청문회를 받은 뒤, 총회와 이사회 모두에서 통과를 받아야만 임용될 수 있다.
국제연합군은 상설 군대로, 총회와 상임이사국 모두의 의결로 국제연합이 군사적 재재를 가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 각국에 3년 단위로 어느 규모의 어느 부대를 배치할지를 협상해두고 지휘체계와 보급체계를 미리 짜두며, 장교들은 각국 군대에서 파견받아서 유엔에서 자격을 검증받고 임용된다.
세계은행은 일종의 유가증권인 특별인출권을 발행할 수 있으며, 이 특별인출권은 상임이사국들의 화폐로 각국 중앙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다. 세계은행의 인사권을 상임이사국 6개국이 가져가는 대가이며, 그렇기에 그 특별인출권만으로도 웬만큼 신용도가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대공황의 원인 중에 국제통화기금과 같은 역할을 할 국제기구의 부재가 꼽힌다는 걸 생각하면 대공황을 틀어막아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엔 국제위원회는 무주지의 출입국과 공동개발-원 역사 기준으로는 남극과 우주-공해상의 각종 사고와 범죄행위의 수사, 어업자원 관리 등도 담당할 거고.
총회의 경우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1인 1표를 행사하지만 상임이사회는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들과 비상임이사국으로 이루어지며, 비상임이사국들은 총회에서 2년 임기의 투표로 선출된다. 또한 연임에도 제한이 없다.
“상임이사국은 그…..”
“소위 열강이라 불리는 국가들을 위한 자리지. 어쩔 수 없어. 이런 거라도 안 쥐어주면 유엔은 아예 만들어지지도 못할 거다. 현실과 타협해야지.”
“그러면 유엔이 무슨 소용이에요?”
“적어도 열강들이 눈치 정도는 보게 만들어주는 거지.”
유엔이 존재했으면 콩고에서 레오폴트 2세가 신나게 사람 손목 자르고 다닐 수 있었겠냐? 물론 벨기에라는 나라 자체가 망해버렸으니 콩고인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이다.
“유엔에서 규탄당하면 그 나라를 조지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최고의 명분이 되는 거지, 중세 시대 유럽의 교황청이 했던 일을 앞으로는 유엔이 대신하게 될 거다.”
유엔 총회와 유엔 상임이사회는 일종의 상원과 하원과도 같은 관계가 될 것이다.
“거기에 식민지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어. 총회에서 자기 편을 들어줄 속국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테니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장점이 더 있다. 체제를 뒤흔들려는 혁명 세력들을 다같이 때려잡기가 훨씬 용이해진다는 거지.
어쩌면 1차 세계대전도 안 일어날……. 아, 이미 발칸 러시아한테 먹혔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소국들 입장에서는 유엔이 강대국들에게 명분만 주는 기구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네요. 양쪽을 다 만족시킨다면서요? 이대로 가면 총회가 상임이사회의 발목은 잡을 수 있어도 상임이사회에 맞서는 건 불가능해요.”
“그래서 의장국이라는 개념도 도입할 거다. 이렇게 되면 상임이사국 내에서도 분열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
임기는 5년, 유엔 총장도 이들의 손으로 임명되며 여러 책임과 권한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의장국은 유엔 전체의 대표 자격일 뿐인데다 수시로 갈아치워지게 되므로 한 국가가 다른 모두를 압도하는 건 불가능하다.
“의장국은 회원국이기만 하면 특별한 자격 조건 없이 투표로 선출되지만, 이 투표는 1인 1표가 아니다. 차등을 둔 투표지. 그 국가가 얼마나 유엔에 공헌했느냐에 따라 그 표의 가치가 결정되는 거다.”
지금도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재산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표의 가치가 다르다. 정확히는 얼마나 많은 세금을 냈느냐였을 거다.
“얼마나 많은 돈을 유엔의 활동 자금으로 기부했는지, 그리고 유엔 평화유지군에게 얼마나 많은 병력과 장비를 제공했는지를 두고 결정되지, 막말로 지금 한국이 하는 것처럼 몸으로 때울 수도 있단 거다. 물론 꼼수를 막으려면 3년 단위로 재협상을 하면서 마음대로 기부 액수나 군사적 기여도를 추가하거나 빼지 못하게 해야겠지. 내 예상이지만 아마 열강들 다수는 돈으로 떼우려고 할 거고, 열강이라기에는 애매한 놈들이 군대를 주로 보낼 거다.”
의장국은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안건의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총회와 상임위원회 모두의 의결을 받으면 의장국의 최종 동의 없이 발효된다.
그리고 의장국의 남은 임기를 전부 포기해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무효화하는 게 가능하다.
“총리의 의회 해산 같은 개념이지.”
의회가 해산되면 총리도 그 직이 날아가는 것처럼 즉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무효화하고 안건을 강제로 통과시키는 데에는 의장국이라도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이건 의장국에게 주는 상임이사국들에 대한 견제수단이자, 동시에 열강들이 받아들일 상한선을 최대한 고민한 끝에 내놓은 거다.
상임이사국은 몇 번이고 쓸 수 있는 거부권 하나를 막기 위해서 의장국 하나가 날아가야 한다면 의장국에 대한 열강들의 우위를 분명히 하는 셈이니까. 대신 상임이사국들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쓸 수는 없게 될 거고.
“아마 후환이 두려워서 함부로 거부권을 못 막을 법한 적당한 소국에게 의장국 지위를 쥐어주지 않을까.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물론 내게 이걸 전부 현실화시킬 힘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걸 처음으로 생각하고,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제시한 선구자가 나라는 게 중요한 거지. 어디 언제 마르크스가 공산혁명 성공시켰었냐?
“이게 내 대에 실현되면 좋고,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이 비슷한 국제기구가 만들어질 거다.”
그러면 후대에 유엔 본부 입구에 내 흉상 하나쯤은 세워주지 않겠나.
사실 난 실현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아직 유럽인들은 전쟁 무서운 줄을 모르거든.
1차대전기는 가야 그 벨 에포크의 미몽에서 깨어나게 되니, 굳이 전쟁을 막고 국가간의 문제를 총칼이 아니라 말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다. 누가 그랬더라? 전쟁은 즐거운 소풍과도 같다고.
이 세상 사람들 생각 평균이 그 정도일 거다. 청년기에 해볼 만한 모험.
그러니까 그 반대항에서 깃발을 딱 꽃아놓아야 버스가 뒤집혔을 때 ‘아! 선각자가 저기 계셨구나!’할 수 있다고.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바쁘시다면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할까요?”
“누군데?”
“이번에 극동으로 파견되신 프로이센의 특명전권대사십니다. 외교관 신임장도 보여주시더군요.”
“응접실로 안내해드리게.”
프로이센의 특명전권대사? 프로이센이 특명전권대사를 파견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애초에 극동에 딱히 걸린 이권 자체가 없을 텐데 특명전권대사‘씩이나’ 파견할 일이 있나?
‘사칭은 아니겠지, 설마.’
좀 뒤의 일이기는 한데 왕족도 사칭하는 일이 있어서 잘 모르겠다. 일단 만나보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