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06)
폭풍(4)
인간이란 생물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 가운데 굉장히 고귀한 이들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들의 혈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으로 자신의 고결성을 증명한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들의 끝은 결코 좋지 않았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그 지능으로 자신에게 은혜를 입힌 존재의 등에 칼을 꽃는 법을 배웠다. 인간보다 현명하지 못해서 문명을 구축할 수 없었던 개조차도 먹이 주는 이를 물어뜯지는 않고, 도도하다는 고양이도 보은이란 개념이 있다.
물론 고양이는 길들이기 굉장히 어렵기는 하지만 그건 일부러 안 듣는 게 아니라 개보다 머리가 나빠서 사고를 쳐놓고 이게 사고인지 이해를 못 하거나 자기가 친 사고와 주인에게 혼나는 것 사이의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 즉 말을 해도 못 알아먹을 정도로 지능이 후달리는 게 죄지, 고양이들이 자기 주인과 가족을 따르지 않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자기를 구원해준 이들을 쏴버리고, 자기에게 해를 입힌 자들의 방식을 그대로 본받아 다른 이에게 행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요구한다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명의 인간은 고결할지 몰라도, 인간이 이루고 있는 집단은 뒤집어쓰고 있는 위선을 벗겨보면 끔찍한 이기심으로 뭉쳐있고는 하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만든 문명이기에 부조리를 담고 있다.
선동된 대중은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대중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 일이 흔하다. 야심가나 정신병자들이 만들어낸 사상은 그 정신병자나 야심가들의 목을 매달아도 독극물처럼 퍼져나나가고, 꾸준히 살아남아 제 2의, 제 3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일이 흔하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유토피아는 인간의 손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닿으려 하면 멀어진다. 유토피아를 향해 아무리 힘껏 달려가려고 해도 도망치기만 한다. 쫓고 또 쫓아도 닿을 수 없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목적에 따라 선동하고, 부질없는 복수를 위해 독극물을 퍼트리고, 목욕하지 않은 사람이 악취를 어떻게든 가려보려고 향수를 뿌리듯, 짧은 역사와 미천한 출신을 가려보기 위해 돈을 펑펑 쓰는 졸부들처럼 명성에 금칠을 시도한다. 알면서도 멈추려 하지 않는다.
비스마르크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결론은 이미 내렸다.
‘절대로.’
정부체제가 바뀌고, 사상이 변해도, 인간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물론 비스마르크는 나보다는 현명한 인물이기에, 뭔가 나를 설득할 만한 다른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그것도 비스마르크가 내게 딱히 답을 주지 않았으니 아마 꽤 오랜 시간 동안 의문부호로만 남아 있으리라.
이익, 신념, 은원.
범죄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동 중 3분의 1은 이 셋에 의거한다.
다른 3분의 1은 어떠한 의미도 없는 행동이며, 마지막 3분의 1은 앞의 두 행동에 어떻게든 명분을 부여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은 나는 편지지에 글을 적어내렸다.
문의한 사항에 대한 아우렐리아 정부의 법률 고문으로써의 답을 전함, 본래 사면권은 군주의 고유 권한임, 현재 ‘타국 군주’ 자격으로 이왕가의 국왕 이변이 한성에 머물고 있으나 10년 내로 퇴위할 것이 확실시되는 바, 사면권을 행사할 주체는 아우렐리아에 존재하지 않음, 또한 국민 스스로가 선택한 단일한 대표가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일 뿐인 집정관이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음, 아우렐리아 헌법에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 명시된 이상 사면권을 행사할 주체는 국민과 그 대표자인 의회뿐임, 따라서 의회에서의 만장일치 및 국민투표에서 국민 과반수 이상이 참여한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만 사면을 집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됨.>
의회에서의 만장일치에 더해 국민 과반수가 투표에 참여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으라는 말, 즉 최소 국민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구하라는 건 그냥 사면권 쓰지 말라는 소리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헌법에 박아놓고 사회 지위가 높은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기본적으로 가중처벌 대상이라고 형법에 박아놓은 게 나다.
물론 사법부 자체도 팔다리 싹 잘라놨긴 했다. 판사는 재판 기간 동안 의자나 데우다가 선고일에 판결문을 읽는 사람일 뿐 판결을 내릴 권한이 없다면 믿겠는가? 모든 판결은 배심원이 내린다. 형량의 경우는 검사가 제시한 형량에 양형기준에 따라 플러스마이너스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실제로 하는 일은 그거보다 조금 더 많고, 그렇기 때문에 법에 대해 공부를 안 하면 못하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검사가 일을 똑바로 하면 할 일이 없는 자리인 건 사실이다. 판사는 일단 재판이 성립하면 배심원들이 쉽게 선동당하지 않고 법에 의거한 판결을 내리도록 돕는 법률보조인일 뿐이니까.
마찬가지로 검찰도 혼자 마구잡이로 날뛰지 못하게 팔다리 잘라놓은 건 마찬가지다. 아니, 내가 만들어놓은 체제에서 자기 분야라고 해서 자기 멋대로 날뛸 수 있는 기관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죄다 최소한 팔다리 하나씩은 토막쳐놨으니까.
기관 하나가 드러누워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기구가 최소 하나씩은 있다. 경찰이 수사를 안 해도 검찰이 할 수 있고, 반대도 가능하다. 영장 청구도 마찬가지, 거기에 기소권도 프랑스식으로 사법부의 예심판사와 행정부의 검사가 나눠가졌으니 상호견제가 된다.
심지어 기소도 검찰과 예심판사가 안 하겠다고 누워버려도 미국식 기소배심제가 혼용되기 때문에 국민이 기소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반대로 억지로 사람 기소했다가 무죄로 나오면 당사자들의 인사상 불이익은 각오해야 하는 거고.
검사는 경찰과 별도의 수사권을 가진 걸 빼면 형사 사건의 원고 측 국선변호사고, 판사는 배심원에게 법 해설하는 역할이니까 법률중개인인가.
이건 예시일 뿐이고 자기 분야라고 해서 부서나 기관 하나가 국가를 쥐고 흔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로 만들었다. 전관예우도 싹 막았다. 퇴사 후 동종업계 취업금지나, 법이나 수사 관련된 인물들은 20년간 자기가 수사나 판결할 때 엮였던 대상에 고용되는 걸 금지한다거나.
최소한 내가 만든 체제 내에서는 착한 사람은 법을 지키고 나쁜 것들은 법이 지킨다는 소리를 듣지는 말아야 할 거 아닌가.
전생에서는 힘이 없어서 못 했다. 그럼 힘이 생겼으면 해야지, 힘이 있는데도 안 하는 건 비겁한 짓이다.
“공작 각하?”
“뭐냐?”
“말씀하신 것처럼, 프로이센 대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프로이센계 상인들과 접촉을 여러 차례 했다던데….”
“상인이라.”
나는 버릇처럼 턱을 만지작거렸다.
“병력을 여기서 대규모로 동원할 수는 없을 테니 역시 무기 판매인가. 접촉한 상대는?”
“조사해 왔습니다. 홍콩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는 함부르크 출신 유대인 상인인 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로, 1851년부터 사업을 해 왔지만 최근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오페르트?”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아는 그 오페르트인가?’
물론 조선이 개항되고 조선왕조가 엎어져버린 지금 그 인간이 남연군 묘를 팔 일 자체가 없어지긴 했다만….
“아마 무기를 팔아먹을 중개인이 필요한 모양이지, 그리고 경영난에 시달린다는 것 역시 부려먹기에는 플러스 요소였을 거고.”
“저지할까요?”
“조금 관망해 보지.”
나는 씩 웃었다.
“어차피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
***
“쏴라!”
외침과 함께 포성이 울렸다.
산탄이 날아들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기병대를 휩쓸지는 못했다.
-타앙! 탕!
미제 헌트 레버액션 소총을 말 위에서 쏘아대는 한국군 앞에서 일본군은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고 쓰러져나가고 있었다.
“으아아! 당당하게 맞서라 이 개새끼들아! 덤빌 듯 말 듯 깐족대지 말고!”
“내 엉덩이나 핥아라 왜놈들아!”
카라콜.
이전의 단발식 머스킷과는 다르게 리볼버나 레버액션 라이플을 장비하면 여러 발을 쏠 수 있는 데다 창기병이나 검기병 등 고도의 훈련을 요구하는 기병 양성이 힘들었던 아우렐리아에서 채택한 전법이었다.
그리고 땅 위에서 쏘고 있는데도 일부 서양식 총기를 제외하면 도저히 조총으로는 사거리가 안 나오기에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꼴이었다. 대포는 제대로 맞을 수도 없고.
-타앙!
“아아악!”
병사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총에 맞으면서 사슬갑옷이 깨지고 총알과 파편들이 몸 속으로 박혀들어간 것이다.
사쓰마 번의 젊은 무사 오쿠보 도시미치는 이를 갈면서 조선의 비열함에 분통을 터트렸다.
“크으… 우리에게도 양총이 있었으면!”
화포를 계속 쏘자니 화약이 바닥나는 순간 기병들이 그들을 짓밟으러 달려들 게 뻔하고, 쏘지 말자니 피해가 누적될 뿐이었다.
그때, 전령이 급히 도착했다.
“무슨 일이냐?”
“번주께서 무사들을 소집하셨습니다.”
***
카라콜을 하는 적 기병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이렇게 질문하면 보통 그냥 지리에 밝은 걸 이용해서 몰아넣은 다음 총병으로 상대하십쇼, 총병이 사거리가 한참 길잖습니까. 명중률도 높고. 하다못해 방진만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어도 쉽게 못 뚫고 들어갑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거다.
그러니 여기에 전제를 붙이자.
Q : 만약 우리가 근대화를 하지도 못하고 기껏 수입한 신형 화기는 회전에서 말아먹어버려서 상대가 레버액션 라이플 쓰는데 우리는 화승총 쓰는 상황이면요? 장전 속도, 사거리 전부 딸리는데요? 유리한 건 머릿수랑 홈 어드밴티지 정도….?
A : 지형 같은 거에 의지해서 버티는 게 최선입니다. 상대의 보급이 고갈될 때까지 버텨내야 합니다.
Q : 보급이 적이 더 유리하고 우리는 해상봉쇄까지 당해서 지원군도 기대하기 어려우면요?
A : 상황은 바뀌기 마련이니 바깥은 포기하고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성에 쳐박히십시오. 그 동안 바깥에 있는 건 전부 포기하시는 게 편합니다.
Q : 적이 우리 대포보다 네 배는 사거리가 길고 파괴적인 공성포도 가져왔으면요?
A : 나가 뒤지십쇼.
“그러니, 농성전을 벌이기 전에 저들의 대포를 어떻게든 파괴해야 한다.”
말은 쉽다.
지금 눈앞의 한군이 기병 위주라고 해도 볼리 건으로 무장한 보병들이 포병들을 지키고 있다.
“병사들을 돌격시켜서 시선을 끌고, 목숨을 건 결사대로 하여금 포병들을 치게 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한 무사가 제안을 올렸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다른 의견이 있는가?”
“……..”
“없는 것 같군, 그렇다면 오쿠보! 네가 무사들 중 사쓰마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실력 있는 충의지사들을 뽑아라!”
“예! 알겠습니다! 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