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10)
귀향(2)
비스마르크는 원고를 다시 읽었다.
“가능하다. 하지만 불가능해.”
그렇기에 한숨을 쉰다.
가능한데,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데.
자신의 생전에는 불가능하다.
‘아쉽구나.’
비스마르크의 눈에는 보였다.
지금 유럽의 형세는 이중제국이라는 거대한 손아귀가 유럽을 콱 움켜쥐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 손아귀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그 손아귀의 힘이 유럽에 집중되고 있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으니.’
프랑스는 이미 신성로마제국 내 소국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리슐리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프랑스와 독일은 충돌할 것이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는 이중제국이지만, 이중제국이 프랑스 지원으로 방침을 굳히고 그들을 견제하기 시작한 이상 유럽에서의 고립은 현실화될 위협이 너무 크다.
단순한 고립만으로는 국가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다만, 사소한 불꽃이 튀긴 순간 그것을 명분으로 반국가동맹이 결성된다면? 그리고 포위망 속에서 허망하게 무너져내린다면?
참으로 속이 뒤집어질 일이지만, 이중제국은 반국가동맹이 안 먹히는 상대다. 군대를 끌고 쳐들어가봐야 러시아에서 얼어죽거나 영불해협에서 수장밖에 더 당하겠는가.
‘그러느니 차라리 유럽에서 모든 전쟁을 막는 것이 낫다.’
어차피 프로이센이라는 국가가 더 전쟁을 해서 얻어낼 수 있는 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국제연합’이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최소한 유럽 지역에서만이라도 이러한 개념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정말 평생을 바칠 이상을 찾아낸 것일지도 몰랐다.
국제연합이라는 이상을.
“모든 것은 조국을 위해서.”
그 외의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독일의 지위는 너무나도 위태롭다.
단 한 발자국을 잘못 내딛음으로써 영원히 파멸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지위를 국제연합으로 고착시킨다.
이리저리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국제연합의 본질은 국제질서의 고착화이자 전쟁의 중단과 외교적 갈등의 최소화를 통한 변수의 제거니까.
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남은 삶 전부를 이 국제연합의 현실화에 바치리라.
그렇게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재차 다짐했다.
***
조슈, 일본.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새로운 시대에 이따위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남자는 모여 있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계속했다.
“유학은 물론 중요한 정신적인 가치다. 하지만 정신적인 가치라 함은 현실 속에서는 쓸모가 부족하다는 의미도 되지. 그리고!”
남자는 격정적으로 외쳤다.
“유학자로써 살아가겠다면, 너희를 대체할 자들은 세상 천지 사방에 널리고 널렸다. 이해했나? 널리고 널렸단 말이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것은 저들의 삶이다. 저들의 기계문명이다.”
강의자, 요시다 쇼인은 강변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명화다. 개화다. 여태까지의 일본은 비문명국이었다. 비문명국이어서 이 꼴을 당해온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유럽 열강의 기술을 배워서 그 기술로 저들을 몰아내겠다는 말랑말랑한 생각을 하고 있는 놈이 있으면 당장 이 방을 나가라, 저들은 이걸 만들어내었고, 우리는 이걸 배우는 입장이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으려면 스승의 성취를 앞서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 법. 그런데 우리가 노력하는 동안 저들은 놀고 있는가?”
“우리가 저들을 앞지르려면 저들이 가진 모든 걸 먹어치우는 걸로는 부족하다. 우리만의, 일본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럴 기초조차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배워야지! 배우고 또 익혀야 한다! 더 나아가 외교적으로는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구제해야 한다. 이 시대에 가장 강대한 국가는 이중제국이며, 우리는 그렇기에 이중제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이중제국에게 우리의 쓸모를 보여야만 식탁에 올라가는 신세만은 면할 수 있다!”
열변을 토하던 쇼인은 한 방향을 가리켰다.
“조선을 보라, 월남을 보라! 그들은 저들에게 쓸모가 있었기에 찌꺼기를 빌어먹고 살지언정 그 자신이 요리가 되는 것은 면하지 않았는가? 물론 그렇다. 저들은 밥상의 찌꺼기를 빌어먹는 거지, 아니면 남은 밥을 받아먹는 하인이지. 하지만 우리는 그 식탁에 올라갈 반찬이다! 식탁에 오르기 전 도살당하기 위해 끌려가는 돼지가 엄연히 인간인 하인을 주인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먹는다면서 비웃겠는가? 그 먹히는 입장이 되어서?”
솥에 들어간 짐승이 자길 먹을 인간을 다른 인간이 먹고 남긴 거나 먹는다고 비웃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밥을 먹고 남은 찌꺼기를 개밥으로 먹는 사냥개라도 그 개밥에 들어갈 예정인 돼지고기보다는 호사를 누리는 셈.
“우리도 할 수 있다! 왜 저들은 조선과 월남을 모두 사냥개로 내세웠는가? 조선은 극동 영토의 배후지 역할을 해 왔고, 월남은 프랑스의 확장을 저지했다. 그리고 사냥개가 두 마리면 주인이 없더라도 서로를 견제하느라 주인을 배신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건 불안정하다.”
만약, 두 사냥개의 이해가 일치해 주인을 함께 물어뜯기로 결정한다면?
“그 틈이 일본이 살아날 길이다. 이 나라의 파멸과 노예화 사이에서 좁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생존의 길이다.”
세 개의 발을 가진 솥. 삼국.
천하삼분지계.
물론 그들이 알아왔던 천하라 함은 새롭게 드러난 세계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작고 작다.
하지만, 작고 작다 한들 그것이 중요하겠는가.
그 자그마한 천하라도 남아 있는 한, 그들이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할 뿐.
두 마리의 사냥개는 방심한 주인을 잡아먹기 위해 동맹할 수 있다.
그러나 셋은 결코 함께할 수 없다.
반드시 주인에게 밀고해 다른 둘을 삶아버리고 그 뼈다귀를 기대하는 게 낫다 여길 배신자가 나올 테니까.
“해낼 수 있다.”
그들이 조선보다 못한 것이 무엇인가. 월남보다 부족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조선이 해냈다면, 월남이 해냈다면..
그들도 해낼 수 있다.
아니, 해내야만 한다.
“막부는 이미 끝이다. 우리가 새로운 막부의 주축이 되어야만 한다.”
신 막부를 세운다.
도쿠가와를 과거의 유물로 던져버리고, 새로운 일본을 세운다.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버리고, 또 비워내고, 세상에 뛰어들어 새롭게 채워낸다.
버려져야만 하는 과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설령, 일본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덴노라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 존재가 일본의 근대화와 존속에 방해가 된다면
기꺼이 치워버리겠다.
***
광화문 앞에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그 가운데 설치된 단상의 뒤편에 있던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황제에게만 허락되는 옷인 황룡포를 입은 남자.
조선 왕조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는 중얼거렸다.
그는 황제가 되었음에도 으레 하는 6대조까지의 추존을 받지 못했다.
강화도에서 조용히 살다가 뜬금없이 한양으로 잡혀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치른 즉위식.
그리고 언제 목이 잘릴지 몰라 숨조차 마음놓고 쉴 수 없었던 나날들.
그 모든 나날들이 드디어 끝이 난다.
“황제 폐하.”
“…. 김 집정.”
황제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 한 가지만 약속해주시오.”
“말씀하십시오.”
나는 당신의 신하가 아니다.
하문이라거나 하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는다.
그런 의사를 보여주는 김병언에게 그는 말했다.
“내가, 시민 이변으로써 조용히 살 수 있게 해 주시오.”
“감시는 붙을 겁니다. 헛짓을 하려는 인간들이 있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저 조용히 사시는 게 원하시는 전부라면. 그 뜻대로 될 겁니다.”
“나는 본디 이 옷을 걸칠 사람이 아니었소. 관을 쓸 사람도 아니었고, 그저 내가 일굴 땅 한 뙈기와 이슬을 피할 세 칸짜리 초가면 충분하고도 남았소.”
“………”
삿갓을 쓴 집정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뜻대로 될 것입니다.”
작은 집 한 채와 일굴 밭 몇 마지기.
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토지개혁법에 따라서, 정해진 만큼의 땅은 누구나 받아갈 권리가 있으니까.
그게 설령 전 황제라고 해도, 시민인 이상 자격이 있다.
그 말에 홀가분한 표정을 지은 이변은 단상으로 올라갔다.
양위를 위해서였다.
한 인간에 대한 양위가 아니라. 조선 팔도에 사는 모든 인간에 대한 양위를 발표하기 위해서.
그리고, 조선 왕조의 마지막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기 위해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태조 이성계가 무수한 피를 뿌리며 왕위에 올랐는데, 자신은 피를 흘리지 않고 내려오게 되었으니 어찌 다행이 아닌가.
왕조의 마지막 군주가 된다는 것이 씁쓸하고,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디 조선 왕조가 한민족의 탄생과 함께하였던가. 그렇다면 저 웅장한 고구려는, 그리고 저 왜인들의 스승이었던 백제는. 그리고 그 둘을 무너트린 신라, 그리고 고구려의 혼을 이어받은 발해는. 그 둘이 다시 무너질 때가 되어 무너진 뒤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태어난 고려는 무엇이던가.
모든 인간이 죽어 한 줌 흙으도 돌아가듯이,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왕조도 무너질 때가 되면 무너지는 법. 단지 그것이 자신의 대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참으로 얄궂을 뿐이다.
민심은 곧 천심이며, 따라서 민중의 손에 왕위를 찬탈당한다 함은 하늘이 내려 준 왕위를 하늘의 뜻에 의해 다시 거두어가는 것이니, 벼슬이 오르고 내리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는가.
어차피 멸망할 거라면, 누구도 자식을, 남편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창자를 끊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제위는 허망할 따름이지만, 그 자신은 허무하지 않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과 함께 영원히 떠나가리라. 다시는 이 심연 밑바닥에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발을 대지 않으리라.
그가 겪어본 황제란, 천금을 받고 만 명의 미녀를 준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은 짓이었다.
***
소녀는 토끼 굴 아래로 추락한다.
추락하고, 추락하고, 추락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많은 모험이……..
“젠장. 글 한 번 정말 안 나오네.”
슬슬 이제 내 머리도 삐걱거린다. 거기에 꿈자리까지 사나웠고.
세상이 불타는 꿈. 끝없는 시체들로 인해 흙이 보이지 않고, 피가 시냇물을 이루어 흐르는 꿈.
거기에서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었다.
울고 있는 누군가.
나는 그 상대에게 총을 겨눈 것 같기도, 다가가서 안아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깼다.
“뭔 놈의 개꿈이…….”
나는 구시렁거리면서 펜을 내려놓았다.
꿈자리가 사나워서 그런지 글이 마음먹은 것처럼 진도가 쭉쭉 나가지가 않는다.
“오늘은 날이 아닌갑다.”
잠시 교외로 바람이라도 쐬고 올까 싶었지만, 날씨도 꾸물거리니 비가 올 것만 같다. 오늘은 아무래도 집에 박혀 있어야 할 팔자 같았다. 비가 오는 건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