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13)
해방전쟁(3)
오랜만에 외무성에 나온 나는 간단한 브리핑을 받았다.
“적어도 북부는 이대로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낙관주의를 버리기는 했지만 자기들이 질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듯 합니다.”
“당연한 일이지.”
무기 생산능력이 30대 1 이상으로 벌어져 있고 변변한 공장도 없고 그나마 공장이 좀 있던 웨스트버지니아는 초전에 뺏기고……. 뭘로 싸울건데?
“그쪽 이야기보다 동아시아 이야기나 좀 해 보게, 난 차라리 그쪽을 다시 맡아보고 싶은데 말이네.”
“그건 총리님과 이야기하셔야……”
“뭐, 지금 일본 전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중국은 또 어떻고?”
“태평천국은 거의 무너졌습니다. 공작 각하께서 이전에 예상하신 것처럼 중화제국이 성립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명한 일이었지.”
“잔존 세력 일부만이 저항하고 있으니 수 년 내에 진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아우렐리아군의 통제가 극히 어렵다고 합니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한국은 근대화했지만, 빚더미를 쌓아가면서 한 근대화다. 내실은 극히 허술하기 그지없고, 외국 자본이 잠식해댄 탓에 국민들은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가난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군대에 간다는 건 자명한 이치다.
“일본 전역에서 학살이나 약탈, 방화 등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군은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중제국은 해군만 투입했다. 프랑스는 이름만 걸어놓고 수십 명 단위의 의장대 하나 보낸 게 전부다. 결국 유의미한 규모의 전투부대를 파견한 건 네덜란드와 영국의 대리인으로 투입된 한국군뿐이다.
그런데 네덜란드군이라고 수가 많은가? 전혀 아니다. 수백 명 단위의 병력이고, 아우렐리아군은 그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네덜란드군은 이들을 통제할 권한도 능력도 없다.
영국군은 이론상 가능하지만 투입된 영국군 중 일본 땅에 발을 들이민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나가사키 정도나 들락거릴 뿐. 지상 전투부대는 전혀 투입되지 않은 데다 그냥 명령만 따르면 약탈을 하든 뭘 하든 신경을 안 쓴다고 한다.
“문제는 정부가 약탈을 은근히 조장한다는 겁니다.”
“빚이 많으니까.”
따서 갚는다.
유구한 역사에 빛나는 채무 변제 수단이다.
민간 차원에서도, 정부 차원에서도 그렇다.
병사들은 자기와 가족들의 빚을 갚기 위해 약탈을 하고 정부는 그 약탈품으로 타국 정부와 회사와 은행 등등에 진 무거운 빚을 변제하기 위해 그 약탈을 등떠밀어서 하는 꼴.
차라리 배상금으로 뜯어내는 게 깔끔하지만….. 과연 그 배상금 중 몇 퍼센트나 한국 정부에게 돌아갈까?
‘깽값 정도나 좀 주겠지.’
온정적인 글래드스턴이라면 그럭저럭 챙겨줄 수도 있겠는데 디즈레일리라면 진짜 딱 출정비용만 칼같이 지불한 뒤 국물도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배상금은 거의 힘도 안 쓴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다 나눠먹을 게 너무나도 뻔하다. 그러니 배상금 통계에 절대 잡히지 않을, 계산 자체가 불가능할 약탈로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은… 품위가 떨어지기는 해도 실리를 추구한 게 맞긴 하다.
당하는 일본인들도 딱히 원망 따윈 하지 않을 거다. 과거사 따위 묻지 말고 명분 대신 실리를 챙기는 외교를 하라고 그렇게 훈수질을 해 대던데 명분이 서는 대신 열강과 드잡이질을 해대는 배상금에서 몫을 얻는 방법을 버리고 군자가 할 짓이 아니라고 욕을 먹더라도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 극심한 약탈을 저지르는 거니까.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실천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칭찬을 해줘야지.
“아우렐리아 정부 입장에서도 생사를 건 문제다. 그쪽 재정 건전성이 개판이란 건 거기서 고문으로 일했던 내가 제일 잘 알거든.”
카드 돌려막기로 국가를 경영하는 꼴이니 디폴트가 나든 어디서 목돈을 뜯어오든… 국가수입은 반드시 써야 할 곳만 쓰고 유럽과 미국의 금융기관과 정부에게 납기일 지켜서 이자를 지불하기도 빠듯할 거고 원금 상환도 쉽지 않을 거다.
“못 하게 하려면 채무변제기한을 좀 늘려주거나, 아니면 영국 정부에 진 빚이라도 탕감해주거나.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뭘 건드리든 간에 내각불신임이 터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글래드스턴조차 그걸 건드리기는 곤란할걸? 부채탕감? HOXY… 빨갱이신가요? 채무변제기한 문제도 영국의 은행들이 불만을 터트릴 일이고. 그걸로 해서 얻는 명확한 국익도 없다.
“총리 각하께서 거기에 대해 뭐라고 안 하시나?”
“왜 안 하시겠습니까. 이제 와서 징벌 전쟁을 중단하실 수도 없으니 실질적으로 뭘 못하시는 거죠.”
만약 자산취득행위를 통해 얻은 습득물을 바다 건너로 못 가져가게 막는다? 대번 종군거부가 일어날 거다. 무력으로 못하게 강제한다? 그 무력을 거기까지 어떻게 투사할 건데?
“뭐, 어쨌든 약탈을 못하게 막아놓아서 얻을 이득도 없어, 우리가 일본을 정복해서 다스릴 것도 아닌데 뭐하러 막아? 웰링턴 공작님도 아니고 말야.”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닥쳐온다. 국화와 칼 비슷하게 나도 동방에 대한 글 한 편 써내는 게 어떨까?
[과거와 다르게 아우렐리아의 통치 철학은 조선 왕조 말기 일견 교조화되기까지 한 성리학에서 많이 변화했다. 우선 유럽에서 1848년 이래 좌익 세력의 생존자들이 극동으로 흘러가면서 그들의 좌익 아나키즘 사상 역시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의 유럽과의 접촉과 무너져가고 있던 국가체제 등이 지식인 계층에게 허무주의적 관점을 부여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왕정을 폐지하였고……. 동방에서의 불교 역시 이 니힐리즘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교와 불교 모두가 니힐리즘과 그 근원에서 깊게 연결된 시점에서 어느 정도 허무주의적인 사고관이 세계관 내에 깔려 있으리라는 것은 명확하며….] [이 사상이 극단화될 경우, 국가나 민족이라는 존재가 도덕적, 윤리적, 가치적 판단에서 지유롭다는 주장으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다. 이들은 세계가 움직이는 원리를 효용과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 원리라고 냉소적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전쟁 중인 상대를 약탈하는 것은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들의 국가 유지에 쓸모있는 자산이 있고, 그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으니 가서 빼앗는 것일 뿐이다. 명확히 해야 할 것은 내가 만나본 바 이들의 지도부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허무주의적 냉소주의자들인 것이다. 이 둘은 명확히 다르다. 허무주의라면 그들은 삶에 대한 의지도, 국가 경영에 대한 의지도 없을 것이며 굳이 왕정을 갈아엎고 혁명을 외치지도 않았으리라. 어찌 보면 오늘날 이들의 철학은 홉스나 마키아벨리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내용 일부가 상상을 하자마자 머릿속에 좌르륵 펼쳐진다.
하지만 나는 그걸 받아적을 시간이 없다. 나는 집의 서재가 아니라 외무성에 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인간 역시 약탈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아우렐리아에서 불법이야.”
“대다수가 노동 가능 남성 혹은 젊은 여성층이라는데 말입니다. 제독의 보고에 따르면 배후에 정부가 있다는 정황이 큽니다.”
“똑똑하군.”
“예?”
“경제력 향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노동 가능 인구와 인구 증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가임기 여성을 데려가는 건 그 도덕적 정당성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급하게 경제를 발전시켜야 망하지 않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효율적인 행동이야. 도덕적으로야 문제가 있지만 그게 우리가 알 바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총리님이….”
김병언의 판단을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산업화를 위해서는 공장에서 일할 충분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인구가 증산되면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렸고, 메이지 유신을 하던 일본은 농촌사회가 문자 그대로 조져지는 바람에 인구가 도시로 몰렸다.
근데 인구성장은 한시가 급한데 바로바로 되는 게 아니니까 자연적인 인구성장은 장기과제로 남겨두고 급한 경제적 성장을 위한 노동력을 확보하려면 농촌을 조져야 하는데…… 농촌이 조져지면 공화국 정부가 먼저 무너지지 않을까?
그러니 농촌에서 일할 대식이든 공장에서 일할 춘식이든 간에 일할 사람을 구해와야 하고, 그 결론이 사람 약탈이라면.. 충분히 말이 된다. 거기에 여자는 장기적으로 노동인구를 늘려줄 수 있으니까 우선순위가 더 높겠지.
하나 더 하자면 여차하면 해외에 팔 수도 있다. 미국도 남북전쟁 중이라지만 남미랑 아프리카에서는 아직 노예제가 현역이거든.
물론 노예사냥하듯 사람을 약탈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덕적으로는 욕먹을 짓이지만 아직도 아프리카, 그리고 심지어 이중제국의 영토인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현재진행형인 일이다. 물론 이중제국 정부가 계속 토벌대를 보내서 노예상들을 때려잡고 있긴 하다. 러시아의 농노해방령은 진작 내려진 데다 글래드스턴의 주도로 영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이들을 제대로 된 자영농으로 육성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니까 같은 맥락에서 볼 순 없다.
원 역사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시기부터 1920년까지 30만 명에 달하는 여자를 가라유키상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성노예로 팔아먹은 일도 있었다. 이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다만 여기는 약탈해가는 쪽이 인력부족으로 그러니까 노예를 챙겨가는 쪽이지 자국민을 노예로 파는 게 아니라는 건 좀 다르긴 한데.
애초에 아우렐리아가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것도 그 사상에 경도된 유럽 지식인들을 유인해와서 관료제에 집어넣고 고액 연봉을 받는 춘식이로 부려먹기 위함이라고 집정이 내게 실토했단 걸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공장 돌리고 농사지을 대식이 좀 잡아오는 것 정도는 이미 양심에 찔리지도 않을 거다.
“인구가 곧 국력인데, 아우렐리아인들이 일본 전체를 쓸어버린 다음에 프랑스인들이 들어오면 그 표정이 볼만 하겠군.”
“혹시 압니까? 아예 프랑스인들을 보내서 정착을 시킬지. 그리고 진짜 인구 전체를 쓸어가지는 않겠죠.”
“당연하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그 짧은 시일에 데려가면 얼마나 데려간다고? 춘식이 대식이가 가 봤자 수천이지. 21세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인구비율에서 그 이상은 차지하겠다.
“막말로 없는 것보다는 낫지 싶을 정도일 거다. 어떻게든 본전을 뽑으려는 게 안쓰러울 정도니까 그냥 놔둬, 핏값으로 그 정도는 해야지. 원래는 우리가 직접 보상해주는 게 낫지만… 짠돌이 의회가 돈을 주지를 않겠지. 대가를 따박따박 줘야 충성이 돌아오는 법이야.”
패권국가라 함은 자고로 자기가 좀 실질적인 손해를 입더라도 명분상 상대가 숙이고 들어오면 받아줘야 한다. 부하들은 실리를 좀 취하는 대신 그들의 팩션에 의리를 다하는 거고.
그걸 무시하고 동맹들을 등쳐먹고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동맹국들도 슬그머니 이탈하는 거다. 줄 수 있는 돈이 없으면 현지에서라도 뜯어내게 해줘야지.
“알겠습니다.”
물론 저들은 내 부하가 아니다.
근데 어쩌라고. 내가 지금 런던에 있다지만 극동에서 나랑 충돌해서 좋을 일은 장담컨대 없을걸?
왜인지 입안이 달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