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34)
미불전쟁(4)
“젠장.”
“제독님! 명령을!”
“양키 놈들의 목조선에 화력을 집중해! 놈들의 수를 줄인 다음 근접해서 철갑탄으로 사격전을 벌인다!”
수는 중요하다.
수십 척 대 수십 척이라고 하자, 그리고 어느 한쪽이 단 한 척 많다고 하면 결국 어느 하나는 두 척의 적함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면 두 척의 적함을 상대하는 쪽은 십중팔구 당할 거고, 그런 식으로 한 번 눈덩이가 구르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어진다.
흔히 말하는 란체스터 법칙이다. 물론 그 란체스터 법칙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있어야 한다. 란체스터 법칙을 만들어낸 양반부터가 아직 안 태어났으니까.
그렇지만 그 법칙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피탄!”
“불이야!”
곳곳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몇몇 함선들은 아예 활대기뢰를 달고 자폭할 각오로 달려들었고, 그게 아니어도 적극적인 접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반대로 프랑스군은 수적 우위를 살리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면서 하나씩 탈락시키려고 하니, 되려 프랑스 해군 함대가 진형을 유지한 채로 방향을 돌려 물러나면서 포를 쏴대고, 미군이 추격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한 척씩, 두 척씩 탈락해 갔다.
프랑스군도, 미군도 피해가 누적되고 격침되는 함선들이 나왔다.
기관이 터지고, 탄약고가 유폭한다.
함수에 달린 활대기뢰가 유폭해 침몰하는 함선들도 생겨났다. 애초에 활대기뢰는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사용하는 무기, 철갑선이 사용해도 영국이나 좀 쓰는 전철제 함선이 아닌 이상 내부의 목재 뼈대가 심각한 손상을 입으며, 목선이라면 그냥 빼도 박도 못하고 격침당하기에 미국 외의 어떤 국가도 사용하지 않는 무기다.
프랑스 해군의 기함을 굉침시킬 정도의 성능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미 해군에 징발된 구 남부군 소속 봉쇄돌파선들은 활대기뢰를 장착하고 돌진했고, 뉴 아이언사이즈를 비롯해 미 해군의 장갑함들은 이들이 치명타를 입지 않고 성공적으로 돌격할 때까지 방패가 되어주기 위해 선수포로만 사격을 퍼부으며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의 함선들도, 프랑스 해군의 함선들도 하나둘 가라앉았다.
마침내 몇몇 함선들이 성공적으로 프랑스 해군에게 활대기뢰를 직격시켜 자폭했고, 이미 거리를 벌리기에는 너무 가까이 와 있었던 양측이 포격과 백병전까지 동원해 맞붙었다.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백병전에서 밀린 함선들은 화약고에 불을 지르는 방식으로 자침하기도 했고, 그 전에 노획당한 함선들도 드물게 있었다.
해가 저물 무렵에는 양측 함대의 수는 한 자릿수로 줄어 있었다.
“함장님.”
“우리 수가 더 적군.”
미 해군 함장 한 명은 씁쓸히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이겼다.”
확신하듯 함장은 중얼거렸다.
프랑스 해군은 더 이상 작전을 강행할 여력이 없다.
본토는 안전하다.
그렇게 생각한 함장은 회항 명령을 내렸다. 아니, 내리려 했다.
전혀 다른 포성이 들리기 전에는.
“견시?”
“서북쪽…. 함선 약 30척입니다.”
프랑스 해군의 잔존함 3척이 다시금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만신창이가 된 미 해군 함선 두 척은 포탄에 맞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해군 군함 라 글루와가 매너서스함과 모니터함을 향해 포격을 가했고, 모니터함은 이미 시작된 침수가 가속화되었다.
선원들이 쉴새없이 펌프를 움직여 물을 퍼냈지만 이미 침수 자체가 걷잡을 수 없다는 보고를 받은 함장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부장, 보트를 내리게.”
“함장님.”
“생존 승무원들은 전부 보트에 태우고, 탄약고를 개방하고 남은 탄약을 전부 쌓아두게.”
침수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프랑스 해군이 개입하면 그대로 프랑스군의 전력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것은 함장 스스로도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내가 마지막에 내리겠네.”
***
일본, 오사카.
“저놈들은 오만방자하게도 오사카로 바로 진격한다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야마가타 아리모토는 지도를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다행히 프랑스는 주력 함대를 전부 대서양으로 보내고, 우리 쪽에는 무장상선들만 한 부대 보냈지.”
그리고 그 무장상선들 가운데 철갑함은 없다.
“기함은 철갑함이라지만 그것도 철갑을 씌운 목조선, 골조는 죄다 나무야.”
그리고 스승님께서는 이를 위한 비단 주머니를 준비해 주셨다.
“조선 측에서 들여온 신무기가 그놈들이 장담한 만큼만 성능을 내 준다면 제 2, 제 3의 방책도 필요 없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 그러니 우리는 조선 놈들이 제공한 신무기가 단 하나의 피해도 주지 못했다고 가정하고 작전을 계획한다.”
“에이, 그래도 시험사격은 우리도 해 봤지 않습니까? 그거 화끈하기는 했습니다만.”
“모를 일이다. 전쟁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하는 법, 계획 몇 개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게 패전보다는 나아.”
해안포로 막대한 화망을 구성하기 위해 무기 공급처인 조선에서 대포란 대포는 싹싹 긁어온 것도 모자라 간신히 몇 정 남아 있던 구식 총통과 불랑기, 홍이포들도 긁어왔다.
조선이 불평하긴 했지만 스승님이 나중에 더 좋은 걸로 채워주겠다고 약속했고 당장 포 쓸 일도 없긴 하니 입을 다물었다.
덕분에 쉽게 구하기 어려운 29문에 달하는 공성포급 중포까지 구해와서 해안포로 배치했고, 각종 구포 등등도 배치되었다. 화약도 남미에서 생산된 걸 호주를 통해 대량으로 사들여서 넉넉히 준비되었고, 서양식 지뢰와 기뢰까지도 배치했다.
그리고 영국과 독일이 연구 목적으로 입수한 활대기뢰까지 복제한 뒤, 배란 배는 모조리 끌어모았다.
“어차피 해전에서는 상대가 안 되니, 철갑함 한 놈만 잡는다고 작정하고 함포의 엄호를 받으면서 돌격시킨다.”
다이묘들이 자기 가문의 요트처럼 쓰던 구식 아다케부네나 세키부네 등 화선은 물론 조선에서 증기선의 도입 이후 경비함마냥 쓰이며 방치되던 판옥선이나 사후선 같은 배들도 죄다 긁어왔고, 중국에서도 각종 배라는 배는 다 모아왔다.
종류도 노선, 범선, 기선 등등 다종다양했다.
노꾼들과 선원들은 높은 확률로 몰살당하겠지만 알 바 아니다. 단 한 대, 단 한 대만 맞추면 불란서의 철갑함을 골로 보내버릴 수 있으니까.
“메구라부네를 잡으면 다른 배를 노려도 되겠지만, 최우선은 메구라부네다.”
야마가타는 바쁘게 세부 사항들을 지시했다.
***
“발포! 발포! 저 미친놈들을 쫓아내!”
프랑스 해군의 프리깃 기반 철갑함 푸흐스이방은 미친 듯이 대포를 쏴댔다.
포탑이 돌아가면서 함포가 쉴 새 없이 불을 뿜었고, 일단 적중하면 박살이 났다.
문제는 그놈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명중만 시키면 격침시키는 건 순식간이었지만 문제는 격침을 시켜도 시켜도 사기가 꺾이지도 않고 달려든다는 점.
이게 뭘 노리는지는 누가 봐도 뻔했다.
자폭.
“이 야만적인 것들이!”
푸흐스이방의 함장인 레옹은 이를 갈았다.
어디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만 내에 진입하자마자 숫자로 만의 출구를 막아버리고 무작정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속사포에 줄줄이 격침되어도, 시체 한 조각 찾지 못하게 되어도 저들은 달려오고 있었다.
프랑스 해군이 알 리는 없었지만 그것은 단지 용기나 광기가 아니었다.
도망쳤다가는 어떤 대가가 기다리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도망가면 죽느니만 못한 꼴을 당할 거고, 싸우다 죽으면 영웅이 되며 이기면 살 수 있다.
그런 각오로 수백 척이 단 한 척의 함선을 노리고 덤벼오니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전력의 열세는 명백했다. 당장 영국 해군의 철갑증기선 네메시스 호가 수십 척의 청 수군 선박을 격침시킨 전적이 있지 않은가? 오히려 교전비만큼은 그보다도 훨씬 압도적이었다.
문제는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놈들이 자기만 보고 달려들면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원포격을 가해주던 운 없는 무장상선이 항로를 이탈한 적함과 충돌하자마자 대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하자 프랑스 해군 장교들은 저들의 실체를 빠르게 눈치챘다.
“활대기뢰!”
다가오는 함선 전부에 활대기뢰가 꽃혀 있다고 생각하면 이건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빌어먹을 양키 새끼들이!”
활대기뢰는 그들이 알기로 미국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미국은 여기에서 진짜 억울한 입장이었지만 프랑스 해군 입장에서는 알 바 아니었다.
“함장님! 해안포 사격입니다!”
“제기라알!”
육지에서는 포탄이 빗발치듯 날아오고, 등 뒤에서는 활대기뢰를 장착한 자폭함들이 머릿수로 밀고 들어온다.
게다가 해병대를 싣고 있는 무장상선들은 또 따로 보호해야 했다.
“프리깃함들은 후방으로 이동해서 무장상선들을 보호해! 일단 해병대 놈들을 상륙시켜야 한다!”
물론 이들이 프랑스 원정군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선봉대고, 정예부대가 모여 있는 데다 해군력이라고 할 만한 병력은 다 여기 모여 있는데 상륙이 초전부터 꼬여버린다면 원정 자체에 막대한 악영향이 간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놈들을 내려놓긴 해야 했다.
“하지만 해안포가…..”
“어차피 마구잡이로 쏴댈 뿐이야! 명중시킬 만한 건 많지 않다! 어떻게든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상륙하라고 해!”
***
자폭, 필승의 전술 등은 일본인의 심금을 울리는 뭔가가 있기는 한 모양이지만, 실제로 효율은 떨어진다.
일단 자폭은 누구나 처음 해보는 것인 만큼, 그리고 적군은 아예 해안가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징집해 쏟아부은 상황이니 만큼 숙련도가 부족했다.
협박 때문에 일단 뭐라도 해 보려고 하는 티는 나는데 또 마구잡이로 끌어모은 선박들의 속도가 맞지 않아 이리저리 엉키면서 각개격파를 당하고, 심지어 자기끼리 충돌해 자멸해버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니 야마가타가 나름 이것만으로도 프랑스 해군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자폭부대들은 실질적으로는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물론 해전을 벌이는 것보다야 유효한 타격이었을지 몰라도 말이다.
“쯧.”
“어쩌시겠습니까?”
활대기뢰 부대에 대한 기대를 버린 야마가타 아리모토는 명령을 내렸다.
“준비한 대로 해라. 사전에 설정한 대로 포격을 지속해.”
“아, 알겠습니다!”
신호기가 오르고, 포격이 특정 방향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장상선들은 보트를 내릴 만하면서도 포격을 피할 수 있는 위치들을 조금씩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포격의 사각지대에서 보트를 내리는 것을 본 야마가타는 명령을 내렸다.
“발사.”
그리고 조선에서 받아 적군이 비축해두었던 수천 발의 백린 소이신기전이 단 한 발도 남김없이 빗발치듯 프랑스 해병대의 머리 위로 쏟아졌고, 도자기로 만든 약통 안에 있던 백린은 자신이 닿는 모든 곳에 화려한 불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목재로 만들어진 배와, 그 위에 있는 피와 살을 모조리 불살라 수장시켜버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