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35)
미불전쟁(5)
물론, 야마가타나 다른 이들이 은근히 기대한 것처럼 함대 전체를 태워버리지는 못했다.
피격당한 상선들이야 화끈하게 불타올랐고, 보트도 맞았다면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백린은 물 위에서도 타오르는 물건이 아니다. 백린 화염도 물 속에 아예 집어넣어버리면 꺼진다.
그리고 프랑스군의 함대가 아무리 많아도 적이 7할 바다가 3할씩 되는 상황은 당연히 아니었던 만큼, 그리고 신기전의 명중률은 애초에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는 것과 바람에 심대한 영향을 받는 등 여러 원인으로 제대로 뒤집어쓴 배들은 손쓸 틈도 없이 전소했지만 그게 아닌 소형 보트들이나 운 좋은 무장상선들은 화를 면했다.
물론, 그게 사기에 미친 영향은 별도로 평가해야 할 터였다.
무엇보다 횡액을 당한 것은 프랑스군의 철갑함 푸흐스이방이었다.
수많은 자폭선을 피해다니면서 포격을 가하던 푸흐스이방을 향해서도 어김없이 신기전이 쏟아졌다.
그 중 일부는 자폭선들 위에 떨어지면서 아군 살상을 자행했지만, 일부는 푸흐스이방을 명중시켰다.
갑판에 뿌려진 백린의 화염은 순식간에 함 내부의 목조 골격을 살라먹으면서 대형 화재를 일으켰고, 철갑 틈새로 흘러들어간 백린은 불꽃을 일으키면서 유기물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고작 불화살이 철갑함을 손상시킬 수 없다며 안이하게 굴던 승조원들도 내부에서 발생한 백린 화재에는 기겁을 했지만 백린 화재가 쉽게 끌 수 있는 거였다면 그렇게 악명이 높지도 않았을 것이다.
몇몇 수병이 백린 입자에 접촉하거나 아예 들이마시는 바람에 고통스럽게 사망한 후, 결국 화재를 진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함장은 배를 포기할 것을 지시했고, 무력화된 채 백린 화재로 한참을 타오르던 푸흐스이방은 내부 탄약이 연쇄적으로 유폭하면서 마침내 가라앉았다.
그리고 아직 살아남은 이들을 향해 발포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야포들이 발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신기전의 사격권 내로 몰아넣으려고 의도적으로 해당 위치에 있는 해안포들만 발포하지 않고 있었는데, 신기전 사격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으니 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장군님! 아무래도 상륙 자체를 막기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해안포로 동원한 야포부대는…..”
“필요없다. 우리는 신불랑기포의 지원하에만 작전할 거다.”
신불랑기포는 역시 스승님이 기초적인 설계를 하신 병기로, 쉽게 분해해 운반과 방열이 빠른 산탄 전용 소구경포다.
물론 산탄을 쓰니 사거리도 짧다는 문제가 있어 적의 직사화력에 그대로 노출되지만, 그 대신 공업 기반이 전혀 없는 일본에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싸고 간단하다.
“포병들이 계속 대응사격을 하지 않으면 보병들이 함포를 직격당해! 그걸 바라는 건가?”
“아닙니다!”
“그럼 가서 싸울 준비나 해! 사소한 문제들은 있었지만 승리가 눈앞이다! 저들의 시체로 하늘까지 닿을 산을 쌓자!”
“반자이!”
“가끄메이(혁명) 반자이!”
잠시 뒤, 신불랑기포와 총기에서 발사된 산탄과 납탄들이 상륙 후 백사장으로 올라오던 프랑스군에게 작렬하며 혈전이 시작되었다.
***
프랑스군 소위 앙리는 이를 악물고 칼날을 피했다.
“반자이이이이!”
일본도를 강맹하게 휘두르는 일본인에게 한쪽 팔을 내줄 뻔했음에도 간신히 몸을 굴려 피했다.
“끼요오오옷!”
괴상한 기합소리와 함께 병사 하나가 아군의 팔을 베어냈다.
칼로 상대를 죽이는 데 숙련된 이들은 상대가 방어할 수단인 팔다리부터 베어낸 다음 상대의 숨통을 끊는다.
그리고 생사를 가르는 싸움이 벌어지는 곳에서 일본도를 들고 나온 이들이라면 당연히 자부심이 있고, 그 자부심에 근거가 있을 정도의 검술 실력이 있었다. 보통은 조총을 드니까.
게다가 사상적인 이유로 칼보다 총을 더 밀어주는 경향이 있는 적군이라면 검 배척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았다.
적군 수뇌부의 주장에 따르면 와키자시는 일본의 민중들도 자신을 보호하는 최후 저항의 수단으로 가지고 있던 무기이니만큼 혁명정신에 부합하지만, 타치나 우치가타나를 비롯한 나머지 일본도들은 죄다 옛 천황과 무사계급이 무산계급을 압제하고 착취한 상징>이라는 것이었기에 일본도를 들고 적군으로써 양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일단 그 일본도를 굉장히 잘 다뤄야만 허락받을 수 있었다.
물론 적군의 화기 부족이 결정적인 원인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 발도대에게 걸린 앙리 소위는 굉장히 엿같은 상황에 처한 셈이었다.
알 수 없는 말을 떠들었지만, 그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백해 의문을 품을 것도 없었다.
너를, 침략자를, 죽여버리겠다.
소총은 잃어버렸다. 권총도 탄창을 갈 틈이 없어 던져버렸다.
바닥을 구르면서 전사한 누군가가 흘린 세이버를 잡은 앙리 소위는 벌떡 일어나 칼을 겨누었다.
검 대 검의 대결, 상대인 일본 사무라이는 씩 웃으면서 곧장 달려들었다.
무라마사와 세이버가 부딪힌 순간, 무라마사가 두 동강이 났고, 앙리 소위는 손목이 나갈 뻔했다.
“………..”
애초에 앙리 소위가 휘두른 칼은 중기병용 세이버였고, 한손검인데도 날 길이만 90cm가 넘으며 무게는 1.2kg에 달했고 중기병들 사이에서도 손목파괴자라며 욕먹는 물건,
상대인 무라마사보다 더 긴, 어지간한 중세 롱소드 길이에 황동 파이프를 한 방에 끊어버리거나 돼지 목도 한 방에 참수하는 놈이 풀스윙을 날렸는데 그걸 정면으로 받아낸 게 미련한 짓이었다.
간신히 칼을 회수한 소위는 상대가 두 번째 칼을 뽑아든 걸 보았다.
짧은 검을 본 소위는 부서질 것 같은 손목의 고통을 이기면서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탄환이 날아와 사무라이를 쓰러트렸고, 그제서야 다급히 바닥에 엎드린 소위는 자기 모자에 총알구멍이 난 걸 깨달았다.
강선을 파고 뇌관식으로 개조된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 민병대는 맹렬한 사격을 가해왔고, 프랑스군 역시 볼트액션 소총으로 응사했다.
연사력과 화력 면에서는 프랑스군이 압도했지만, 문제는 수였다.
-타앙!
오오쓰쓰가 날아와 하사관 한 명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터트렸고, 수류탄과 폭탄 화살도 날아들었다.
너희들은 결코 이 땅에 발을 딛지 못하리라. 이 땅에 발을 딛은 자, 살아돌아갈 희망을 버리라는 듯 그들은 함성을 지르고, 활을 당기고 총을 쏘고 포를 쐈다.
겹겹이 쌓이는 프랑스군의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바닷물을 붉게 물들였고, 해안포에 직격당한 무장상선 한 척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공성포는 위력은 엄청났지만 애초에 문자 그대로 요새 파괴가 목적이기에 해안포로는 그다지 적절하지 못했다.
아무리 위력이 강해도 맞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차라리 명중탄을 내는 데에는 야포가 훨씬 나았다. 게다가 운용인원도 숙련되었으니.
철갑함을 상대로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목재로 만들어진 무장상선 따위는 야포로도 유효한 타격을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무장상선의 포술장들도 오합지졸은 아니었다. 몇몇 포대는 포격에 아예 무너져내렸고, 유폭한 포대들도 여럿 존재했다.
그야말로 던질 수 있는 건 돌덩이라도 던진다는 심정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상대에게 퍼부어졌다. 쏠 수 있는 건 모조리 발사되었고 던질 수 있는 건 모조리 던졌으며 상대를 죽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종류를 막론하고 동원되었다.
결국 그날, 프랑스군은 상륙을 중단하고 후퇴했다.
바로 다음 전투에서는 이전 전투에서 포탄의 소모도, 그리고 요새 시설의 파괴도 너무나도 심각했기에 프랑스 극동함대의 공세 한 번에 상륙을 허용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철갑함 한 척의 격침과 다수의 무장상선 손실, 그리고 수천 명에 달하는 사상자는 원정 지속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그리고 프랑스는 용병을 고용해서라도 수만, 수십만 단위의 대병력을 파견해 어떻게든 일본 전역을 정복할 작정이었다.
이건 더 이상 손익을 따질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
뉴욕, 미합중국.
“호외요! 호외! 쿠바의 정복자 셔먼 장군, 이번에는 멕시코에서 대승리!”
“대서양 함대가 참패, 아니, 사실상 전멸이랍니다!”
신문은 미친 듯이 팔렸다.
그게 낭보든 비보든 간에 압제자에 맞서는 성전이라는 것은 그만한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었다.
정작 전쟁의 원인이었던 일본에게는 전쟁 발발 이후 단 한 발의 탄환도, 한 줌의 밀가루도 넘겨주지 않았지만, 이미 의회에서는 주판을 튕겨보고 있었다.
“우리가 멕시코를 정복하기만 하면……”
“이런 일이 다시는 있지 못하게 멕시코를 완전 병합해야 합니다. 쿠바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태평양 함대는 아직 건재합니다. 그리고 프랑스 해군은 프랑스령 기아나 식민지에 머물고 있지만 기아나는 상륙 교두보로 쓰기는 부적절하죠. 당분간은 본토에 직접 상륙작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을 듯 합니다.”
“태평양 함대를 당장 대서양으로 부르기보다는 육군 병력을 동부 해안 지대로 재배치하고, 셔먼 장군에게 증원병력을 보내고 진격을 채근하는 한편 필리핀을 공략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미 일본의 안위는 상정 밖이었다.
일본이 망하든 말든 미국의 정치인으로써는 알 바 아니었고, 되려 처음에는 위기였지만 다시 되돌아보면 생각지 못한 행운이 된 스페인과 멕시코의 선전포고로 쿠바와 남부의 추가적인 영토를 얻게 된 셈이었다.
그것도 제국주의 확산 저지라는 나름 괜찮은 명분도 가진 채로.
“다만 제해권을 상실했으니 쿠바 주둔군에 보급을 해주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만 되었어도 항공 보급이라도 했으련만 항공기가 하늘에 뜨려면 아직 수십 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사용 가능한 항공 기술은 나폴레옹 전쟁기에 사용된 기구 정도.
“그건…. 어쩔 수 없지요. 봉쇄돌파선을 추가 건조해서 어떻게든 보급을 지속해보십시오, 자체조달도 늘려보라고 하고요.”
존슨의 도박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멕시코와 스페인군은 무력함을 드러냈고, 쿠바와 멕시코로 군대가 진격하면서 영토 확장은 꿈이 아니게 되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쿠바가 현재 봉쇄되어 있다는 것.
“쿠바의 봉쇄망을 강행돌파할 수는 없나?”
아이러니하게도 쿠바의 봉쇄를 풀어보려고 애쓰는 건 미국이었지만, 100여 년 뒤의 소련이 그랬듯이 미국에게는 봉쇄망을 물리적으로 돌파할 해군력이 극히 부족했다.
“사실 필리핀을 공략하려고 하면 거기에 투입할 함선도 극도로 부족한 실정입니다. 필리핀 공략을 포기하고 마젤란 해협을 통과시켜서 함대를 북상시켜 프랑스 해군과 재차 일전을 벌여야 하고, 그러고 나서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돌아 버리겠군.”
“현재 대육군의 주력은 극동에서 일본 공략에 집중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만, 이대로 가다가는 최악의 경우 쿠바를 도로 뺏길 수도 있습니다. 일본과 필리핀은 물론이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