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36)
미불전쟁(6)
영국, 런던, 외무성.
차가 졸졸 소리를 내면서 따라졌다.
“드시지요.”
“홍차가 아니군요?”
“극동 러시아, 그러니까 만주-몽골 지역의 발효차입니다. 콤부차라고 하죠.”
탁자 위에는 이것저것 음식들이 나와 있었다.
롤케익, 오이 샌드위치.
사실 오이 샌드위치는 대접하려고 가져온 게 아닌데 마카롱을 가져온 정신빠진 직원을 실컷 갈궈주고 간신히 손님 도착 직전에 바꿀 수 있었다.
왜냐고?
‘프랑스랑 전쟁 중인 미국의 특사가 찾아왔는데 프랑스 요리를 내면 싸우잔 소리지.’
근데 마카롱은 원래 프랑스 요리가 아니라 이탈리아 요리긴 하다만 16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에서도 먹었다니 그쯤 되면 프랑스 요리 대접도 해줄 순 있지, 원조야 이탈리아겠다만.
“특별한 손님이 오셨으니 특별한 걸 대접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근데 오이 샌드위치는 롤케익만 놓으면 식탁이 너무 휑해서 내놓은 거긴 하다. 절대 먹을 생각 없고. 오늘 점심은 롤케익으로 떼워야겠군. 빵이 없으면 케이크…. 으음. 잠깐 삼천포로 빠질 뻔한 생각을 간신히 정돈했다. 이놈의 딴생각으로 빠지는 버릇은 장관을 달아도 바뀌지를 않으니 원.
“감사히 받겠습니다.”
미국 특사는 까맣게 죽어가는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보나마나……
‘제해권 때문이겠지.’
“쿠바를 정복했고 멕시코의 완전정복도 눈앞이라고 들었습니다. 숙원을 이루신 걸 축하드리지요. 게다가 일본인들도 용감히 싸우고 있으니까 미합중국의 승리도 눈앞이겠습니다.”
당연히 놀리는 거다. 뉴욕 앞바다까지 프랑스 해군 함선이 들락거린다는 정보를 받았거든. 해상봉쇄를 당하고 있으니 슬슬 자본가들이 거품을 물 때가 됐을 거다.
쿠바야 정복했지만 본국에서는 밀가루 한 줌, 탄환 한 발도 수송 못 받을 판이고. 봉쇄돌파선을 쓰려나?
물론 미국의 프로파간다는 내가 말한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프랑스에게 슬슬 항복을 권유해달라는 부탁을 하러 오셨습니까?”
웃기지도 않는 소리고 나도 안 믿는 소리다. 그냥 저 양반 슬슬 긁는 게…. 제법 재밌단 말이지. 입이 찢어져도 대놓고 하면 안 되는 소리지만.
태평양함대가 쫄딱 망했거든.
‘그러니까 얌전히 집이나 지키든가 일본이라도 갈 것이지.’
남미의 영국 공사관에서 올린 정보에 따르면 태평양함대가 필리핀을 기어코 치러 가다가 태풍에 휩쓸려 함대 절반을 날려먹었단다.
게다가 손실한 함선들이 장갑함과 기선 등 최신함 위주고, 특히 장갑함은 무게중심이 잘못되어 있는 미 해군의 설계 미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단 한 척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지금쯤 해군부 분위기는 참 안락하고 아늑하겠지.
그렇다, 미국은 이제 뭐 됐다.
특사가 봉쇄돌파선까지 타고 와서 대가리를 박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고.
특사가 끙끙대면서 몇 마디를 주워섬겼지만 별로 영양가가 없는 말이라 롤케이크를 썰면서 한 귀로 흘렸다.
‘달달하니 좋네.’
내가 딸기 롤케이크를 참 좋아하는데 말이지. 물론 다른 롤케이크라고 싫어하는 건 아니다. 잼과 크림, 빵의 조화가 아주 그만이야.
다만 콤부차 내온 게 실수 같다. 이거 생각보다 안 어울리네. 특사는 맛도 못 느끼는지 오이 샌드위치를 씹어먹고 있었다.
앞으로는 밀크티에만 곁들여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특사가 입을 열었다.
“영국 정부에서 프로이센 정부와 선박 공급계약을 체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그건 어디까지나 거래였소.”
사실 유럽 국가들도 다 안다. 프로이센의 입장 급선회의 배후에 영국과의 해군교류가 있었다는 것 정도는.
극동 이권 일부를 떼어주고 그걸 유지할 해군력 정도는 양성하게 해주는 대신 그리스에 영국 영향권으로 넣는 걸 인정해라.
만약 그리스에다가 이탈리아까지 성공적으로 손에 넣으면 남유럽은 대영제국의 식민지나 다름없어진다.
그 이탈리아의 상황이 영 좋지 못하게 풀리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디즈레일리의 건강도 영 좋지 않고.’
왜 안 좋은지는 모르겠다. 러시아 근대화 사업에 영국 일, 식민지 문제까지 처리하느라 골치아프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일 많이 줄여주지 않았나?
국내정치는 원래 총리 일이고 러시아도 아직 인식의 차이는 있지만 국내니까. 자영농 확대 작업이고 뭐고 내 일은 아니다. 난 내각 회의실에서 제안만 했어, 꼬우면 외무장관이 아니라 내무장관을 시키셨어야지. 더 나서면 빼박 월권인걸?
인도나 다른 식민지도 다 국내고, 이탈리아 문제는 군의 소관이고, 내가 떠맡긴 게 그리스 왕 정하는 문제로 여왕님 설득하는 거랑-그것도 부군도 한 편이니 설득 난이도는 낮았을 거다-무기 판매 문제랑 일본-스페인-프랑스-멕시코-미국을 서로 싸움붙이는 문제랑…… 아무튼 내 지분은 거의 없을 거다.
“아시다시피 저희도 이탈리아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설령 내각에서 군함 판매를 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우선 이쪽 수요부터 충당해야 합니다.”
섬들은 봉쇄해서 말려죽이고 지상군에게 보급을 해주는 게 다 해군이다.
게다가 우리가 동원한 병력 규모도 제법 크니까.
“식민지군 동원으로도 부족해서 본토에서도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형국입니다.”
진짜 무슨 아프가니스탄도 아니고 이탈리아는 거의 생지옥인 모양이었다.
전면전이었으면 진작 깨버렸겠지만 미국에서 돌아온 가리발디는 능숙한 게릴라전을 폈다.
도시 지역은 전부 가리발디 지지, 농촌 민심은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
그나마 이탈리아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부족하니 그 정도다.
‘물론 저거 한 80%는 가리발디 뽕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가리발디가 사심 하나 없이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이탈리아 민족을 위해 싸우는 시점에서 그 둘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가리발디를 암살하는 건 더더욱 안 돼.’
물론 지금 전선에서 죽어나가는 군인들은 반길 수도 있다. 저들의 전투력은 가리발디의 지휘에서 나오니까.
하지만 가리발디가 암살당하면 그건 농촌 지역에까지도 가리발디 뽕을 채워주는 거다.
강대국들에 맞서 사심 없이 통일 이탈리아를 꿈꾸고 실제로 그 코앞까지 왔으나 외국군에 의해 한 차례 패배하고 망명, 외국에서 그를 존경한 그 국가의 대통령이 군 최고사령관을 맡아달라 부탁해 노예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전쟁을 벌여 끝내 승리했고, 옛 전우들의 도움으로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에 돌아와 통일전쟁을 재개했으나 그를 지원해주던 이국의 대통령은 노예론자에게 비열한 암살을 당했고, 그 본인도 이탈리아 통일을 경계하는 외국 정부에 의해 암살당한다? 게다가 평생 동안 사리사욕이 아니라 오직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는 타이틀까지 추가된다?
‘답이 안 나오는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답이 없다.
이탈리아 민족성을 단숨에 확립시켜줄 ‘국부’의 대서사시 아닌가.
내분 조장? 지금 모든 이탈리아의 무장 세력은 불에 뛰어들라면 기꺼이 불에 뛰어들 거고 독을 마시라면 한 치의 주저 없이 마실 거다.
그만큼 가리발디의 카리스마가 엄청났다.
그 카리스마로 전력을 결집해서 결전에 나서주면 참 좋을 텐데 우리를 말려죽이고 철저하게 보급로를 끊어 가면서 싸운다.
오죽하면 공식적으로는 주영 베트남 공사인 조연에게 현재 작전상황을 알려주니 고개를 저었겠는가. 조이는… 걘 전략을 짤 능력이 없지.
“그래서 어려울 듯 합니다.”
물론 이건 진짜 어렵단 게 아니다. 뭘 뜯어낼지 고민 중인 거지.
‘하와이는 우리가 먹겠으니 알아서들 양해하라고 해 볼까?’
아니, 그냥 생각하기 편하게 선제시 시켜 봐?
그러나, 결국 미국 특사는 이리저리 말을 돌렸을 뿐, 내가 암시한 어떤 것에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난 즉시 프랑스 공사를 불렀다.
***
“이번 태평양에서의 승리와 대서양에서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는 해도 속이 제법 쓰릴 거다.
해군 피해가 생각보다 컸을 테니까.
군함 다수가 격침당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저거 재건하려면 그 짭폴레옹의 머리카락은 죄다 빠져버리고도 남을 거다.
“극동의 전황도 우세하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헛소리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 일본군은 제법 응집력 있는 방어선을 형성했다.
물론 프랑스 대육군과 질적으로는 상대가 안 되지만, 질이 안 되면 양이랍시고 병력을 갈아가면서 저항하고 있는 모양.
그 와중에 얼마나 죽어나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보이지 않은 피해자들이 얼마나 클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피해자가 뭐냐고? 식량, 무기, 탄환 등을 보급하는 데 누가 동원됐겠나? 일본 농민들이다. 그런데 그 농민들이 무사할까?
“저들이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방독면도 보유하고 있더군요.”
“아마 아우렐리아겠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우렐리아는 자체적으로 방독면을 조달합니다. 저희가 만들었던 방독면 회사를 전쟁이 끝나고 민간에 불하했는데 그 중 일부 물량이 일본으로 밀수되고 있지 않을까…. 당장 생각나는 건 그 정도군요.”
애초에 열강이 식민지에 독가스 안 쓸 리가 있나? 없어서 안 쓰지 있으면 안 쓸 이유가 없다. 아직 규제조약 같은 것도 없으니까.
그러니 열강은 물론이고 신진 개화국가들도 독가스 뒤집어쓰기 싫으면 최소한의 방독면은 갖춰야 한다.
‘물론 이것도 슬슬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있지만.’
1822년에 프랑스의 세자르-망수에트 데스프레츠라는 사람이 특수한 물질을 합성했다.
화학식은 (Cl-CH2CH2)2S, 정식 명칭은 설파 머스터드, 흔히 겨자 가스라 부르는 화합물.
포스겐조차 짧은 시간은 방호할 수 있는 기존 방독면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물론 어지간한 농도로 뿌리지 않으면 뿌린 즉시 목 움켜쥐고 쓰러질 정도로 즉효성은 아니라지만, 적에게 정신적 충격을 한 트럭으로 안겨주기에는 차고도 넘친다. 게다가 살상력이 떨어지지도 않고.
다만 문제가 현 기술로는 불순물이 많이 섞이기 때문에 장기보관이 안 된다는 것. 거기에 포탄으로 만들면 탄 속에 봉입되어 있던 가스가 분해되면서 용기를 파열시키고 가스의 유출을 유발하는 탓에 아직 제식채용한 국가가 없다.
물론 다들 비밀리에 정제법을 연구하고 있으니 조만간 실용화될 것이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했을 수도 있고. 그나저나 방독면 소리 하는 거 보니까 일본에 독가스 써 보시려다가 역으로 당하셨구만?
우리가 이탈리아 상대하는 거나 프랑스가 일본 상대하는 거나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물론 미국과 전쟁하면서 더 먼 거리에 더 부족한 해군력과 경제력으로 보급을 해줘야 하니 프랑스가 더 고생이긴 하겠지,
그걸 알기 때문에 결전을 회피하고 약한 고리만 끊어내는 붉은 셔츠단과는 달리 적군파는 적극적인 방어 전략을 취하는 모양새다.
“똑같은 빨갱이들이니 말입니다.”
크흠, 걔네 둘은 상황이 좀 다른 거 같긴 한데.
나는 마카롱을 집어 입에 넣었다.
“미국인들이 부지런히 외무성에 드나든다고 들었습니다. 장관님.”
“뭐 그렇긴 하지만 영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와의 관계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더없이 친밀합니다. 당장 제가 절반은 프랑스인이지 않습니까.”
“그 말씀은…..?”
“자유무역에 의거해 단순한 거래 자체는 저희가 저지할 근거가 마땅치는 않지만, 적어도 영국 정부는 프랑스의 승리를 바라고 있습니다.”
참전은 없겠지만 무기는 팔아드릴게.
잘해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