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52)
다우닝 가(1)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다.
원 역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추도사는 글래드스턴이 아니라 내가 읽었다는 것.
그리고 후임 총리는 자연스럽게 내가 맡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본래 외무장관이 총리 다음의 서열 2위이기도 했고, 거기에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궁전으로 초대되어 여왕 폐하의 이름으로 내각을 구성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내각을 구성할 권한을 위임받았으니까.
영국 총리는 서민원의 장이며,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귀족원 의원인 나는 총리직을 맡을 수 없다.
그러나 영국 총리직은 사실 애초에 성문화되어 있는 자리가 아니다. 초대 총리 로버트 월폴은 총리 직함조차 없었다. 단지 서민원 의원이었고, 제1대장경 자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의원을 내각 각료로 앉히고 휘그당이 과반을 점하지 못하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총리들도 그의 전례를 따랐다.
다시 말해 총리라는 이름은 사실 어떠한 법률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관습으로만 돌아가는 지위라는 것이다. 내각불신임을 당하고서도 국왕 신임만 받으면 총리직을 유지한 사례가 나왔을 정도로.
그리고 외무장관으로써 총리직을 대행하는 동안, 여왕 폐하께서 내게 제1대장경 직을 맡을 것을 권유했으니 끝난 거다.
귀족이 총리가 될 수 없다? 아니, 의미가 없다. 내가 총리가 된다고 해도 ‘그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전례에 어긋난다? 이미 서민원 의원조차 아닌 귀족이 총리가 된 전례가 있다. 군주에게 제1대장경 직만 받으면 총리 직함을 칭할 수 있다. 총리의 임명 권한은 전적으로 군주에게 있으며, 서민원 과반을 차지한 정당의 당수를 총리로 임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습일 뿐이다. 막말로 여왕 폐하께서 지나가던 존을 ‘너 오늘부터 총리해라’ 해도 법률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 관습의 문제일 뿐이지.
대영제국 총리가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내용조차도 성문화되려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은 되어야 하니까.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총리 사망으로 인한 정국의 혼란은 바로바로 수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이 경우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재야 인사나 야당 인사들과도 접촉하는 건 필연이었다.
“반갑습니다. 글래드스턴 님.”
글래드스턴.
현역 의원조차 아니지만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의 영향력은 자유당 내에서는 절대적이라는 말로도 약간 어폐가 있을 정도였다.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지만 그건 제국주의에 환호하는 대중들 이야기고, 애초에 현재의 대중 자체가 현재 국뽕을 한가득 채워주는 친 보수당적 성향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제국주의에 비판적인, 그리고 친 자유당적인 인물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글래드스턴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자유주의와 도덕정치를 중시하니까.
물론 지금은 시국이 안 맞아서 날개를 접고 있을 뿐,
당연하지만 정국을 안정시키고 싶으면 제일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기도 했다.
차를 내온 나는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미스터 글래드스턴, 본인은 기본적으로 디즈레일리 총리의 정치 철학을 계승할 것입니다.”
당연하다, 시작부터 내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으니까.
국외에서는 제국주의를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참정권 확대와 국내 복지 확대, 시장에는 개입주의적인 정책. 디즈레일리의 정치철학은 내게 있어서도 적극 지지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반대로 자유당은…… 자유방임주의, 복지 축소, 그리고 정부 지출 최소화와 부르주아 친화적 행보.
이는 글래드스턴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니, 글래드스턴이 그 선두에 서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둘이 타협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입니까?”
“당신의 주장과 제 주장은 제법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더군요.”
기회의 평등 강조, 반교권주의, 아일랜드 자치, 귀족 특권 감소.
“저는 도리어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당신 같은 도덕론자가 복지를 반대하는지 말입니다.”
“총리님,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는……”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낫다. 예, 당신과 자유당이 열심히 주장해온 내용이죠.”
나는 책상을 탁 쳤다.
“그런데 말입니다. 경제란 건 혼자 살아가는 동물이 아닙니다. 정치와도, 사회 구조와도, 사상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죠.”
“……….”
“만에 하나라도 당신들의 주장이 아일랜드에서 받아들여졌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내가 장담하건대 아일랜드 대기근 때 이 양반이 총리를 해먹고 있었어도 아일랜드 대기근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차라리 보수당이 ‘기근이 터졌으면 구호를 해야지.’ 하고 구호품을 보내고, 아일랜드 밖으로 식량을 실은 배가 출항할 수 없도록 조치하는 등의 행동이 훨씬 많은 사람을 살렸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사회 개혁 조치에는 저 역시 찬성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뿌려서만 얻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잭 더 리퍼, 기억하십니까.”
“………..”
“그때 제법 인기가 많았잖습니까. 제 부족한 소설이. 그런데 그 이후로 화이트채플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빈민들의 삶이 얼마나 변했습니까?”
“반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부터가 무작정 예산을 쓰는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자유당에서는 말입니다.”
나는 손을 조용히 모았다.
“저희가 12세 이하의 아이들의 노동시간을 규제하려고 하니 아이들의 일할 권리와 자유를 빼앗지 말라고 격렬히 반발했었습니다. 저는 항상 묻고 싶었죠.”
아이들이 행복한 유년기를 보낼 권리와 자유는 없는 것인가?
“제가 몇 년이나 더 살지 모르지만, 제가 살아 있는 한 대영제국의 노동 시스템은, 그리고 러시아 제국의 노동 시스템도, 뿌리부터 변하게 될 겁니다.”
도시를 갈아엎어서 주택 공급을 늘리고,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그 빌어쳐먹을 템스 강도 정비하고, 교통망, 교육 시설을 정비한다.
투표권을 확대하고, 산업을 고도화하는 데 투자한다.
“산업이 고도화되면 자연스럽게 숙련공의 필요성이 올라갑니다. 그렇게 되면 숙련공을 붙잡아놓기 위해서라도 급여를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되겠죠.”
헨리 포드가 그랬다.
포드가 임금을 2배로 올려준 것? 그게 포드가 착해서 그런 것 같은가? 전혀 아니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기존의 공장 노동 방식에 문제가 생겨서다.
애초에 노동자들도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돈버는 걸 당연시했고, 몇 달, 길어야 몇 년 일하고 나서는 이직을 하든 귀향을 하든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으니까. 사실상 아르바이트, 비정규직만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당연히 숙련공이 생길 리가 없는데, 숙련공을 붙잡아둬야만 생산성이 향상되어 궁극적으로 회사를 키울 수 있으며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이 자기 회사에 붙어 있을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 월급을 올려주었을 뿐이다. 여기에서 도덕성이 들어갈 요소는 없다.
“그게 저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저들은 낚시하는 법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당장 낚시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그 숨이 끊어지려 하는데, 물고기를 줘도 나쁜 갈매기들이 그들에게서 물고기를 낚아채가는군요.”
“……….”
“그 갈매기들을 쫓아내고, 물고기를 주고, 차근차근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면서도 그 갈매기들이 달려들지 못하게 안전망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복지입니다.”
“그건 필연적인 증세를 동반할 것입니다. 자신 있으십니까?”
“제가 한 가지 더 장담드리죠. 지금은 공급이 수요를 늘리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아니, 이건 이 시대 경제학자들의 상식이다.
공장을 짓고 물건을 쏟아내면 아무튼 팔린다.
“하지만 공급은 수요를 촉진하지 않습니다. 수요에는 어느 한계선이 있죠. 오늘은 아닐 겁니다. 내일도 아니겠죠. 하지만 어느 순간,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게 되면.”
쾅, 쾅, 쾅.
“어마어마한 경제 공황이, 대공황이 불어닥칠 겁니다.”
“그걸 막으시겠단 겁니까?”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이 개선되어야 다른 뭐라도 되지 않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침묵하던 글래드스턴이 입을 열었다.
“제게 이 이야기를 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야, 자유당이 참으로 좋아하는 물고기 잡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나는 페인트 냄새에 코를 씰룩거렸다.
디즈레일리가 생전에 다우닝 가 10번지에 들어가 지내기는 했는데, 관저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평소에는 거의 다른 건물이나 자기 자택에서 지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입주하려고 보니까 이유를 알겠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인지 폐가인지. 일단 우리 가족 다 들어가기는 좁아터졌다는 걸 제쳐두고 마루는 휘어지고 벽과 굴뚝에는 금이 가고……. 유령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러니 쥐가 많지. 제기랄.
결국 내 사비 들여서 싹 리모델링하라고 시켰다. 내가 집 한 채 못 올릴 정도로 가난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새로 보수된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처음 맞은 손님이 글래드스턴이었다.
“야옹.”
내가 처음 만들어낸 직책인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이 글래드스턴이 앉아있는 의자 밑에서 쑥 고개를 내밀었다.
“이게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입니까?”
“이게(It)라뇨. 보좌관 성별도 모르십니까?”
피식 웃은 글래드스턴은 고개를 숙여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삼색 고양이이자 초대 수석수렵보좌관 ‘마거릿 대처’를 마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보좌관님, 일개 작가에 불과한 이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이 감히 이 다우닝 가 10번지에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애애앵~”
“…………”
“하악! 하악!”
“으으음……..”
아니 얘가 왜 저래.
송곳니를 확 드러낸 대처가 내 뒤로 쪼르르 도망가더니 그대로 식빵을 구우면서 글래드스턴을 경계하는 걸 본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놈이 낮을 가리나 봅니다. 실례했군요.”
“뭐… 괜찮습니다.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죠.”
“프로이센 왕국에서 의무교육을 시행한 지도 5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우리 대영제국도 아이들을 사회하할 때가 됐죠.”
“……….”
“앞으로 노동자들에게도 요구되는 수준은 급격히 올라갈 겁니다. 산업은 계속 전문화, 고도화될 거고요. 아동 노동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이들은 어떤 직업도 얻지 못하고 사회의 불안요소로 남을 겁니다. 그런 꼴을 보느니 전 국민이 최소한 자기 이름 정도는 쓸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학생들에게 하루에 우유 한 잔씩이라도 먹일 수 있으면 화룡점정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