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54)
다우닝 가(3)
곳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끼에에에에엑!”
마약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혈교도들에게 일격이 날아든다.
침투경보다도 확실하게 몸 속을 파고든 납탄이 달려드는 적들을 날려버린다.
소대장은 망원경으로 적의 위치를 관측하고, 소대 전체가 일제히 2km쯤 떨어진 적들을 향해 곡사로 총을 쏴댄다.
이게 뭔가 싶은 전술이지만, 엄연히 영국군의 실전 교리였다.
그러나 적들의 공세는 이 장거리 사격과 포격 정도로 꺾이지 않을 수준으로 규모가 컸고, 잠시 뒤 명령이 떨어졌다.
“전 부대 개별사격!”
“개별 사격이다!”
일제사격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적들이 가까이 접근하자 장교들의 지시에 따라 곧장 개별사격이 시작되었다.
개틀링 포는 적들이 유효사거리에 접근했을 때부터 정신없이 불을 뿜고 있었으나, 그것도 어느 순간 그쳤다.
대부분의 사상자를 발생시키던 개틀링 포의 사격이 멎어버리자 혈교도들은 기세가 올라 그대로 영국군이 만들어둔 방책을 무너트리고 접근했고, 총검을 이용한 백병전이 이어졌다.
권총을 소지한 장교들은 권총을 쏴서 적들을 사살하고, 일부 전선은 일시적으로 무너지기도 했지만 영국군은 자리를 지켰다.
어지간해서는 제풀에 뿔뿔이 흩어지고도 남을 피해를 입혔지만, 마약에 취한 이들에게 사기가 꺾인다는 개념은 없다. 적어도 약이 깨기 전까지는.
즉, 공격해온 상대를 거의 몰살시켜야 승리가 성립했고, 그 승리는 적들을 향해 산탄 포격까지 퍼부은 끝에야 찾아왔다.
“빌어먹을 놈들.”
영국군 하나가 피 섞인 가래침을 뱉어냈다.
시체들이 쌓이고 또 쌓였다. 이번 전투에서는 사상자가 제법 났다.
부대가 보유한 개틀링 포는 12정, 그런데 12정의 포 중 8정이 지난 전투에서 단체로 고장났다. 그리고 남은 4정으로만 화망을 쳐야 했는데, 그 4정이 이번 전투에서 줄줄이 고장났다.
분명 성능은 좋다. 그러니 각지의 군대에서 앞다투어 채용한 거겠지.
그런데 고장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차라리 볼리 건은 고장이 났을 때 수리하기도 쉽고 고장이 날 확률 자체도 떨어졌다.
그러나 성능 면에서는 개틀링 포가 압도적이었으니 어쩌겠는가. 아쉬운 대로 써야지.
그리고 그 결함으로 인해 웬만해서는 벌어질 일도 없는 백병전까지 벌어졌고,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마약에 취해 칼을 휘둘러대는데 사상자가 안 나는 게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우욱, 제기랄.”
이미 파리들이 새까맣게 시체에 꼬여들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구더기가 꼬이리라.
“대위! 부하들에게 저 시체 더미 좀 대강이라도 묻어두라고 시켜!”
“알겠습니다!”
물론 신사 체면에 시체를 직접 묻지는 않겠지만 저걸 당장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은 장교부터 병사들까지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젊은 대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더럽군.”
정말 더러웠다.
첫 전투가 어땠더라? 영광 따위는 없었던 첫 전투가 어떤 모습이었던가.
-타타타타타타타!
곳곳에서 울리는 기관총 소리, 마약에 취해 달려들던 이들. 지뢰 터지는 소리. 포탄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그리고 독가스.
참으로 저주스럽게도 그는 중국어에도 능했다.
그 단말마들은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이 아니라 애원으로, 고통 속에서 외치는 절규로, 눈물로 그의 뇌리에 박혀왔다. 몸에 총알이 박히듯이.
‘살려……. 살려주세요.’
‘안 아파….. 안 아파……..’
팔도, 다리도 없는, 아니, 하반신이 완전히 날아가서 당장 최고의 의사에게 데려다주어도 살릴 가능성이 엎어 보이는 남자는 웃고 있었다.
새 한 마리가 내려앉아 그가 죽기만을 기다리다 지쳐 그의 살점을 부리와 발톱으로 떼어먹고 있는데도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권총을 들고, 숨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를 쏴서 단번에 숨통을 끊어주었다. 마약의 기운이 빠지기 전에 그렇게 해주는 게 자비일 테니까.
총성에 놀란 새가 날아가기를 기대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총성에 익숙해진 새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뭐하냐는 듯이.
그러더니 부서진 머리로 제 부리를 향했다.
더 보고 있기도 고역스러워서 시체들 사이를 걸었다.
일방적인 승리였지만 더운 여름날, 순식간에 부패하기 시작한 시체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발목이 붙잡혔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부상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광둥 방언은 그의 귀에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다.
‘돌아가야….. 돌아가야…….’
사랑과 전쟁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All is Fair in love and war)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참혹한 결과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진인, 진인이십니까.’
‘……..?’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니까 말해주십시오, 전….. 전 천당에 갈 수 있습니까.”
‘………’
그는 종교에 대해 그리 많이 알고 있지 않다. 다만 관성적으로 나가던 교회에 나갈 뿐.
물론 소위 말하는 ‘문명화’된 국가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 역시 명백했다.
서양 국가들이 그들을 대등하게 대우해주기를 바라기에.
물론 어느 정도의 ‘존중’은 받았다. 그러나 이는 쓸만한 장기말로써의 도구로써의 존중이었다. 아끼는 도구를 더 오래오래 써먹기 위한 존중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그들이 어느 정도 국력을 가지고 있기에 존중받는 것일 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양복을 차려입어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군대를 강화하더라도, 그들의 실제 국력이 네덜란드나 그리스, 스페인보다도 강대하다는 것을 증명하더라도. 기독교로 개종하더라도.
유럽인들은 결코 이 ‘노랭이’들을 완전히 대등한 인간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리라.
애초에 제국주의는 국내의 불만을 누르는 수단, 자신보다 더 아래에 뭔가를 놓음으로써 상대를 깔아뭉개고 우월감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수단이라고 아버지는 말하셨다. 옳지 않지만, 혁명을 막기 위한 필요악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셨다.
그리고 이런 것도 바뀌어야 한다고. 필요악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 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만들어야만 한다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잠시 눈을 감았던 대령은 수통을 꺼냈다. 시체와 피와 재로 오염된 이 인근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물이었다. 침이 약간 섞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당신은 신께서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항상 존재하였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젠장.’
문답을 할 때까지 못 버틸 것 같다고 판단한 대령은 다 건너뛰기로 결정했다.
‘당신이 세례를 받을 만 하면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물을 이마에 부어준 대령은 씁쓸하게 식어가는 몸을 바라보았다.
이게 진짜 뭔가 의미가 있는 걸까.
죽어가는 사람이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대세를 해줘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배운 대로 해주었지만, 그게 정말 이 사람의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었을지, 아니면 그저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인지는 정말 죽어보기 전에는 알 도리가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세상은 지옥인 것일까.
‘지옥이다.’
그는 여러 종교를 접했고, 윤회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처벌이 아닐까?
이 세상 자체가 지옥인데, 사실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고 천국으로 떠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 아닐까.
‘신은 전지하고, 전능하며, 선하고 자비로운 존재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빈곤과 부자유, 부조리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만일 악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존재라면 신이 아니라 악마일 것이다. 만일 신이 전지하거나 전능하지 않다면 그것이 가능하지만 그것은 그가 받아온 가르침과 모순된다.
“대령님!”
순간, 상념에서 깨어난 그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인가?”
“소장님이 부르십니다.”
***
“원정군이 보유한 화학탄도 고갈되었고, 개틀링 기관총도 죄다 고장, 야포와 개인화기밖에 남은 게 없습니다. 게다가 탄약 자체도 습기를 먹어서 그런지 불량률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본국에서 가져온 탄이 고갈되어 현지 생산품 탄을 쓰고 있습니다만, 불발율이 너무 높습니다. 체감상 해당 탄종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고장율이 급증했습니다만.”
영국군은 현재 일체형 탄을 사용하는 스나이더-엔필드 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기존 강선 머스킷의 뒤쪽을 트랩도어 스타일로 개조한 단발 소총이다.
당연하지만 센터파이어식 탄약을 사용했으나 극동에서 생산된 탄약은 생산 공정상의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유럽제 탄약에 비해 불량률이 유의미하게 높았던 것이다.
“그게 꼭 탄환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총은 애초에 기본적으로 소모품입니다. 이번 전쟁 내내 탄환을 얼마나 쏴댔는데 그게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게 문제든 저게 문제든 간에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추가적인 공세는 극히 어렵습니다. 일단 본국에 연락을 해봐야 합니다.”
“개틀링 포 수리는 어떻게 되어가나?”
“그건…….”
“옌티안 대령, 명령받고 출두했… 오.”
“앉게나.”
회의 시간에 늦긴 했지만 눈총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단 현지에서 급하게 소집된 인원이라는 건 둘째 쳐도 대령의 친부가 극동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일 뿐 아니라 이번에 여왕의 뜻에 따라 귀족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총리까지 되었다.
사생아든 어쨌든 간에 부친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게 명확한데 선을 대려고 하면 대려고 하지 회의에 좀 늦었다고 갈궈서 좋을 일 하나 없었다. 원정군 사령관이라도 이 정도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 못 건드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이야기 계속하지, 지금 탄약도, 무기의 상태도 슬슬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공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이들이 있나?”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럼 대안을 논의해 보도록 하지.”
“아우렐리아에서 추가 보급이 올 때까지 요새를 건설하고 농성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요새 건설은 물자와 시간, 인력이 과도하게 소모됩니다. 소모되는 시간과 비용 대비 효과가 적습니다, 참호를 파는 게 어떻겠습니까?”
“참호는 적들의 포병 전력이 빈양한 특성상 큰 효력이 없지 않겠습니까?”
“포병 전력이 빈약하다지만 이는 포병대가 적 포병 세력을 접근하는 족족 격파한 덕분이고 부대가 노획한 구형 화포들이 제법 있잖습니까. 아마 더 있을 겁니다.”
명나라 시절 화포들이기는 해도 화포가 아예 없는 건 또 아니다. 게다가 혈교도나 마교도가 아닌 일반 군벌들은 유럽과의 거래를 통해 신식 대포를 보유한 경우도 드물게나마 있었다. 물론 그런 군벌들은 대부분 격파된 상태기는 해도 주의해서 나쁠 건 없는 법.
“게다가 탄약을 아껴야 한다고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그건 그렇소만…….”
“백병전 상황에서는 목책이 훨신 낫습니다. 유사시 탄약이 고갈되었을 경우 백병전을 벌인다고 가정하면 높은 곳에 있는 게 낮은 곳에 있는 것보다 나은 게 상식이 아니겠습니까. 모래주머니에 목책을 더하면 충분한 방어력이 됩니다.”
“병사들의 피로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추가 병력이 필요한데……”
“인도 연대들을 추가 파병해줄 걸 요청해보고, 본국에도 추가 연대들을 파병해줄 것을 요청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