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57)
사천(2)
쓰촨, 성도.
원정군은 4개 연대를 쓰촨으로 투입했다.
만일 쓰촨의 군대가 적극적으로 방어하려 했다면 검각의 잔도를 지나 성도로 입성하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쓰촨을 지배하는 군벌들은 멍청이들이 아니었다.
‘열강 군대가 진격해오는데 그걸 막으려 드는 건 멍청이나 할 짓이다.’
‘천하의 주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게 핵심이었다.
천하의 주인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양이들은 천명을 손에 넣기에는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양이들의 군세는 충분히 천명을 좌우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환대하여 환심을 사고 이들의 도움을 받아 천명을 움켜쥔다면 어떠하겠는가.
양이들에게 많은 것을 내어준다 한들 천명을 쥔 것만큼은 부정할 자가 어디 있으랴.
그렇기에, 코사크 기병연대 하나, 영국 기병연대 하나, 포병연대 하나, 레드코트 보병연대 하나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유유히 사천으로 진입했다.
***
원정군 지휘부는 사천에 투입된 4개 연대를 하나의 제대로 묶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대의 상위편제는 여단. 그런데 19세기의 여단은 30년 전쟁기에 정립된 단일병과의 연대 2~3개를 모아 편성되는 개념이다.
즉 보병연대 둘, 기병연대 하나, 포병연대 하나, 심지어 엄밀히 말하자면 동군연합이라지만 국적조차 다른 4개 연대를 통합해서 지휘할 지휘체계를 만드는 것은 매우, 매우 귀찮아진다는 것이다. 정치적 고려에 군 특유의 보수성 등등이 혼합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셈이니까.
머리가 굳은 장성들 입장에서 서로 다른 병과의 연대들을 조합해서 여단을 만든다는 개념이 있을 리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당당하게 제안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영국-러시아군을 통합지휘하는 문제는 아예 외교적 문제다.
게다가 지금까지 낸 전과도 충분히 화려했으니, 굳이 하나의 지휘체계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연대들을 그냥 밀어넣기만 해도 제법 성과를 내지 않겠는가? 유럽의 열강을 상대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중국 야만인들을 상대하는 일인 데다 애초에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이들을 위해 탄약을 비롯한 물자 보급을 넉넉하게 해 주고 개틀링 포와 야포를 비롯한 장비들도 가장 상태 좋은 것들을 골라서 지급해주긴 했지만, 결국 원정군 지휘부는 각 연대가 서로 알아서들 협조하라면서 사천에 이들을 밀어넣었다.
그랬기에 연대장과 대대장들이 상급자 없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회의하는 기묘한 모습이 벌어져야 했다.
물론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고, 서열이 확립되지 않으면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법, 결국 대령 진급 날짜를 기준으로 대강 서열을 잡았다.
당연히 젠티안 대령은 연대장의 말석에 앉아 있었다.
“쓰촨의 탕 가문은 강력한 군벌이고, 존중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베트남군이 쓰촨성 인근까지 진출해서 탕 가문과의 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지요.”
“하지만 베트남군이 쓰촨성에 발을 들인 일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회전은 수 차례 벌어지긴 했지만 베트남군이 번번이 패퇴했습니다.”
물론 중국 기준으로는 회전이 아니라 사소한 충돌이다.
게다가 베트남군이 활동하는 윈난성과 쓰촨성의 경계지대의 해발고도는 매우 높으며, 이에 양측의 교전은 대규모 회전보다는 그냥 산병들이 동원되어 산악지대에서 교전을 벌이는 식에 가까웠다. 다만 투입된 병력의 규모가 어지간한 회전 수준이었을 뿐, 양측 모두 현실적인 이유로 본격적으로 치고 나가거나 반대로 치고들어가려 할 수가 없었다.
“베트남 정부에 군을 자제시킬 것을 권고할까?”
“그 정도 외교적 행동을 하려면 총리님의 재가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루빨리 배상금을 받고 철수해야 하는 시점에서 탕 군벌과 사이가 나빠서 좋을 이유가 없으니 본국에 한 번 강력하게 요구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일단 그쪽과 접촉을 해 보죠.”
군 지휘관들은 제한적인 수준으로의 현장에서의 교섭이 허용되어 있다. 이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애초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식민지에서의 급변상황에 본국 정부가 전부 대응할 수는 없으니까. 즉 통신과 행정력의 현실적 한계로 인해 위임된 권한이었다.
물론 그 수준은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나서는 안 되지만, 일단 전혀 안 되는 건 아니다.
애초에 원정군 사령부의 병력 투입 이유도 ‘가급적 협상으로 풀리면 좋겠지만 전투를 벌여야 한다면 전투해야 하니까’였으니까.
“보유한 포탄의 약 25%가 화학탄입니다. 탕 군벌의 정규병력은 몰라도 징집병과 기타 잡스러운 군벌군 정도는 청소해버릴 수 있습니다.”
화학무기를 보유한 세력이 방독면을 안 가졌을 리 없었다. 그리고 영국군이 실용화한 화학탄은 죄다 방독면으로 충분히 걸러버릴 수 있는 종류, 방독면을 꺼내 쓰는 최소한의 훈련이라도 되어 있다면 영국군의 독가스는 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다.
수적 열세를 화학탄으로 만회하고는 하는 열강의 군대에게는 가장 껄끄러운 상대라 할 만 했다.
***
쓰촨성, 개현.
“하, 시발, 왜 하필 난데.”
젠티안 대령은 한숨을 쉬면서 말을 몰았다.
“그야 연대장님 아버지가 그렇게 지시하셨으니까요?”
“젠장.”
대령의 부친이 현직 총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원정군이 본국에 중국에서의 방침을 문의했을 때 그 총리의 답은 간단했다.
현지 외교관들과 장교들을 통한 사천당문과의 교섭을 허가한다. 협상의 허용 범위는 최대 당가를 지원해 새 왕조를 세우는 것까지이며, 최우선 목표는 마교와 혈교의 준동을 진정시키고 중국에서 최대한 많은 배상금과 이권을 본국에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비정하게도 아들을 자기 아들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협상단의 얼굴마담으로 써먹어도 된다고 했다. 중국인들은 체면을 굉장히 중시하니 최고지도자의 아들이 협상장에 나갔다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그들 측의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얼굴마담으로 써먹히는 아들의 기분은 영 좋지 않았다.
“에효효효효…….”
“땅 꺼지겠습니다. 대령님.”
세묜이 건들거리는 걸 본 대령은 뭐라 할 기운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 와중에도 말은 그냥 제멋대로 길 따라서 걷고 있었다.
“이놈의 전쟁 진짜…..”
“중국이란 곳, 진짜 넓긴 넓습니다. 아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중국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군요.”
“다 필요없고 난 가서 잠이나 자고 싶네.”
문자 그대로 숨 쉬는 것 빼고 다 귀찮았다.
“덥다….더워…..”
쓰촨의 더위는 사람을 질려버리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냥 더우면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습하기까지 하니 아주 지독합니다.”
덥다. 더운데 햇빛은 안 난다.
햇빛이 나면 그늘에라도 들어가 있을 텐데 구름이 잔뜩 끼어서 햇빛이 안 나니 그늘에 들어가든 말든 똑같이 덥다.
게다가 습하기까지 하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으으… 어째 더 남쪽보다 몇 배는 더운 거 같다……”
“좀 건설적인 이야기를 합시다. 그래서 저자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탕 군벌? 일단 죄다 집성촌? 그 비슷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다 혈연 관계인 사람들끼리만 사는 지역이 있거든, 그런 지역을 중심으로 기반을 넓혔다더군.”
***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는 밤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때, 가신 한 사람이 다가와 포권을 취했다.
“어르신.”
“무슨 일이냐.”
“영국인들이 인근까지 왔다 하옵니다. 밤에도 쉬지 않고 움직인 게 맞아 보입니다.”
“그런가.”
가주는 묵묵히 달을 바라보았다.
선택의 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일어나서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멈출 것인지.
‘이미 결정은 내렸지만……’
천명을 손에 쥐기 위해 뛰어든 이들은 많았지만,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발 디딜 틈 없는 어둠 속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그 스스로도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해야만 했다.
두렵지 않다는, 괜찮을 거라는 공허한 거짓말은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남아로 태어나 난세를 맞았으니.’
지금까지 가능하리라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일어났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자 한다.
“남아로 태어나 큰 칼을 들었으니, 뜻을 세운 이상 세상을 적으로 돌릴지언정 이를 꺾지 않으며, 결코 물러서지 않고 뜻하는 바를 이루지 않으면 하늘 아래 어찌 고개를 들겠는가.”
추구하리라, 바다 건너에 있는 이들에게서 익히리라.
중화는 더 이상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런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리라.
그리고 이미 첫 발자국은 떼었다.
무기를 사들이고, 공장을 짓고, 기술을 배워 익혔다.
기나긴 전쟁을 치러서라도, 장강이 피로 물들더라도 반드시 얻어야 하는 깨달음은 있는 법.
‘난세가 도래하면 피가 흐르는 법, 더군다나 오늘날의 난세는 사서 속의 난세와 전혀 같지 않으니 더욱 많은 피가 뿌려지리라.’
민초들을 긍휼히 여김은 미덕이지만, 그 긍휼함만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인덕이 넘쳐났던 유비는 바로 이 땅, 사천에서 계한을 세웠지만…. 촉은 멸망했다. 무후의 꿈은, 유관장 삼형제가 꿈꾸었던 한실 부흥의 기치는 끝내 조위에 의해, 그리고 사마씨에 의해 꺾이고 무너졌다.
그 후 어마어마한 난세가 도래했음은 물론이다.
“저들의 대표가 영길리의 승상의 아들이라 하였더냐.”
“그렇습니다.”
“몇 번째 아들인지, 적자인지 서자인지는 모르고?”
“송구하옵니다. 어르신, 제가 영길리의 사정에 밝지 못하여……”
“되었다. 이 촉 땅에서 영길리 땅의 사정에 밝은 이가 얼마나 있겠느냐. 헌데 승상의 아들이라니, 제갈첨인가, 제갈교인가, 그도 아니면 제갈회인가.”
촉 땅에서 재상이라 하면 당연히 제갈무후다.
제갈첨은 제갈량의 유일한 친아들으로 면죽에서 등애와 맞서다가 전사했다. 제갈교는 조카이자 제갈첨이 태어나기 전에 들인 양자였으나 제갈첨이 태어나고 1년 만에 요절해버렸고, 제갈회는 전설상에 존재하는 무후의 아들이다.
“그리고 무후의 피는 우리 가문에도 내려온다.”
촉한의 멸망 후에도 무후의 혈통은 후대의 왕조들에게도 존중받았고, 난세가 끝난 후 들어선 조정들은 충절의 화신인 무후의 후예들을 중용해왔다. 심지어 사마씨의 서진조차도 제갈량의 후손들을 등용했을 정도이며, 대대로 여러 명가들과 사돈관계를 맺어왔다.
그들 또한 그러한 명가들 중 하나. 그 피는 심히 옅어지기는 하였어도 그들 또한 무후의 머나먼 후예 중 하나였다.
“재상의 후예이니, 재상의 아들을 대접할 자격은 되겠지.”
“옳은 말씀이십니다.”
“저들에게 당가가 반가운 손님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보여주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겨주란 말이네.”
“물론입니다.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