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60)
사천(5)
런던 외곽의 젠티안 공작 사저.
다우닝 가 10번지는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이라 총리지만 개인 집에서 업무를 보는 중이다.
사실 역대 총리들 중 적잖은 수가 아예 다우닝 가 10번지에는 얼굴도 안 들이밀고 따로 집을 구하거나 자기 사저에서 업무를 봤다는 걸 감안하면 딱히 특이한 일도 아니다. 사실상 허물었다 다시 짓는 수준에 가깝다.
-야옹.
꼬리를 세운 채 삶은 생선을 좋다고 먹던 대처가 식사를 마치고 상자로 기어들어가는 걸 본 나는 펜을 들었다.
‘우유급식.’
원 역사의 대처가 우유 무상급식을 폐지한 걸로 우유 도둑 이미지가 있긴 한데 여기 대처는 애초에 우유를 못 먹는다. 아니, 원래 고양이한테 그냥 우유 주면 안 된다.
초콜릿, 파, 마늘, 양파, 부추 같은 거 주면 안 된단 건 유명한데 고양이는 개체마다 다르긴 해도 높은 확률로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고양이용 우유를 주지 않으면 설사를 하고, 새끼고양이일 경우는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대처에게 우유는 없다.
‘문제는 예산도 예산이거니와 우유의 품질을 보장할 수가 없다는 건데.’
우유의 유통기한이라거나 품질관리는 알 카포네가 완성했고, 루이 파스퇴르는 현역이긴 하지만 아직 그 양반이 저온살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알 카포네의 방식은 안다고 해서 그 방법을 써먹기가 어렵다. 왜냐고? 자기 말을 들어먹지 않는 목장주와 유통업체 사장들을 납치해서 협박한 뒤 강제로 사들여 모든 목장을 손에 넣고, 우유의 생산과 유통과정을 꽉 잡은 뒤 밀주 사업으로 만든 전국 유통망과 유리병 제조 공장, 냉장 수송차를 이용해 신선하게 보존된 우유를 규칙적으로 공급했다. 유통기한을 법제화한 것도 미국 의회에 로비를 한 알 카포네의 공로다.
이건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인들이 생각하는 상식이 여기선 상식이 아니고, 내 권한은 ‘이걸 왜 못함?’ 혹은 ‘왜 여기까지 할 수 있음?’ 수준으로 이상한 데서 폭이 넓고 이상한 데서 부족하다.
“대처야 대처야.”
“냥?”
“내가 퇴임하기 전에 상하수도 시설을 정비하고, 템스 강 정화의 초석을 놓으며 빈민층에게 우유죽이라도 먹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니?”
누가 우유 도둑 아니랄까 봐 관심 없다는 듯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자러 가는 대처를 본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해먹으면 몇 년이나 해먹겠냐.’
현재 초대 총리인 로버트 월폴이 가지고 있는, 20년 넘게 해먹어야 딸 수 있는 최장기간 총리 타이틀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최단기간은……. 미래 일 빼고는 1827년에 119일간 재임하다가 급사해버린 조지 캐닝 총리였지. 내가 알고, 아마 오지 않을 미래에는 45일이 최단명이었고, 아무튼 지금 내려와도 최단명은 아니다.
그때 문소리가 들렸다.
“총리님!”
“무슨 일인가?”
“프린세스 앨리스 호가 침몰했습니다!”
“뭐?”
***
프린세스 앨리스 호는 템스 강을 오가는 선박이었고, 8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상태로 항해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배가 침몰해서 사망자를 600여 명이나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배가 침몰하는 사건은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로도 있을 일이다. 그리고 19세기는 진상 규명, 원인 파악과 책임자 처벌, 기타 이런저런 일들은…..생각보다 후순위다.
21세기라면 해난사고로 600여 명이 죽었다고 하면 일단 최소로 쳐도 장관급 인사가 목을 내놓아야 할 거고 정권이 흔들리는 건 당연한 일, 나도 총리직을 내놓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19세기를 살아가고 있었고, 사람 목숨은 너무나도 싸구려였다. 보편인권이란 게 제대로 실현되기에는 아직 시대가 너무 일렀다. 제기랄.
그리고 사람 목숨으 귀하게 여기더라도 원래라면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할 내가 이 사고를 철퇴처럼 휘둘러댈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사망자는 거의 전부 익사자가 아닌, 템스강의 물을 마셔서 중독되어 사망하거나 강에서 발생한 유독가스에 질식사했다는 게 밝혀졌으니까.
한 마디로 21세기 한강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깨끗했으면 여기서 죽어버린 사람들 대부분은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휘두르는 논리의 핵심이었다.
“본 총리가 템스 강의 정화가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변하지 않았습니까! 대악취 사건 때문에 의회가 휴회한 일은 또 어떻습니까? 그저 방치해놓을 생각입니까!”
“옛 로마인들처럼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어 염소 소독한 물을 지역마다 제공하고, 하수는 그저 템스 강에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정화시설을 설치해 충분히 정화한 다음에 방류하는 방식을 사용하시겠다는 총리님의 말은 좋습니다. 하지만 예산은……”
“일단 집행하고 중국에서 뜯어와서 메꿉시다. 내가 일평생을 극동에서 외교관으로 지내면서 본국으로 가져온 이권의 10분의 1만 사용해도 런던 전역에 상하수도관을 깔 수 있소!”
물론 단언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내가 가져온 이권들은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가 애매한 종류의 이권들도 수두룩하거든.
활용하기에 따라서, 그리고 국제 정세에 따라서 이권은 그 자체로 아무 가치도 없는 꽝일 수도, 천문학적인 돈이 될 수도 있다.
“염소는 어쩌실 겁니까? 상수도를 지속적으로 염소로 소독하려고 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 겁니다. 이건 한 번으로 끝날 것도 아니고 매일같이 지출되는 비용이 아닙니까.”
염소 생산공장은 이미 있다. 당연하다. 독가스로 쓰거든, 그런데 이제 순수 염소가스는 화학탄 자리에서 슬슬 밀려내려오는 모양새고, 퇴역하는 염소 화학탄을 상수도 정화용으로 사용하면 되지 않겠나.
그걸 다 쓰면 그때부터는 염소를 사서 쓰기는 해야겠지만… 콜레라랑 장티푸스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냐? 응? 황족들 중에서도 장티푸스로 죽는 사람이 나오는데….
안타깝게도 경구수액은 장티푸스 환자를 급사하지 않도록 연명시킬 뿐, 장티푸스균이 장을 진탕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항생제를 써야 치료가 된다. 근데 항생제가 아직 없어.
그런데 염소 소독만 해도 줄일 수 있는 게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대장균, 살모넬라균, 장염비브리오균 감염증, 노로바이러스 감염증, 이질아메바 감염증 등등 무수한 수인성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급감시킬 수 있는데 왜 안하냐고!
하다못해 지금 병으로 서민들이랑 빈민들만 죽어나가고 있으면 말이라도 안 하겠다. 당신들도 줄줄이 죽어나가면서 뭘 궁시렁궁시렁대? 염소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이미 오염된 물을 마시지 않고 하수를 제대로 처리하면 콜레라 발생률이 급감한다는 건 의사들이 증명했지 않소! 콜레라만이 아니라 다른 질병들도! 염소 값은 거기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거저나 다름없소! 왜 실측에도 반대하는 거요?”
아니, 뭐 백 번 양보해서 예산을 유용하면 안 되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관 묻는 건 천천히 하자 이런 말은 이해한다.
근데 관 묻을 자리를 대강 파악해두고, 토질 조사, 가장 효율적인 상하수도관 경로 등을 계산해서 상하수도관망을 미리미리 설계해두자고, 거기 들어가는 예산 집행도 반대하는 건 대체 뭔데? 반대를 위한 반대야? 하, 독재 마렵다.
하수관은 벽돌 써서 만들고, 상수관은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다.
배관은 여러 종류가 있다, 철, 납, 도자기, 플라스틱, 구리관, 스테인리스, 심지어 나무도 쓴 사례가 있다고는 하더라.
그런데 도자기는 잘 깨지고, 플라스틱은 이 시대에 있겠냐고. 스테인리스는 없는 건 아닌데 비싸고, 구리도 마찬가지, 나무는 썩고, 철은 녹슬어버린다.
그럼 남는 게 납밖에 없다. 다행히 유럽에서는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안 되기는 하는 게, 납 수도관은 처음 사용할 때는 납이 용출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조금만 쓰면 순식간에 막대한 양의 관석이 달라붙어서 납 용출을 틀어막는다.
‘다만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염소 소독인데.’
염소 소독을 한 물은 미약하게 산성을 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산성수가 납을 용출시킬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 물 자체에도 미네랄이 다량 포함되어 있으니 그 미네랄이 알아서들 용출을 막아주리라고 기대해볼 수도 있긴 한데 해보지 않는 한 모를 일이다.
로마인들은 잘 썼다지만 로마 시대에 염소 소독이 있진 않았을 것 아닌가.
‘이 시대에 납이 몇 ppm 섞였네 어쩌네 하면서 알려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템스강 똥물보다는 낫긴 하겠지만!’
“우선 막대한 재정이 소모되고 있는 문제인 극동의 전쟁을 끝내고 배상금을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방향으로 이번 전쟁을 종결시킨 후, 해당 금액을 상하수도 설치 비용으로 전용할 겁니다.”
“해당 토지의 매입 문제는 어떻습니까?”
“상하수도관은 모든 집에 연결하는 것도 아니고 공용 취수장과 공용 화장실에 설치하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수기에서 물을 떠다 먹는 게 아니라 펌프에서 물을 퍼다 쓴다. 하수도도 그렇고. 수백 명이 단일 시설을 이용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잠시 휴회하겠습니다.”
빌어먹을, 이 답답이들을 어떻게 설득하지?
***
총성이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함성 소리와 칼 부딪히는 소리도 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노야.”
“가거라.”
“아닙니다. 노야. 마지막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가라.”
씁쓸한 표정으로 상군 시절의 정복을 완전히 차려입은 장군이 말했다.
“멀리 멀리 가서, 전부 잊어라. 전부 잊고, 무기를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살거라.”
마지막 부하들까지 떠나간 뒤, 홀로 남아 있던 좌종당은 천천히 깨어진 창문 너머의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하늘이시여……..”
쓸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좌종당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귀가 민감해진다. 포성으로 먹먹해진 그의 귀에도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밝게만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실로 유감이네.”
“다른 이들이 먼저 올 줄 알았건만.”
“자네라면.”
너라면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 말을 이해한 좌종당은 이홍장을 바라보았다.
“호림익이 일찍이 내게 이렇게 말했지, 내가 사람들을 면전에서 비판하지만 조금도 봐주지 않으며, 이로 인해 원망을 많이 사게 될 것이라고. 과연 그 탓에 내가 패하였으니 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구나.”
“자네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의가 없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홍장도 좌종당이 자폭을 한다거나 그를 길동무로 끌고 간다거나 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 둘이 모두 죽는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