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61)
천명대전(1)
“같이 가세.”
“그럴 수 없네.”
쓴웃음을 지은 좌종당은 안색이 점점 파리해졌다.
“자네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가고 싶어서 총을 쓰지 않았네만, 알고 있었네, 자네가 내 얼굴을 다시 본다면. 필시 흔들릴 거라는 걸.”
“자네!”
“내 예상대로여서 기쁘지만, 동시에 기쁘지 않군.”
“왜……….”
“소전(小荃: 이홍장의 자), 이 친구야. 내가 죽기 전에 한 마디만 하겠네.”
“………”
“오랜 기간 동안 생각했네, 이….불쌍한 민족의 미래에 대해서 말이네.”
“계고!(季高 : 좌종당의 자).”
“이 땅에 자네 외에는 태산에 오를 자가 없어. 그러니 똑똑히 듣게! 이 민족은.. 아직은 위에서의 순응에 익숙해도 너무 익숙하네, 저 서구인들과는 달라.”
“………”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저들을 배운다면 저들의 기술을 배워야 할 터인데, 기술과 체계를 받아오면서 사상만 걸러낸다는 팔자 좋은 일은 애초에 있을 수가 없어. 쿨럭!”
“계고, 자네……”
“아직 시간이 조금은 남아 있네, 초오를 달인 차와 복어의 알을 동시에 먹었으니……”
투구꽃의 독인 아코니틴과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은 서로에게 길항작용을 일으켜 독이 효과를 발휘하는 시간을 상당히 늦출 수 있다.
“반드시 들어올 걸세, 저들의 사상과 저들의 종교가 반드시 중화로 스며들 걸세, 그리고 그것이 결합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이들이 민족이란 허상에 홀려 날뛰기 시작하면… 필시 이 민족이라는 이름이 저 양이들 스스로의 피를 무수하게 땅에 흩뿌릴 걸세, 그리고 나서 구습을 벗어던진 중화가 민족의 이름으로 다시 그 깃발을 치켜들면, 전 세계와 전쟁을 벌인 끝에 반드시, 반드시 중화 스스로를 파멸시킬 걸세.”
“어찌하란 말인가.”
“철저하게.”
좌종당은 납덩이 같이 파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들을 철저하게 찍어누르게, 결코, 결코 민족이라는 이름에 국가가 휘둘려서는 안 되네, 민족이라는 이름에 국가가 짓눌리는 순간, 남는 것은 철저한 파멸뿐이네, 민족, 민권, 민생, 뭐든 간에….. 자네가 쥐고 휘두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품지 말게, 그건 쥐고 휘두르다가 결국 거기에 휘둘리게 되는, 국가를 피에 미치게 하는 마검이야. 그리고 그 끝에는… 멸족만이 있네. 우리의 피를 이은 자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되고서야…. 끝날…. 혈겁난세를….”
독기운이 돌면서 헐떡거리던 좌종당은 손을 들어올렸다.
“소전…… 나는……. 나는….. 막아야겠네, 반드시 막아야만 하겠네. 부디 막아주게, 막아야만 자네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사네….”
“걱정하지 말게나, 계고.”
이홍장은 두 손으로 이미 온기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친우의 손을 잡았다.
“내가 그 뜻을 이어받겠네.”
“소전….”
좌종당은 마지막 힘을 다해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정상에 설 자가 아니었어…… 나는…….”
수많은 지옥을 거쳤음에도, 그 무엇보다도 그의 무릎을 결정적으로 꺾어놓은 것은 트인 시야가 알려주고야 만, 잔혹하기 그지없는 예지였다.
“부탁하네, 소전.”
그 말을 끝으로 손이 툭 떨어졌다.
큰 별이 지는 순간이었다.
***
“좌종당은 자결, 이홍장이 좌종당의 남은 세력에게 대체적으로 관용을 베풀어서 이들의 세력을 흡수했다는군요.”
“좋은 소식이군.”
“예? 왜 좋은 소식입니까?”
“좌종당과 이홍장이 싸운 지가 몇 년인데 아무리 관용을 베풀었다고 해도 그 앙금이 단숨에 아물겠나? 저들도 다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말이지.”
“아….”
“특히 좌종당의 부하들은 굳이 말하자면 갈아탄 셈 아닌가?”
“맞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간에 말이네, 이런….. 소위 말하는 변절자들은 제일 극성을 부리기 쉽네, 왜냐면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쳐내지기도 쉽고, 이런 소위 말하는 극단 강경파들은…. 내부에서도 미움을 받기가 매우 쉽지. 게다가 옛 앙금도 가라앉지 않았을 거고.”
국내 화합을 목적으로 이홍장이 좌종당의 잔존 세력들을 품었든, 아니면 이런 충성경쟁의 효과를 기대해서 품었든 간에 상관없다.
이런 관용을 보여준 군주들은 실제로 한두 명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관용은 보통 천하통일의 마지막 상대를 무릎꿇린 뒤에야 보여준다. 그 이유도 명백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마지막으로 보여준 게 관용이라는 것을 내세워서 이미지메이킹도 좀 하고, 거기에 내부 갈등이 표면화될 여지도 줄이는 셈이다.
국내의 정쟁이 도를 넘으면 그것이 국력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기독교에서는 다윗이 밧세바를 탐내어서 그 남편인 우리야를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지.”
직접 죽이지는 않았다. 다만 전쟁에서 일부러 위험에 빠트려서 전사하게 만든 것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비슷한 사례가 수도 없이 일어나지 않겠나?”
죽을 게 뻔한 전장에 내몰아 죽이기, 누명 뒤집어씌우기, 의심암귀 일으키기.
외방에 군대를 이끌고 나간 장수는 군왕의 불안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생각을 조금만 해 봐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같은 사례가 한반도에서만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의심암귀에 빠진 군주에 의해 장군이 숙청되면 그 장군이 지휘하던 군대는 그대로 강적을 맞아서 박살난다.
장군이 전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장성이 전사할 정도면 군의 피해가 얼마나 나겠는가?
그러니 내부의 분란은 강한 외부의 적이 있을 때면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경우에 따라 내부의 분란은 지도자의 권력을 강하게 해주지만, 그 반대로 강적을 상대로 패배하게 만드니까.
“어떤 의도에서 관용을 베풀었든 간에, 이홍장은 지금 자기가 다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야 실제로 대놓고 이홍장에 반발할 만한 세력은 현재 없으니까요.”
“외국을 제외하고는 말이지.”
물론 서양 열강들이 작정하고 침공하면 내부가 결속되어 있든 혼란스럽든 간에 박살나는 건 예정되어 있는 일이다. 그 문제를 이홍장이 세간살이 좀 내주고 눈 딱 감고 버티는 걸로 해결하려는지, 아니면 어떻게든 외교를 이용해서 이이제이의 고사를 실현하려는지, 그도 아니면 정말 무슨 기똥찬, 혹은 병신같은 생각을 하는지는 그들로써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외국이 실제로 중국을 완전 지배하기는 그리 쉽지가 않으니까.”
당장 명목상만 러시아령이지 남의 땅이나 다름없어서 혈교를 처음부터 토벌해야 했던 황하 이북 중국만 봐도 증명되지 않는가. 세금을 걷으려고 세금징수원을 보내는 게 아니라 카자크 기병을 보내는 게 약탈하러 가는 거지 어딜 봐서 세금을 걷는 건가.
하지만, 고만고만한 군벌들만 있어서 일단 태산에 오르기만 하면 알아서 복속해오고, 그 지역 태수 자리 정도나 던져줄 만한 사천의 작은 군벌 하나가 열강의 지원을 받아 자신을 노릴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하는 게 정상이 아니겠는가?
“그 당토끼인가 똥독인가 하는 사람은 대령님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황제해먹을 만한 사람입니까?”
“모르지, 내가 아버지도 아니고 얼굴 몇 번 맞댄 걸로 사람 그릇을 어떻게 알아. 사람은 말하는 것보다는 행동을 봐야 하는 법인데. 그리고 예의를 갖춰라, 아무리 같잖아 보여도 우리와 협력하는 가문의 수장이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뭘 그러십니까. 저놈들이 프랑스어를 들어는 봤겠습니까?”
“유럽의 핵심 외교 언어는 프랑스어다. 모를 거라는 보장도 없어, 저들이 우리에 대해 차분하게 연구해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차라리 아랍어를 쓰든가.”
“아랍어는 알라~밖에 모릅니다만.”
“하지 말란 소리다.”
세묜과 투닥거리던 대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참….. 뭐랄까, 처참하다고 해야 하나?”
“형님 눈이 너무 높으신 겁니다, 이 정도면 극동의 2선급 부대와는 견줄 만 해요. 그러니까 극동‘에서’ 2선급 부대요.”
원래 식민지의 병력은 정예도가 떨어지는 2선급, 그런데 그게 러시아 관할이면 3선급, 거기서도 2선이면 4~5선급은 된다는 소리다. 벤치 선수보다도 못한 취급이었다.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몰라도 무기를 사들여서 껍데기는 멀쩡하게 갖춰놨는데……”
“그래도 적을 마주쳤다고 도망가고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이놈들 다 사천 내에서의 군벌들 간 전투경험은 있다고 하니까요.”
“그러면 다행이기는 하겠는데, 복잡한 전술적 기동은 기대 못하겠지?”
“지휘관들 능력이 거기까진 안 될 겁니다. 일단 전진만 시키고 절대 후퇴는 시키지 말아야겠죠.”
뒤로 물러나라고 명령했다가 패배한 줄 알고 너도나도 다 도망가서 어이없게 패배한 전투가 없지 않다. 통신수단도 부족하고 조직력도 부족한 군대라면 더욱 그렇다.
그때, 한 여성이 걸어왔다.
“검열 나오셨습니까.”
“아, 당 소저.”
“소소라 불러주십시오.”
성은 唐, 이름은 春麗, 그리고 자는 小昭.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면 자는 엄연히 여자도 가졌다. 사서오경에 들어가는 예기에 따르면 남자는 스물에 자를 내려주어야 하고 여자는 열다섯에 자를 받는다고 나온다.
물론 그런 오해를 할 만한 배경지식도 없는 둘은 자를 일종의 미들네임 정도로 생각했을 뿐.
‘추엔 리 소소 탕….. 이게 맞겠지?’
‘저희 식은 아닙니다만 대충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외교임무를 띄고 있다 보니 어디서 누굴 만나고 뭘 했는지까지 싹 부친에게 보고해야 했던 대령은 자를 미들네임으로 처리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러버렸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둘러보셨나요? 어떠십니까?”
“솔직히 말해 유럽의 정규군에 비해서는 하자가 많습니다.”
돌직구를 날렸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별로 변화가 없었다.
“뭐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중국 대륙에서 싸우기에는 크게 부족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상군과 정면대결을 벌이기는 힘들 겁니다.”
“이걸 보셔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실까요?”
잠시 뒤, 그들은 당가의 진짜 전력, 포병부대를 보았다.
“전원이 독일제 크루프 야포로 무장하고 있고, 회선포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당가의 자랑이자 비기, 만천화우입니다.”
“만천화우라.”
“하늘에 꽃비가 가득하듯이, 매화꽃이 하늘을 뒤덮듯이 포탄들이 빗발치듯 날아들어 적들을 도륙하라는 이름으로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구분해서 부르려면….. 이십사수매화포술이라고 부르죠.”
“……….?”
“24문의 포가 일제히 방포하여 추운 겨울 한가운데 핀 설중매처럼 빗발치듯 산탄을 퍼부어 적들에게 단 일격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라는 이름으로 붙인 이름인데………..”
“솔직히 이름 구립…. 읍읍!”
그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