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66)
천마군림보(2)
빙고 내부는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이런 곳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만든 것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있던 것이지요. 저희 가문이 빙고로 쓰면서 문을 다는 등의 손질은 했지만, 이곳은 본디 무더운 날씨에도 얼음이 어는 곳입니다. 몇몇 이들은 대승상이자 대충신, 제갈무후께서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만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믿는 이들은 제법 있습니다만.”
춘리는 성큼성큼 걸으며 순식간에 하얗게 얼음이 맺힌 눈썹을 쓸었다.
“여깁니다.”
“해부를 하는 겁니까?”
물론 유럽에서는 해부가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동양에서는 망자의 몸에 칼을 대는 걸 금기시하지 않던가?
“소지품을 전부 뒤졌음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배를 가를 수밖에요.”
벌거벗겨진 시신을 감정 없이 바라본 당가의 사람들은 짧은 칼을 꺼냈다.
“저희 가문이 독을 다루며 알게 된 것은,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입니다. 비상을 먹고 병이 씻은 듯이 나은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제법 체계가 잡혀 있군요.”
“유럽의 의술도 저희가 익힌 대상입니다.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지요.”
춘리는 흔들림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서양의 의학과 동양의 의학은 차이가 있지만, 결국 사람을 살린다는 목표 하나는 같습니다.”
“…………”
“독을 사용하면 공포만 남습니다. 물론 그 공포가 사천을 저희 아래 통합시켰지만, 진정 천하를 손에 넣고 싶다면 독도 물론 필요하지만 약 역시 필요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무술만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의술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 가문의 뜻은 아니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시신의 내장을 뒤적이는 일, 일반적인 이들이라면 구역질을 할 일이다. 당장 개구리 해부도 못 견뎌서 도망치는 이들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배를 가르는 일이겠는가.
“물론 우리의 목적은 증좌를 찾는 것이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기에. 사람을 살리려거든 사람의 배를 가르기 전에 이 공간부터 석탄산으로 전부 먼지 한 톨 없이 닦아내고, 저희의 옷 역시 가마솥에 넣어 팔팔 삶고, 목욕재개해야만 시술을 시작했을 겁니다. 특히 손은 이중 삼중으로 소독하겠죠.”
“그 이론을 따르고 있소?”
“이론입니까? 서역에서는 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소한 오해가 있었다면, 당가가 받아들인 서양의 수술법은 나이팅게일이 정립한 절차로, 아직 대부분의 유럽 및 미국 의학계에서는 소수파에 속했다.
그러나 아우렐리아와 일본에서는 바로 이 소수파에 속하는 이론을 받아들였다. 나이팅게일이 직접 의술을 사사했으니 오죽했을까.
그렇기에 유럽의 의사들보다 사천당가가 더욱 수술 시의 위생을 중시하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도 이뤄질 수 있었다.
“아니….. 이게 사실 내 부친께서 제창하시고 강력하게 밀어붙이신 이론이라 말이오.”
“예?”
“어머님… 내 친모가 아니라 계모께서는 의술에 정통하셨소. 그걸 나름 의술에 조예가 있던 부친께서 재정립하시어 세운 이론이고, 실제로 그 방법으로 많은 이들을 살렸지. 헌데 다른 의사들이 사람을 치료할 때 손을 깨끗이 씻는 것과 수술 후 살아남는 이들이 많은 것 가운데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다면서 믿으려 들지 않더군.”
“아…….. 저희 가문은 조선을 통해 전수받았습니다.”
“아버님이 조선에 머무르실 때 전파해주신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오. 실제로 많은 이들을 살리는 방법이고, 또 이걸 여기서 보니… 제법 반갑구려.”
수술실을 소독할 때 쓰는 석탄산에 적신 걸레를 본 대령은 잠시 추억을 회상했지만, 잠시 뒤 얼굴이 굳었다.
의원 중 하나가 자그마한 쪽지를 꺼내든 것이다.
“이건……?”
“흉수의 위 속에 있었습니다.”
종이는 위산에 녹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은 종이의 성분인 셀룰로스를 분해하지 못한다. 염소도 아니고 그게 됐으면 어느 독립유공자의 사보타지는 물거품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게 글씨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어야 했지만…..
“초칠이 되어 있군.”
인체는 파라핀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양초를 만드는 파라핀은 아예 독이고 벌집을 만들 때 쓰는 밀랍도 먹을 순 있지만 먹은 그대로 싸게 된다.
따라서 파라핀과 종이의 조합은 종이의 내용을 온전히 보존해주었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거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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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마교의 주요 격언? 교리? 중 하나입니다. 부적처럼 가지고 있었나 보군요.”
“부적?”
“그러고 보니 초칠을 해놓기까지 한 걸 보면 혀 밑에 독약과 같이 넣어둔 것일지도.”
“무슨 의미가 있는데?”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관습을 부숴버려라. 곧 유교 질서, 천조 질서, 신분제, 국가 질서 그 자체까지 그들의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난세가 여럿이었고 왕조들도 셀 수 없이 많이 바뀌었으며, 신분질서가 뒤흔들리고 변동된 적도 있었다.
시스템 자체는 그 구성원이 바뀔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 완벽하게 뒤엎어지지는 못했다.
집주인과 세입자만 수천 년간 바뀌었을 뿐 절대적인 구조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았던 거대한 피라미드를 통째로 때려부수겠다는 존재가 나타났다.
당연히 그간 피라미드의 정상에 오를 생각만 가득했던 중원의 모든 세력이 경계하지만….. 빈민들에게는 이보다 더 달콤한 유혹도 거의 없으리라.
“대령님, 이거……..”
그리고 유럽에서 온 이들은 뭔가 기시감을 느꼈다.
핏빛으로 새겨진 글자, 그리고 종이 뒷면에 새겨진 또 다른 경구를 본 순간, 그 생각은 확신으로 변했다.
하나의 유령이 중원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중원의 모든 세력들이, 천자와 공경대부, 산림과 중, 오랑캐와 상인들이 이 유령을 사냥하고자 힘을 모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농민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농민들이 혁명에서 잃을 것은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중원의 농민들이여, 일어나라!>
공산당 선언을 적절히 로컬라이징한 내용을 본 대령은 인상을 구겼다.
“칼 마르크스.”
“그게 누굽니까?”
“1848년 혁명 당시 제법 시끄러웠던 인간이지, 아우렐리아로 도망쳤다가 거기서 죽었는데, 극동에서도 번역되었을 줄이야.”
이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 혁명이 발생했었다.
“일본을 거쳐 넘어왔겠지, 대충 노동자를 농민으로 현지화한 것 같은데.”
“아무튼, 이 살수의 정체는 마교도란 거군요.”
“하지만 그 품에서 나온 권총은 미국의 콜트제 권총이었습니다. 게다가 외모도 사천보다는 남쪽 출신에 더 가깝다고 하고요. 저희는 잘 구분이 안 갑니다만 일단 여기 사람들이 그렇다니………”
세묜이 지적했다.
“상군은 미국 내전 후 물량이 잔뜩 풀린 콜트 리볼버를 제식으로 쓰지, 그리고 이홍장의 본거지도 남부, 즉 이홍장이 배후에 있다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진실은 살막의 자객이고….. 그건……”
“누구 한 명을 죽이려고 했겠지, 가주가 목표는 아니었을 거고….. 당가가 잃었다가는 눈이 뒤집혀서 날뛰고도 남을 상대.”
“이홍장의 회군을 막으려고 했겠군요.”
“그래, 저쪽도 제법 조급하단 뜻이지. 그보다 그건?”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당춘삼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병의 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병사들을 풀어 주변 백 리 이내의 모든 도로를 막고 객잔과 산을 수색했습니다.”
“이 주변은 집성촌이니까 숨을 데가 별로 없지.”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아는 동네에서 어떻게 숨는가. 애초에 평소라면 들어오다 걸렸을 것이다. 지금이야 전쟁 때문에 어수선하니까 낮선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서 들어오는 거나마 가능했을 뿐.
“그 결과로 산에서 토굴을 파고 살던 수상한 놈 넷을 잡아서 고신했고, 놈들이 공범임을 토설했습니다.”
아직 고문을 통해서 자백을 받아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 생기기는 많이 일렀다. 그래도 유럽에서는 고문이 폐지되었고, 동양에서도 근대화되었다고 자부하는 국가들은 고문을 폐지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애초에 고문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생긴다고 고문이 없어졌으면 21세기에 이 땅이 인권 문제로 그렇게 시끄럽지도 않았을 거다.
“일단 확인해야 할 건 저놈들이 마교도가 맞는지지. 흐음, 저런 잔챙이들은 중요한 건 모르겠지?”
“그러겠죠.”
“이 건은 윗선에 보고해야겠습니다. 이게 단순히 마교 최상층부가 공산당 선언을 책으로 접했다거나 하는 자생적인 경우면 큰 문제까진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극동과 유럽에 어떤 우리가 모르는 연결점이 있고, 그 연결점을 통해 사상의 교류가 이뤄진 끝에 혁명이 발생했다면 이는 좌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태양이 처음으로 대지를 비추었을 때 황제와 공경대부는 어디 있었는가!”
조반유리의 기치를 치켜든 수백만 대군이 남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청년이 있었다.
“수석사도 예하.”
“무엇이냐.”
장로라 불렸지만, 그는 차라리 청년에 가까웠다.
숨길 수 없는 일본 억양을 가지고 있는 청년은 갑주를 갖추고 검을 차고 있었다.
마교의 교리를 정립한 공로로 교주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수석사도는 이 자체가 불만이었다.
‘지나인들이 야만스러워서 종교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믿지도 않는다지만,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민의 아편일진대.’
그래서 천황가도 족쳤던 그로써는 자신이 수석사도네 뭐네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혁명은 지속되어야 했다.
단지 그것만으로 비루한 목숨을 이어왔다.
“교주님께서 출발할 준비를 하라 하셨나이다.”
“알았다.”
이들을 이용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버려야만 한다.
교주가 그를 등용한 게 아니다. 그가 마교를 이용하는 것이다.
경자유전을 시작으로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논하고, 남은 건 세상에 대한 무차별적인 분노밖에 없는 이들을 끌어모았다.
그리하여 이들을 이용해 모든 질서를 파괴하고, 이들로 사회주의 국가를 세운다.
지나는 넓고도 넓어 그들이 과거에 직면했던 문제점 중 상당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동시에 몇몇 다른 문제들도 발생했다.
하지만 혁명은 언제나 피를 부르는 법.
대동아를 피로 물들이더라도 혁명은 계속되어야 하고, 성공해내야만 한다.
어떤 더러운 수단을 쓰더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할지라도.
왕조가 바뀌어도 지도자만 바뀔 뿐 전쟁은 일어나고, 썩어버린 세계 내애서는 약자는 희생되는 법. 근본적인 변혁을 이뤄내지 않으면 복수도, 승리도 의미가 없다.
그저 그 길의 종점에 도달해서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그들이 치른 대가 가운데 선량함과 정의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를 바랄 뿐.
마교 수석장로 이등박문, 이토 히로부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