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72)
종언(4)
늙은 여왕은 버킹엄 궁전의 홍학 연못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여왕 폐하.”
“딱딱하구나, 윌리엄.”
프린스 오브 웨일스.
정식 작위는 웨일스의 알렉스 빅터 공작 전하. 정식 이름은 웨일스 공 알렉스 빅터 에드워드 윌리엄, 대외적으로는 에드워드 공이라 불리지만 가족들에게는 윌리엄이라고 불린다.
이유야 뭐 이름인 알렉스 빅터는 자기 부모의 이름을 고스란히 따온 것이고, 애초에 미들네임을 진짜 이름마냥 쓰는 것도 귀족층에서는 흔해빠진 일이다.
그리고 이 나라를 물려받을 후계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크고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될 인물.
에드워드 왕세자는 자신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총리는….. 젠티안 공은 원래부터 의문스러운 사람이었죠.”
속을 알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진보적이다.
투표권 확대에 찬성하는 디즈레일리의 입장을 계승했고 빈민 복지의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부르주아들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왕의 물음에 웨일스 공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총리가……. 마지막을 불태워보려는 생각인가 봅니다.”
“이번 사업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어서라도 해야 한다고….. 그렇게 판단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말해보거라, 우리가 어울려줘야겠느냐.”
“이 땅에서 콜레라를 근절하겠다는 생각인데, 그것을 제가 어떻게 반대하겠습니까.”
본인도 과거에 콜레라에 걸려서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콜레라 방역을 반대할 리가 없었다.
“명목상으로야…. 그렇지.”
굉장히 상식적인 이유다.
하지만 그 너머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당연하지만, 늙은 여왕이라고 해서 의회의 동향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말이네.”
“예, 어머니.”
“의회에서 논쟁이 있었다지.”
“콜레라가 아니라 다른 문제라면, 역시 아프리카 문제입니다.”
북아프리카 문제.
“그래, 역시 그거겠지.”
이거야말로 폭탄이다.
대영제국의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유럽 외교노선의 폐기까지 이어질 수 있는 초대형 폭탄.
“신성로마제국이 형성된 이래, 총리는 항상 개입주의를 주장해 왔습니다.”
대영제국의 외교노선은 항상 명예로운 고립이었다.
러시아와의 동군연합은 그럼 뭐냐고 할 수 있겠지만, 동군연합은 엄밀히 말하자면 별개의 국가다. 게다가 동군연합을 넘어 이중제국으로 가려고 한다면 거기에 대해서도 어마어마한 반발을 예상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이쪽은 영국이 주도권을 가져가면서 러시아 스스로도 국내에 산적한 구습들을 개혁하는 데 주력하기로 결정하면서 러시아가 명예로운 고립에 참여하는 형태로 완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를 뒤틀자는 것이었다.
“개입주의로의 전면 전환, 의원들 대부분이 격렬히 반대할 사안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이 그 공업적 능력으로 맹렬하게 추격해오고 있다.
그러니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둘 중 하나를 정해서 손을 잡고 다른 하나를 압박한다.
그리고 총리는 손을 잡는다면 프랑스를 지지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바로 대독포위망.
수십 년 뒤에야 현실화되었을 그것이었다.
“그런데 단순한 위생 문제가 어떻게 이 개입주의 여부 문제와 엮일 수 있을까?”
“직설적으로 여쭤보시지 그랬습니까?”
아들의 말에 여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다.”
물론 물어보려면 물을 수는 있었다. 아마 곧이곧대로 대답해주었으리라. 하지만…….
“차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싶구나, 그건.”
“어머니는 이미 마음을 정하셨군요.”
“그래.”
빅토리아 여왕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평생을 조국에 헌신한 충신이 단 한 번만 해 보고 싶은 게 있다는데, 한 번쯤 이용당해주지 못할 것이 어디 있느냐.”
***
웨스트민스터 궁전, 다시 말해 영국 국회의사당에서는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물론 언제 영국 의회가 조용했던 날이 의회 회기 중에 있기는 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오죽하면 의원들끼리 안에서 결투하지 말고 나가서 결투하라고 결투 관련 규정까지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은 유독 더 시끌시끌했다.
“전염병의 대규모 유행 방지라는 논지는 좋습니다. 예, 이미 선례도 있는 일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나는 태연하게 물었다.
“상수도와 하수도의 규모를 확충하고 정수시설을 만들며, 이를 국가에서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시장교란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철도조차 국유화된 게 아니라 사유화되어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내놓으시겠습니까?”
“상수관과 하수관을 추가로 건립하되, 이는 초기에만 정부의 손을 거친 뒤 수도회사의 주식을 공식적으로 민간에 매각하는 것입니다.”
“수도회사의 주식이 민간에 매각될 경우, 지속적으로 나가는 고정비율이 있습니다. 염소 소독이라거나, 하다못해 수도 체계의 유지보수 비용 말입니다.”
“그 염소는 대체 왜 집어넣는 것입니까?”
아직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관념이 증명되지 못한 시대다.
“염소 소독은 미생물의 제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안으로, 이는 현미경만 가지고 있어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미생물의 제거가 필요하느냐는 말입니다. 이는 예산의 낭비가 아닙니까?”
“절대 아닙니다.”
원래는 불소도 넣으려다 말았다 이 인간들아.
“여러분, 기생충 역시 미생물입니다. 정확히는 기생충의 알이 미생물이죠, 그런데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저들은 서민입니다. 저희야 식사 때 고기 한 점 더 먹고 빵 한 조각 더 먹으면 그만이지만 기생충에 감염된 서민들은 그 빵 한 조각, 고기 한 점을 살 돈이 없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왜 그래야 합니까?”
돌겠네, 시발. 이쪽으로 가면 쉽지 않은데.
“이번에 만들어질 수도공사가 서민들을 대상으로 더러운 물이 원인이 되어 걸리는 콜레라의 감염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만들어지며, 이는 방역상의 문제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염소는 비쌉니다. 운영비의 절반 이상이 염소 소독에 사용되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고작 기생충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요? 따지고 보면 이 부분은 원론에서 벗어난 부분이 아닙니까?”
“총리와 염소를 생산하는 관련 회사들과의 유착 관계가 의심됩니다.”
이 미개한 새끼들아……..
“이 나라의 정부는 자선단체도 아니고 구빈소도 아닙니다. 기생충 알을 죽이는 것은 결국 서민들에게 음식을 주는 것과 다를 게 결과적으로는 없지 않습니까? 왜 그래야 합니까?”
죽일까. 아니 아니, 저 놈은 의원이지……. 돌겠네, 역시 디즈레일리 그 양반이 투표권을 모든 성인 남성에게로 확대하고 죽었어야 했어. 그 인간이 1~2년만 더 살았어도.
“우리가 기근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음식을 베풀어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아일랜드 대기근을 상기해 주십시오, 그때 우리 의회는 지원안에 동의했습니다.”
후대에도 당당히 당대의 의회와 내각은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린 할 만큼 했다.’고.
식량을 실은 선박이 아일랜드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봉쇄령을 내리고, 대대적으로 식량을 모아들여서 아일랜드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기근 같은 비상시와 현재는 다릅니다. 지금 기아 상황은…….”
“이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나는 말을 끊어먹었다.
“여러분 중에 전쟁에 참전하신 분도, 참전하지 않으신 분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벌어졌던 전쟁에서 레드코트가 추태를 보인 일을 모르신다고 말할 분은 이 장소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유럽의 열강이 아닌,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말입니다!”
줄루에서 대영제국의 위신은 바닥을 쳤다. 줄루에 원한을 가진 다른 부족들과 힘을 합칠 생각은 안 하고 당당하게 쳐들어갔다가 이산들와나 전투에서 참패한 것이었다.
그게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결국 육군성 장관이 모가지가 날아갔고, 내가 직접 개입해서 주변 부족들에게 총기를 지급해 줄루족과 싸우게 하라는 지령을 내렸고, 이들이 줄루군 수천 명을 일방적으로 유린하는 등의 대전과를 올리는 데 성공해 간신히 설욕을 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대영제국의 육군은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받은 지 오래였다.
“대영제국의 군대에서 육군과 해군을 막론하고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이토록 늘어나고 체격 수준이 이토록 왜소해진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대영제국의 레드코트는 적들과 육박전을 벌였다 하면 패배하는 군대로 이름을 날리게 될 것입니다!”
“대영제국을 위협한 최대의 적수인 나폴레옹은 말했습니다. 군대는 먹어야 진격한다고 말입니다! 작고하신 웰즐리 공작께서도 나폴레옹이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셨으니 이 말이 나폴레옹에게서 나왔다 하여 부정하시는 분은 없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장차 대영제국의 군인이 되어야 할 이들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체격조건이 왜소한 채로 남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취약한 채로 남는다면 유럽에 또 다른 나폴레옹이 탄생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이는 국가 안보에 직결된 문제입니다!”
“나폴레옹이라 하니 여쭙겠습니다. 총리 각하께서는 1851년에 있었던 국제위생회의를 상설화시키고 국가 간 교류를 확대하고자 했습니다.”
1851년의 국제위생회의는 다름아닌 콜레라 범유행에 대한 대책회의였으며, 이는 몇 번 더 열리다가 20세기 초에 파리에서 상설화, 그리고 이후 세계보건기구(WHO)로 발전하게 되는 초석이었다.
“그런데 총리님의 안에 따라 상설화되는 국제위생기구는 단순히 국제적 전염병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함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권한이 큽니다. 총리님, 이것이 순수한 국제위생의 존속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습니까?”
개입주의.
특히, 국제위생회의는 프랑스가 주도해서 발족시킨 20개국의 의사들이 모여 만들어낸 회의체다.
따라서 영국이 국제위생회의의 상설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이는 곧 프랑스와 밀착하게 된다는 의미.
“프랑스의 루이 나폴레옹 내각은 본국에 극히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역으로 여쭙겠습니다. 영불관계에 이토록 순풍이 불었던 시기가 유사 이래 존재했습니까? 이 기회를 이용해서 각국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질병의 원인과 전파 과정, 예방법을 밝혀내자는 것입니다. 제너가 우두법을 만들어내었듯이, 그리고 존 스노우 박사가 오염된 물이 콜레라의 원인이라는 것을 박혀내 콜레라를 진정시켰듯 말입니다. 여러분, 정치적 이유로 언제까지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합니까?”
“저는 방역에 반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기구의 설립이 장차 또 다른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가 왜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암, 그렇겠지, 여기서 태클이 안 걸리면 이상했어.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아버리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리고, 여기에만 시선이 쏠려 줘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