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76)
폭풍전야(3)
“학장님.”
“아, 왔는가.”
용담대학교는 모든 방면에서 유명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종합대학, 문자 그대로 문과, 이과, 예체능 등 문자 그대로 이런 과목도 있다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과목을 가르친다.
당연하지만 군부는 이들과 협력하고자 했다.
군대는 보수적이면서도 가장 최신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야만 생존할 수 있는 집단이니까.
그리고 기업은 실제로 ‘돈이 되는’분야에서 가장 빠르다고 한다면, 그와는 별개로 돈은 안 되는 기초과학은 대학의 연구실들에서 가장 빠른 법이다.
“발병 기작을 제어할 수만 있으면 생물병기가 참 좋은 방법일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유전자의 연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연구시설 중 하나지만 그걸 무기로 쓸 생각은 없네.”
DNA가 이중 나선 구조라는 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그게 존재하고, 분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유기체 사이의 유전자 교환이 가능하다는 건 이미 증명되었다.
물론 아직 유전자 단백질설이 서구 학계에서는 더 유력하기는 하지만 용담대학교에서는 아무래도 DNA쪽을 더 밀어주는 모양새. 아니, 그걸 넘어서 양측 학계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가는 상황이었다.
“군부에서는 그래도 적절한 잠복기와 전파력, 더 확실한 치사율을 보장하는 병원체가 있다면 바로 투자할 겁니다. 설령 그게 민간인들의 대량학살을 전제로 한 무기라도 말입니다.”
“……….”
“학장님, 무기가 꼭 사용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학장은 그대로 보란 듯이 사무실 한 켠에 딸려 있는 화장실로 걸어가더니 문을 연 채로 수도꼭지를 열어 귀를 씻었다.
“……. 죄송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존재하고,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있는 거네, 우리가 아프리카까지 가서 각종 병원체를 채집하고 천연두와 콜레라, 흑사병 등 온갖 병원체들을 연구하는 건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고! 나는 일생을 이 학교의 건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신 젠티안 부부와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앵겔스, 조지프 프루동 등 선대 학장님들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았다고 자부하네.”
학장은 고개를 돌려 초대 이사장 부부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절대로, 내 숨이 붙어 있는 한 이 학교의 기술력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이기 위해 사용되지는 않을 걸세.”
물론 초대 이사장은 화학무기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인간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 정신이 중요한 거 아닌가. 정신이.
전쟁에 미친 세상에서, 한 국가의 정부를 상대로 계속해서 상대로 일개 대학이 대항할 수 있는가?
용담대학교는 그게 가능했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작정하고 털려 들면 눌리겠지만, 용담대학교가 당당할 수 있는 건 여러 가지였다.
우선 오랜 역사와 명성이 있었으며, 한 국가의 최고 지식인들의 집합소다. 만약 어설프게 건드린다면 문자 그대로 벌통을 건드리는 셈. 국가 최고의 지식인들이 대대적으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라도 벌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용담대학교를 마땅치 않게 보는 세력들도 많았다. 당장 정부부터가 이조 시대 유생들마냥 뭔가 욕할 거리만 생기면 시위를 나오는 대학생들을 단속하기는커녕 되려 시위를 조장하기까지 하는 교수들, 그리고 똘똘 뭉쳐 교수들을 보호하는 역대 학장들과 이사들에게 넌덜머리를 내고 있었고, 군국주의, 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한 군 소장파 세력은 신무기 연구를 거부하는 등 군비증강에 어깃장을 놓아대는 이들에 대해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자체가 면책 특권이나 초법적 권한을 지닌 것도 아니고, 연방수사국의 눈과 귀가 사방에 심어져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생존법은 털어도 먼지 한 톨 안 날릴 만큼 깨끗해지는 것이었다.
모든 장부는 최소한 서로 다른 세 명의 담당자가 검토할 뿐 아니라 그 결과물을 교내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모든 회의록은 속기사가 기록해두었다가 누구나 열람이 가능한 공개 문서로 남겨서 도서관에 비치한다.
거기에 교수 임용에도 신중하기 그지없었다. 임용 후보자의 뒤를 연방수사국의 협조까지 받아서 털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추문이 나돌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까지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모든 장부를 공개해서라도 내부 비리의 의혹조차 나올 수 없도록 문제의 여지 자체를 차단하고, 단 한 번의 실수라고 해도 정교수조차 파면당할 정도로 철저히 도덕적인 모습을 임직원들에게 요구한다. 오죽하면 1912년에는 교내에서 술냄새 풍기고 다니는 순간 학생은 퇴학, 교수는 파면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었을 정도다. 술 마시면 뭔가 사고를 쳐서 구설수에 올라갈 위험이 너무 커지니까.
“가자.”
“예, 장군님.”
“………..”
성큼성큼 걷는 장군의 뒤를 따라가던 우리는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후…….. 돌겠군. 야, 커피 한 잔 사와라.”
“평소 드시던 걸로 사오면 됩니까?”
“아니, 그 새로 나온 연유 들어간 거 있다더라, 그거 한 번 먹어볼라니까 그거 좀 사와, 만약 없다 그러면 그냥 평소 마시던 거 사오고, 니 것도 사와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안 들어가련다. 젊은 것들이랑 섞여서 놀기는 너무 늙었지, 주책이야.”
“예, 알겠습니다.”
지갑을 건네받은 나는 잠시 뒤 커피를 들고 돌아왔다.
“금방 왔네, 손님 없었냐?”
“저희가 주문하니까 막 몰려들더군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전쟁도 다 그렇지, 타이밍이 안 맞으면 다 끝장이야.”
커피를 마시던 홍 소장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후, 그래도 내 말이라면 한 번쯤 들어주지 않을까 했는데.”
감히 되묻지는 못했지만, 표정에서 다 드러났는지 홍 소장은 곧장 답했다.
“내 스승님이시다. 젊었을 때는 담당교수와 제자 사이였는데, 이제는…..”
“예? 장군님은 육사 나오신 것 아니셨습니까?”
“학사장교로 시작해서 육군대학을 나왔지.”
굳이 비유하자면 졸업한 대학과 학위를 딴 대학이 다르다고 할 수 있기는 했다.
그때, 예비군복을 입은 여대생들이 보였다.
“오늘 예비군훈련일인가?”
“시기가 대충 맞는 것 같습니다만.”
현역이 예비군훈련일 신경쓰면서 살지는 않는다. 본인이 조교가 아닌 이상.
“후.”
“장군님?”
“이 나라는 모병제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남녀 모두 총에 들려주고 최전선에 밀어넣어야만 하지,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고, 건국의 아버지들도 그렇게 판단하셨을 걸세.”
중화제국은 병신이니 그렇다 쳐도 당장 극동의 프랑스 식민지보다도 인구가 적다. 가상적국인 미국은 말할 것도 없으며 이중제국의 극동 영토에서도 막대한 규모를 징병할 수 있다.
“그게 좀 안타깝군, 나라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데, 죽는 건 늙은이들로 충분한데 저 애먼 젊은이들이 전장으로 끌려나가야 한다는 게.”
“저 학생들은 전쟁이 나면 자기들이 끌려간다는 것보다는 훈련 때문에 며칠씩 고생해야 한다는 게 천 배는 싫을 겁니다.”
“앞으로도 그것만 싫어할 일이 있으면 좋겠네.”
전운이 감돈다.
“차라리 유럽에서만 전쟁을 했으면 좋겠군요,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면 경기가 살아난다잖습니까. 우리는 총질할 일 없고 말입니다.”
“그게 우리 입장에서는 최선이긴 하겠지. 하지만 난 가급적 세계 어디에서도 전쟁 따위는 일어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네. 그 점에서는 스승님과 나는 의견은 일치하지, 다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고슴도치처럼 최신 무기들로 단단히 무장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각인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네,”
그런데 세상에서 전쟁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으니, 이게 늙은이가 세대에 뒤쳐져간다는 건가 모르겠구만.
***
이중제국 비밀정보국. 런던.
비밀정보국의 수장은 C라는 코드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아래에 현장직 담당자인 M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M과 한 요원이 독대하고 있었다.
“극동으로 가게.”
“극동이요?”
“그래, 극동.”
M은 나직이 말했다.
“극동에서 자네가 찾아야 할 사람이 있네. 정확히는 포섭해서 데려와야 할 사람이 있네.”
“누굽니까? 과학자?”
장교나 정치인이라면 암살이나 포섭이면 모를까 단순히 데려오는 건 의미가 없고. 과학자나 그 비슷한 종류일 가능성이 컸다.
“아니네.”
“예?”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찾아내야 하는 사람은 여성, 그것도 아이네.”
“……….?”
“뭐 아이라기에는 좀 컸으려나.”
“무슨 이유입니까?”
“적대 세력의 고위 인사 하나에게 추문을 불러일으켜 실각시킬 도구지.”
“사생아입니까?”
“그래.”
“하지만 사생아 정도로는 그리 큰 추문이 되지 않을 텐데요?”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지, 활용은 내가 할 테니 자네 할 일이나 하게, 언제 내가 자네에게 명령에 의문을 품으라고 가르쳤었나? 007?”
“아닙니다.”
“여권은 준비해 뒀네, 물건 챙겨서 바로 배에 타게나. 목적지는 아우렐리아 연방 공화국이네.”
007이라 불린 남자는 이마를 찌푸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명이…….
“제임스 본드?”
“그렇네. 2시간 뒤에 항구에서 출발하는 배가 있으니 그걸 타도록, 뭘 챙겨야 하는지는 알지?”
M의 말에 007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행운을 빌겠네, 007.”
요원, 이언 플레밍이 걸어나간 뒤 M은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담배를 태웠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적의 고위 인사가 맞다.
다만, 그 적이 누구냐일 뿐.
‘인민의 적.’
M이라는 코드명을 가진 비밀정보국의 중역, 킴 필비는 섬뜩한 눈빛을 번뜩였다.
‘베리야, 네놈의 파멸이 머지않았다.’
베리야를 실각시키면 공산혁명이 한 층 가까워진다.
그리고 베리야는 성추문이 많다. 그가 실마리의 끝을 따라가 찾아낸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건수가 큰 부분이었다.
베리야의 출세가도의 시작이었던 인민의 의지 사건 도중에 있었던 더러운 사건을 베리야의 정적들에게 던져준다.
서로 물고 뜯어라.
그리하여 파멸하라.
그리고, 새로운, 정말 인민을 위한 조국의 밑거름이 되어라.
잠깐 생각에 잠긴 동안,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비바람과 번개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 소리 탓에 M은 위험을 알려주는 신호를 놓쳤다.
“크읍!”
순식간에 덮쳐든 습격자들은 M을 그대로 자빠트리고 팔을 꺾어 제압했다.
제압당한 M은 고개를 간신히 들어 습격자들을 보았다.
복면을 쓴 남자들 가운데 양복을 입은 남자가 하나 있었다.
“C……….”
“아,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M.”
라브렌티 베리야는 잔혹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나눌 이야기가 참 많아. 빨갱이 반역자 자식아.”
그 직후, 베리야의 구둣발에 얼굴을 걷어차인 M은 정신을 잃었다.
그 시각,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이 박힌 여권을 들고 대서양 횡단 여객선에 오른 남자, 이언 플레밍은 한 여자의 인적정보를 읽고 있었다.
“요리기미 아키, 프랑스령 일본 교토 출생. 현재 아우렐리아 거주, 일본 태생이지만 어릴 때 일본을 떠나 일본어는 전혀 못 함,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친부모가 찾을지 몰라서 수양부모가 이름을 유지하도록 했다고 함. 수양부모는 미합중국 국적의 선교사 부부. 최종학력 고졸, 현재 직업은 교회 부속 보육원 교사.”
사진도 한 장 첨부되어 있었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담긴 사진. 인자한 흰 머리의 노인 부부와 앳된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007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M에게 신신당부를 들었지만, 그가 이 여자를 데려가면 이 화목한 가정은 깨져나갈 거다. 이런 종류의 일에 이용당한 사람이 멀쩡히 살아올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 여자를 이용해 누군지 모를 고위 인사 한 명을 실각시킨다고 해서 전쟁 위기가 사라질까? 카이저나 그에 준하는 고위 권력자라면 사생아 하나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일이다.
막말로 살인을 해도 잭 더 리퍼 수준의 연쇄살인 수준이 아닌 이상 흐지부지 빠져나가는 게 황족이고 귀족인데 아무리 그 배경이 추악하다고 한들……. 쉽게 실각하겠는가.
‘잭 더 리퍼라.’
007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중제국의 위대한 작가 젠티안 공작의 소설 셜록 홈즈에 등장하는 악인이자 셜록 홈즈의 적수, 잭 더 리퍼는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 뒤 현실화되었다.
빈민층의 여자들을 노려 살인을 저지르던 잭 더 리퍼는 몇 건의 살인을 저지른 이후 체포되었고, 그의 변호사는 정신병을 주장했음에도 죄질이 너무 심하다는 이유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는데, 연쇄살인의 방식과 사건의 전개, 경찰의 무능이 소설에 묘사된 것과 너무나도 똑같아 영국 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체포된 범인 역시 소설에 나온 것과 일치하는 특징이 너무나 많아 ‘소설이 사건을 예언했다’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셜록 홈즈는 실존하지 않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셜록 홈즈를 창조해낸 공작 본인도 지금은 웨스트민스터에 묻혀 있는 마당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