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79)
요원(1)
아우렐리아, 부산.
부두에 내린 남자는 검문하는 이들을 보았다.
‘아우렐리아의 기장은 기병 병과는 사다리꼴 안에 들어 있는 이등변삼각형 모양, 포병기장은 직사각형 모양, 정보병과는 대각선 모양으로 기울어진 아라비아 숫자 8자 모양, 정찰 병과는 원 안에 있는 작은 무한대 표식에 통신 병과는 등대 모양에 의무 병과는 수평으로 뻗은 이중나선 모양, 전투조종 병과는 원을 꿰뚫는 화살촉, 폭격 병과는 사각별.’
그리고 저 모양은 삼각형 안에 더 작은 삼각형이니 곧 헌병 병과.
‘원래 국경검문은 아우렐리아 내무부 정화청(Purifier Department) 관할이라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군인이 많이 깔렸지.’
아우렐리아 내무부 정화청은 평시에 지방정부 휘하에서 드물게 은행강도, 총기난사 등 무장 수준이라고 해 봐야 몽둥이인 경찰력으로 답이 안 나오는 문제에 투입되거나 국경검문을 시행하지만, 전략이사회의 결의안이 나오면 즉각 군 휘하로 편제되어 일종의 예비군 신분으로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으며 평시든 전시든 편제와 무장 수준도 일반적인 육군과 동일한 수준으로 배정된다. 심지어 개개인에게는 군번까지 있으니 사실상 군인이다.
이중제국, 특히 영국의 제도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아우렐리아는 영국 경찰처럼 총기를 아예 지급받지 않는다. 원 역사에서도 영국 무장경찰이 창설된 건 1952년에 무장강도 사건에서 무기가 없던 경찰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중상을 입고, 1966년에 비슷한 사건이 한 번 더 터져서 3명의 순직자가 또 발생하자 그제서야 무장경찰을 만들었고, 그 전에는 경시청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었다.
그리고 아우렐리아도 마찬가지로 경찰은 시민의 존중과 이해를 통해 시민과 지역의 자발적인 준법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시민 친화적 운영을 하는 것의 일환으로 몽둥이 이상의 장비를 휴대시키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대신 위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국경수비대이자 주요 시설 수비대, 무장한 범죄자 체포 등을 경찰 대신 수행할 수 있는 전투경찰대로 정화청을 설치했다.
물론 순수한 의도만은 아니고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신경써야 할 조직을 하나라도 더 늘려놓는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게다가 정화청 병력은 완전히 중앙집권적으로 운용되기에 경찰서 단위로 지역민들과 유착해 범죄 행위를 눈감아주던 지역 경찰이 연방수사국의 연락을 받고 완전무장하고 달려온 정화청 병력에게 경찰서째로 벌집이 되고 지역사회와 유착한 범죄조직도 협상이나 체포 시도도 없이 기관총에 쓸려나간 사례까지 있었다.
물론 일단 불문곡직 바로 대가리 박지 않으면 다 쏴죽이고 나서 증거를 털어보니 감금당해 있던 피해자들의 증언이나 무단 투기된 시체, 뇌물수수의 증거 등 아주 지역민과 지역경찰이 야합한 증거가 털어보니 수두룩하게 나온 나머지 항복 권유도 없이 보이는 족족 바로 엎드리지 않으면 쏴버린 건은 사실상 묻혔지만 악명은 남았다.
그리고 연방수사국은 이를 적절히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연방수사국은 지역 경찰을 신뢰하지 못해서 이들과 별개의 수사를 위해 만들어진 수사기관이고, 헌법수호국은 대외 공작뿐 아니라 대내의 공안사건‘도’ 다루는 정보기관이지만 국내에서 이 둘은 활동 범주를 두고 충돌하는 사이.
그러나 헌법수호국과 연방수사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연방수사국은 무장이 허용되긴 하지만 권총 수준으로 극히 제한되나, 헌법수호국은 그 임무 특성상 군 수준의 무장을 갖추기에 이런 범죄조직 소탕에서 아무래도 헌법수호국의 힘을 빌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화청이 전면에 나섰으니 엄밀히 말해 공안사건도 아닌 이런 범죄집단을 쓸어버리는 건 연방수사국 혼자서도 충분하게 되었다. 그런 관계로 그간의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들이 냄새를 맡으면 정화청이 쓸어버리는 이상적인 구도를 생각한 연방수사국은 정화청을 적극 지원했고, 지역 경찰과의 경쟁관계에 정화청을 엮어넣는 데도 성공했다.
그리하여 신설된 규정에 따르면 만약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범죄자가 있을 경우 일반 경찰이 정화대를 부르지 않고 경찰 자체적으로 진압을 시도하는 경우에는 선량한 시민의 생명이나 그에 준한 위험이 따라 정화대의 도착을 기다리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대응했다는 증거가 없다면 대응규정 위반으로 포상은커녕 징계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증명에만 성공한다면 포상을 주지만.
경찰은 식칼 이상의 무장을 했거나 한 걸로 추정될 경우, 그리고 체포해야할 범죄자가 10여 명 이상의 조직일 경우 무조건 정화청에 지원 요청을 하게 되어 있으며, 정화청에서 파견되는 연방 정화대는 생포보다는 사살을 우선시하는 걸로 악명을 더더욱 높였다.
애초에 무기를 들고 반항하거나 조직적으로 덤빌 위험이 큰 상대에게만 투입되고, 이들에게 총을 맞았단 건 사정이 어찌되었건 각목 정도가 아니라 과도 이상의 무기를 들고 있었든 범죄조직 소속이든 둘 모두이든 했다는 이야기이니 총 맞아도 할 말 없는 존재들이고, 오히려 범죄자가 사살되는 경우는 미국 경찰보다 한참 적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한 번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면 아주 피바다를 만들어 놓는다는 게 문제지만.
이유야 지역 자치경찰은 총기가 지급되지도 않아서 쏠 수가 없고, 괜히 반항했다가 순순히 자수했으면 변호사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재판에 넘겨질 걸 그 자리에서 투항 권고도 없이 벌집이 되고 싶지 않은 이상-투항 권고는 경찰들이 하게 되어 있고, 정화대는 애초에 투항 권고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걸 전제로 투입되기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즉시 보이지 않는 한 보자마자 방아쇠부터 당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생각이 있는 범죄자라면 괜히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는 편이다.
마약을 빨고 맛이 갔거나 한 범죄자들은 신경 안 쓰고 날뛰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놈들은 애초에 자업자득 아닌가.
이성을 잃고 칼부림이 벌어졌더라도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정화대의 차량들이 보인 순간 무기를 버려야 살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한다.
국경수비대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아무튼 제법 정화청 내에서도 요직에 해당하고 검문에 불응하거나 수색에 저항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면 불문곡직 사살된다.
그런 교육을 철저히 받은, 지금은 ‘제임스 본드’인 요원 007은 현재 상황에 내심 당혹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헌병이라면… 계엄령이라도 떨어졌나, 헌병이 검문검색을 하는 건 그런 상황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데.’
의외라면 의외지만 아우렐리아는 나름대로 문민통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건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당장 법률에도 군에서 소령 이상의 계급에 오른 모든 사람은 제대 후 15년이 되기 전에는 출마도 할 수 없고 군에 관련된 어떤 일-군납 등-에도 손을 댈 수 없게 되어 있다.
물론 그런 걸로 군납비리 같은 걸 모조리 틀어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문민통제의 원칙은 지킬 수 있다. 게다가 군공 세운 인간을 정치인들이 견제하는 건 거의 숨쉬듯 하는 일, 하지만 직업 특성상 고위 장성들은 정치에 안 연관될 수가 없었기에 숨쉬듯 쳐맞는 것에 질려서 일부러 자신의 약점을 만드는 식으로 나름의 생존법을 만들었다.
가장 흔한 방법은 불륜이었다. 뇌물은 받았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모가지가 날아갈 일이지만 불륜은 도덕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처벌이나 불명예제대의 대상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 도덕적 비난은 정치생명을 끝장낼 정도는 되었기에 그런 약점을 대놓고 드러낸 장성들은 정치인들도 딱히 건드리지 않았다. 약점을 다 드러내고 다니니 되려 굳이 찌르려 들지 않는 것이다. 언제든 찌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제임스 본드? 이중제국 출신이시구려.”
“예, 뭐 그렇습니다.”
“뭐하러 이 나라에 왔소?”
“흠, 이걸 믿어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위아래를 대놓고 훑는 부사관에게 007은 사진을 꺼냈다.
“혹시 이 사람을 아십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구려, 누구요?”
그러자 007은 더 진심일 수 없을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랑하던 여자의 유일한 혈육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 애절한 배드엔딩 로맨스 소설 한 편을 듣게 된 부사관은 질렸단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찾아서 어쩌시겠다는 거요? 첫사랑은 못 이뤄졌으니 첫사랑의 딸이라도 노려보시려고?”
“아이고 무슨 소리를요, 그저 그 아이가 오갈 데가 없게 되었다는 걸 우연찮게 알게 되어서 찾아서 수양딸로 삼을 생각입니다.”
“거 참, 알겠소, 그러면 이대로라면 천안으로 가시겠구려?”
“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쪽으로는 당분간 안 다니는 게 좋을 거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크흠,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요즘 천안 방면의 경비가 훨씬 늘었네, 아무튼 천안 인근에는 당분간 외지인은 얼씬도 않는 게 좋아. 특히 그냥 외지인도 아니고 외국인이면. 차라리 전보랑 차를 보내서 불러내는 게 낫지. 이건 자네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이네, 괜히 어디 두들겨맞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고 재수 없으면…..”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든 부사관은 빵 소리를 냈다.
“이 사진을 꺼내볼 틈도 없이 벌집이 된다고.”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뭐 서류에는 크게 문제 없는 것 같고, 가 봐라.”
그때쯤 짐 수색도 끝났다.
‘총, 가서 빨리 총을 받아와야 할 텐데.’
당연하지만 입국할 때 총을 들고 오게 해 줄 만큼 국경검색이 만만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각국 대사관은 1급 경계 대상에, 그는 몰랐지만 대사관에는 베리야의 심복들이 독일에 매수되어 이중제국과 아우렐리아를 이간질하려든 반역자 007을 볼 것 없이 제거하라는 명령을 하달해둔 뒤였기에 이중제국 대사관에 접촉하는 건 저승행 급행열차 티켓이 될 터였다.
물론 본인도 애초에 접촉할 생각이 없었다.
베리야는 원 역사에서 NKVD를 이끌었던 본인의 수완을 백분 발휘해 전 세계에 첩보망을 깔았다. 그럴 가치도 없는 깡촌이 아닌 이상 베리야의 눈과 귀가 없는 곳이 없었고, 당연하지만 열강의 말석이자 극동의 패자에 스파이 조직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상부의 명령에 따르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007은 바로 이들과 접촉하기로 결정했다.
***
서울, 아우렐리아.
“자네에 대한 제거 명령이 떨어졌네, 007.”
“………”
“M은 배신자였어, 반역자였지, 그는 공산주의에 심취해 있었네. 자네가 찾으려고 했던 그 여자는……”
“C의 사생아군.”
“맞아. 그것도 아주 더러운 이야기지.”
“……..”
“울리야노프는 살아서 도망쳤다가 이 극동에서 애인을 하나 만들었네, 공교롭게도 남편이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한 여자였지, 그 여자의 집에서 버티다가 C에게 들켰고, C는 울리야노프가 완강하게 저항하자 즉결처형했다. 그것까지는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지.”
“그 이상의 무슨 짓을 했군.”
“C는 사냥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낸 뒤에야 사냥에 나서지, 애인의 정보는 물론이고, C는 울리야노프를 살려서 잡을 수도 있었네, 하지만 제 욕망을 채우고자 그의 애인에게 울리야노프가 공산주의자라는 걸 알려주고, 그의 앞에서 그 여자를 취한 뒤에야 살해했네, 여자는 미쳐버렸고. 임신했지.”
C라면 할 법한 짓이었다. 오죽하면 그의 지금 아내조차도 사실 먼저 덮친 뒤에 협박당해 결혼했다거나 부하들을 사적으로 동원해 일반인 소녀들을 납치해서 손을 댔다는 소문이 파다하겠는가. 다만 단 한 건의 물증도 남겨놓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젊은 시절이라 그런지 그 당시의 일에 대한 물증은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네, 그 여자는 죽어버렸지만 C의 딸을 의회 증언대에 세우면 C의 실각은 손쉬운 일이야. 그는 적이 많으니까.”
단 하나의 사소한 추문으로도 몰락할 수 있다. 다만 C의 추문은 단 하나의 증거도 찾을 수 없었을 뿐. C는 이를 모두 자신의 정적들이 낸 소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증이 나온다면 C는 사회적으로 매장이다.
“그렇기에 C는 이 일을 최대한 묻고자 하고 있어. 내게 내려진 명령은 말일세, 007. 그녀를 죽여버리라는 거야.”
그녀야말로 키니까.
“우리도 그녀를 철저히 감시했어, C를 실각시킬 수 있는 그 물증이 있는 장소는 그녀 혼자밖에 모르네,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고. 물론 그녀는 아버지의 정표 정도로나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다시 말하면 그녀를 죽여버리면 이 추문은 영원히 묻힌다는 거지.”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알렉,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무고한 소녀를 죽이잔 건가!”
“고작 그런 이유가 아니네, C가, 라브렌티 베리야 경이 지금 맡고 있는 중책이 얼마나 핵심적인 줄 아나? 반역자 킴 필비는 베리야 경을 실각시키고 정보국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반역을 하려고 했네! 제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공산혁명을 시도했다고! 베리야 경이 있어야만 우리는 그 위협을 막을 수 있네.”
“……..006.”
“빌어먹을, 이안, 우린 친구잖나, 적어도 난 자네를 친구라 믿고 싶네, 내가 주선하겠네, 그녀의 시체를 들고 가서 C에게 바치면 자네를 굳이 찾아 죽이지는 않을 걸세.”
“자네는 C라는 개인에 충성하나, 아니면 황제 폐하께 충성하나.”
“제발.”
PPK 권총이 날카롭게 빛났다.
“내가 자네를 쏘지 않게 해 주게. 이는 국가를 위한 일이기도 해.”
“이건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니네, 알렉, 내 양심을 위해서야.”
잠시 뒤, 총성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