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81)
요원(3)
‘제기랄, 왜 아우렐리아 군인이 여기 있어?’
철모도 안 쓰고 권총 하나만 든 걸 봐서는 그냥 재수없게 휘말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단 한 명의 군인조차도 007에게 있어 상당한 문제가 되고 있었다.
총 맞으면 죽는 건 똑같으니까.
“제기랄……”
탄창을 갈아끼운 007은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쉴 수 없었다.
계단을 네 칸씩 뛰어오른 그는 간신히 예상 위치에 도착했다.
“아키! 아키 양 있습니까!”
아우렐리아어로 악을 쓴 007은 간신히 사진과 들어맞는 여성을 찾아냈다.
“당신, 요리기미 아키? 맞지?”
사진의 주인임을 확신한 007은 빠르게 말했다.
“총격, 당신 죽이려는 사람, 피신, 보호, 당신의 친부모.”
어순도 안 맞고 단어 몇 개만 더듬더듬 내뱉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일단 본인 딴에는 최대한 빠른 설명을 마친 007은 그녀를 끌고 급히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때 고함이 들렸다.
“거기 멈춰!”
아우렐리아의 군인이 눈앞에서 권총을 겨누는 걸 본 007은 총을 뽑으려 했지만, 상대가 이미 총을 들고 있는 데다 그는 안심시키기 위해 총을 품에 집어넣은 상태, 게다가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학생을 풀어주고 손 들어!”
“저격, 나 아님!”
“닥치고 엎드리라고!”
“암살자! 아직 더 있다! 이 근처! 노린다! 이 여자! 보호해야!”
그 순간, 뭔가가 굴러왔다.
“수류……”
나는 그대로 몸을 날려서 문이 열려 있는 다른 강의실 안으로 뛰어들며 문을 밀어 닫았다. 사람들은 다 대피했는지 아무도 없었고, 철제 문이 폭압을 막아주리라 기대해야 했다.
잠시 뒤, 폭발과 함께 파편이 어지럽게 튀었지만 콘크리트 벽과 강철 문을 뚫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나가는 건 바보짓이지.’
나라면 수류탄을 던진 뒤에……..
“본드.”
“……….?”
본드? 뭔 본드?
“내 심장이나 목을 찔렀어야지, 옆구리라니.”
“제기랄, 006, 꼭 그렇게 해야겠나.”
영어로 대화하는 목소리, 내가 아무리 그래도 영국식 영어를 못 알아들을 정도까지 되지는 않았다. 전생에 영국 총리였던 인간이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개쪽이다.
“이건 임무네, 007. 그리고 자네가 하는 건, 그래, 취미 생활이지?”
“그래서, 이 소녀가 무슨 죄를 지어서 죽어야 하지?”
“태어난 것.”
“………..”
“존재만으로도 국가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비밀을 쥐고 태어난 죄, 국가의 근간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비밀을 쥐고 있는 죄. 때로는 말이네, 영원히 묻혀야 하는 비밀도 있고,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도 있네.”
“내 생각에는 말이지, 무고한 이의 피를 흘리려 하는 사람이야말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이네.”
“……… 본드, 내가 널 죽이게 하지 마. 마지막 기회네, 아직 되돌릴 수 있어, 자네 손으로 그 여자를 쏴, 그리고 나와 함께 귀국하는 거야, C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에게는 관대하네, 그는 자네가 다시 충성을 바친다면 기뻐하겠지.”
“C의 권력을 지켜주는 게 조국을 위한 것이라고?”
“C가 없으면 이 거대한 조직을 누가 통솔하지? 응? 말해봐, C가 몰락하게 되면 비밀정보국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어, 전부 C, 그리고 그의 운명공동체인 측근들의 역량이 세계에서 가장 유능하고 거대한 첩보조직을 유지시키고 있다고. 그가 무너지면 이중제국은 다가오는 전쟁에서 패망하고 갈가리 찢길 걸세, 우리가 살인면허를 받은 이유가 이거야, 본드, 조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007, 제발, 내가 우리 조직의 최고가 되게 하지 말게.”
“난 마지막까지 발버둥쳐 보겠네, 그 끝에 구원이 있을지는 덤벼 봐야 알겠지.”
“……….. 구원이라,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을 했네, 마지막 순간에 신을 찾는 이들은 참 우습다고, 주여, 저를 구해주소서, 이렇게 외친다고 해서 신이 구원해주셨다면 자네든, 나든, 이 소녀든, 진작에 구원받지 않았겠나.”
“솔직히, 반박할 수가 없군.”
두 사람은 말을 늘이고 있었다.
상대를 쏘기 싫다는 것처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내 행동을 결정했다.
‘둘 다 제압한다.’
사살하든, 체포하든 상관없다, 지금쯤 포위망은 완성되었겠지.
‘006이라는 놈은 오른쪽, 문은 바깥쪽으로 열리고 왼쪽을 막아주니 007이라는 놈이 총질을 해도 방패가 되줄 거다.’
서로에게 정신이 팔린 틈이 기회다. 단 한 방에 제압하고 일대 일이다. 물론 인질이 잡혀 있긴 하지만……
천천히 문 손잡이를 잡은 차였다.
“큭!”
순간, 총성이 울렸다.
“이게 무슨!”
나는 상황이 급변했다는 걸 눈치채는 것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고 006을 향해 총을 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006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고, 총알은 허공만을 꿰뚫었다.
그 대신 그 자리에는……..
‘각시탈?’
거의 키가 190은 될 법한 거한이 쇠퉁소를 들고 난입해 있었다.
어지간히도 그 큰 덩치로 은밀하게 접근했는지 상대가 총을 쏘기도 전에 손목을 쳐서 총을 날려버리고, 상대의 몸을 이용해 다른 한 명이 총질을 하지 못하게 막고, 그대로 상대를 매치면서 007의 사각지대로 들어간다.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나는 그대로 007을 향해 총을 쏘려 했지만 이미 007은 인질을 끌고 도망치고 있었다. 인질에 위해를 가하지 않고 명중시킬 방법이 없었다.
“제임스! 어딜 가… 컥!”
쇠퉁소가 상대의 다리 사이를 치는 걸 본 순간 온몸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누구냐!”
나는 총을 겨눴다. 지금이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쏴버릴 수 있다.
“날 돕게, 대위.”
“……..?”
“헌법수호국에서 나왔네.”
“관등성명을 대십시오.”
“헌법수호국 국장.”
콱!
“전략이사회 위원.”
퍽!
“김창암.”
“…………”
예?
“군번은 따로 없네.”
그러시겠죠.
“그나저나, 저놈은 안 쫓아가나?”
“이 정도로 시간이 끌렸으면 포위망이 형성되었겠죠. 그리고 저는 당신 말만 믿을 정도로 순진하진 않습니다. 일단 그 하회탈이나 벗어주시죠.”
그러자 남자는 확고히 제압된 걸 확인한 뒤 각시탈을 벗었다.
그 모습은 분명 역사 교과서에서 본 김구 선생 그대로였다.
“……….”
“뭐가 더 필요한가?”
“아닙니다. 제 직속상관은 아니시지만 상황이 급박함을 감안해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좋네, 자네 말처럼 이 근방은 이미 내 부하들이 쫙 깔렸거든. 다만 우려되는 건 저놈이 인질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인데.”
“대화를 들어 보니 탈출한 놈은 인질을 지키려고 하는 쪽이었습니다. 당장은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죽이려는 쪽은 지금 깔아뭉개고 계십니다만.”
“그런가? 아, 그리고 내 지시를 받았다는 건 이야기해도 되지만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비밀이네, 저놈도 자네가 잡은 거야.”
“예?”
“내가 국장이 돼서 누구 패고 다닌다고 하면 시끄러워지니까. 그게 아무리 외국의 공작원이라고 해도 말이지.”
그러면 부하를 보내셨어야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간신히 참았다.
“아무튼 일단 이놈은 경찰에 넘겨야겠군.”
“예?”
“그게 순서야,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서 공안 혐의가 있으면 우리에게 넘기도록 해야지, 우리는 공무원으로써 테러 행위에 대해 현장의 판단에 따라 대응할 수 있을 뿐이지, 법이 그렇네. 보건의가 소매치기를 잡으면 경찰에 넘겨야지 보건소로 끌고 가서 심문하던가?”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만.”
“똑같네, 유죄가 뻔하다고 해서 재판 절차도 안 갖추고 형을 집행하지는 않잖나.”
“……..”
“물론 자네 공을 무시하지는 않을 걸세, 스파이를 잡았으니 진급 정도는 기대해도 좋지 않겠나? 아, 자네 이름이 뭔가?”
“김태현 대위입니다.”
“혹시 병기국장인 홍 소장의 전속부관인가?”
“예, 그렇습니다. 사실 여기도 소장님 심부름을 왔다가…….”
“알 만하군, 자네 혹시 헌법수호국으로 옮길 생각은 없나?”
“어…….”
“시간 줄 테니 천천히 생각해 보게, 강요는 더더욱 아니고, 그저 헌법수호국은 연공서열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니 자기 능력만 있으면 순식간에 진급할 수 있거든.”
***
긴급회의장, 아우렐리아 전략이사회
“이번 사건은 선을 넘었습니다!”
이범석이 포효했다.
“당장 이중제국 대사를 초치해야 합니다! 감히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난동을 부리고 여학생을 납치하다뇨!”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고 모든 항구에 헌병을 배치했습니다.”
모든 선박의 출항을 막을지도 잠시 논의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수였다. 수출에도, 수입에도 의존하는 아우렐리아의 경제는 단 하루라도 전국의 모든 항구가 차단되게 된다면 공황에 못지 않은 충격을 받으리라.
그게 아우렐리아가 전쟁을 달가워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였다. 전쟁이 나면 높은 확률로 뱃길이 차단될 테니까.
아우렐리아의 경제수준은 전면전 1년에 20~30년은 후퇴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승리해서 막대한 배상금을 뜯어낸다면 모를까 지거나 현상유지라도 된다면? 그때는 이사회는 엎어지고 분노한 국민들에 의해 이사들의 목이 서울광장에 매달릴 것이다.
전쟁은 가급적 하면 안 되지만 정 해야만 한다면 단기간에, 반드시 압도적으로 이겨야 했다.
“이보게, 철기, 좀 진정하게나.”
“진정은 무슨! 우남 형님! 화도 안 납니까? 저놈들이 도대체 우릴 뭘로 보길래……”
“야! 철기! 일단 입 다물라고! 욕은 나중에 실컷 하고! 백범이 말을 못 하고 있잖나!”
외무이사 이승만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이범석은 그대로 찌그러졌다.
“고맙소, 우남.”
간신히 발언권을 얻은 김창암은 한숨을 내쉬고 업무 모드로 들어갔다.
“이중제국은 체포된 간첩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일개 범죄자에 불과하니 본국에서 알아서 처벌하라는군요, 명백히 꼬리 자르기입니다. 공식적으로는 말입니다.”
“비공식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우선 이번에 납치된 여성의 진짜 신분부터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인쇄물이 곧장 배부되었다.
“요리기미 아키, 프랑스령 일본 에도 태생, 모친은 강신희.”
“부친을 빼놓으셨군요.”
“라브렌티 베리야 경, 여러분이 아시는 그 이중제국의 인간 백정입니다.”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강신희라는 여성은 김형석이라는 교사와 결혼했었는데 신혼 한 달만에 김형석이 살해당했습니다. 원인은 지방에서 김형석이 공산주의자들을 욕하고 다니면서 지역사회에서 이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여론을 주도했는데 이에 원한을 품은 공산주의자들이 야밤에 집에 불을 질러 부부를 같이 태워죽이려 했는데, 김형석은 죽었지만 강신희는 생존했습니다.”
“뭐 흔한 일이지, 마적들이 다 그렇지 않나.”
이승만이 콧방귀를 팽 뀌었다.
“그녀는 그 이후로도 공산주의자들에게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프랑스령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거기에서 새 남편을 맞았답니다. 그 남자는 가명을 쓰고 접근해 결혼했는데.. 그 정체가 바로 울리야노프입니다. 라브렌티 베리야가 오래전에 잡아 죽인 바로 그 사람이 맞습니다.”
베리야의 평판을 생각해보면 그 다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법 했다.
“아무튼 그 충격으로 미쳐버린 그녀는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가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베리야가 당시에는 20대에 불과한 햇병아리였던지라 큰 실수를 저질렀었습니다.”
“증거를 남겼군요.”
“예, 그리고 그녀의 외동딸인 이 요리기미 아키가 그 위치를 압니다. 그렇기에 베리야는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해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쯤 죽었겠군요?”
“아닙니다. 전후 사정을 파악한 요원 하나가 이 문제에서 반기를 들었다고 추측됩니다. 이 반기를 드는 과정에서 저희 헌법수호국에 탐지된 셈이고 말입니다.”
“그럼 뭡니까?”
“007이라는 코드명을 지닌 해당 요원은 현재 아키와 함께 어딘가에 은신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이놈들이 여러 차명을 통해 보유한 안전가옥이겠지요.”
“이보게, 백범.”
교육이사 안창호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설마 지금…..”
“생활반응이 없는 소위 말하는 빈집은 이미 내무부에서 다 조사해둔 걸로 압니다. 원래는 조세포탈을 족치거나 범죄 예방을 위해서 국세청과 연방수사국에서 모은 자료지만 이는 공안사건, 따라서 헌법수호청의 사무입니다.”
“거길 다 뒤지겠다고?”
“헌병대를 빌려주시면 일이 간단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보게 철기!”
“전 육군이사입니다.”
이범석은 이죽거렸다.
“헌병대는 육군장관의 소관이고, 이들을 함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전략이사회에서의 공식 요청에 의해 임시로 몇몇 부대의 지휘권을 헌법수호국에 빌려줄 뿐입니다.”
“이건 그런 식으로 다짜고짜 밀어붙여서….”
“제가 쿠데타라도 일으키겠습니까?”
“이중제국을 과하게 자극하는 일이네!”
“이중제국이 아니라 베리야 개인입니다. 베리야가 총리라도 됩니까? 아니면 황제입니까? 뭘 두려워하는 겁니까? 뇌물 받은 증거라도 그쪽이 쥐고 있답니까?”
“들쑤셔서 찾아내면, 어쩔 건가?”
“당연히 대가를 청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멀쩡한 교수 하나를 쏘아죽인 죄, 살인, 거기에 베리야의 치부 값은 별도죠, 이걸로 얼마나 많은 걸 뜯어낼 수 있겠습니까?”
“미리 경고하는데 그놈의 만주를 이번 거래로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접으시오, 이중제국의 돼지 새끼들은 단 한 번도 쳐먹은 걸 뱉어낸 적이 없으니까.”
러시아의 폭정은 잔혹했다. 시베리아 개척에 중국인들이 동원된 것도 한 세기, 오래전 표트르 대제가 수많은 눈물과 피와 시체 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것처럼 복복선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물론이고 남만주철도, 중앙아시아 횡단철도가 부설되었다.
심지어 지브롤터 댐에 이어 인류의 2대 문명의 승리라 불리는-캐나다 식민지와 시베리아를 잇는 베링해협 댐은 아직 논의만 될 뿐 착공하지 않았으니 제외하고-히말라야 횡단철도, 즉 상트페테르부르크부터 인도 식민지까지도 철도로 연결하는 대공사에도 중국인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시베리아나 저 북유럽부터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중앙아시아 지역에까지 강제 이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비워진 황하 이북 지대에는 유럽인들이 밀려왔다, 조금이라도 불온한 기색이 보인다면 불문곡직 일가를 끌어다가 중국에 던져버리다 보니 러시아인, 폴란드인, 핀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심지어는 아일랜드인이나 스코틀랜드인까지 유럽에서 중앙아시아까지 민족의 전시장처럼 되어버린 게 만주고 황하 이북이었다.
당연하지만 만주를 어떻게 신의 도움으로 손에 넣는다고 해도 이 수많은 타민족들을 단숨에 아래로 편입하는 건 간단히 말해 불가능했다.
막말로 말도 안 통하는 이들이고, 하다못해 19세기에 밀려들어온 이주민들은 마찰을 좀 겪으면서도 전부 흡수되어 사라졌지만 만주에 있는 이들은 못해도 아우렐리아 인구의 1할은 넘는다. 그 인구를 흡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