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82)
요원(4)
헌법수호국은 대규모 전투부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블랙 옵스용 부대는 몇몇 가지고 있지만 그 수효는 극히 적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정보국이 실병력을 보유하면 너무 위험해서다.
김구로 개명신청을 할까 말까 최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김창남 국장이 현장을 직접 뛰기도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괜히 밖에 이야기했다가 새나갈까 불안한데 밖에 이야기를 안 하면 병력을 빌릴 수가 없으니 그냥 답답해서 자기가 뛰는 것도 있었다.
게다가 기껏 있는 몇몇 부대는 아예 매우 움직이기 귀찮게 해두었거나, 아예 경기도 내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되어 있는 등 정보국의 팔다리 묶어놓는 건 군부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았다.
그러나 다들 떨떠름해할지언정 나름의 대의명분이 있고, 헌법수호국을 견제해야 할 당사자인 육군이사 이범석이 쌍수를 들고 동의하며 백지 위임장을 던져준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절 굳이 빼내셨습니까?”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간신히 부대 복귀를 하고 포상 기다리라고 해서 얌전히 대기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차출 명령서가 내려오는 바람에 이 양반 옆으로 끌려와버렸다.
“기왕 다닐 거면 둘이서 다니는 게 좋지 않은가?”
“어여쁜 아가씨라면 모를까 키가 190이 넘으시고 쇠퉁소 한 방에 사람을 환관으로 만들어버리시는 분과는 살벌해서 같이 못 걷겠습니다만.”
물론 무례가 맞긴 한데, 같이 다녀 보니 김구 선….. 망할, 이 양반 성격을 알겠다. 원 역사에서도 이랬는지 성장과정이 달라져서 이렇게 된 건지는 나도 모른다. 젠장.
“푸하하하하! 그래, 그래서 참한 아가씨라도 찾고 있는가?”
“그보다는 못다한 일이 더 신경쓰여서 말입니다.”
“좀 쉬게, 사람이 평생 서류만 어떻게 보고 사나, 이렇게 바람이라도 쐬면서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해야지.”
“여유 있게 휴식이요?”
지금 공작원 잡겠다고 현장 뛰고 계신 분이 할 소리입니까?
“조국에 반역한 자들이나 감히 불측한 마음을 품고 이 나라에 침입해들어온 이들을 찾아내어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도 괜찮은 취미생활이네, 유럽의 귀족들은 사냥을 한다지만 이건 사냥에 더하여 애국까지 할 수 있는 매우 적절한 여가활동이지, 자네도 이 재미를 안다면…..”
그냥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죄송합니다. 김구 선생님, 제가 당신 성장과정을 어떻게 정확히 뒤틀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백범일지로 읽은 선생님은 이런 분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제가 선생님을 이 땅의 후버로 만든 거 같네요. 백배 사죄드립니다.
“당장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반역의 씨앗 중 하나인 저 중화제국의 마교는 19세기에 천마의 죽음으로 멸문했지만 그 잔당들이 계속해서 출몰하고 있네, 지난 1909년에는 최후의 마뇌 이등박문이 해군 육전대에게 잔당이 추포당할 위기에 처하자 상황을 반전해 볼 요량으로 현장 최고 지휘관이었던 안 형님.. 아니, 안중근 제독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잡혀서 처형당하지 않았나.”
“친분이 있으십니까?”
내 기억으로는 위인전에서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께서 친분이 생긴 계기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소년 접주였던 김구 선생과 동학을 진압하기 위해 의군을 꾸렸던 안중근 의사의 아버님께서 서로를 인정하고 친분을 쌓은 게 계기였던 걸로 아는데. 근데 여긴 동학이 없지 않나?
“뭐 적당히 호형호제하는 사이일세, 그때는 형님도 일개 소령이셨지, 내가 헌법수호국에 투신한 가장 큰 계기이기도 했고.”
“…………”
그냥 뭐 끼워맞춰 보려는 생각은 포기했다.
“이번에 전함전대 사령관으로 영전하셨다지, 이야기가 샜는데 본론으로 돌아가…….”
“국장님! 비상입니다!”
“뭔가?”
“연방수사국 감옥에 가둬서 치료하라고 지시해뒀던 놈이 사라졌습니다!”
“뭐?”
나는 순간 김창암 국장이 요원을 메다꽃거나 피떡으로 만들어버리지나 않을지 바짝 긴장해야 했으나, 다행히 그럴 정도로 이성을 잃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 내가 아는 위인 대입해봐야 머리만 깨지지, 그냥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해버리자.’
그러자 지끈거리는 두통이 싹 가시는 것이 아스피린 이상의 명약이었다. 뭐 지금 아스피린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만.
옆에서 절도 관광 외의 목적으로 가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연히 득도하여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지경이든 말든 김창암 국장은 기가 막히단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수사국은 경비를 어떻게 한 건가!”
“그…. 수사국 당직 직원 세 명이 살해당했고 권총이 탈취당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무슨 말도 안 되는……. 그게 인간이야? 불X을 두 쪽 다 뭉개놨는데 그걸 정신을 차리고 도망갔다고? 멀쩡한 경찰을 셋이나 제거하고?”
그냥 경찰도 아니고 연방경찰이면 권총에 실탄을 넣어서 상시 휴대하는 건 상식이다. 공포탄 따위는 장전하지도 않는다. 지역경찰은 몽둥이 이상의 무기가 애초에 없으니 납득이라도 간다만 총을 들고 맨손의 상대에게 당했다니, 이건 무슨 병신도 아니고.
“차라리 잘 됐군.”
“예?”
“도망간 놈은 잡으면 된다. 이번 기회에 정보국의 권한을 좀 늘려야겠어, 우리가 처음부터 잡아 가뒀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 형식적으로나마 심문 한 번 하고 넘겨야 한다면서 유치장에 집어넣었으니 이런 사단이 난 거 아닌가?”
말이야 맞는 말이다만……
“그런데 지금 권한 가지고 다툴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은 전쟁이 눈앞에 닥친 상황인데 이럴 때는 파벌싸움이 문제가 아니라……”
“하하하… 파벌? 내가 그런 걸 신경쓰는 소인배로 보였다니, 이거 수양을 더 해야겠군.”
원 역사의 위인에 대한 존경심의 남은 바닥의 바닥까지 긁어모으고서야 ‘그럼 지금 전쟁 코앞인데도 파벌놀음에 바쁜 게 딱 일제 꼬라지다’라고 말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효율화네, 파벌이 아니야, 우리는 헌법수호국이네, 물론 헌법의 아버지..의 우려는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네, 과도한 권력을 가진 정보기관은 반드시 타락해, 그런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 이상 군부와 정보기관을 갈가리 찢어서 서로 견제하고 쿠데타 등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백 번 옳은 일이네, 하지만 너무 과해.”
“……….”
“헌법수호국이 아니라도 좋네, 헌법수호국이 해체되고 그 권한이 연방수사국에 넘어가도 상관없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권한은 굉장히 기형적이야,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권한은 있는데 정작 반드시 필요한 권한이 없네, 그게 국정의 농단을 방지한다는 목적만 따지면 굉장히 효율적이지만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 앞으로의 전쟁은 그 전까지의 어린애 장난이 아니라 저 옛날 수양제가 고구려를 쳐들어갔던 때와 같은 ‘총력전’으로 진행될 텐데, 그러기에는 우리의 역량이 너무나도 부족하네.”
그 헌법의 아버지로써 나는 반박을 시도해 보았다. 솔직히 역사책에서는 김삿갓이 다 한 걸로 나와 있는데 그거 초안은 다 내가 짜서 보내줬고 그놈은 최소한의 손질만 했다고.
“하지만 일부러 역량을 쪼개놓은 것은 외부의 적보다 두려운 것이 내부의 독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면 민주공화정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서이며, 더 나아가 국민들이 정부를 두려워하거나 침을 뱉을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법부가 재판을 거래하면서 통째로 범죄집단으로 타락하지 못하도록, 의회가 민의를 무시하고 여야가 밀실에서 야합하여 만사를 제 뜻대로 하지 못하도록, 행정부가 헌법수호국과 군부를 팔다리처럼 휘두르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재갈을 물리지 못하도록, 그리고 군대가 정부를 뒤엎지도, 반대로 군인들을 천시하여 국방력을 약화하고 군인들의 대우가 개차반이 되어 고려 시대의 무신정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고육지책입니다.”
“물론 알고 있네, 내 어찌 모르겠는가, 이 교묘하게 설계된 시스템이야말로 독재를 꿈꾸는 게 가능하지도 못하게 하고 공직에 몸담고 있는 이로 하여금 국민의 위에서 군림하는 게 아니라 봉사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는다는 걸. 하지만 한계에 봉착했네, 이 국가의 시스템을 조금 현실적으로 조정하긴 해야 해.”
순간, 내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국장은 내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지금 쿠데타를 논하시는 겁니까?”
“아니, 민의를 물어야지, 당연한 거 아닌가? 쿠데타? 자네도 말했지만 현 체제 하에서 그게 가능이나 할 것 같은가? 설령 어거지에 어거지를 섞어서 그걸 시도한다고 하자, 그 누가 호응해주겠는가?”
“그렇다면 뭡니까?”
“민의.”
국장은 말을 이었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이사회의 만장일치, 의회에서의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득표, 그리고 국민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모두 얻어내야만 하네. 그러고도 금인조항은 결코 개정할 수 없고,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그대로 끝이지만 이사회 투표와 의회 투표는 대법원에서 심리할 수 있게 되어 있지.”
그 외의 방식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베리야 덕분에 이 일은 훨씬 손쉬워졌네, 자기가 젊은 날 가랑이 사이에 달린 것 잘못 놀려 만들어진 추문 때문에. 여자를 원했으면 같은 에도니 멀리 있지도 않았을 요시와라나 가 볼 것이지.”
“그렇다면 거래를 포기하실 겁니까?”
“거래? 못 할 건 뭐가 있겠나?”
“베리야의 추문을 폭로하지 않으면서 민의를 선동할 수단이 있단 말입니까?”
“왜 없나? 그 미술교수가 있잖나.”
“예?”
“수업 중 교수가 피살당하고 여학생이 납치되었는데 공범을 붙들었지만 연방수사국의 무능으로 놓쳤다. 이는 연방수사국의 무능도 문제지만 과히 구시대적으로 각 조직들의 팔다리를 얽매어 알면서도 대응하지 못하는 단초를 제공한 법률상의 문제다. 여기에서 여학생의 문제를 잘라내는 게 불가능할 것 같나? 사람이 죽었다. 그것만으로도 명분은 충분해.”
베리야의 반대파와 거래한다면 모든 걸 숨김없이 폭로한다.
베리야와 거래한다고 해도 아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쯤은 무리가 아니다.
“여론은 충분히 조성할 수 있네, 의회는 결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지.”
“그게 민주주의의 죽음이 아니라고는 누가 보장합니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파멸하는 공화정, 나폴레옹도, 카이사르도 그런 방식으로 공화정을 파괴했습니다. 국장님, 당신이, 당신이 아니라도 다른 거물급 인사가 새로운 시대의 카이사르가 되지 않으리라고는 누가 보장합니까?”
“국민이.”
“…………”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민은 더욱 적지, 하지만 이 전쟁이야말로 모든 걸 바꿔놓을 걸세, 전쟁이 이 나라를 전화에 휘말리게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단 한 가지는 확실하네, 전쟁은 막대한 수요를 촉진할 것이고, 그 수요는 수요의 과잉을 필연적으로 초래하네, 노동력의 공급이 부족하니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그들에 대한 대우를 더 후하게 해 주지 않으면 어떤 노동력도 공급받을 수 없을 거고. 그렇게 국민에게 내어주게 될 권리는, 결코 회수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네. 한 번 오른 임금을 다시 내린다고 하면 직원들이 어떻게 반응하겠나? 한 번 나눠준 권리를 회수하겠다고 하면 이 국민들이 어떻게 반응하겠나? 우리가 독재자가 된다고 하면 국민들이 그저 순응하리라 생각하나?”
“전쟁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총력전을 위한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없고, 전쟁이 일어난다면 전쟁 수행을 위해 내어준 국민의 권리가 이 체제가 필요없어지는 순간 그들의 의지에 의해 되돌아가도록 강제할 걸세. 이 정도면 답이 되었나?”
“………”
“자네는 애국자네, 대위, 그러니 당연히 제기해야 할 의문이야, 도리어 제기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반역자지, 모든 독재의 씨앗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개화하네.”
“일단 믿겠습니다. 이게 독재의 초석이 되지 않을 거라고요.”
“물론 아직 모두를 설득하지는 못했네, 육군이사를 비롯해 몇몇 이사들은 찬성했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거든, 전부 설득해야만 하네, 그 와중에 그릇된 방법을 써서는 안 되겠지.”
단지 시간이 부족할 것이 걱정일 뿐이었다.
“그래도 이곳은 유럽과 멀리 떨어진 변방이니, 전화가 당장 닥쳐올 것을 우려하지는 않는다. 번지더라도 몇 년쯤은 걸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