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91)
태평양 전쟁(2)
시간을 되돌려 며칠 전, 12월 24일 늦은 저녁. 서울 시내.
곳곳에서 캐럴송이 들려오고 백화점들은 입구에 큼지막한 트리를 세워놓는 크리스마스 이브.
거의 몇십 쌍은 될 커플들을 스쳐지나간 한 쌍의 남정네들이 있었다.
“국장님, 오늘이 뭔 날인지는 아십니까?”
“통계상 전 세계의 커플 90% 이상이 한 침대에서 뒹구는 날이지.”
“그런데 제가 그런 날에 국장님이나 쫓아다녀야 합니까?”
“뭐 자네 기다려주는 여자가 있으면 그렇겠지, 그런데 없잖나?”
아 선생님 말을 해도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평소라면 애인 없어서 혼자 다니는 걸 공무 때문에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게도 악덕 상사에게 붙들렸다고 생각해줄 수 있지 않나.”
“…………..”
“그나저나 이제 일주일밖에 안 남았군.”
1월 2일 0000을 기해 원대 복귀, 연초에는 어차피 쉬는 날이니 일주일 남은 게 맞다.
“아쉬운 김에 파티라도 하고 가겠나?”
“예?”
“뭐 파티라지만 간소한 걸세, 그냥 연말에 단체로 옆구리 시려운 놈들끼리 붙어서 놀자는 거니까.”
“국장님도 오십니까?”
“아니? 난 결혼했는데 왜? 내 가족이랑 있어야지.”
“………….”
내 표정을 본 국장님은 폭소했다.
“돈은 내가 낼 거고 중간에 가긴 하겠지만 참여는 할 걸세. 어차피 회식 달릴 때 상관 있으면 불편하잖나. 연말파티만이 아니라 자네 송별회기도 하니까.”
“바니타스 바니타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자네 기독교도였냐?”
“그냥 어쩌다 보니 주워들은 겁니다. 그걸 줄이면 바니바니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뭔 토끼인가.”
갑자기 발걸음이 멈췄다.
“여깁니까?”
“의외지?”
“의외고 나발이고 번화가의 지하철역 바로 옆인데요?”
“의외성이라는 거지.”
관계자외 출입금지라 적혀 있는 문을 밀고 들어간 국장은 불을 켰다.
“복귀하면 뭐 할지 생각해 봤나? 내 말은 보직 말이네.”
“아직….. 위에서 주는 대로 받지 않겠습니까?”
“홍 소장이 병기개발국장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자네도 병기개발 쪽으로 가지 않겠나?”
“뭐……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쪽으로 가면 전장에 나가서 죽을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긴 한다.
“그러면 내가 도움 줄 만한 게 있네.”
“이건…….?”
“크리스마스 선물이네, 런던에서 빼돌린 신성로마제국 신형 전차의 설계도네.”
베리야가 스파이를 동원해 빼돌린 정보는 베리야가 숙청된 틈을 타서 파고든 헌법수호국의 정보원들을 통해 서울로 넘어왔다.
“이런 걸 주셔도 됩니까?”
“안 될 거 뭐 있나? 어차피 자네들이 요청하면 바로 넘겨줘야 할 것, 자네가 미리 받아가면 거기 가서도 제법 자리잡기 편하지 않겠나, 아참.”
깜빡했다는 듯 말을 붙였다.
“새해가 되는 대로 자네는 소령이네, 축하하네, 김 소령.”
“아……..”
“내가 이번 건에서 자네 활약을 세세하게 적어서 훈장이든 진급이든 시켜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었네, 훈장을 받기에는 좀 부족했을지 몰라도 진급은 성공시켰네.”
아우렐리아의 무공훈장 체계는 먼저…… 연방 최고의 훈장인 공화국 수호 무공훈장이 있다.
전생의 내가 살아 있을 적에 아우렐리아 정부에 제안해서 제정한 것으로, 주 재질은 구정이다. 그렇다. 중국의 황권을 상징하는 바로 그 구정이다.
진품인지는 몰라도 마교의 난을 진압할 때 그 아홉 개의 솥은 아우렐리아군의 전리품이 되었고, 나는 그걸 녹여서 훈장을 만드는 게 어떻냐고 제안, 즉시 받아들여져서 군사 기지에 박아놓고 깎고 녹여서 훈장을 만들어 수여하는 거다.
수여조건은 계급과 지위에 관계없이 용맹함 하나만 따지기 때문에 육해공군과 장교, 부사관, 사병, 심지어 내국인과 외국인에 상관 없이 전부 수여가 가능하다.
형태는 내가 디자인한 것에 따라 청동으로 만들어진 별 모양의 청동에 에나멜을 입혀 만들고, 그 중심에는 아우렐리아의 국장이 백금, 혹은 은으로 박혀 있고 국장 아랫부분에 금으로 만들어진 검이 X자로 교차해서 박혀 있으며, 검과 국장에는 다이아몬드가 여러 개 박혀 있다.
훈장 뒷면에는 각 훈장 수여자마다 어떤 사유로 훈장을 받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기에 완벽하게 동일한 훈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없다.
진짜 존재하는 무공훈장은 그거 하나밖에 없다. 이 게으름뱅이들이 진짜. 하다못해 퍼플 하트라도 베껴놓…. 아 근데 그건 미국에도 아직은 없구나. 아무튼 그렇다.
문제는 아무리 장성들이 자기 권력 이용해서 슬쩍 받아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지만 진짜 목숨을 걸고 싸워야 주는 훈장이다 보니 평시에는 수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자네가 직접 권총질 좀 했었으니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안 된다더군, 후.”
“전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네, 모든 이의 헌신은 보답받아야 마땅한 것을. 그러니 이런 거라도 구해줘야지 않겠나.”
나는 판터라고 이름이 적힌 전차의 설계도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뭐, 일단 이런 거 있으면 좋긴 하겠지, 우리도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
***
다시 현재,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 새벽 1시. 한국 기준 오전 10시.
“끄어어어어……”
좀비들이 바닥을 뒹군다.
문자 그대로 환송연을 뻑적지근하게 한 흔적이었다.
이 시대에 땀내나는 남자들이 가득한 방첩요원들끼리의 환송연에서 뭘 하겠는가? 술 쳐먹고 놀 뿐이지.
그 수가 거의 20여 명, 서울에서 당직 10여 명만 제외하고 비번인 헌법수호국 인원들을 모아서 안전가옥에서 환송연이랍시고 술 먹여서 보내는 것이었다.
파견인원이랍시고 절대 섭섭하게 대접하지 않는 게 방첩대의 전통이라나 어쩐다나.
그런 관계로 주량을 넘어서까지 비싼 양주-계산은 국장님이 하셨다-를 안전가옥에서 퍼먹은 결과 모두가 한 마리의 개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자리에 여자가 없는 게 다행이었지. 왜인지 어디서 토사물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그때 문소리가 들렸다. 술 깬 놈이 가는 건가. 아니, 들어오는 거다?
“잘들 논다. 잘들 놀아. 아주 바닥에 부침개를 만들어라 이것들아.”
“…………..”
이 목소리 들어본 거 같은데 누구드라.
“전원 기상! 비상 상황이다! 쯧, 이걸론 안 되겠군.”
어디선가 물소리가 나더니……..
-쫘악!
냉수가 굴러다니는 짐승들 위에 끼얹어졌다.
“우악!”
“푸퉤퉤!”
“컥!”
“정신들 드나?”
“헉, 국장님?”
“긴급 상황이다. 총원 긴급배치다!”
“무슨 일입니까?”
어푸푸하는 소리를 내면서 일어난 요원 하나가 물었다.
“1시간 전, 베트남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예……. 예?”
“팔라완 근해에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와 솔트레이크 시티 격침.”
문자 그대로의 기습에 비행갑판이 사격 개시 직후 피탄당한 엔터프라이즈는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침몰했다. 순양함들은 바로 그 뒤를 따라갔다.
“진주만 인근에서 미 해군은 다수의 미상 순양잠수함 색적 및 격침.”
베트남 해군에서 나름 기대하고 배치한 잠수함대는 단 하나의 전과도 올리지 못했다.
“이상이다.”
“이게 무슨…….”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진주만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현재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결정은 거기에서 내려질 거다.”
“절대 참전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과 전쟁이라니, 자살하자는 거냐.
“걱정 말도록, 나도 반대하는 입장인 건 똑같으니까, 그리고 토사물 자기들이 토한 건 직접 치워! 어쨌든 우리는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저놈들은 명목상 우방인 본국에게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참전할 의무도 없고.”
그리하여 우리가 태평양 전쟁의 발발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광란의 파티의 잔해물을 치워내는 일이었다.
***
미국, 뉴욕.
2차 미국 내전을 거치며 1차 미국 내전 당시의 임시수도였다가 완전히 미국의 수도로 재정착한 뉴욕 시는 그야말로 전쟁통이나 다름없었다.
“금일, 1935년 1월 1일, 치욕의 날로 기억될 날에 미합중국은 베트남 제국의 해군에 의해 고의적이며 기습적인 공격을 당했습니다.”
미합중국의 첫 유색인종 대통령인 찰스 커티스 대통령은 연설을 이어갔다.
전임자 후버가 1933년에 재선에 성공한 직후 2차 내전의 잔존 세력인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하면서 대통령이 된 찰스 커티스 미합중국 대통령은 쉼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미합중국은 베트남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있었으며, 베트남의 요청에 의하여 베트남 황제와 제국 정부와 태평양의 평화 유지를 위한 담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습적으로 회담 중단을 선언한 후, 팔라완을 항해하고 있던 엔터프라이즈가 공격받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주미 베트남 대사는 선전포고문을 전달했습니다.”
베트남은 일본의 실수와는 다르게 선전포고문의 양식 자체는 지켰다. 황제의 명의로 발표된 선전포고문은 이 모든 걸 결정한 이가 황제라는 걸 명확히 하고 있었다. 물론, 이는 패전하게 되더라도 그 책임을 떠넘기기 위함이었지만.
“또한 진주만 인근에서 다수의 잠수함에 의해 진주만을 공격하려 한 시도가 있었으나 이는 모두 저지되었습니다. 진주만에서 베트남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본다면 이 공격은 수 일에서 수 주 이상부터 신중히 계획된 것이 분명하며, 그 기간 동안 베트남 정부는 미합중국을 기만해온 것입니다.”
“팔라완에서의 기습은 미 해군에 심각한 손실을 일으켰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엔터프라이즈 함과 두 척의 순양함이 침몰하였으며, 이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립니다.”
“더불어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롤루 사이의 공해 상에서 미국 상선이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고받았습니다.”
“육군과 해군의 최고 사령관으로써 본인은 우리를 방어할 모든 방책을 지시하였으며, 이로 인해 우리 국가는 우리에 대한 공격의 성격을 항상 기억할 것입니다.”
이미 미국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이 연설이 없다고 해도 이미 긴급하게 소집된 상하원은 이미 선전포고를 선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연설의 마지막 부분이 나왔을 때, 모든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이를 맞았다.
“저는 1935년 1월 1일 새벽, 베트남의 비열한 공격에 대해 의회가 미국과 베트남 제국 간의 전쟁 상태가 되었음을 선언하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
“대통령 각하, 방금 전 아우렐리아 대사가 다녀갔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우선 이번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자신들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중제국은?”
“아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하.”
이미 전쟁에 대해서는 공화당 내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된 바가 있었다.
“이중제국의 유럽 제패를 막기 위해서는 이중제국에도 선전포고해야 합니다.”
애초에 베트남 제국이 이중제국과 동맹이라는 것은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아우렐리아도 마찬가지.
이중제국과는 어찌되었든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이겁니다. 아우렐리아는 친 이중제국 성향의 중립국이고 막대한 무기과 군수물자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중제국의 극동 지역을 공격하려면 아우렐리아는 최고 요충지에 해당합니다.”
“아우렐리아에게 군사 통행권을 요청하고 이중제국과 거래를 끊으라고 요구한다면 듣겠는가?”
“이미 물어봤지만 일언지하에 거부당했습니다. 자신들은 국제법상의 중립국의 의무를 지킬 뿐이랍니다.”
사실 수출과 수입에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아우렐리아로써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밥줄이 끊기니까.
게다가 이번 전쟁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그간 있었던 막대한 채무를 상환해나가며 적자 재정을 흑자로 간만에 전환한 판에 여기서 손 떼라고 하면 들어줄 리가 없었다.
“의회에 제출할 안건에 베트남만이 아니라 아우렐리아와 이중제국에 대한 선전포고안도 포함하도록.”
이미 중립은 없었다. 미합중국의 전쟁에 협조하라는 요구를 거절한 이상, 분노한 미국이 돌려줄 답은 선전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