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93)
태평양 전쟁(4)
필리핀, 미 육군항공대 기지.
작전본부는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초상집 외에는 뭐라 하겠는가.
“피해는?”
“출격 항공기의 거의 절반이 소멸했습니다.”
“………”
출격한 항공기는 1750기.
물론 이 모두가 폭격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천여 기에 달하는 폭격기들이 있었다.
이들 중 절반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
“당시 출격한 적 항공기가 거의 수백 대에 달했습니다. 적의 종심이 워낙 좁은 데다……”
“그래도 말이 안 되오, 대체 적의 항공기 수가 얼마나 된다고…….”
아우렐리아가 작다고 해도 도시국가는 아니다. 미국이 파악하고 있는 아우렐리아의 보유 전투기 40%에 달하는 항공기들이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일제히 출격했다는 건, 그리고 접근하던 폭격기들이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 모조리 각개격파했다는 건……..
“정보가 유출된 게 틀림없습니다.”
접근 경로에 대공포가 무수하게 깔려 있었고, 수백 기의 전투기들이 만전의 상태로 쏟아져나왔으며 퇴출 경로로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빗발치는 대공사격을 뒤집어썼다.
“적 방공포대는 교전 개시 순간부터 폭격기들의 고도를 정확하게 노렸다고 합니다.”
대구경 대공포의 시한신관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모두가 안다.
그런데 그걸 미리 준비하고 대기했다는 건…….
폭격 일시, 경로, 고도, 기타 수많은 정보들이 누출되었다는 것만이 이를 설명할 수 있었다.
“워싱턴에 보고를 올리게, 그리고 당분간 대규모 폭격 계획은 전부 재검토하도록, 이게 단 한 건의 유출이라면 모를까, 만약 이런 일이 폭격을 할 때마다 반복된다면…….”
출격한 폭격기의 절반이 단 하룻밤에 잿더미가 된다면 워싱턴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할 게 분명했다.
“당장 필리핀을 공격하는 베트남군을 저지하기도 버겁습니다. 육항대의 항공기는….”
FM-1 폭격기구축기는 그야말로 참혹한 성능을 실전에서 드러냈고, 공중요새 개념은 이미 끝장났다. 당장 이를 대체할 신형 전투기를 뽑아야 할 판이지만, 그 신형 전투기를 연구 개발하고 생산까지 하려면 시일이 한참 걸릴 것이다.
폭격기무적론이라는 하나의 사상은 그렇게 미 육항대 필리핀 주둔전력과 함께 나락으로 쳐박혔다.
***
“미 해군은 조만간 상륙작전을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망할. 망할.
진짜 망할.
“베트남 해군은 미군에 비해 허약한 수준이니 병력 대부분은 한동안 필리핀 전역에 묶여 있을 겁니다. 지상군과 해군 모두요.”
하지만 미국은 그에 비해 훨씬 여유가 넘친다는 것.
“두 곳 중 하나입니다. 류큐, 아니면 타이완.”
주둔 병력이 많은 것도 아니며 변변한 해군 전력이 있는 것도 아닌 일본을 제압하기는 무리다.
“류큐가 공격당할 가능성이 크겠군.”
“류큐도 쉽게쉽게 점령할 만큼 작은 섬은 아니지만 타이완보다는 훨씬 공세가 쉬울 것입니다. 무엇보다 미군도 지금 병력을 태평양에만 쏟아부을 수는 없고 말입니다.”
캐나다 전선, 그리고 대서양 전선.
미군이 가용한 지상군과 해군의 거의 대부분은 거기 몰려가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캐나다 주둔 병력을 붕괴시키고 북쪽으로 진격해서 북아메리카 전역을 종결시키고, 대서양에서 최소한 비기기라도 해야 합니다.”
“캐나다군이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해도 미군 상대로는 무리네, 오래 못 버텨.”
“예,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저희는 뭔가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캐나다는 미국 손에 떨어질 것으로 봅니다.”
“극적인 상황이라면?”
“미군이 캐나다에서 어마어마한 바보짓을 한다거나, 아니면 지상에서는 이겼음에도 대서양에서 뭔가 참패한다거나.”
“백색함대에 더해 황색함대의 전력까지 대서양으로 이동했습니다. 어지간하면 참패까지 하지는 않을 텐데요.”
“모를 일이네. 그리고……”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베트남군이 해상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하와이에 상륙하겠다고…”
“미친 소리.”
“하, 마닐라도 아직 점령 못한 놈들이 무슨 헛소리를.”
“저놈들 때문에 이런 가망없는 전쟁에 끌려들어간 것만 해도 속이 끓는데.”
장성들이 웅성거렸다.
“예, 거절하는 쪽으로 답해 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뭔가?”
“우리의 목적은 뭡니까?”
그야 간단하다. 미국이 어떻게든 평화협상에 도장을 찍게 하는 것.
그 평화협상의 내용은 재산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있으면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뭔가 뒷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들도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한 게 아니라는 건 압니다. 그러니 거길 노리는 겁니다. 만약 미군이 대규모 회전에서 참패해버린다면, 그걸 인질로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베트남은 좆되겠지만, 어쩌라고.
“그런데 미군을 대규모 회전으로 끌어낼 만한 곳이 있나?”
“있습니다. 우선 캐나다는 미국이 점령하게 놔두고, 철저히 전쟁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디서 싸울 생각이기에 그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하나?”
“바로 이곳입니다.”
한반도의 동쪽에 있는 곳.
일본이었다.
“현재 일본의 방위 또한 우리 군이 맡고 있는 상황, 그리고 본토를 건드릴 생각이든 베트남으로 향할 생각이든 간에 일본 열도는 미군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하는 요충지입니다.”
일본 열도가 요충지인 거 모르는 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본국으로 진공하기 위해서는 일본, 특히 이 큐슈 지역에 최소한의 교두보를 마련해야 하고, 혼슈는 내버려두더라도 큐슈 점령전 자체는 필연적으로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미군이 선택할 수 있는 루트는 크게 넷.
“첫째, 하와이에서 알류산 열도를 거쳐 쿠릴 열도, 훗카이도를 통해 가는 북태평양 루트, 제일 가능성이 떨어지는 루트입니다. 둘째, 중부태평양 북쪽 루트, 즉 하와이에서 도쿄로 직행하는 루트, 그리고 셋째로 중부태평양 남측 루트, 마지막으로 남태평양 루트입니다.”
남태평양 루트는 일단 호주부터 시작해서 베트남이 먼저 좆되는 루트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다른 둘을 신경써야 한다.
“중부태평양 북측 루트, 에도 지역에서 이 경우에는 승부를 봐야 할 것입니다.”
원 역사라면 모를까 여기서는 에도가 불바다가 된다고 딱히 아쉬울 것도 없다.
“미군의 전력은 숫적인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그러니 미 해군이 만일 대서양 해전에서 승리한다면 반드시 이 루트로 올 것입니다.”
전쟁을 단번에 끝내버릴 수도 있는 공세니까.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필리핀에 있는 미군이 다 죽기를 원하지 않으면 미군은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일방적인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그게 우리가 한 게 아닌 이상 미국인들의 분노가 우리를 향하기는 어려운 법. 이미 여러 차례 중립국 언론을 이용해 ‘미국이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면 개전 이전 미국이 한 요구를 받아들였겠지만 미국 정부는 베트남을 핑계삼아 중립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중이며, 미국 정부가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요구를 한다면 언제든 협상의 여지가 있다’라는 요지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애초에 이 시기의 무기한 군사통행권 요구는 전 세계 누가 봐도 양아치나 히틀러 수준의 요구니까.
“중요한 건 에도의 방어 태세가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겁니다. 구식 해안포 약간과 비행장 몇 곳 정도죠. 충분히 해볼 만할 거라고 여길 겁니다, 무엇보다 미국 대선이 내년이니까 더더욱 그렇겠죠.”
만약 대선 직전에 필리핀 미군이 전멸하기라도 한다면 선거에는 지대한 악영향이 갈 터, 미국 정부는 되도록 빠르게 실지를 회복하고 싶을 게 뻔했다.
“그러니 조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단 한 번에 결전을 벌이려 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 해군이 만만해 보이기도 할 테고 말입니다.”
***
당신은 우리가 함께한 모든 날을 기억하는가, 당신의 미소는 언제나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하고 떨리게 만드네, 나의 팔을 하늘로 펼칠 때 구름 속으로 달빛 끝까지 날아가 당신 곁으로 갈 테니, 나를 믿고 눈을 감아다오.
이 꿈에서 나를 깨우지 말아다오, 매일 나에게 와서 내 꿈이 이루어지도록 손을 잡아줘.
깊은 내면에서 드높은 꿈을 꾸는 나의 영원한 꿈속에서 그대 또한 매일매일이 행복하기를.
그런 내용의 운율에 맞추어 휘파람을 불던 나는 누군가가 다가온 걸 느꼈다.
“착잡해 보이는군.”
“저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으니 말입니다.”
“이 전쟁의 본질은 이중제국과 신흥 강대국인 미국과 독일의 전쟁이지, 우리는 그저…. 들러리일 뿐이야, 프랑스처럼.”
“우리가 함대를 격파하고, 격파하고, 또 격파해도 저들은 새 함대를 편성할 겁니다. 저들은 국민이 전쟁을 지지하는 한 영원히 전쟁을 벌일 수 있는데 저희는……..”
미국과 우리의 공업능력 차이는 말해봐야 뭐하겠는가.
“게다가 이중제국 놈들은 냉큼 함대를 철수시켜 버렸습니다. 아무리 태평양이 주 전장이 아니라지만 이래서야 총알받이로 버려진 꼴이 아닙니까.”
소령 계급장을 달았지만, 고작 소령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었다.
나는 공군에서 받아온 서류를 다시 훑었다.
“A-41 공격기, 무장 37mm 중기관포 4문, 50구경 중기관총 2정, 폭장량 2900kg….. 이런 걸 만들면 미군 병력을 몇 개 사단씩이라도 갈아마실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계속해서 전훈을 쌓아나가고, 상실한 장비의 몇 배에 달하는 대군을 다시 몰고 오리라.
그리고 우리는 그 반의 반도 재충원하기 힘들고.
광대한 영토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국력, 저런 것과 대등하게 싸우려면 아시아 전체를 통합해도 무리다.
“차라리 군사 통행권을 넘겨주고서라도 전쟁을 피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입니다.”
물론 이 시대의 사람들이 듣기에는 이 나라를 털도 안 뽑고 속국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소리니, 아무리 열강의 말석이라고 해도 엄연히 열강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1차대전 후의 독일, 2차대전 후의 일본 꼴이 되는 게 아닐까.
“패배주의적인 발언이라고 지적하고 싶네만, 부정할 수가 없군.”
“주제넘게 말씀드리자면 소장님, 이 전쟁, 멈출 수 있을 때 멈춰야 합니다.”
“단 한 번.”
홍 소장은 쓰게 웃었다.
“단 한 번 크게 승리한 다음 협상을 제안하자는 게 정부의 결론이네, 구체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1936년 11월 이전에.”
11월은 미국 대선이 있는 해다.
“승리하고도 우리가 한 발 물러서는 형식을 공개적으로 취하게 되면 전장에 군대를 보낸 미국 시민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겠지.”
“그럴 겁니다. 저희가 엔터프라이즈를 격침시킨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되려 대서양에서 미국이 선전해주기를 바라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야 미국이 제대로 된 공세를 대선 전에 벌여줄 테니까.
“그런데 이걸 전부 제게 말씀해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김창암, 그 친구가 그러더군, 기왕이면 정식으로 전속시키고 싶지만, 자네에게 더 많은 경력을 쌓게 해주는 것도 좋겠다고 말이네.”
“그분이…”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만큼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더 요직에 배치해야 우리가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네, 그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