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96)
에도만 해전(3)
마지막 노을까지 바다 아래로 그 모습을 감추었을 때, 바다 위에서는 조명탄이 터졌다.
지금쯤 서로 어뢰를 주고받고 미쳐 날뛰고 있겠지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저놈들은 오늘밤 공세를 시작할 거다.”
우리가 제대로 방어를 갖춰놓기 전에 공세를 시작하는 게 최선이니까. 이 때문에 인근의 보병부대까지 급하게 흡수해야 했고, 2개 독립중대 병력이 내 손에 추가로 떨어졌다.
“적 기갑부대는 단순히 기갑부대가 아니라 기계화-기병부대다.”
즉 기병과 전차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부대라는 뜻.
“4개 중대가 있는데 2개 중대는 기병이고 2개 중대는 전차, 그 중에서 1개 중대는 초중전차 5대로 구성된 요새파괴중대고, 즉 실질적인 전차전 상대는……”
다 빈치의 전차마냥 생긴 스팀탱크스러운 무포탑 전차 10대와 초중전차 5대.
“중대장님, 지휘본부에서 연락입니다. 초중전차의 위험성을 고려해서 까치 공격기 4대를 지원에 할당했답니다.”
“오호?”
이렇게까지 화끈하게 지원해줄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줬으면 감사히 받고.
까치 공격기는 4문의 37mm 포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걸로 적 전차의 뚜껑을 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만……. 적 보병과 일반 전차에게는 치명적이겠지.
“좋아.”
나는 20mm 무반동포를 짊어졌다. 이놈은 참으로…. 여러 모로 물건이다.
뭐 당장 무반동포 구경이 20mm에 고속철갑탄과 성형작약탄, 고폭탄을 전부 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단 건 그렇다 치자. 근데 30발들이 박스탄창을 사용하는 4.6mm탄 소총을 한 몸으로 결합해놓은 건 뭐냐? 시대를 앞서간 복합소총이여?
뭐 아무튼 이것도 실전에서 써먹을만한가 검증해보자고 던져놨는데 총이라면 모를까 이 둘을 결합해놓은 건…… 그냥 따로따로 쓰는 게 훨씬 나아 보인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대전차병의 개인방어화기라고 준 것치고는 쓸데없이 고퀼리티라서 완전자동, 점시, 단발이 모두 가능하고 반동도 낮다.
아무튼, 야간에서 전차가 뒤섞인 난전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낫다.
그때, 허리까지 자란 수풀에서 뭔가 벌떡 일어났다.
“중대장님, 보고입니다. 적 병력 다수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작됐군.”
나라고 해도 여기를 두들길 것이다. 여기를 뚫지 않으면 미군은 간토 평야 전체를 뒤져도 쓸 만한 항구를 확보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전략적 요충지치고도 방어병력이 부족했다.
‘오늘이 상륙 2일차던가 3일차던가.’
일주일은 되어야 일본 전역에 퍼져 있던 사단들이 와글와글 몰려들어서 미군을 포위할 터. 해군이 이겨줘야… 아니다. 이 이상은 내 계급으로 망상할 일이 아니다.
“전 병력에 비상을 걸도록, 올라오는 놈들 대가리를 전부 따준다.”
***
최선두를 맡은 건 패튼 중령의 부대였다.
패튼이 최선두에 지원한 것도 있고, 그의 성향이 적 방어선을 돌파하기에 유리하다는 것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의 휘하에 제1요새파괴중대가 배속되어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리하여 전차들이 선두에 서서 진격했지만, 그 소음은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전차 엔진 소음을 뭐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패튼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은폐를 유지하려는 생각은 포기한다. 전속력으로 진격해서 적들이 준비하기 전에 일격을 먼저 먹여준다!”
전함의 포격 사거리가 닿는 위치니 전함군이 포탄을 퍼부어준다면 큰 고생 없이 진격할 수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전함들은 아우렐리아 해군과 야간전을 벌이면서 제 모가지 챙기기에도 급급했다.
그 순간, 전차 한 대가 대폭발을 일으켰다.
“뭐……”
폭발한 전차의 화염이 비춘 그림자와 예광탄의 빛줄기를 본 순간 패튼은 단숨에 상황을 파악했다.
“공습이다!”
A-41 까치 공격기가 야간공습을 감행한 순간, 막 엔진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던 요새파괴중대는 다급하게 회피기동을 벌였다.
37mm 포탄이 전차 주변에서 퍽퍽 튀는 모습은 전차병들을 질겁하게 하기 충분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2호차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뭐?”
“트랜스미션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젠장, 5호차도!”
5호차의 엔진룸 위치에서 자욱한 연기가 솟아나왔다. 그놈의 기동계통이 또 말썽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렇게 전차 두 대가 기동불능.
“3호차 궤도 이탈!”
아니, 세 대였다. 직접 피탄당한 건 단 한 발도 없는데도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무포탑 전차인 M28 전차는 엔진이나 궤도가 뻗으면 포도 못 쓰니 기관총 진지 외의 유용성이 사라진다.
너무 두껍게 두른 장갑이 되려 장애물이 된 상황, 그러나 중형전차들도 딱히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타앙!
20mm 철갑탄이 측면을 관통해 들어가 전차병 하나를 고기 육편으로 만들어버렸다. 곧장 그 뒤를 이어 날아간, 박격포탄을 개조해 만든 80mm 저압포탄이 폭발하며 만든 메탈제트가 탄약고를 직격함과 동시에 전차 한 대가 불덩어리에 휩싸였다.
약간 타이밍이 늦게 야포들이 불을 뿜었다. 2개 포대의 일제사격으로 36발의 포탄이 세 차례에 걸쳐 착탄하며 사방팔방에 폭발을 일으켰다.
***
105mm 포탄과 80mm 포탄을 부하들이 쏴대면서 적 전차를 격파하는 가운데 나는 고함을 질렀다.
“1소대! 전부 백린탄! 백린탄 장전한다!”
“예?”
“백린탄 쏘라고 이 새끼들아! 귓구멍에 귀지가 차서 말도 안 들리냐! 목표는 적 중전차!”
전차 한 대가 야포 사격으로 인해 생긴 구덩이에 굴러떨어지는 게 보였다. 저건 이번 전투가 끝나고 크레인을 가져와서 끌어낼 때까지는 전투불능이 확실하니 남은 중전차는 한 대.
“쏴!”
5식 장갑차의 2연장 80mm 주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물론 애초에 관통을 노린 것이 아니었기에 느릿느릿 날아간 포탄은 흰 연막을 뿜어냈다.
“대대장님, 저렇게 쏘면 오히려 우리가 적을 못 봅……”
“있어 봐 이 자식들아.”
잠시 뒤, 전차의 해치가 덜컥 열렸다.
“불이야!”
백린연막탄의 소이 효과로 인해 기겁한 전차에 화재가 발생한 줄 알고 기겁한 승무원들이 뛰쳐나온 순간 빗발치는 탄환이 그들을 학살했다.
“잡았다.”
원 역사에서 티거 2를 75mm 셔먼이 잡아낸 방식이 생각나서 즉석에서 써먹어봤는데 깔끔하게 먹혔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해.
백린 연막 안으로 돌격할 만큼 간덩어리 부은 놈은 별로 없을 테니 연막이 걷히기 전에 적에게 역공을 가해서 전차를 손에 넣고 싶었다. 대전차포는 없나? 아직까지 안 날아온 거 보면 없는 거 같은데.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우리 기갑부대도 전부 무포탑이라는 거다. 무포탑 전차는 전차전에서는 웬만큼 써먹을지 몰라도 이런 난전에서는 영……
“예상대로 미군은 훈련이 부족하군.”
캐나다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숙련병을 신병들과 섞어서 부대별로 재편성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탕! 탕탕!
보병들이 볼트액션 소총을 쏘고, 귀에 딱히 익지는 않은 4.6mm탄의 연발 총성이 들렸다. 제대로 맞기나 했을지 모르겠군.
나도 장갑차 해치 위에서 이 무반동총을 조준하고 스쳐 지나가는 적에게 5점사를 먹여줬다.
각 차장들에게 무반동총을 지급한 건 궁여지책이었다. 적이 측면에서 튀어나오면 차체 돌리다가 다 뒤질 테니 이거라도 들고 있으면 최소한 한 방은 먹여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원 역사의 바주카처럼 큼지막하고, 소총치곤 좀 길긴 하지만 대전차화기치고는 작고 가벼운 덕에 못 들려줄 것도 없었다.
덕분에 전차장들은 전차 지휘하랴 대공기관총 조작하랴 무반동총 쏘랴 정신이 없어졌지만 뒤지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 순간 폭음이 들렸다.
“3호차가 당했습니다! 측방에 적 전차!”
조명탄이 비추지 못하는 어둠을 틈타 무포탑 전차 하나가 불쑥 그 고개를 들이밀었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허리를 비틀다시피 하면서 몸을 돌린 나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푸슈욱!
뒤쪽에서 후폭풍이 튀어나오고 방금 5식 장갑차 한 대를 고철로 만들어버린 적 전차의 전면장갑에 포탄이 착탄했다.
-까앙!
뭔가 소리가 나더니 나를 겨누고 있던 검고 긴 포신이 멈칫했지만 정작 놈은 살아 있었다. 철갑탄이 그냥 관통만 하고 끝난 모양이었다. 제기랄.
재장전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장갑차 위에서 뛰어내렸다. 어차피 한 방만 맞아도 산 채로 구워질 거고, 장갑차가 차체를 돌리는 것보다 저놈이 포를 쏘는 게 더 빠를 터였다.
-콰앙!
포탄이 빗나가서 뒤의 벽을 때렸다. 그러나 저놈에게는 포가 한 문 더 남아 있었다.
아니, 저건 포가 아니라…….
-화아아아악!
화염방사기가 뿜어졌지만, 나는 아예 사선에 있지도 않았다. 시야를 방해해서 포탄을 못 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물론 상대가 바보짓을 하면 우리야 유리하다, 나는 아까 잠깐 눈에 들어왔던 참호 속 시체가 가지고 있는 테르밋 수류탄을 잡았다.
불에는 불이다 이 자식아.
나는 그대로 테르밋 수류탄을 집어던졌고, 대충 지붕 위에만 떨굴 생각이었는데 지붕 위를 데굴데굴 구르더니 정확하게 엔진룸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화염이 치솟았다.
“나이스!”
물론 곧장 몸을 피해야 했다. 기관총 사각에 있기라도 한 건지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지만 수반보병들은 아닐 테니까.
잽싸게 엎드리자 총알이 머리 위를 휭휭 날아간다, 곧장 무반동포를 다시 집어서 첫 몇 발은 불빛에 몸을 환하게 노출시켜준 적병에게 쏴버리고, 나머지 탄환은 그대로 전차에 쏟아부었다.
멍청한 짓처럼 보이지만 내가 노린 건 궤도 근처 차체에 붙어 있는 장비였다. 완전자동으로 갈기자 탄창이 바닥나는 것과 동시에 뭔가가 툭 튀어올랐다.
바로 엎드리자 찢어질 듯한 두 차례의 폭음이 울렸고, 슬쩍 고개를 들어 보자 더 이상 탄환이 날아오지 않았다.
파편의 폭풍에 휘말린 미군 병사들은 죄다 시체가 되어 있었다.
“후, 내가 생각했던 대로구만.”
도약지뢰 발사기, 전차에 접근한 적 보병을 쓸어버리기 위해 연구했던 장비지만 보병의 총질 몇 번에 유폭해서 아군을 쓸어버리는 문제 때문에 안 쓴다. 생겨먹은 게 비슷해서 한 번 시도해 봤는데 정확히 생각했던 대로였다.
덕분에 적 전차에 수반되어 있던 보병들은 죄다 죽어나간 듯 싶었다.
“끄윽, 젠장.”
장갑차의 전차장용 해치에 몸을 우겨넣다 보니 뒤늦게 발목에서 아릿한 통증이 올라온다. 삐었다. 이거.
“아니 중대장님, 미치셨습니까?”
“그럼 다 뒤지게 생겼는데 뭔들 못해?”
“그렇다고 수류탄 하나 가지고 전차랑 맞다이를 까십니까? 저놈이 기관총을 한 자루만 더, 아니, 그것도 필요없이 뭐 이상한 걸 옆에 매달아놓은 것만 아니었으면 그냥 수반보병들에게 훅 갔습니다. 훅.”
“알았다고. 그리고 니들도 나 없었으면 골로 갔다. 이것들아. 내가 뛰어내렸으니 산 거지.”
이놈의 선회 성능은 개발에 참여한 내가 제일 잘 아니까 하는 말이다.
“적 병력 다수가 추가 접근 중입니다! 복수의 전차와 적 기병 확인!”
“움직여! 아직 밤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