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198)
협상(2)
킬 군항, 신성로마제국.
P-65 스크리머 전투기들이 하늘을 갈랐다.
미국과 독일이 합작해서 개발한 전투기, P-65 스크리머는 독일이 개발한 글라이더에 미국이 개발한 구동계통을 합쳐서 개발한 항공기로, 두 개의 엘리슨 엔진을 탑재했다.
물론 신성로마제국의 글라이더를 그대로 쓰지는 못했다. 동체 중심에 탑재된 엘리슨 엔진은 두 개의 샤프트를 통해 동력을 전달하고, 그걸 기어를 통해 하나로 합쳐서 3.7m짜리 초대형 프로펠러를 돌린다. 거기에 조금의 추력이라도 더 얻기 위해 배기가스 배출구에 초기형 후기 연소기까지 설치했고, 꼬리날개는 T 형상으로 변형되었다.
무장은 미 육항대가 사용하는 브라우닝 37mm 기관포 대신 분당 2400발을 쏘는 신형 30mm 4총신 전기구동형 개틀링식 기관포를 한 정 프로펠러 구동축에 장착했다. 무게가 보통 무거운 게 아니었지만 이 무게는 6천 마력짜리 엔진으로도 모자라 보조추진장비까지 장착한 강력한 추력으로 상쇄시켰기에 운용이 가능했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P-65 스크리머, 스크리머라는 별명은 엔진을 가동했을 때 대형 프로펠러에서 소음이 심각하게 난다면서 붙여진 별명이었지만, 미 육군항공대가 원하던 대로 아우렐리아의 10식 전투기를 화력과 속도 모두에서 압도할 만한 신형기였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항공기는 프랑스의 부가티 전투기였다.
이 역시 우수한 항공기였다. 거기에 아직 기술적으로 안정화도 못 되고 전선으로 내몰린 스크리머보다 안정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폭격기들을 엄호하기 위해 출격한 부가티 전투기들을 스크리머가 끌어내는 동안 폭격기들은 수평비행을 하며 엄호 없이 목표로 다가갔다.
어차피 대공포는 확률적으로 명중하는 무기고 요격기들은 호위기들과 격투전을 벌이고 있으니 폭격 임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 벌인 일이었지만 실책이었다.
이중제국의 폭격기 편대가 접근하는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VTOL 항공기인 트리프플뤼겔들이 출격했다.
이 수직이착륙 전투기는 보조 엔진을 가동해 이륙한 뒤 램제트 엔진을 붙인 3장의 날개를 회전시키며 비행하는 기체들이었고, 숲속에서 이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물론 착륙이 불가능해서 기체를 일회용으로 써야 할 뿐 아니라 비행 중에도 기체가 안정되지 못한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어서 10여 기 정도 생산된 프로토타입은 폐기되기 직전까지 갔지만, 이번 작전을 기획한 옌티안 공작에 의해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실전에 투입되었다.
전함들을 격침시키기 위해 지진폭탄 ‘그랜드슬램’을 운반하던 폭격기들은 그대로 줄줄이 추락을 면치 못했다.
몇몇 조종사들은 탄약이 부족해지자 어차피 버려야 할 전투기를 적 폭격기에 충돌 코스를 잡고 그대로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만용까지 부렸고, 그 중 한 대는 폭격기의 날개를 부숴버렸을 뿐 아니라 추락하던 폭격기가 아군기를 들이받게 만들어 일석이조를 성공시켰다.
“쯧, 저게 착륙만 가능했으면 이런 낭비는 안 했을 텐데.”
이제 와서 도로 분해한다고 해도 그 부품들을 다른 항공기에 전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적에게 기습효과를 줄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저걸 본 적들은 이제 아무런 전략적 가치도 없는 숲도 폭격한다고 개고생을 할 것이고, 호위기도 더 많이 붙여야 할 것이다.
“쾨니히스베르크를 탈환하더라도 역시 영국 본토를 공격하지 않으면 저 폭격은 또 오겠지, 후.”
폭격기들이 줄행랑치는 동안에도 병사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이미 계획된 작전이었다.
‘왕립해군의 전력은 많이 감소되어 있고, 저들과의 결전을 벌일 때가 됐소.’
‘하지만 적들이 매일같이 공습을 벌이는데, 우리 함대가 자리에 없으면 당장 비상을 걸 겁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습 직후에 출항하는 건데 공습에 함선이 손상이라도 입으면 골치아파지고요.’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적들에게 한 방 크게 먹여줄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게 이거였다.
이제 대양함대는 다시 한 번 바다로 나아가 왕립해군과 자웅을 겨루리라.
누가 승리할지, 그리고 누가 패배할지는 신만이 아시리라.
***
현재 미군과의 휴전이 성립된 상태다.
사실 휴전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미 해군이 다 죽어나간 상황에서미 육군이 살겠다고 미친 듯이 날뛰어대면 아직 충분한 전력을 결집하지 못한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만 한다.
그걸 미군도 알 텐데 왜 휴전을 제안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 정도 피해를 입었으니 저 윗선에서 협상이라도 하나? 하긴 진주만….이 아니라 엔터프라이즈를 우리가 공격한 건 아니니까.
아무튼, 그러고 나니까 당장 일본 내부가 불안해졌다.
대전쟁이 발발하기 전만 해도 일본은 프랑스와 아우렐리아의 공동 맛집이었다.
프랑스가 총독부를 세우고 식민통치를 했지만, 워낙 본토와 머니 아우렐리아의 협조가 절실했던 둘은 사이좋게 일본을 뜯어먹었다.
프랑스는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면서 대대적인 이민정책을 펴며 일본을 ‘프랑스화’ 시켰고, 아우렐리아는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조해주면서 각종 원자재를 싸게 사들이고 동시에 물건을 강매하다시피 비싼 값에 판매하며 콩고물을 얻어먹었다.
유사시 아우렐리아가 군을 보내 프랑스 총독부를 지원하고, 각종 물자와 편의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아우렐리아의 상인들은 일본 내에서 단 한 푼의 관세도 물지 않았고 유사시를 대비해 프랑스군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 보호란 절대 그 가격에는 넘기지 못하겠다는 이들에게 납을 값으로 지불하고 ‘구매’한 원자재를 가져가는 것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지금 프랑스군은 죄다 본토로 보내진 상황에 식민지인에 대한 징병도 이미 대규모로 진행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정을 전부 갑자기 떠맡을 수는 없으니 여전히 총독부 관료들은 출근해서 자기들이 하던 일을 해 오고 있었고, 식민지의 치안을 유지하는 경찰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장 자기들을 억누르는 프랑스군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일본의 독립열기가 벌써 터져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총독부의 정보에 따르면 나가노 지역의 산림 속에 게릴라들이 대규모 거점을 구축했다고 한다. 거기부터 때려부수라는 것이 상부 명령이다.”
나가노는 바다에 인접하지 않은, 산으로 가득한 내륙 지역.
기갑연대가 작전하기는 좋지 않은 지형이기는 한데..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아니, 애초에 기갑부대가 게릴라 잡는 데 특화되어 있긴 했던가? 게릴라 잡으려면 보병들이 훨씬 나을 텐데 말이지.
“그런데 게릴라들이 죄다 산 속에 숨어버리면 어쩝니까?”
“어쩌긴 뭘 어째? 방어진지 구축하고 게릴라들을 말려죽이든가 해야지.”
사실 산으로 숨어들어간 빨치산들 죽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토지개혁이라는 건 역사가 증명한다. 토지개혁을 약속받은 농민들은 절대 빨치산에 협조하지 않는 법, 농민들이 로우리스크 로우리턴과 익스트림 슈퍼 하이 리스크에 똑같은 로우, 운 좋으면 미들 리턴의 두 가지 선택지에서 후자를 고를 정도로 정신나간 인간들은 아니니까,
그렇게 되면 1차적으로 현지인의 지지가 필수인 게릴라들은 어떤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진 게릴라들은 다른 지역으로 가거나 폭력으로 물건을 뺏는 등 점점 현지 민심과 이반되기 시작하고, 결국 말라죽어가다가 쫓아온 정부군에게 토벌될 뿐이다.
‘토지개혁만 하면 어지간히 독하지 않은 한 대부분의 게릴라들은 세스코 부른 집안의 해충마냥 박멸되지.’
근데 여기의 통치권은 우리에게 없고 프랑스 총독부 놈들한테 토지개혁을 하라고 권고하면 식민지에서 무슨 개소리냐고 지랄발광을 하겠지?
“아무리 봐도 인도차이나 전쟁에 끌려들어가는 기분인데 말야.”
“잘 못 들었습니다?”
“아냐.”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의 프리퀼.
물론 이놈의 대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종결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일본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는 필연인 듯 싶다.
아무튼, 내 임무는 그것만이 아니다.
5식 장갑차와 10식 구축전차의 문제점에 대해 내가 시시콜콜하게 적어놓은 보고서는 이미 본국으로 떠났다.
거기에 더해 우리가 노획한 T28…… 저치들은 M28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던데, 그놈도 본국으로 배송되었다. 중전차 개발에 도움이 되기를.
아무튼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후방을 불안하게 하는 게릴라들을 한 방에 찍어눌러주기를 기대받고 있다는 거다.
“그만큼 우리가 원칙을 잘 지켜야 하네. 민간인들과 쓸데없는 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이야기 잘 해놓도록, 우리는 약탈자나 학살자가 아니라고. 5대 원칙만 주지시켜. 애들 단속 잘 시키고.”
5대 원칙은 무기 종류 제출, 적 잔존병의 제압을 위한 가택수색에 협조. 매점매석 금지, 일체의 폭력 행위 금지, 주민의 자치회 구성 및 군정에 협조.
마찬가지로 군 내에서 대민 접촉 시 지켜야 할 6대 사항도 있다.
무장하지 않은 인원에게 총기 사용 금지, 민간인들에 대한 위협 행위 금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대가를 치르고 구매, 주민의 재산을 작전과 무관하게 파손한 것은 변상할 것. 민간인들과 업무 외 사적인 접촉 금지. 주민들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고 이들의 양해를 얻어 행동할 것.
수십 년 전에는 그런 거 없었다. 19세기에 있었던 일본 원정에서 아우렐리아군이-물론 그때는 군 초창기라서 군인 대부분이 빈민층에 어중이떠중이였고, 월급도 제대로 안 나오는 판이라서 군율 유지가 거의 불가능한 판이었다는 건 감안해야겠지만-벌인 만행은 아직도 일본인들이 아우렐리아에 대해 말만 하면 이를 갈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도시란 도시는 죄다 불타고, 농촌 마을도 깊은 산 속에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줄줄이 약탈당하고 불타서 전쟁이 끝난 뒤에는 영주까지 농사를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판이었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감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좀 역사가 있다는 부대마다 당시 약탈해온 창에 자랑스럽게 부대기를 달아놨다거나 일본에서 횡재한 증조할아버지 이야기가 집안마다 썰마냥 퍼져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약탈이 심하기는 했을 거다.
그래도 무슨 말만 들어보면 문명 자체를 쓸어버렸다는 수준인데….. 빚에 짓눌린 가난뱅이 신세였던 아우렐리아가 작정하고 파괴를 해도 그 정도였을 리가 없지 않나.
아우렐리아의 침공이 아니라 일본이 그 꼴이 나서 열강들의 보호국이 된 건 자기들끼리의 내분과 분열, 전쟁 때문이었다는게 더 합리적이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사안이다.
당장 공산주의 하겠답시고 혁명이 일어나서 천황가 전체가 혁명정부에게 잡히면 루이 16세처럼 죽는다면서 저 주부 산속으로 도망간 게 전생에 나 살아있을 때였는데 그게 우리에게 쫓겨서 갔냐? 자기들끼리 혁명나니까 도망간 거지.
혁명이 프랑스군의 손에 진압된 뒤에도 천황가는 거기서 다 죽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다시 세상에 나왔다가 학살당할지도 모른다고 겁먹기라도 했는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고, 프랑스 총독부는 천황가를 굳이 복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자기들 딴에는 만세일계라고 하던 천황가의 계보는 끊어졌다. 어쩌면 자기들이 천황가라는 것도 모르면서 신사나 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 바는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천황가가 이 근처 어딘가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지 않았나?”
“그게 뭡니까?”
아우렐리아인들에게는 천황은 문자 그대로의 듣보잡이었지만, 현지인들은 달랐다.
“여기 사람들은 천황가와, 그 조상인 히미코 여왕을 숭배하네. 지금은 프랑스인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히미코 여왕이 되돌아와 그들을 구원해 줄 거다….. 대충 그런 민간신앙이지.”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인들은 징집되어 유럽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이중제국에서 사상자가 너무 늘어나서 도저히 손실된 병력을 충원하기가 힘들어지자 인도인들과 쿨리들을 동원했듯이, 프랑스군은 흑인과 일본인들을 동원한 셈이었다.
물론 이중제국이 보급품 하나 못 대줄 정도로 쪼들리지는 않는다. 식민지인들을 굶겨가면서 착취하더라도 아무튼 간에 군의 유지는 충분히 가능하며, 그 보급품을 프랑스에 나눠주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프랑스군은 이중제국에 끌려다녀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 번 끌려다니기 시작하면 문자 그대로 전쟁이 끝나더라도 이중제국의 속국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그렇기에 어떻게든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금속이란 금속은 놋그릇과 젓가락까지도 공출하고, 무기도 있는 대로 공출하고, 가축들도 싹 쓸어가고, 식량도 뺏었다. 일본에서는 쌀을 주로 재배하지만 쌀은 유럽에서도 먹는다.
당연하지만 이로 인해서 굶주리는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러니까 종말론이 판치는 거겠지만.
“원래 종말론으로 시끄러운 건 세상이 혼란스러운 시기고, 아마 반란을 일으킨 게릴라 세력도 천황 귀환 전설에 의지해서 들고 일어났거나, 최소한 이용할 의지는 있을 거야. 가짜 천황 정도는 내세웠을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