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00)
명분(1)
“중대장님!”
“뭐야?”
“적습입니다!”
그 말에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뛰쳐나갔고, 우뚝 굳어버렸다.
밤을 틈탄 공격이었지만 조명탄이 필요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이런 미친 새끼들 같으니.”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중대장님, 수색대 보고입니다. 마을이 통째로 불타고 있고, 시민들은 사원으로 도망치고 있답니다.”
“적들은?”
“대나무숲 방향에서 화염이 처음 치솟았다고 하니 그 근처에 있을 겁니다만 화염이 너무 강해서 사격 원점을 특정하기 어렵…..”
-콰앙!
박격포탄이 터졌다.
“우… 우리 집이!”
박격포탄에 직격당한 신사의 건물이 폭삭 무너지면서 무녀의 처절한 절규가 들려왔지만,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었다.
“저 안에 사람 없지?”
“무녀 아가씨랑 무녀 아가씨의 친구라는 여자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비명 잘만 질러대는 거 보면 죽진 않았나 보네요.”
“사람만 안 죽었으면 됐지.”
“이거 상황이 심각한데요. 산까지 홀랑 타버리겠습니다.”
“민간인들이 걱정이군, 만약 탈출하는 민간인들이 있으면 저 신사….터보다는 호수 쪽으로 유도해. 불이 쫓아와도 호수로 뛰어들면 되겠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도 펌프 등은 없었다.
“비전투 병력도 호수 쪽으로 보내, 산 방향은 아직 불이 덜 번졌으니 산등성이를 통해서 호수 방향으로 대피를 진행시키고, 호수 방면에 중기관총 진지를 설치한다. 적 병력이 이….. 감마 고지, 은방울꽃이 피어 있는 언덕 방면으로 이동해서 다수의 해바라기가 피어 있는 들판을 통해 숲을 우회해서 우리를 칠 생각인 것 같다.”
배후에는 가파른 산과 호수, 숲에는 화재가 발생했으니 방향은 우측면밖에 없기는 하다.
“멍청이들이 우리를 너무 얕봤어.”
게릴라들이 실수한 게 있다면, 우리가 자기들보다 약하다고 착각한 거다. 전차까지 가지고 있으면 그럴 만도 하지만.
“해바라기 들…. 그냥 델타 평야라고 하지, 델타 평야 방면으로 포병화력을 집중시켜, 감마 고지 방향에서 쏴대는 박격포들이 제압되는 대로 포격을 집중시키고, 전차들도 그쪽으로 보내.”
“지휘부는 어디로 옮기시겠습니까?”
“피안화 오솔길 있는 곳으로, 거기가 야포 올려놓고 감제하기 딱 좋아보이더군.”
나는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인상을 팍 썼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
내가 이 말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는데.
“중대장님?”
“각 부대는 즉시 기관총 중심으로 방어를 개시한다. 전차들은 전부 산탄 장전하고 보병 지원에 투입하고, 보병들도 전차의 사각을 엄호하는 데 주력하도록.”
태평양 전쟁의 일본군이든, 아니면 농민봉기든 간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관총과 전차 앞에서는 쪽도 못 쓴다는 거지.
***
용산, 아우렐리아 정부청사.
“기본적인 협약은 다 된 것 같습니다.”
우선 당장 급한 것부터.
전쟁은 종결, 대신 아우렐리아는 즉시 미국과 동맹해 이중제국에 선전포고.
그리고 미 해군은 아우렐리아 해군 전함 4척과 초중순양함 4척, 경순양함과 구축함, 잠수함까지 아우른 대규모 무기를 구매한다.
물론 몇몇 함선을 제외하고는 전부 아우렐리아 해군에서 그대로 운용하고 명의만 미국으로 넘기는 것이다. 애초에 무기체계 자체가 다르니 적응 훈련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비도 어려울 테니까.
미 육군과 항공대도 마찬가지, 이번 전역에서 항공기와 전차 성능의 부족을 절감한 미 육군은 5식 장갑차와 10식 전차를 구매하여 전선에 투입하고, 심지어 대전차화기, 기관총, 소총과 권총까지도 현지에서 급히 구매하여 지급하기로 했다.
아우렐리아도 어차피 그게 다 인도됐을 때쯤에는 75식 전차가 양산되어 배치되기 시작했을 테니 재고 짬처리하는 차원에서 시원하게 동의. 구닥다리 복엽기와 전투기, 공격기, 대공로켓까지 알뜰하게 싹 미군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그 대금은 금괴로 현찰박치기. 물론 군함의 가치를 죄다 수십 배는 넘게 쳐야 했다.
그 대금은 단순히 군함과 무기 값이 아니라 무기 값에 더해서 사실상의 전쟁배상금, 죽어도 배상금을 지불한 거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던 미국 정부가 온몸을 비틀어댄 결과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무기들이 전선에서 필요하기도 했다. P-65 스크리머가 생각 외로 프랑스제 전투기를 압도하지 못하자 현장에서 절규가 터져나온 것이었다.
‘제발 이 툭하면 엔진이 멎는 멍텅구리 전투기 말고 차라리 복엽기라도 내놔!’
카탈로그 스펙으로는 이겨야 하는데 온갖 잔고장 때문에 제 성능의 반의 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니 차라리 적을 만나서 이기지는 못해도 최소한 제풀에 추락하지는 않는 FM-1을 달라고 절규하는 유럽 전선에서의 보고를 받은 미국 정부는 나름 최신 전투기였던 스크리머를 단종시키고 10식 전투기를 급히 사오는 쪽을 선택했다.
물론 FM-1이 지상공격기로도 못 써먹겠다면서 스크리머가 배치되기 전까지 총알받이로나 사용되다가 전부 단종된 지 오래여서 생존 기체도 찾아보기 어려울 판이라서만은 아니었다.
“뭐 일단 금괴를 선불로 받아야겠는데, 언제쯤 온답니까?”
“포트 녹스에 있는 미국 정부가 보유한 금괴를 싹 털었습니다.”
이거면 그간 아우렐리아가 유럽에 진 빚을 싹 갚고도 남는다. 물론 종전시에 아우렐리아가 진 빚을 패전국들에게 떠넘기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금괴는 항상 없어서 문제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은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터져서 국내 산업을 싹 조져버린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같은 경우가 있기는 한데 그건 수백 년 전 일 아닌가.
일단 국채부터 싹 상환하고 각종 국가사업도 이 비용으로 해치울 수 있을 터. 당장 전쟁 나면서 발생한 문제들도 이 정도 배상금이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금고에 싹 밀어넣고 금태환 화폐를 발행할 수도 있다. 아직 금본위제는 현역이고, 금의 보유량은 곧 국력이다.
“다만 전함을 끌고 가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겁니다. 초중순양함은 파나마 운하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지만, 전함들은 전부 파나마 운하 통과를 고려하지 않고 설계되었으니 말입니다.”
즉 마젤란 해협을 돌파해야 한다.
“우리 알 바는 아니지, 어차피 저놈들이 끌고 갈 건데.”
미 해군이 무리해서라도 잠수함들까지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중제국은 독일에 대한 해안봉쇄를 포기했지 브리튼 섬이 고립된 건 아니다. 여전히 북극항로와 이란 항로, 그리고 미디 운하와 수에즈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막대한 곡물이 브리튼 섬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미군이 차단해야 하는 것도 여기, 그러나 미 해군은 아직 이중제국 해군에게 털린 강냉이를 회복하려면 아직 몇 년은 더 잡아야 했기에 정석대로 순양함들을 내보내서 해안봉쇄를 할 수가 없었다.
제공권도 항공대가 영 상태가 좋지 않으니 믿을 건 잠수함들, 그것도 북극해의 얼음 밑에서도 오래 버틸 수 있는 공기 불필요 추진 체계를 장착한 아우렐리아 해군의 잠수함대가 필요했다.
이중제국에 대해 아는 이들은 브리튼 섬이야말로 이중제국의 진정한 본토라는 데에 동의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는 모두 큰 도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 외 여러 요인들을 감안하면 이중제국의 본체는 브리튼 섬이고, 나머지는 그냥 본토 대접을 받는 식민지거나 그냥 진짜 식민지 수준이었다.
정치 중심지는 런던이고, 경제력으로도 부족하다. 19세기에 두 국가가 통합된 이후 러시아 귀족 중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몰락한 것도 한 몫을 했다.
잡소리 집어치우고 말하자면 이중제국의 경제력의 대략 7할은 이 브리튼 본토에서 나온다는 게 정설이다. 당연히 브리튼을 무너트려야만 전쟁이 끝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미국 정부가 선불로 금괴를 보낸 다음이었다.
‘저희도 전쟁 수행 자금은 필요합니다.’
‘일시불. 금괴로.’
‘아니 진짜 좀 사정 좀……’
‘당신들은 우리 사정 봐주셔서 쳐들어오셨어요?’
조금 항의가 있었지만, 아무튼 타협을 봤다.
이제 남은 건 실무뿐이었다.
***
총성은 멎었다.
달려들던 게릴라들은 거대한 시체 무더기만 남기고 모조리 죽어버렸다.
“화재에 의한 피해가 더 클 지경이군.”
저 멀찍이에서는 여전히 화재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내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저 멀리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려나. 화재가 크게 확산할 걱정은 좀 덜어도 되겠어.”
물론 알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화재면 분명 사상자가 났겠지. 화재가 마을을 덮치기까지 했으니 희생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하지만 이건 교전 상황이고, 교전 상황에 휘말려 희생된 민간인의 죽음에 애통해할 심적 여유가 내게는 없다.
그나마 바람이 강하지 않고 딱히 건조한 것도 아닌지라 화재가 크게 확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지.
졸지에 난민이 된 민간인들을 어떻게 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개입하게 되면 그때 고민하자.
나는 박살나버린 신사를 슥 굽어보았다. 신사 안에 있던 사람들 중 죽은 사람은 없지만 당분간은 홈리스 신세가 될 거다.
무녀는 신사가 무너질 때까지는 멀쩡했으면서 인근 숲이 다 박살난 걸 보고 혼절했으니 날 막을 사람은 없었다.
‘신체라도 찾을 수 있으려나.’
딱히 별건 아니었다. 지금 안 그래도 굉장히 혼란스러운 주민들을 진정시키는 민사작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을 뿐이었다.
집이고 뭐고 죄다 불타고 무너진 상황에서 마을의 생존자들이 어떻게 버틸지 등은 엄밀히 말하면 내가 알 바 아니기는 한데, 그래도 도의적인 책임이란 게 있지 않은가.
“이건가?”
물론 내가 신사에 가본 적은 없다. 내 부하….. 가 절대 아닌, 반란을 일으킨 키리시탄들이 신궁을 터는 바람에 내가 장물을 전화에서 ‘보호’할 목적으로 사들인 적은 있긴 하지만 내가 신사의 신체가 어디 쳐박혀 있는지를 어떻게 알아.
절대 땡땡이치는 게 아니다. 애초에 부하들도 데리고 왔고, 아무리 후방이라지만 저격수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혼자 돌아다니겠냐.
그때,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끄악!”
“중대장님?”
“아으윽….”
발로 뭔가를 잘못 걷어찼다는 걸 직감한 나는 그 원흉이라도 찾아보려 고개를 숙였다.
“어?”
이건가? 신체?
문양이 그려진 천에 싸인 뭔가를 끙 소리와 함께 끄집어낸 나는 천을 풀었다.
“이게 뭐….. 헉?”
금이다.
“중대장님?”
“아니, 괜찮아.”
나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부하들에게 경계 도로 서라고 신호했다.
‘근데 이거 그냥 금이 아닌데?’
그냥 금덩어리였으면 모르겠는데, 이거 아무래도……..
‘도장?’
인주는 없지만, 흙바닥에 대고 꾹 눌러보면 대충 모양새가 나오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마자 곧장 도장을 바닥에 대고 꾹 눌렀다.
그리고 네 글자가 적혀져 있었다.
天皇御璽>
“천…..황, 어새?”
내 손에서 황금 도장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