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04)
아일랜드(2)
“발포!”
전열을 이룬 전함들이 일제히 불을 뿜어내었다.
“함종 확인! HMS 후드, 로드니, 하우, 앤슨 확인! 최선두 함선은 함종식별표에 일치하는 함급이 없습니다!”
“어드미럴급 고속전함….”
대영제국의 18인치급 고속전함들의 전대였다.
원 역사의 어드미럴급과 함형은 비슷했지만 3연장 18인치 함포를 탑재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그 어드미럴급들의 선두에는 거대한 전함이 있었다. 자신들이 탄, 아우렐리아에서 비싸게 구매해온 구 인빈시블급, 현재 명칭 인디펜던스급 전함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리라.
“올덴도로프 제독님, 명령을!”
“사거리 내에 들어오는 대로 발포한다!”
수는 그들이 더 많다.
인디펜던스급 4척에 몬태나급 2척, 전함을 상대할 능력은 없어도 중순양함 킬러 역할은 충분히 한다는 게 지난 태평양 전쟁에서 드러난 초중순양함 빅토리어스급 4척.
미합중국 해군을 한때 물먹이고 다녔던 8척의 군함이었지만, 애초부터 전쟁을 할 의사가 없었고 전쟁이 질질 끌리는 것도 바라지 않던 아우렐리아와의 평화협상이 타결되고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르며 미국에 중고로 판매된 뒤에는 미 해군의 힘이었다.
그러나 화력 면에서는 의문부호가 있었다.
몬태나급 전함들은 16인치급이다. 220mm 함포를 운용하는 빅토리어스에게 전함을 상대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상대와 대등한 화력을 낼 수 있는 건 인디펜던스급 4척뿐이라는 것이다.
“적 선두부터 4번째 함까지 인디펜던스급들이 한 척씩 붙어 상대한다. 메인과 루이지애나는 최후미 적함을 집중사격하라고 해!”
아무리 한 등급 아래의 전함이라지만 2대 1, 포문 수로 따지면 24대 9의 싸움에서는 일방적으로 두들겨맞지만은 않을 터.
다만 최선두 전함의 함종을 모른다는 게 찝찝하다.
얼핏 보면 전방집중형 포탑 같은데…. 괴상하게도 함교를 전방으로 밀어붙여서 2번 포탑 바로 뒤에 둔 뒤 함교와 연돌 사이에 3번 포탑을 놓은 모양새. 저런 전함이 취역했다는 정보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면 그들처럼 어디선가 돈 주고 사 왔든가.
‘정보부 놈들, 도대체 하는 게 뭐야!’
속으로 욕지거리를 한 제독은 적함을 노려보았다.
18인치 주포는 그의 생각이 맞다면 인디펜던스급과 저 함선들이 전부 동일한 주포일 터. 그렇다면 보조장치와 수병들의 숙련도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숙련도는 보나마나…..
‘이쪽이 쳐발리겠지.’
대영제국 왕립해군의 숙련도도 숙련도지만 미 해군 병사들은 아직 이 배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사온 거니까 군수체계도 아직 못 갈아엎었고, 정비도 곤란한 판.
반면 영국군은 최소한 자기들이 건조한 배니까 훨씬 운용능력이 뛰어날 터.
게다가 여기는……
“제독님! 적 사거리 내입니다!”
불안 요소를 떠올리자니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들었지만,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포격 개시!”
포성과 함께 전함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미국의 신형 16인치 장포신 주포와 영국제 18인치 포탄은 최대사거리 자체는 비슷비슷했기에 몬태나급 역시 화력의 손실 없이 사격을 가할 수 있었다.
“협……. 원탄입니다!”
“협차 당했습니다!”
“제기랄.”
숙련도가 차이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나 난다니.
“왕립해군…. 구석의 구석까지 몰렸지만 그 이름이 허명은 아니란 건가.”
“적 발포!”
재장전이 늦다.
뒤늦게 다시 포탄이 발사되었지만, 적이 세 발을 쏠 때 간신히 두 발을 쏠까 말까한 속도.
명중률도 떨어지는데 이대로 가면 압도당한다.
“항공 지원은 여전히 불가능한가?”
“아군기가 적기에게 수에서 압도당하고 있답니다. 뇌격기 편대가 돌입하기는 이미 늦었습니다.”
교환비가 3대 1이라고 해도 상대가 아군의 3대에 적기 10대를, 더 무식하게 아군의 1대에 적기 9대를 투입한다면 뇌격기 호위가 문제가 아니라 전투기들마저 제 목숨 챙기기에 급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급강하폭격이 성공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들이 돌입해 봐야 적 전함을 격침하기는 무리.
라이미 놈들처럼 4발 폭격기를 끌고 나와서 무식한 폭탄을 던져대는 수준이 아니라면 뇌격이 아닌 순수 폭격으로 전함을 격침시키기는 아직 무리가 많다. 그마저도 명중률은 이미 개나 준 상태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결국 순수 수상함 간의 싸움이었다.
“협차!”
드디어 협차가 나왔다.
“좋아! 계속 몰아붙……”
-콰콰쾅!
순간 후미에서 어마어마한 충격이 울렸다.
“뭔가!”
“제독님! 포미더블이!”
그 말에 제독은 급히 후방 함교로 달려갔다. 포미더블의 후미, 3번 포탑이 있었어야 할 곳에서 흑연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젠장.”
저쯤 되면 최소가 3번 포탑 무력화다.
그때, 포미더블이 좀 이상했다.
“뭐야! 왜 포미더블이 전장을 이탈하는 거야?”
“제독님! 포미더블에서 발광 신호입니다! 키 고장! 함선의 진로를 통제할 수 없음!”
“뭐라고?”
“포격에 키가 꺾인 채 고정되어버린 듯 하답니다! 어쩝니까?”
“…….. 제기랄.”
포미더블은 그 와중에도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포미더블에게 연락해, 엔진을 정지하고 대기하라고!”
“하지만 그럼……”
“그래.”
포미더블은 사실상 전력 외가 된 셈이다.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전함으로써의 가치는 0이나 다름없으니까.
“이제 수가 동일해졌군.”
상황은 더 악화된 셈이었지만.
또 다시 포탄이 하늘을 갈랐다.
여러 번의 집중사격 끝에 제일 먼저 당한 것은 로드니였다.
18인치 포에 난타당하던 그녀의 탄약고에 어느 순간 불이 댕겨졌고, 그녀는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바다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왕립해군도 당하고만은 있지 않았다. 이중제국 해군 전함들의 포탄을 10여 발 이상 얻어맞아버린 인디펜던스는 그대로 뒤집어져 침몰했다.
몬태나급 전함 두 척이 죽음을 무릅쓰고 접근해 16인치 포탄 24발을 후드에게 집중시켰다. 마이티 후드의 거체는 천천히 멈춰 섰고, 이내 불타며 표류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대가로 두 척의 전함은 집중사격을 뒤집어쓰고 침몰했다. 한 체급 위의 주포탄을 뒤집어쓴 결과는 참혹했다.
“제독님! 프리덤이!”
HMS 앤슨에게 포격을 퍼부은 직후 선두에 선 적함의 집중포화를 뒤집어쓴 프리덤은 순간 어마어마한 크기의 섬광을 뿜어내면서 배가 통째로 뛰어오르는 듯한 폭발을 일으켰다.
“신이시여…..”
일러스트리어스의 함교에 선 누군가가 중얼거린 직후 프리덤은 일곱 조각으로 부서져내렸다.
“앤슨은?”
“침몰 중인 듯 합니다.”
대응방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거리, 제대로 맞추고, 제대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전함조차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는 거리.
그렇기에 누구에게든 승리의 여신이 웃어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니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2대 1, 하지만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
“제독님?”
“순양함전대, 구축함전대, 전부 돌격시켜, 적들의 화력은 우리가 받아낸다!”
이렇게 된 이상 가만히 있으면 패배가 기정사실이다.
일러스트리어스가 버텨주는 한…..
“양현 전속! 전속력으로 적 함대에 들이박는다!”
“제독님! 자살 행위입니다!”
“어차피 안전한 곳은 없어!”
제독의 일성에 함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양현 전속! 좌현 전타!”
“포술장! 포문은 적 신형함에 향하게 유지해!”
어차피 어드미럴급은 대응방어가 안 된다. 장갑이 얇은 편인 함종이니 빅토리어스급의 220mm 함포로도 웬만큼은 피해를 줄 수 있을 터.
하지만 적 신형함은……
“우리는 여기서 죽는다! 가지고 있는 거 저놈들에게 다 퍼부어!”
연막이 흩뿌려지고, 우리 구축대가 나온다고 판단하자마자 저쪽에서도 연막을 뿌리면서 구축대와 순양함들이 전진하는 게 보였다.
상처입고 쓰러져가는 거인들을 노리고 양측의 소형함들이 달려들었다.
***
“이곳이 우리의 무덤이다! 양현 전속!”
빅토리어스의 함장 에반스는 이를 악물고 적 함선을 노려보았다.
어드미럴급 고속전함. 지금은 전함을 공격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발포!”
연막을 뚫고 나오자마자 220mm 포가 불을 뿜었다.
일러스트리어스를 향해 포를 쏘던 HMS 하우는 달려드는 빅토리어스와 퓨리어스를 향해 대응사격을 시작했지만, 돌격해오고 있는 탓에 명중탄이 나지 않았다.
다시 포탄이 날아들었다.
최소한 부포탑이라도 파괴해서 제대로 된 손상을 줘야 돌격하는 다른 순양함들과 구축함들이 살아남기에, 자매는 목숨을 걸고 일러스트리어스를 대신해 하우를 견제했다.
빅토리어스, 퓨리어스, 하우의 포격전을 시작으로 다른 함선들도 맞붙었다.
오늘 하루 동안 12척이나 되는 구축함에 더해 경순양함과 중순양함을 각각 한 척씩 격침시킨 인플렉시블에 여섯 발의 어뢰가 집중되어 용골이 꺾여 산산조각났다.
아두시우스를 향해 다수의 경순양함과 중순양함 한 척으로 구성된 순양함전대가 덤벼들었지만, 애초에 초중순양함이라는 분류명을 가질 정도로 압도적인 체급을 가진 아두시우스는 역으로 덤벼든 순양함들을 섬멸시켜버렸다.
그러나 달려드는 구축함들의 뒤로 밀려든 중순양함 다수를 상대하자 점점 힘에 부쳐 갔다. 순양함 킬러인 빅토리어스급부터 제압하겠다는 각오로 영국 순양함전대의 대부분이 아두시우스에게 집중되었고, 6인치와 8인치 포에 난타당한 아두시우스는 순간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찬란하게 빛나며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대폭발이 지나간 뒤 바다 위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퓨리어스와 빅토리어스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하우의 부포탑 하나가 빅토리어스의 3번 포탑에 직격해 폭발을 일으켰지만, 간신히 탄약고까지 폭발하는 것만은 면한 빅토리어스는 고철덩이로 변한 3번 포탑에서 뿜어지는 연기로 선체를 가린 채 1번과 2번 포탑을 겨냥하고 포를 쏘았다.
퓨리어스 역시 멀쩡한 주포 9문을 일제히 사격했고, 이에 퓨리어스를 겨냥한 하우 역시 주포 9문을 일제히 발사했다.
그리고 대폭발이 일어났다.
퓨리어스의 갑판장갑을 뚫고들어간 철갑유탄은 내부에서 격발해 퓨리어스를 그대로 휩쓸어버렸고, 시타델이 뚫린 퓨리어스는 마치 수류탄을 집어삼킨 생선 꼴이 되어 찬란한 불꽃을 피워내었다.
하우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퓨리어스를 협차시키기 위해 빅토리어스에게 드러낸 취약지점에 220mm 포탄이 정확하게 꽃혀들어갔고, 5인치에 불과한 취약부위의 장갑을 관통해들어간 포탄은 그대로 격발해 하우의 선수 탄약고를 날려버렸다.
두 척의 전함은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순식간에 해저로 빨려들어가버렸다.
***
“크윽!”
올덴도로프 제독은 몸을 일으켰다.
함교의 방탄유리는 모조리 깨져 있었고 사상자가 주변에 나뒹굴고 있었다.
“참모장! 참모장 어디 있…….”
머리 없는 시체를 본 제독은 이를 악물고는 급히 전성관을 하나하나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함장! 들리나? 함장! 기관실! 포술장! 아무라도……”
“기관실입니다! 제독님! 무슨 일입니까?”
“젠장, 기관실 말고는 아무도 없나? 함교에 포탄이 떨어졌……”
순간, 축축한 것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축축하고 끈적한, 생기 없는….. 피.
자신의 것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함장이 있을 상층 함교에 연결된 전성관이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 신이시여.”
중얼거린 제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독님! 지금 어딜….”
“움직일 수 있는 놈은 다 일어나! 위층 함교로 간다!”
상층의 폐쇄식 장갑함교가 시야가 좁다고 그렇게 불평했건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구멍이 뻥 뚫려 있었으니까.
함장이나 다른 이들의 시체조각을 짜맞추기보다는 현실적으로 행동하기로 결정한 제독은 전성관에 머리를 박고 죽은 이름모를 시체를 끌어낸 뒤 외쳤다.
“지금부터 내가 지휘한다!”
“제독님 조타!”
죽어라 따라올라온 한 병사의 외침과 함께 올덴도로프 제독이 키를 잡았고, 그제서야 전황이 눈에 들어왔다.
물 위에 떠 있는 두 척의 전함은 성한 구석이 없었다. 일러스트리어스는 포탑 중 불타오르고 있지 않은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가라앉고 있지만 않을 뿐 누가 봐도 전투력 상실이었다.
그리고 그건 적함도 마찬가지였다. 이름 모를 영국의 신형함은 이미 눈대중으로도 최소 40도 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양측의 보조화력은 거칠게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대공포와 부포탄이 날아들어 일러스트리어스의 선체를 때렸고, 일러스트리어스도 주포가 죄다 파괴되었음에도 부포탄와 대공 로켓까지 동원해 적함을 완벽하게 침묵시키고자 하고 있었다.
“구축대에 연락해, 적함을 뇌격하라고.”
“알겠습니다!”
잠시 뒤, 구축함 몇 척이 접근해 어뢰를 발사했다.
곧게 나아간 포말이 적함에 닿은 순간, 물기둥 몇 개가 치솟았다.
그걸로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