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06)
생득권(1)
아우렐리아, 서울.
수도는 아니지만 옛 수도라는 이름이 어디 가지는 않는 법, 아우렐리아 전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동네를 찾자면 이 서울이다.
“만약 이번 전쟁에서 완승을 거둬서 영토를 크게 넓히게 되면 부산으로 수도를 옯기자는 논의가 있기는 있네. 수도가 북쪽에 너무 치우치게 되니까.”
새로 영토를 넓히게 되었을 때 넓혀질 예정인 땅이 죄다 남쪽이니 수도가 북쪽에 치우친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했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전쟁도 안 끝났는데 무슨 김칫국을 퍼마시고 있냐고 하고 싶네만.”
해상봉쇄를 유지하면서 브리튼 섬을 2년 정도 잘 묵혀놓으면서 전략폭격을 퍼부으면 결국 백기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
브리튼 섬에서 생산되는 식량보다 소모되는 식량이 더 많고, 그렇기에 브리튼이 소모하는 식량을 러시아에서 보충해줘야 하는데…. 해로가 끊기지 않았는가.
물론 미 해군도 완벽한 해상봉쇄를 하기에는 수상함 전력이 이미 좀 많이 너덜너덜해진 관계로 지난 아일랜드 상륙작전 이후로 적극적인 주력함의 동원은 물론이고 순양함 전력도 아껴야 하는 판인지라 영국인들을 쫄쫄 굶기는 작전은 니미츠 제독이 지휘하는 미 해군 잠수함대가 주력이다.
그리고 잠수함 성능은 우리가 수출한 게 수십 배는 낫고, 사실 공기 불필요 추진 체계라고 하지만 좀 알 법한 이름으로 말하면 AIP다, AIP.
물론 21세기의 그것에 비해서는 하자가 굉장히 많다. 일단 운용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액체산소를 싣고 다녀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감점. 21세기의 AIP는 거의 다 연료전지 종류인데 이놈은 디젤기관에 액체산소 공급장치를 같이 탑재한 기관이다.
원 역사에서 나치 독일이 개발해서 유보트에 탑재했던 발터 기관보다는 훨씬 안전하지만-그놈은 아예 과산화수소를 쓰는 물건이니-그래도 액체산소를 다루는 게 어디 만만한 일은 아니다. 새어나오기라도 하면 잠수함 내에서 뭔 일이 일어나겠는가?
당연하지만 액체산소를 어설프게 배 같은 데서 보급해줄 수는 없다. 디젤은 그렇게 해도 되는데 액체산소를 그렇게 보급했다가는 보급함과 잠수함이 사이좋게 골로 가는 수가 있다. 제대로 된 시설에서 보급해줘야 한다.
“잡아보겠나?”
손 잡으라는 건 아니고, 이 목줄 잡아보라는 거다.
“별거 아니네, 그냥 잡고 있으면 이놈이 알아서 갈 걸세. 보폭 맞추는 것만 신경쓰게나. 이놈이 갑자기 튀어나가지 말라고 목줄이 있는 거지 무슨 말고삐 잡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되네.”
목줄이 걸린 채 산책 중인 골든 리트리버와 남정네 두 명. 음, 이게 무슨 지옥의 조합이냐.
“그래서 철기와의 만남은 어땠나?”
“으음…….”
***
몇 시간 전, 육군성.
‘하, 일개 영관이 육군성에서 장관 독대라니. 참 영광이군, 아주 속이 쓰려서 미쳐버릴 것 같아.’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위경련이 올 것만 같은 기분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아, 자네가 그…….”
“중령 김태현입니다.”
“그래, 김 중령. 백범 국장님께는 말 많이 들었네.”
“……….”
“그리고 이번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공을 세웠지, 천황가의 마지막 후손 확보라니, 정말 대단해, 이제 우리 조선인의 생득권(Lebensraum)을 확보하는 작업이 훨씬 용이해질 거야.”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범석은 지도를 가리켰다.
“저 만주, 연해주, 그리고 일본, 저 남부의 섬들, 그리고 저 텅텅 빈 거대한 대륙 호주까지, 우리 민족의 씨를 널리 퍼트리고 번성해야만 하네. 그리고 일본은 그 첫 발걸음이야, 중국인은 몰라도 일본인은 우리와 혈통적으로 유사하고, 대조선민족의 2등 신민 정도는 차지할 자격이 있지.”
불편하다. 존나 불편해, 도망가고 싶어.
“사실 나는 아우렐리아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네, 물론 그 이름이 좋긴 하지, 황금의 땅, 하지만 이 조선민족이 뭐가 아쉬워서 한글을 놔두고 라틴어로 국명을 표기해야 하느냐는 말이야. 게다가 우리 민족이 지었는가? 아니네, 저 이중제국 외교관이 지은 것 아닌가.”
저, 그 이중제국 외교관이 저거든요? 제 앞에서 그러니까 좀 서운하네요. 나는 그래도 인종차별 쩌는 저 동네에서 명예백인 지위라도 줘보려고 일부러 신경써서 조선을 음차하는 대신 라틴어 지명을 붙여줬는데 너무하네.
“아무튼 장기적으로 일본은 우리 조국에 병합해야 하네, 일본인들은 우리 민족의 하급 관료와 병사들을 제공할 것이고, 지나인들은 농사를 짓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 생산물을 우리의 조국에 바치겠지. 어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몽골인들이 자기들이 직접 농사를 지었는가? 정복한 민족들을 지배해서 그들에게서 연공을 받았지.”
“그… 지금 정부의 견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정부? 아, 그래, 지금 이사회의 상당수는 동화주의자들이지,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에 섞여들고 자기들끼리 자발적으로라도 게토를 만들어 살려고 한다면 군대를 끌고 가서라도 박살을 내야 한다고 믿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네.”
이범석은 열변을 토했다.
“물론 공권력이 안 닿는 뒷골목이 이주민들로 구성된 갱단에게 점령당하거나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모인 이주민들이 종교나 문화, 국적을 기반으로 한 자경단을 결성한다거나 아무튼 공권력을 거부하고 법률 준수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있다면 기관총에 실탄을 장전한 군대를 끌고 가서 짓밟아줘야지, 그런데 이 우수한 민족의 피에 자꾸 다른 걸 섞어넣으려고 하잖나.”
아니 저기요, 칫솔수염은 제가 보는 앞에서 뒤졌는데 왜 본인이 칫솔수염을 기르고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려고 하세요. 좀만 더 가면 만(卍)자 모양 완장이라도 차시겠네.
“그리고 일본인들은 우리 조선민족의 마당쇠 역할 맡기기에 적합하지. 애초에 그들을 동화시키려는 노력은 성과를 얻기 힘들어, 중령, 지금 이 나라의 인구가 얼마인지 아는가?”
“1억 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원 역사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인구. 이 시기에 한 3천만 하지 않았나? 원 역사에서 21세기까지 가도 남북한을 합치고 각지의 교포들까지 다 더해도 1억이 안 됐을 텐데.
“일본인은?”
“3천만을 좀 넘을 겁니다.”
“아니지.”
이범석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물론 공식 기록은 자네 말이 맞네, 3천만을 좀 넘지, 하지만 여러 경로로 접한 정보와 기타 판단을 종합하면, 호적에 안 오른 인구가 제법 많을 걸세, 프랑스 정부의 기록은 신뢰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아, 자네도 뼈저리게 느꼈을 텐데?”
“그렇습니다.”
“본인은 대략 5천만 이상이 실제 인구라고 보고 있네,”
원 역사 기준으로는 1940년대에 7천만이던가. 5천만은 프랑스의 폭정 탓에 안정적인 인구성장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인구다. 애초에 중국 인구가 난세가 올 때마다 들쭉날쭉해지는 건 사람이 그렇게 죽고 또 그렇게 낳아대서가 아니라 호적에 오른 인구와 안 오른 인구의 문제라고 하지 않나. 일본도 비슷하겠지.
“그래서, 자네는 저 인구가 동화가 가능하리라고 보나?”
“불가능합니다.”
내가 알기로 미얀마가 주류 민족인 버마족이 68%고 기타 소수민족이 32%, 그런데 일본인이 5천만 잡으면 66%가 한국계 일본계가 33%네? 미얀마는 버마족 빼고는 인구비율이 10%를 넘는 민족이 없는데도 동화가 문제가 아니라 내전이 펑펑 터져댔는데 자기 나라 인구 절반에 육박하는 인구를 동화해? 그게 됐으면 일제강점기에 내선일체 성공시켰겠지.
“바로 그거네, 동화는 불가능해, 그러면 그저 저들을 지배하면 그만이 아닌가?”
아니 저기요, 보통 그러면 괴뢰국을 세워서 이득만 쏙 빼먹을 궁리를 하지 않을까요? 굳이 직접통치를 꼭 해야 해? 세포이 항쟁 전에는 영국도 인도 간접통치만 해서 수천 명으로 인도 전역 충분히 통제하고 이득 차고 넘치게 뽑았어요. 인도 제국 선포하고 직접통치로 바꾼 뒤부터 되려 이득 규모가 팍 줄어서 그렇지.
“지나인들도 마찬가지네, 유럽에도 귀족은 한 줌이지만 그들은 수많은 아랫것들을 지배하지 않나? 민족과 민족 사이에서는 그런 관계가 불가능할 이유가 있나?”
“어……..”
“어차피 중국인들은 그 품성이 저열하고 교화하기 힘들어서 강자에게 복종하는 게 그 습성이네, 우리 민족이 그 힘을 보여주면 얌전히 무릎을 꿇고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겠지.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 년에 달하지만 우리 민족이 이토록 강한 힘을 손에 넣은 적이 없었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면 천 년간 민족 전체가 후회하게 될 거야.”
아니 저….. 저기요, 꼭 칫솔수염 기르고 팔을 곧게 뻗어서 ‘하일 범석!’이라고 외쳐야 할 것 같거든요? 지금?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물론 우리 민족의 힘은 충분히 아시아를 지배할 만 하네, 그러나 쉽게 손에 넣는 것과 어렵게 넣는 건 다르지, 전쟁을 치르면 우리 민족의 건아들이 피를 흘리네, 흘러 떨어지는 조선민족의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돌이킬 수 없는 손해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여야 할 조선민족이 어찌 헛되이 죽겠는가. 그렇기에 그게 아무리 헛되고 잡스러운 잡귀들을 섬기거나 멀쩡한 인간을 신으로 떠받들어 섬기는 구닥다리 미신이라고 한들 조선민족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는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걸세.”
***
다시 현재.
“…..라고 하더군요.”
“구체적인 지시는 내린 게 없고?”
“두루뭉술한 지시뿐이었습니다.”
“그럴 만하지, 아직 이사회에서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는 상황에서 그런 명령을 명시적으로 내렸다가는 이사회가 뒤집어질 테니까.”
개헌과 총선거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스쳐지나가며 김창암 국장은 말을 이었다.
“철기와 나, 외무이사 등은 같은 계파에 속해 있다고 여겨지지만 개인적인 뜻은 전혀 다르네, 그리고 철기가 그런 뜻을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짐작은 여러 차례 했네만.”
“만주를 정복하고, 일본인들을 돌쇠로 삼고, 사해로 뻗어나가 이 민족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자고 하시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런 클리셰가 있지, 마님이 돌쇠에게만 쌀밥을 주는…. 아 잠깐만, 내 뇌가 오염됐다. 정신차리고.
“외무이사는 그런 광언에 동조하지는 않을 인물이네, 나도 마찬가지고. 외무이사는 현실주의적인 인물이야.”
“육군이사님도 세계정복을 위한 전쟁을 당장 일으키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영토를 넓힐 기회가 굴러들어왔으니 잡자는 거죠.”
“그게 제대로 된 기회일지조차 의심스럽긴 하네만, 설령 기회가 맞다고 해도 먹었다가는 순식간에 게워내게 될 걸세. 국력만 낭비하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민족을 위한 양지바른 자리를 잡자, 그런 주장을 모두가 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 양지바른 자리 좀 서로 내놓으라고 으르렁대다가 터진 게 이번 전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