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08)
종?전(1)
아우렐리아는 시민권자가 아니면 어떤 복지도 받지 못하는 걸 넘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그리고 그 시민권도 단순히 이 나라에서 태어난다고 주는 게 아니다. 부모 모두 시민권자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자동적으로 부여되지만, 부모 중 한 사람만 시민권자라면 준 시민권자로 분류해 어느 정도 차등을 둔다. 물론 자신이 능력을 갖췄을 때 어렵지 않은 절대평가 시험을 통과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면 시민권을 받을 수 있지만, 연방 영토 내에서 출생하고 최소 10년 이상 연속해서 연방 내에 거주해야 하며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등 시민권을 인정받는 조건은 까탈스럽다.
비슷한 준 시민권자로는 시민권자와 결혼한 타국 여성-타국 남성은 인정 안 해준다-이 15년에서 20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경우가 있다. 물론 법적으로 결혼이 무엇인가를 아예 규정 자체를 안 해 놨으니 기준이 애매해지자 ‘사회상규상 결혼’이라고 적어놨다. 즉 결혼 상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공무원들에게 판단을 떠넘긴 셈이다.
완전한 외국인이라면 용감한 행동, 혹은 장기간의 헌신적인 행동으로 연방정부에게서 훈장을 비롯한 상훈이라도 받아오지 않는 한-몇 안 되는 시민권 프리패스다-시민권 따기도 까다롭다.
물론 그 시민권 하나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 나라에서 걷은 세금이면 당연히 이 나라 국민들을 위해 쓰이는 게 상식 아니던가?
아우렐리아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문호가 넓고 개방적인 국가다. 어찌되었든 재산 한 푼 없어도 시민권을 따기만 하면 노력 여하에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은 국가에서 보장해준다.
미국이야 뭐 미합중국이다.
그와 반대로 근본적으로 융커가 아니면 출세할 수 없는 구조인 신성로마제국은 출신 지역, 출신 가문, 재산 등등 척 봐도 그 조건이 훨씬 빡빡하다.
물론 옌티안 가문은 엄연히 공작가이며, 명문가다. 2대 전에 이중제국 총리를 배출했으며 이번 대에 프로이센 원수를 배출했지 않은가.
하지만 독일계 국가들의 지랄맞은 귀천상혼 원칙을 적용하면 어느 가문 기준으로든 단 한 번도 통치가문인 적이 없었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의 봉신 가문으로 시작해 합스부르크의 봉신, 이제는 호엔촐레른의 봉신이니까 어느 모로 봐도 낙혼이다.
그렇기에 빌헬름 2세는 이를 절대 반길 리가 없었다.
물론 공작은 명장이며 충신이다. 하지만 그게 꼭 사위를 삼고 싶다는 뜻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기에 옌티안 공작은 황제 집무실의 문을 여는 순간 총알은 안 날아와도 물건 하나쯤은 날아올 걸 예상하고 몸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빌헬름 2세는 굉장히 평온했다.
“공작, 내게 할 말이 있다지.”
“황제 폐하.”
옌티안 공작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만 전쟁을 끝내시는 걸……”
“이미 들었네.”
“예?”
“자네가 알현 요청을 하고 들어오는 동안 그 애가 이미 왔다 갔으니까. 딸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다더니.”
뭔가 해탈한 표정의 빌헬름 2세는 말을 이었다.
“인정 안 해주면 야반도주라도 해서 갈대 반지라도 나눠 끼겠다고 하는데 내가 뭘 어쩌겠나? 그리고 실제로 그러고도 남을 애고.”
“……….”
“그래서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나? 그 애가 그러더군, 자네가 그 애 승마 교실 선생이었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딸도둑놈을 한참 노려보던 빌헬름 2세는 입을 열었다.
“일 이야기나 하지, 그래서 친애하는 사촌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자는 건가?”
“예, 폐하. 이대로 가다가는 웃는 건 신대륙의 폭도들과 아우렐리아인들뿐일 겁니다.”
나라 곳간이 비었다.
“이제 병사들을 제대시켜 농사를 시키고, 화약공장을 비료공장으로 바꾸고, 독가스 공장을 살충제 공장으로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승리하고도 패배할 것입니다.”
천천히, 카이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전쟁은 짐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네, 자네도 알겠지만, 도리어 선공을 강력히 주장한 건 군부였지.”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선공 자체에도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는 전부 프랑스에 지우면 됩니다.”
“많은 건 바라지 않네, 알자스-로렌과 저지대, 이번에 손에 넣은 동방 영토, 그 정도면 되겠지. 그 정도면 친애하는 사촌도 납득할 걸세.”
어차피 러시아는 이중제국에서 부속품이 아니던가. 이중제국의 진짜 본체는 브리튼 섬이다. 지금 이중제국을 지배하는 것이 로마노프 왕조라고 해도 그건 바뀌지 않는다. 애초에 수도도 런던이고.
현 이중제국의 황제 니콜라스 조지 로마노프, 일명 조지 5세 역시 자신이 러시아인이라는 인식보다는 영국인이라는 인식이 더 강할 터. 그는 러시아의 차르이기는 하지만 대영제국의 황제로써의 인식이 훨씬 강했다.
그리고 그것은 제국의회도 마찬가지, 애초에 귀족들은 뭐 주워먹을 것도 없고, 영지 대부분은 토지개혁으로 사라진 관계로 러시아보다는 부유한 브리튼 섬으로 이주하는 것을 택해 영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영국 하원을 그대로 계승한 제국의회 하원도 다를 게 없었다.
즉 충분히 합의할 만 하다.
“다만 저지대를 차지하더라도 이 지역에 대한 비무장화 약속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그럴 의사가 있으시다면 말입니다.”
“그건 짐이 결정할 일이네. 그리고 짐은 굳이 우리 친애하는 사촌에게 굴욕적으로 베를린에 오라고 할 생각도 없네.”
“예?”
“짐이 직접 런던으로 거동하겠네, 그러면 이중제국 역시 과한 굴욕을 받지는 않아도 되지 않는가.”
외교관이 평화 협정에 도장을 찍으러 적국의 수도로 간다는 건 보통 항복할 때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였음에도 관대하게도 베를린으로 부른다는 굴욕을 주지 않고 런던으로 직접 찾아가는 정성을 발휘함으로써 화해의 의사를 표현한다.
“본래 이번 전쟁이 끝나면 빅토리아를 친애하는 사촌의 손자 중 하나를 골라 시집보내고자 했네.”
손자인 이유가 있다. 빅토리아 황녀는 너무 늦둥이다. 어느 정도로 늦둥이냐면 황녀 본인이 10대 후반인데 빌헬름 2세는 이미 70을 넘어 80을 바라본다. 딸이 아니라 손녀뻘이다. 물론 황후와의 나이 차이도 서른 살 넘게 나서 가능이라도 했던 거지만.
그리고 두 황제는 동갑이다.
당연히 손녀뻘 딸을 시집보내려니 상대 아들들은 다 진작 결혼해 애들이 대여섯씩 있으니 당연히 나이가 비슷하기라도 한 손자 대에서 상대를 찾아야 했다.
물론 어느 딸도둑놈이 홀랑 물어가버렸으니 그 계획은 폐기처분해야겠지만.
“알았나?”
“예, 폐하.”
금이야 옥이야 기른 딸을 건드린 도둑놈에게 한 번 더 꼽을 준 카이저는 옥좌에 몸을 깊숙하게 묻었다.
“공작의 청을 받아들이겠네, 군부에 명해서 일단 휴전을 제안하라 하겠네.”
“소신이 아는 한 현재 수 개월 내에 공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이미 아일랜드 상륙전에 병력을 보낸 것만으로 공세 역량이 소진되었으니까. 그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일랜드인들이 황족 중 한 명을 보내주시면 국왕으로 성심성의껏 섬기겠습니다~ 했다고 해서 공세하려고 남겨놓은 예비병력을 다 돌리는 등 기둥뿌리를 뽑아 가면서 지원을 해 주냐고 고함을 지르면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카이저는 카이저다.
“물러가게.”
카이저는 축객령을 내렸다. 가기 전에 이 불속성 효녀와 딸도둑놈의 사이를 공표하고 약혼 정도는 시켜놓고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종전과 동시에 결혼식을 벌이고 결혼식장에 사촌 쪽 친척들을 초대해주면 두 가문이 다시 화합하는 멋진 축제가 될 터.
저 무엄한 공화주의 폭도들 때문에 두 위대한 가문이 이게 무슨 고생이었고 얼마나 많은 무익한 피가 흘렀단 말인가. 그 생각만 하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
“푸엣취!”
어으, 딱히 춥지도 않은데 누가 내 욕이라도 하나, 안 그래도 요 며칠 귀가 간질거리기는 하더라.
국장 양반은 아가씨들이랑 이야기하고 있고, 나는 뭐 굳이 따라들어가지 않았다.
‘더 엮이고 싶지가 않아.’
저 아가씨들의 다음 루트는 뻔하다. 괴뢰국의 군주, 평생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서 살다가 자신의 인생에 선택권이라고는 없이 질질 끌려다니다가 그 감옥에서 외롭게 죽든가 아니면 누군가의 총질에 맞아 비명횡사하든가.
공산주의자부터 일이 수틀리게 되었다고 판단한 헌법수호국까지 그 총알의 출처도 제법 다양한 가능성이 있을 테고.
‘차라리 그냥 전쟁터나 나가라고 했으면…….’
75식 전차의 카탈로그가 팔랑팔랑 넘어간다.
70톤급에 105mm 포를 쓰는 중전차, 중형전차를 개발한다고 50톤 잡고 만든 놈이 장갑 강화하고 서스펜션과 보기륜을 늘리고 하니 70톤급이 되어버렸다. 티거 2냐. 뭐 중전차 개발하려다가 155mm를 달고 90톤짜리-이것저것 개선한 끝에 100톤이 되는 사태는 막았다-초중전차가 되어버린 90식보단 좀 낫다만. 90톤이라니, 이놈의 신형 탱크들이 단체로 닉값하는 거냐. 무게에서 제식명 따온 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선에서 포를 쏘고 기관총을 갈기는 건 최소한 도덕적 죄책감은 덜 수 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저놈들이 우릴 죽일 거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고, 전쟁의 명분이 문제기는 한데 여기서 확실하게 한쪽 깃발을 휘두른 끝에 승리하지 않으면 회색분자로 양쪽 모두에게 밟히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이것이 세계대전이다. 이것이 대전쟁이다.
그러니까 이건 어쩔 수 없다. 이 시대는 광기 어린 약육강식이 지배하고 있고, 살기 위해 다른 이들을 물어뜯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기르던 개라고 해도 개 대접을 개차반으로 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 개가 배신한다고 불평하면 안 되는 법이지.’
어쩌면 이 역시 공조해줘서 베리야 실각시켜주면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해 두고 배달사고를 빌미로 입 씻은 처칠의 뉴 시즌.. 아니, 여기서는 애진코트 사건이 없었으니 프리퀼 애진코트가 아닐까? 아님 말고.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나스탸 양?”
여우상의 소녀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예, 안녕하세요.”
나는 슬쩍 창가에서 물러났다.
“국장님과 대화는 끝나셨습니까?”
“예, 당분간 저희 담당관을 맡으신다면서요?”
“……..?”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못 들었어. 이 양반이 무슨 인사절차를 이따위로 해?
“농담이에요, 아직 안 정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식겁했습니다.”
당신들과 가까이 오래 있으면 내 멘탈에 좋을 것 같진 않다고, 내가 이용해먹고 이용 가치가 다하자 죽여버리거나 죽게 만든 사람이 한둘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나름대로 죽일 이유가 있는 인간들뿐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