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14)
대비(2)
1939년 11월 11일, 부산.
“왜 덥지.”
가을인데.
시베리아에 너무 오래 냉동되어 있어서 내 신체감각이 고장난 게 틀림없다.
원 역사면 막대과자 데이랍시고 막대과자 할인 시즌이었겠지만 그런 기념일은 여긴 없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데다 배급제가 돌아가는 시기에 연방공휴일이면 모를까 기념일 같은 거 챙길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인공섬이라도 만드는지 바다 한가운데에서 뭔가 어마어마한 공사를 하는 듯 보이는 모습이 해안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버스가 멈춰서자 뛰어내린 나는 짠내나는 바람을 느끼며 한 커다란 집으로 향했다.
“몇 분이십니까?”
“일행 있습니다. 김구라는 이름으로 예약…….”
“아, 제일 안쪽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김구라, 그걸 요릿집 가명으로 쓰시다니. 거 참.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길은 제법 복잡했지만 그래도 동선 자체는 제법 단순했다.
“아, 왔나?”
“아니, 무슨 이런 데를……”
“공금으로 거하게 밥 한 번 얻어먹는다 생각하게.”
“이거 작정하고 털면 횡령으로 걸릴지도 모릅니다?”
“공작비로 처리되니 상관없네, 괜히 이런 데 갈 때마다 우리가 돈 내는 게 아니야.”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애초에 누구 포섭할 때는 이런 데서 하는 게 정통이거든. 물론 이런 식으로 포섭하는 놈은 그 자체로는 별로 가치가 없고 더 중요한 곳에 선을 대기 위한 통로 경우인 경우가 많지만.”
“그래서 저도 포섭하실 겁니까?”
“자네야 뭐 현역 장교인데 국가를 위해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 하지 않겠나?”
“그러면 뭐하러 부르셨습니까?”
이런 자리 엄청 불편하다고.
“일단 자네에게 소개부터 하지.”
미닫이문이 열렸다.
“왼쪽 분은 이번에 입각하신 재무장관 유일한이네.”
컥, 독립운동가 분들?
“가운데 분은 당 원로이신 단재 신채호, 그 옆에 계신 분은 같은 원로분이신 우강 양기탁, 송재 서재필, 외무장관 김규식이시네.”
야, 나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화려한 이름들이다. 저절로 허리가 굽혀지네.
“대령 김……”
“거 헌헌장부로세. 잘 생겼구만.”
관등성명을 말하려다가 말이 끊겼다.
“흠, 인물 좋구만, 그런데 왜 아직 혼인을 안 했나? 사내대장부가 혼인을 안 하는 것이야말로 불효……”
“거 단재, 시대가 바뀌었지, 우리 때야 고등학교만 졸업하거나 좀 이르면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잽싸게 혼인하러 가는 게 보통이었지만 요즘은 시대가 시대니만큼…….”
“라,,,,때는,,,,말일세,,,,,”
“말은 Horse고, 이 사람아.”
“크흠, 지금 그 이야기하자고 부른 거 아니지 않습니까? 아, 자네도 앉게, 좋아하는 것 있나? 아니, 여긴 메뉴가 고정이라서 자네 좋아하는 걸 시켜 줄 수가 없겠구만, 하하하! 그래도 고기를 싫어하진 않지?”
“어우, 없어서 못 먹습니다.”
“그래, 고기 한 번 원없이 좀 뜯어보자고, 요즘 주치의가 몸에 부담되니 고기 좀 줄이라고 하던데 거 위장에 기름칠을 안 하고 사내대장부가 어떻게 사나? 무슨 중놈도 아니고 말일세, 안 그런가? 응?”
그런데 정치인이랑 현역 군인이 만나는 거 많이 위험한 거 아닌가? 근데 그거 감시해야 할 정보국장이 여기 와 계시네, 그런데 대체 왜 부른 거야?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김창암 국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가까이 했다.
“지금 좀 당혹스럽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이거….. 무슨 쿠데타라도 꾸미시는 겁니까?”
“쿠데타? 하핫, 자네 농담도 할 줄 아는군, 쿠데타를 하려면 대령 한 명으로 될 것 같나? 이 나라에서 쿠데타는 거의 불가능해, 정확히 말하자면 쿠데타를 할 수준의 지지를 갖추면 정치를 하는 게 훨씬 낫지.”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 현역 군인이 정치인 만나는 거, 좋게는 안 보일 거 아닙니까.”
“모든 군인이 자네처럼 생각만 해준다면 내 일이 반은 줄어들겠지, 하지만 이건 나라 안의 일이 아니라 바깥의 일이네, 자네도 이 계획의 중추 역할에 들어가야 하고,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절대 공식화할 수는 없어도 명령이네.”
그렇게 말한 뒤, 국장은 자세를 바로했다.
“조금 소화가 잘 될 만한 이야기를 하자면, 지난주에 런던에서 혁명이 터졌습니다. 마르세유에서는 수병 폭동이 일어났고요, 그러니 조만간 전쟁은 끝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거 잘 됐구만.”
“황제를 비롯한 로마노프 황가는 런던을 탈출, 남아프리카 식민지로 떠났다고 합니다.”
“남아프리카? 그….. 희망봉 있는 데 말이오?”
“그렇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요릿집 안을 메웠다.
“현재 독일군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캅카스 일대에 총공세를 가하고 있고, 혁명으로 혼란에 빠진 이중제국군은 분쇄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남프랑스 일대에서 서부전선 병력이 가했던 공세는 흐지부지 분쇄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승리가 확정된 지금 많은 것을 확정해야 합니다. 물론 큰 틀은 내각에서 결정했지만 우리가 논해야 하는 건 방법론이죠.”
“영토를 넓히는 게 적절했다고 보지는 않네.”
재무장관 유일한이 불평을 토로했다.
“영토를 고구려 이래 가장 크게 넓힌 건 확실히 고무적이라고 할 만한 대공이네, 그런데 싱가포르와 류큐는 그렇다쳐도 호주와 뉴질랜드 등을 손에 넣어서 제대로 통치를 하려면 대체 얼마나 되는 재원이 소모되어야 하겠는가? 게다가 거기 있는 백인들의 관리는 어쩌고? 다 추방할 수도 없잖나.”
“이미 국내의 인구밀도 문제가 심각한데 호주 쪽으로 인구를 빼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뭣보다 이미 내각에서 결론이 난 문제 아닙니까?”
상하원을 전부 통과했으니 막차가 떠난 셈이다.
나야 뭐 여기서 혓바닥 놀릴 군번이 아니니 고기나 구….울 일은 없었다. 종업원들이 고기를 구워 줬으니까. 그런 관계로 먹기만 했다. 구운 떡에 소고기를 싸서 먹는데 맛이 죽여주네. 내 지갑으로 갈 만한 요릿집이 아니라서 문제지.
“미국인들에게서 받아낸 배상금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전쟁 끝나면 그쪽 배상금도 또 들어올 것 아닙니까?”
“그건 써버리면 끝인 돈 아닌가, 이건 영원히 남는 영토고, 관리비는 영원히 나갈 텐데 일시불을…….”
“그야 천천히 영토에 편입시키면서 세수를 늘리면 되는 것 아닌가, 천여 자네는 너무 사서 걱정을 하는 경향이 있…..”
“그, 안 그래도 조만간에 대규모 예산이 나갈 일이 있긴 있을 듯 합니다.”
“백범,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런데 왜 예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일본 식민지를 들먹이냐는 말이야.”
“?”
일본이라니?
“내각에서 막판에 마음을 바꿔서 프랑스 식민지였던 일본을 우리에게 귀속시키기로 했네.”
낮은 목소리로 추가된 설명에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본은…..”
“철기 말대로, 합병할 수 없지. 식민지로 굴리는 게 최선이야.”
천천히 일어난 국장은 숟가락으로 유리잔을 몇 차례 두드렸다.
-땡땡땡!
그러자 종업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 밖으로 사라졌다.
“이곳만큼 도청에서 안전한 곳도 사실 이 나라에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은..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내각의 고위 인사들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애국심이 투철해 어딘가에서 발설하지 않으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는 내각에서 아직 정식 심의를 거치지 않은 사안이나, 여러분도 알아두셔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이야기요?”
“과학 소식에 관심이 계셨던 분들은 작년에 신성로마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관찰된 핵분열 반응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
모두가 금시초문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눈이 번쩍 뜨였다.
핵분열?
“신성로마제국 과학자 오토 한이 우라늄에 입자선을 조사해 바륨과 비슷한 조성의 물질을 검출했다는 내용이 과학지 중 하나에 실렸습니다. 학계에서는 제법 유명한 이야기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방출됩니다.”
“……………..”
“1905년 신성로마제국의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이론(특수 상대성 이론과 이를 통해 도출되는 질량-에너지 동등성 법칙)에 따르면 이를 이용해 상당량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 정보부가 용담대학교에서 물리학 연구진에게 의뢰한 결과, 이를 군사적 목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뭐시기 원자인지 서자인지 하는 물건을 군사용으로 쓴다고?”
“크게 두 가지입니다. 선박이나 항공기, 그 외 발전소의 동력으로 기존의 석유 보일러를 대체해 이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타당성 검토, 그리고 이를 강력한 폭탄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입니다. 후자를 검토한 결과, 천연 우라늄 속에 있는 우라늄-235를 1kg 농축 분리함으로써 황색 화약 1만 8천 톤에 달하는 위력의 폭탄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를 농축하기 위한 이론적인 기반도 있습니다.”
“대충 지금 신무기를 연구하고 있다는 거군.”
“우선 실질적인 농축 기술을 개발해야 하며,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탁상에서 만들어낸 극히 기초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들뿐입니다, 우리는 이 우라늄을 어떻게 농축해야 하는지도 아직 판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거 원심분리기로 돌리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핵연료 재처리해서 플루토늄 만들면 더 쉬운데…… 아직 발견이 안 됐나?’
속으로 생각했지만,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나중에 국장한테 슬쩍 물어봐야지.
“그런 관계로 이 신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미합중국에서, 그리고 이중제국과 프랑스에서 받아낼 배상금 상당량을 유용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하긴 핵개발에 돈 많이 들긴 하지. 그런데 벌써부터 핵무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핵개발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시작하다니, 아, 근데 생각해보니 지금이 원 역사면 벌써 2차대전 터진 시기겠구나, 그럼 말이 되지.
“이번에도 다들 느끼셨겠지만 우리의 최대 가상적국은 미국입니다. 심지어 이제는 만주에 괴뢰국을 세울 의사까지 대놓고 표명하고 있으니 미국인들이 이 나라를 멕시코처럼 만들어버리기 전에 우리도 놈들이 우리를 건드리면 큰일난다는 걸 느끼게 해줄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 미제가 쳐들어왔을 때 우리가 되돌려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주체의 핵탄! 수령님의 불벼락 맛…. 크흠.
“이론상 이 신무기 한 발이면 도시 하나를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미군 병력들도 지워버리고, 미국 함대도 녹아버린 쇳물로 만들어줄 수 있겠죠. 더 이상 전함 같은 건 필요없을 겁니다.”
“그런데 자네 말대로라면 다른 나라들도 그…. 원자 무기라는 걸 만들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오, 예리하시네. 원 역사에서도 이놈 저놈 다 만들었지. 정권 유지하겠답시고 핵개발하다가 자국민 다 굶겨죽인 나라도 있었고.
“물론 그럴 겁니다. 애초에 저희가 개발에 착수한 것도 신성로마제국에서 해당 기술을 무기에 응용하기 위해 연구 중이라는 정보가 새어들어온 것이 계기, 그러나 현재 출발점은 거의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인들이 뉴욕이 완전히 파괴될 걸 감수하고 전쟁을 개시할 것 같지는 않네만, 물론 우리가 뉴욕까지 그 폭탄을 가져다놓을 능력이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네만.”
그래, 그래서 원 역사에서 ICBM 같은 거 만들고 그랬던 거 아니겠어, 근데 고다드 박사가 이 시대 사람이….겠지?
“이 역시 여러 가지로 방도를 연구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 대량의 예산이 필요하며….. 이는 결국 배상금에서 유용해야 하고, 따라서 많은 예산을 점령지 안정화에 돌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를 여기 부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예?”
순간 얼빠진 소리를 내 버렸다. 아니, 내가 예산 유용과 점령지 안정화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여기 계신 분들 중 점령지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들 법한 장소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가 아니겠는가.”
“호주와 뉴질랜드는 생각보다 인구가 적으니 가뜩이나 살 곳이 부족해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이 나라의 인민 가운데 일부만 이주시켜도 순식간에 백인들을 머릿수로 깔아뭉갤 수 있습니다.”
하긴, 내가 알기로 21세기에도 두 나라 합쳐도 남한 인구수보다 적지 않았나. 지금이야 뭐.
“하지만 일본은 다릅니다. 인구수도 수천만에 달하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구까지 합하면 그 두 배에 달할지도 모릅니다. 이를 확실하게 조선화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뭘 하자는 건가?”
“이번에 괜찮은 걸 손에 넣지 않았습니까. 그… 핏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