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15)
대비(3)
물론, 그녀가 실제로 천황가의 혈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믿음.
그리고 신성한 핏줄을 손에 넣으면, 반드시 직접 합병하지 않아도 식민지로써의 이득은 다 뽑아먹을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세포이 항쟁 이전의 인도가 그런 식으로 현지 라자들과 상생하면서 불과 수천 명의 관료와 군인만으로 인도 전역을 쥐락펴락했으니까.
“따라서 그녀들이 천황가의 후손으로써 받아들여질 수 있게끔 적극적인 공작을 벌일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김 대령이 이를 현장 지휘할 것입니다.”
“제가요?”
“그래, 자네가 맡아줘야겠네.”
“명령이라면 수행하겠지만…..”
“잘만 하면 일본 통감직이 대수겠는가. 게다가 그녀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기도 하고, 결자해지란 말이 있지 않나? 나중에 이야기하세.”
어께를 두드린 국장은 말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니 이에 대한 내각의 결의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그게 오늘 우리를 모은 이유인가?”
“그렇습니다.”
“그 원자무기 개발 프로그램, 의미가 있는 건 맞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나가야 할 비용이지, 일단 신성로마제국이 원자무기를 실전배치한다면 미국인들은 당연히 만들 거고, 그때 가서 부랴부랴 만들어봐야 늦을 테니 미리 시작해야겠군.”
결국 정석적인 방법을 쓰기에는 돈이 부족하니 기책을 쓰겠다는 뜻이고, 거기에 내가 필요하다는 거군.
“그 원자무기가 실전배치되면 재래식 무기를 줄일 수 있겠나?”
“아마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본인도 찬성이네, 군비가 예산의 너무 많은 부분을 잡아먹고 있다고 전쟁 전부터 생각해 왔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고, 반대는 없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이었으니까.
***
“국장님, 우리가……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까?”
“최소 10년, 나는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네. 우리는 그 원료를 어떻게 농축해야 하는지도 몰라.”
“………..”
“원자량이 다르면 무게가 다르지 않습니까. 그럼 사금 채취하는 것처럼 해버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금?”
“예, 세탁기에 넣은 것처럼 큰 공장에다가 두고 빙빙 돌려서…. 그 사람들이 강에서 모래 퍼다가 사금 건져낼 때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기계로 막 돌리다 보면 무거운 놈들과 가벼운 놈들이 분리될 거고요.”
또 중성자가 잘 흡수되게 하려면 중수나 흑연 같은 걸 써야 한다던가, 체르노빌이 중수면 화재 안 났는데 흑연이라서 불이 걷잡을 수가 없었다고 다큐에서 본 거 같은데. 또 그 제어봉은 붕소로 만들어야 하는데 끝부분이 흑연이라서……
“흐으으으음.”
대령은 몰랐지만, 그는 이 발언으로 아직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던 아우렐리아의 핵개발을 최소 4년은 앞당겼다.
“뭐 나중에 생각하지. 점심도 고기였는데 저녁도 고깃국인 건 신경…. 안 쓰는군.”
오우, 내 입이 오늘 호강하는구나.
“중국 요리네, 쇄양육이라고.”
잠시 뒤, 육수에 불을 올리고 재료가 나온 걸 보자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거 그냥 샤브샤브 아냐?’
“저….. 그런데……”
내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곳 맞네.”
“이런 데 와도 됩니까?”
“왜 안 되나?”
아니 뭐시기뭐시기 법에 걸리지 않아요? 라고 하기에는 아직 그런 법이 생기지도 않았겠구만.
“음식도 제법 맛있네, 베트남이랑 중국 요리를 조합했다나.”
고기와 야채, 버섯 등이 익으면 라이스페이퍼에 싸서 먹는… 월남쌈이여 뭐여.
“마지막에는 면을 넣거나, 원하는 사람은 밥을 넣고 죽을 해서 먹는데 어느 쪽이 좋나?”
“아, 제가 골라도 됩니까?”
“자네 대접해주러 온 거니까.”
“아 네……”
“그리고 다 먹고 나서, 생각 없어도 연습이라도 해 보게.”
“아니, 그런 쪽입니까?”
“국익을 위해서네. 대령.”
가급적 바닥을 내려다보지 않으려는 내 행동에 국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숫기가 없어서야…. 아니, 그런 쪽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를까. 어지간한 작자들은 이런 데 데려가주면 좋아하는데 말이지.”
‘그런 아침에 서지도 않는 아저씨들이나 여자 치마 속 보면서 좋아하는 거고…..’
“자네가 여심을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이 취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참 좋겠네만.”
“애초에 갑자기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 자체가 좀…..”
내가 구시렁거리자 국장은 고개를 저었다.
“간자들이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미인계네, 미남계도 생각보다 자주 쓰지.”
“그럼 그 훈련받은 간자들 중 하나를 쓰지 그러십니까.”
“내가 그 이야기를 자네에게 해 줬던가? 상대를 바보로 보는 작전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말.”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미인계가 그냥 되는 줄 아나, 내가 예시를 하나 들어주지, 그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얻은 요원의 이야기인데 말이지.”
“해주셔도 됩니까?”
“더 이상 쓸모없는 정보네, 그자는 유럽인으로 위장했네, 토종 조선인이지만 외모가 제법 서양인과 닮았거든, 조상 중에 서양인이라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위조된 외국 여권을 들고 스웨덴 여자와 결혼했지, 아내와 자식은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심지어 그는 잠꼬대까지 덴마크어로 할 만큼 철저하게 위장했네. 그게 20년도 전 일이야.”
“자식을 낳고 나서는 그 아이를 신성로마제국의 김나지움에서 교육시키고, 같은 학교 친구의 부모는 기자였는데, 신성로마제국 차관의 개인 비서의 동생이었네.”
“그리고 조금씩 선을 뻗어서 차관의 비서, 차관 본인, 우리의 촉수가 닿는 이를 20년간의 공작 끝에 장관으로 올렸네.”
“그걸 위해서 그는 결혼도 하고, 20년간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위장하고 살았어.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요구하려는 것도 비슷한 부분이네.”
“천황을 손아귀에 확실히 넣으라는 거군요.”
“일만 잘 되면 전시계급을 평시계급으로 인정해주는 특례는 물론 장성 진급은 상수고, 최소 2성에서의 명예제대와 일본 통감 자리를 약속해주겠네, 한 몫 제대로 챙겨서 은퇴하게 해 주지. 그래도 자네는 잠꼬대까지 일본어로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의지할 사람이 필요할 거야, 지금 그녀들은 경계가 최대로 올라 있네, 뒷공작은 내가 할 테니 그저 그녀들에게 도움을 적당히 주게, 다만 간도 쓸개도 빼준다는 태도는 되려 의심을 살 테니 의무는 다하지만 그녀들에게 동정심을 품고 있어서 기왕 처리한다면 그녀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처리해준다는 태도를 보이는 게 낫겠지.”
‘야, 이게 공작원인가.’
“잠깐, 그녀 ‘들’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 둘을 한번에 데려온 게 실수였네, 이 작전은 그런 식으로는 성립하지 않아,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고, 눈과 귀를 막고, 결국 세상에 남은 단 한 가지에 절실하게 매달리는 심리 상태가 되어야지. 그래서 그녀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만, 그걸 자신의 의지대로라고 착각할 정도, 그 정도가 되어야 하네.”
“이간질을 시키란 겁니까.”
“그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건…….”
‘빼도 박도 못할 가스라이팅 아닌가?’
더 정확히는 스톡홀름 증후군이겠지만.
“대령,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고 있네, 하지만 맹세컨대 이는 국익을 위한 일이야. 천황이라 함은 저들에게 있어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고, 일본인들이 우리의 지배에 순응하면 일본인에게도 좋은 일이네, 우리는 군대를 안 보내도 되고, 저들은 무익한 죽음을 피할 수 있지. 소수 식자층은 대부분 프랑스와 유착한 이들이었으니 주인이 바뀌었다는 걸 알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고.”
“하지만…….”
“본래.”
국장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위정자라 함은 망국의 때가 오면 그 생명을 나라를 망국하게 한 죗값으로 바쳐야 하는 법이네.”
“애산에서의 송 황족이 그랬듯이, 명의 주씨들은 청이 들어섰을 때 모조리 주륙되어 고깃국이 되었으며 청의 아이신기오로 역시 태평천국이 들어섰을 때 그 가죽이 벗겨졌으며 태평천국의 황족들 역시 목을 매어 죽은 후 시체가 젓갈이 되었네.”
“해동의 땅에서도 이조가 들어섰을 때 왕씨는 모조리 물에 던져졌으며 백제 왕족들을 당나라로 끌려갔고 고구려 역시 그러했지.”
“평화로이 선양을 한 이들도 없지는 않았지, 신라라거나, 아니면 황제가 된 다음 날 국민에게 선양해야 했던 일일제라던가.”
“그러나 그들은 같은 민족에게 선양의 예를 취하여 목숨을 보전하기를 허락받았을 뿐, 다른 민족에게 침입당했을 때 황실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네.당장 패전의 죗값을 피하고자 이중제국의 황실이 저 남아프리카로 도피하지 않았는가.”
“…………”
“그런데 지금, 일왕가는 어떤가? 망국을 당해 애산에서 그리한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다가 목숨을 끊기는커녕 도망쳐 산 속 깊은 곳에서 고사리나 캐어먹고 있었지.”
“백이 숙제처럼 그렇게 지내며 스스로의 정체를 끝까지 숨겼다면야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을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정체를 들켰네, 그렇다면 유예되었던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본래는, 그러나 우리가 자비를 베풀어주는 걸세, 중요한 거야, 자비를 베푸는 거지,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한참 감경해주는 감형이란 말이네, 특별 사면이란 말이네. 절대 책임이 없는 게 아니네, 오히려 책임이 있기에 그 대가를 치르는 거지.”
“전……”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꾼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당장 하라고 하는 건 아니네, 대령, 자네는 젊어, 혈기가 끓을 나이고, 또 그 혈기 때문에 섣부르게 선택할 수도 있네, 그러니 천천히 고민해보라는 거네,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내가 젊기는 개뿔이… 전전생과 전생과 이번 생 합치면 100살은 진작 넘었다.
하지만 굳이 국장이 제시하는 퇴로를 이용하지 않을 까닭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김창암 국장은 발코니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연기를 길게 뿜어내었다.
“뭐하나. 백범.”
“우남.”
“무슨 일이 있길래 남의 방 창문에 대고 담배를 그렇게 뻑뻑 피워대나?”
맞은편 발코니로 나온 이승만을 바라보며 김창암은 쓴웃음을 지었다.
“민족.”
“머리 꼬리가 있어야 소고기인지 물고기인지 아네.”
“민족의 영광이란 거 말이네. 그런 게 가끔 의미가 있나 싶어서 말이네.”
“의미야 없지.”
딱 자른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현실이 있지, 저들에게서 자원을 싼값에 뜯어오면 우리 민족기업들은 더 싼값에 좋은 물건을 시중에 공급할 수 있겠고, 이는 우리 조국의 부의 증대로 이어지네. 마찬가지로….”
“그렇지만, 식민통치란 건 자네도, 나도 알 듯이 가면 갈수록 비효율적이 되어가고 있잖나? 식민지 통치에 드는 비용이 식민 통치로 얻는 이득을 초과한 지 오래야. 전 세계적으로.”
“그거야 그렇지. 내가 내각에 남아 있었으면 일본 따위 받아오지도 않았을 거네.”
그렇다고 버리기도 어려웠다. 독일에 팔아넘긴다? 독일은 한동안 아프리카 식민지 운영만으로도 벅차서 극동의 식민지를 유지할 역량도 없었다.
미국? 죽어도 안 될 일이다. 예전이든 지금이든 아우렐리아의 제1가상적국은 미국이다. 북쪽에 이어 동쪽까지 미국의 영향권이 되면 해군의 부담이 막대해진다.
무엇보다 이번 전쟁에서 입증되었듯이 일본은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이 본토를 공격하기 전에 완전히 공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요새거점으로써의 존재가치가 크다. 일본을 쥐고 있으면 미국은 전시에 만주 지역에 제대로 된 병력도 보내기 어려울 터.
그렇다고 이중제국이나 프랑스에게 다시 팔아넘기기에는 둘 다 식민지를 유지할 능력을 회복하려면 수십 년은 족히 걸릴 지경이다.
결국 남에게 줘버리려니 받을 상대가 없거나 절대 줘서는 안 되는 상대, 가지고 있자니 골치아픈 존재가 일본이었다.
그러니 이 계륵을 최대한 탈 안 나게 먹어보고자 하는 계략이었지만, 그게 도덕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전심전력으로 하게 만들기 위해서 자기도 안 믿는 헛소리를 젊은 청년에게 떠들었다.
“가끔 우리가 약자였다면, 식민지배를 당하는 처지였다면 어떨까 생각하네. 그랬다면 독립을 쟁취하기 전이라면 이런 말을 했겠지, 하느님이 내게 네 소원이 무엇인가 하면 내 소원은 독립이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다시 물으면 내 소원은 독립이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면 완전무결한 자주 독립이오.”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진 소리군.”
“그리고 독립을 한 뒤에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나, 우리가 다른 나라의 침략에 고통받았으니 타국을 침략해 지배하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국방력은 자신을 지키기에 충분할 정도면 족하다거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그 자국을 지키기 위한 국방력조차도 한도 끝도 없었다.
쉴 틈 없이 신무기를 개발해야 하고,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아등바등해야 했다.
“차라리 그렇게 순진했었으면 좋겠네.”
세상을 뒤덮고도 남을 만한 문화를 가지기보다 자신을 지켜 침략당하지 않고도 남을 만한 군사력을 가지기가 힘들다.
침략당하지 않기 위해 남을 침략한다. 이토록 아이러니한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보다도 어려운 것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한 군사력이라니, 참…. 우습기 그지없군.”
남의 침략에 일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일본 열도만큼은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남의 침략할 용기를 내지도 못하게 하려면 일격에 한 개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죽이고도 남는 위력의 막강한 무기들을 개발해야 한다.
결국, 뒤처지지만 않기 위해서라도 군비경쟁과 확장주의라는 광란의 질주에서 벗어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