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19)
분쟁(3)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병사들이 움직인다.
이곳에 움직이는 병력은 극히 일부, 고작 2개 중대에 불과했다.
황궁을 수비하는 병력 중에는 황태자에게 감화된 젊은 장교들이 있었다.
그러나 황태자의 이상은 잃을 게 많고 혈기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늙은 영관급의 장교들에게는 닿지 못했고, 결국 중대장과 소대장 정도의 젊은 장교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한계치의 병력인 2개 중대 병력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정식으로 폐위되지 않았다.
오직 거기에 걸어볼 만 했다.
“아버지와 내각의 각료들을 사로잡은 뒤 아버지께 양위를 강요하겠소, 그리고 내가 정식으로 즉위하면 모든 문제는 끝이오.”
에티오피아는 전제군주국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라.”
달라야만 한다.
“나라면 국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해줄 수 있어.”
주먹을 움켜쥔 황태자는 시체가 된 병사들의 품에서 총을 집어들었다.
황태자를 유폐하고 감시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던 병사들은 이미 전멸해 있었다.
거창한 연설은 없었다. 그런 건 다 끝나고 나서 해도 된다.
“총성이 이미 울렸으니 경비 태세가 강화되고 있을 겁니다.”
“정면돌파한다. 저들이 태세를 정비하기 전에 친다.”
“예, 황태자 전하!”
***
“누구냐! 신원을 밝혀라!”
“이 나라의 적법한 황태자 암하 셀레시에다! 문을 열어라!”
“황궁은 봉쇄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쏴!”
총성과 함께 병사들이 나동그라졌다.
“반역이다! 서문에 반란군이다!”
“제기랄.”
총알에 맞지 않은 초병 하나가 고함을 질렀고, 곧장 곳곳에서 불이 켜졌다.
“제길, 한 개 소대씩을 차출해서 남쪽과 동쪽, 북쪽을 막는다!”
“나머지는 어떻게 합니까?”
“병력 절반은 시외에서의 증원병력을 저지한다. 한 개 소대는 즉시 나와 함께 황궁으로 돌입한다!”
어차피 황궁 내부에서는 많은 병력을 한 번에 움직일 필요가 없다.
황제의 평소 동선과 지금쯤 있을 위치, 패닉룸의 위치, 전부 알고 있다. 아무튼 그는 황태자였으니까.
‘아버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십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 왕좌에서 내려오셨어야죠.
만일 당신의 망집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제가 포기하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황제가 되겠습니다. 아버지, 황제의 자리는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모든 국민들의 수만큼이나 무거운 것, 찬란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당신은 그 짐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 짐을 놓게 해 드리겠습니다.
***
담배꽁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습기 그지없구나.”
아디스아바바의 대사관에 있는 요원들의 보고를 받은 국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비는 아들의 일로 마음이 착잡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리를 비워 반역을 피했고, 아들은 제 연인을 구하기 위해 아비에게 반역하다니.”
수도를 장악했지만, 황태자는 정작 황제를 찾지 못했다.
처참한 꼴이 되어 비참하게 지하감옥에 방치당하고 있던 연인을 구해내고, 각료들의 신병을 확보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바로 아들의 마음으로 착잡해진 황제가 도시 외곽으로 경호원 몇만 거느리고 조용히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었다.
너무 조용히 움직인 탓에 황궁 내의 사람들마저도 황제가 자리에 없다는 데 당황했을 정도였지만, 덕분에 황태자는 황제를 조기에 제압하지 못했다.
사태를 파악한 황제는 즉시 지방에서 자신에게 충성하는 군대를 소집한 뒤 즉시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하면 둘 다 추방으로 끝내주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차마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지는 않았던 황제의 뜻이었지만, 황태자는 이를 묵살하고 도리어 아버지를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하는 패륜을 선보였고, 이에 곧장 쿠데타는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수도는 황제의 손에 다시 떨어졌습니다. 황태자는 북부 지역으로 탈출해 군대를 다시 모으려 하고 있답니다.”
기근을 겪은 동북 지역이라면 황제의 실정에 맞서 황태자를 지지할 세력이 없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여기서 신성로마제국이 개입했습니다.”
“안 끼면 이상하지.”
“예, 아무튼 열강들이 내전에 개입하기 시작한 이상, 상황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의 전쟁은 끝났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발칸 방면을 수습하기 위해 미국 관할지를 전부 묶어서 거대한 제국을 탄생시켰다.
이탈리아 반도, 발칸 반도, 아니톨리아 지역을 모두 한데 묶은 제국.
물론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제국이 성립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좀 늦게 되었을지언정 미국 역사상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난 인물인 루즈벨트는 윌슨과 같이 개인 감정 때문에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일을 벌이지 않았다.
원 역사에서 1차대전기에 우드로 윌슨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개인적인 반 가톨릭, 반 오스트리아 감정으로 인해 제정 폐지를 요구했고,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붕괴시켰다.
이는 단기적으로도 발칸 반도에 대혼란을 불러일으킨 끝에 지역 전체를 피바다로 물들였고 나치를 집권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폭풍은 2차대전뿐 아니라 그 이후의 동유럽 공산화, 그리고 한 세기 후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이어졌다.
만약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윌슨이 가톨릭 독재라고 혐오한다는 개인 감정만으로 갈가리 찢어버리지 않고 독일 수준으로라도 남겨두었다면 합스부르크 왕가는 언제나 했던 것처럼 러시아와 적대하며 러시아가 강해지지 못하게 견제하는 역할을 했을 테니까.
결국 21세기까지도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는 문제로 후임 대통령들을 개고생시킨 근본 원인을 자기 개인 감정 때문에 제공한 셈이었으니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윌슨탕을 씹어도 저승에 있는 윌슨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일어나지도 못한 일이지만, 정치의 괴물 루즈벨트가 이러한 지역적 역학을 꿰뚫어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적어도 열강에 준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발칸 반도에 알박기를 하고 있어야만 이중제국의 부활도, 반대로 독일이 새로운 카롤루스 대제가 되어 유럽 전체를 지배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빠르게 파악한 FDR은 인수인계가 다 끝나기도 전에 급사해버린 커티스 전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했다.
알고 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반드시 필요한 조각들은 전부 손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아나톨리아, 발칸, 이탈리아의 3개의 반도를 합쳐 만들어진 국가.
거기에 FDR은 공화국이 무조건 우월한 체제라고 확신하며 이를 전 세계에 이식하고자 했던 윌슨과는 다르게 충분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FDR의 눈에 들어온 왕가가 있었다.
합스부르크.
현 독일 황실과의 사이는 최악이지만 유서깊은 가문.
그리고 그 스스로도 거의 주장한 적 없지만, 몬페라토 후국을 통해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실인 팔레올로고스의 혈통이 이어져 있으니 나름의 정통성도 있다.
물론 후자보다는 전자, 즉 독일 황실과의 사이가 최악이며 가까운 시일 내에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더 중요했음은 물론이다. 후자는 거의 갖다붙인 명분에 가까웠고.
그리하여 FDR의 물밑조율 속에서 500년 만에 동로마 제국이 다시 태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서로 갈라진 지 너무 오래되어 동질성이 없다 한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직 중요한 건 필요에 따라 독일과 이중제국을 모두 견제할 수 있는 제 3세력이었으니까.
거기에 독일의 맹렬한 동쪽으로의 확장에 위협을 느낀 스칸다나비아 3국은 핀란드를 포함한 스칸다나비아 반도 전역을 장악하고 스칸다나비아 연방을 선언했고, FDR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목표는 오직 독일에 대한 견제.
공화당도 민주당도, 커티스도 FDR도 동의할 말이라면, 한 나라가 유럽의 패권을 잡는 게 미합중국의 미래에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고립주의를 선택하든, 확장주의를 선택하든 간에.
그렇기에 어께를 같이 맞대고 싸웠을지언정, 이 거대한 전쟁의 승리자인 독일에 대한 견제구는 당연히 있어야 했다.
반대로 같이 싸웠다 한들 미국을 근본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아우렐리아 역시 미국을 바짝 경계하고 있었다.
***
“제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큐슈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큐슈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분명히 말하겠네만 우리는 합병을 목표로 움직이는 게 아니네. 큐슈조차도. 애초에 완전 합병이란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아무리 ‘우리는 같은 국민’이라면서 세뇌를 해도 사회에서는 차별이 횡행하면 아무 소용 없는데, 지금 우리의 의식 수준이 그 정도는 될 것 같나?”
“불가능하겠죠.”
아무리 인종차별 나빠요, 다 같은 사람이에요, 노는 게 제일 좋아 피부색 상관없이 친구들 다 모여라 해도 인종차별 할 놈은 다 한다.
애초에 뭐라도 ‘내가 저놈들보단 낫지’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이고, 정 우월감을 느낄 상대가 없으면 그때부터 피부색이나 인종이나 그런 걸 가지고 늘어지기 시작한 거고, 그것도 안 될 정도가 되면 ‘날 알아보지 못하는 이 나라가 나쁜 거다’하면서 흑화해버리는 거고, 아무튼 그런 만큼 인종차별은 아예 완전한 분리독립을 시켜주지 않는 한 막을 수가 없다. 그리고 거기에 피해를 입은 놈들은 독립을 추구할 테고.
마찬가지로 피지배 계층끼리 서로 분쟁과 분열을 일으키고 우민화해서 통치하는 것도 영원히 써먹을 수 있는 방식은 아니며, 써먹다 보면 언젠가는 저 위쪽의 수작질을 파악한 피지배층이 연대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한계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진보와 사회의 변화를 총칼을 이용해 폭압적으로 짓누른다면 그 폭발이 유예될 수는 있어도 그 폭발력은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괴뢰국의 형성이었네.”
“과거형이군요.”
“현 상황에서는 가능할지부터가 의문이니 말이네. 게다가 진압한다고 해도 현 내각에서 강경파의 입김이 점점 커지고 있네.”
“강경파라면……”
“본격적인 식민통치. 우리의 첫 계획처럼 외교권과 군사권만 박탈한 채로 내정에 자유를 주는 독립국으로써의 일본의 재탄생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보고 군정을 하거나 기존 계획대로 차후 통감부로 축소될 예정인 임시 총독부 같은 게 아니라 영구적인 상설 총독부를 설치하거나 동인도 회사처럼 일본과의 무역을 독점하는 회사를 세우자는 주장이 내각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네.”
일본을 놓아주는 건 미국을 상대할 때에 막대한 안보적인 리스크를 선사하는 만큼 결코 고를 수 없는 선택지인데, 이미 한 번 불온한 기운이 퍼진 이상 자치권을 섣불리 줘버렸다가는 역효과만 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물론 아직 내각이든 의회든 간에 결정을 확고하게 내린 건 아니네. 여론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뒤집힐 수 있어.”
“그럼, 제가 뭘 해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