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24)
프로젝트(3)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이라는 말이 있다.
그 영변의 약산에는 진달래꽃이 아니라 거대한 연구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사실 21세기 시점에도 영변은 진달래꽃이 아니라 잡초도 안 자란다고 한다. 방사능 방호를 제대로 못 한 핵시설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방사선 유출로 인해 인근 지역이 식물도 못 사는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도 아마 마찬가지가 되겠지.
‘방사선 차폐는 콘크리트로 싸매는 것 말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
영화 같은 데서 보면 물 같은 걸로 씻어내리던데 깨끗한 물로 되려나? 그 프러시안 블루인가 뭔가 그걸 물에 타서 뿌리면 되나?
방호복은 또 어떻고? 흉악범들을 투입할 생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방호복 정도는 입어야 할 것 아닌가.
물론 ‘천연’ 우라늄의 자연방사선량은 그리 심각한 건 아니다. 농축우라늄이랑 플루토늄이 문제지.
“이원록 박사님, 어때 보이십니까?”
“겉보기가 중요한 건 아니지요. 내부 시설은……”
“사이클로트론이 하나 설치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대 크기의 사이클로트론 중 하나일 겁니다. 아마도요.”
물론 그 크기는 영화 같은 데에서 무슨 도시만한 입자가속기를 여러 차례 본 내게 있어서는 조그마한 크기지만……. 이 시대의 한계인가 보지.
“그 외에도 용담대학교의 물리학 실험실 수준의 장비는 다 갖춰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나라 최고 수준의 물리 실험실이라는 것이다.
“우선 원자로 시설은 연구실과 지하 통로로 연결되는 지하 공간을 파 두었습니다.”
만에 하나 터진다고 해도 지하에서 터지는 게 지상에서 터지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판단 하에 만든 구획이다. 원자로가 폭주하더라도 지하에서 터지면 암반이 쏟아져내려 매몰될지언정 낙진의 광범위한 누출이라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필요한 물자는 대량으로 비축해 두었으며, 추가로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철도를 통해 실어올 수 있습니다. 여기 외부에는 마을을 하나 조성할 겁니다.”
“마을이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분들, 그리고 그 가족 되시는 분들의 거주지입니다. 보안상의 문제이니 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물론 과학자 분들만 와 계시는 게 제일 안전하지만… 그래도 그분들도 가정이 있지 않습니까.”
하아, 때려치고 싶다.
하지만 핵이 얼마나 중요한 프로젝트인지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전전생에 우리도 핵 있었으면…. 하는 생각 몇 번이나 했던가.
국적에 관계 없이 긁어모을 수 있는 과학자는 전부 긁어모아 세 곳에 분산 배치되었다.
먼저 여기, 영변 약산에는 핵무기 설계 및 연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 그리고 최고본부가 밀집되어 있다.
인천에 속하는 강화도 마니산에는 핵연료 재처리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일단 재처리 프로세스도 아직 확정 못한 상황이라 부지만 잡아놓았지만…. 애초에 원자로가 있어야 재처리를 하든 뭘 하든 하지.
그리고 서울과 대전은 이론적 연구시설, 서울의 용담대학교 캠퍼스에서는 영변에서 할 수 없는 실험을 진행할 것이며, 이론 중추는 대전에 있으며 그 외에도 인천에 중수 생산공장이 있다. 이를 위해 전국적으로 자연과학 분야 석박사들은 있는 대로 긁어모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대학원생들까지 동원했다.
이 시설들의 보호를 위해 동원된 병력은 다 합하면 군단급은 되지 않을까. 당장 영변 연구소를 보호하기 위해 1개 사단이 인근으로 재배치될 예정이다.
‘수소폭탄은 나중 일이고, 원자폭탄부터 제대로 만들어야지.’
그런데 폐기물은 또 어떻게 처리한다냐…… 어디 배에 싣고 가서 바다 깊은 곳에 몰래 버리고 와야 하나?
저준위 폐기물은 거의 다 자연 방사선 수준에 불과하니 진짜로 그냥 대충 버려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놈의 반도는 화강암 지대가 대부분이라서 자연 방사선량 자체가 어지간한 저준위 폐기물 싸대기 양쪽으로 후려치니까. 지하실 환기 제대로 안 하면 라돈 나온다는 소리가 괜히 있겠냐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안전하니 외국 쓰레기장에다 버리면 되겠다.
문제는 중준위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이다.
중준위 폐기물은 방호복이나 원자로 부품 같은 물건, 고준위 폐기물은 99%가 사용 후 핵연료니까 이건 버리는 게 아니라 재처리시설로 가야지. 재처리시설까지 거치고도 남은 거면 몰라.
“이건 그냥 컨테이너에 담아서 바다에 버려야겠는데요?”
미친 소리 같지만 제법 합리적인 소리다.
컨테이너를 밀봉만 잘 해서 해수와 직접 접촉이 없게 만들면 방사성 물질이 해류 타고 퍼질 가능성은 없고, 물은 방사선을 흡수한다. 중성자고 감마선이고 다 빨아들여주니 콘크리트보다 낫다. 알파선과 베타선은 컨테이너도 못 뚫을 거고.
즉 이걸 잘 밀봉해서 수압에 의해 파손되지 않을 정도로 얕게, 하지만 어설프게 잠수하던 놈들이 이게 뭔가 하고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는 깊게 쳐박아놓으면 바다가 마를 때까지는 안심이란 소리다.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쓸 이유가 있나?”
박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사선을 굳이 뒤집어쓸 필요는 없잖습니까.”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네. 미국에서는 라듐을 물에 타서 마시는 건강식품도 있다던데 말이네, 지금은 전시라서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 아직 라듐수가 팔리고 마약을 감기약으로 쓰는 시대였지, 깜빡했다.
“그냥 적당히 묻어버려도 될 것을…..”
원 역사에서도 핵개발하면서 적당히 묻어버렸다가 나중에 토양 정화한다고 개고생한 양반들이 있어서 그럽니다……
“아무튼 폐기물들은 전부 제 관할에 있을 겁니다. 확실히 해 주십시오.”
위험한 것도 위험한 건데 고준위 폐기물에는 플루토늄이 들어 있다. 당연히 추출해야지.
“알겠네, 연구 방향은…….”
“최종 목표는 우라늄과 신규 발견된 94번 원소를 이용한 핵분열 무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원자로부터 설계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래, 우리는 지금 원자로 설계도도 없다. 진짜 막막하다 막막해.
***
“나 왔다 이것들아.”
여기 들어온 게 며칠만인지는 모르겠고, 경비병들에게 팔랑팔랑 손을 흔들어 주고 사랑방에 드러눕는다.
경례고 나발이고 귀찮다. 다 귀찮아.
‘이 짓거리를 최소치로 잡아서 1년은 더 해야 한다니.’
두 번째 실험용 원자로가 오늘 완공되었다. 1번로는 흑연과 경수를 사용하는 평범한(?) 원자로지만 이번에 완공된 2번 실험 원자로는 액체 연료식 원자로다.
대충 물에 우라늄을 타서 핵연료로 사용하는 방식이라던데, 가동하면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온단다. 만화 같은 데서 묘사하는 방식 비슷한 거려나.
물론 설계대로 일단 만들어놓기만 한 물건이고 제대로 가동하면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설계대로 만든 것만 해도 대단한 것 아닌가.
그 설계가 결함 없는 설계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건…. 사소한 문제로 치자. 애초에 이건 이론과 현실의 간극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실험 원자로고 여차하면 붕소를 들이부을 준비는 다 돼 있으니까.
“핵…….핵…….. 핵……..”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천연우라늄을 제외한 핵물질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으니 방사선 피폭일 리는 없고, 아마 순수하게 스트레스 문제겠지.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가이거 계수기 소리가 울리고, 붉은 숲의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핵물질에 대해서는 아무리 안전에 안전을 기해도 완벽하게 안전하다 할 수 없는데.’
과학자들부터가 위험하다는 의식이 없고, 보안 문제만이 아니라 방사선 피폭 때문에라도 내가 난리를 치는 문제를 군인과 과학자의 사고 방식 차이라는 논리로 찍어눌러버리니 아주 그냥 돌아버리겠다. 아니, 도대체 왜 내가 과학자들에게 방사선 피폭이 위험하다는 걸 납득시켜야 하는 건데? 보통 과학자들이 나를 납득시켜야 하는 거 아냐?
물론 머리로는 안다. 원래 방사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히로시마에 핵 떨어진 뒤에 피폭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거니까.
지금은 핵무기 자체가 이제 막 이론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만들어지는 거고, 상업원전이라는 개념은커녕 원자로의 표준 설계 같은 것도 없다.
당연히 방사선이 위험하다는 관념도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으로는 납득이 안 되어서 그렇지.
‘이번 전쟁에 사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꼭 이번 전쟁에 사용할 필요는 없네, 일단 그 무기를 손에 쥔다는 게 중요하지.’
‘그…… 돈 장난 아니게 많이 들어갈 텐데 의회에서는……..’
‘그건 우리가 처리할 일이네.’
인력풀이 조금 더 넉넉하던가 이미 핵개발에 성공한 국가가 있어서 스파이질이 가능했더라면 참 좋았겠지만 미래에서 간첩질을 해서 정보를 보내는 게 아닌 이상 정보를 빼오기는 어렵다.
즉 우리가 갈아넣을 수 있는 건 돈, 그리고 시간.
딱 그거밖에 없다.
그때, 미닫이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뭐야, 공주인가.”
“공주라고 말하는 것 치고는 대접이 굉장히 박한데요.”
“내가 모셔야 할 공주는 아니죠.”
“가끔 생각하는 건데요. 반말이든 존대든 하나만 하면 안 될까요?”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돌아누웠다.
“그나저나 노크 모릅니까?”
“누구는 노크 하고 들락거리는 줄 알겠네요.”
“신문에는 뭐 볼 만한 거 있었습니까?”
“미 해병대가 사이공을 점령하다? 종전이 눈앞이라느니 어쩌니 말이 많던데요.”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지.”
적어도 내가 아는 게 맞다면 베트남은 아직 민족주의 뽕이 꺾이려면 멀었을 거다.
그리고 베트남의 영토는 넓다. 원 역사의 베트남 영토가 문제가 아니라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영토 대부분과 미얀마 영토 일부까지 병합한 게 베트남이다.
참으로 공격하기가 주옥같을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방콕, 사이공, 하노이 같은 주요 도시 몇 군데 점령했다고 전쟁이 끝날 리가 있나. 아주 개같이 굴러야 할걸?
미군이 지금 동원한 전력이 하와이에 박혀 있는 1개 사단, 극동전선의 1개 사단, 유럽의 1개 사단을 빼고는 전체 육군과 해군력 전체를 다 베트남 공세에 꼬라박은 건 알고 있다.
유럽 대륙은 독일이, 브리튼 섬은 아일랜드가 맡고 있고 극동은 우리가 잡고 있어서 많은 병력을 유지시킬 이유가 없어서 다 거기 박은 거다. 동맹국들이 죄다 베트남 공격에 비협조적으로 나온 것도 있고.
하지만 미 육군과 해병대가 인해전술을 펼치고 육해군 항공대가 빗발치듯 폭탄을 떨구고 해군이 보이는 곳곳에 함포를 퍼붓는다고 해도 밀림에서 벌이는 게릴라 같은 거 때려잡기는 적잖이 빡셀 거다. 결국 이놈들을 다 잡으려면 보급을 끊어서 말려죽여야 하는데… 이놈들이 이중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네?
이중제국은 엄밀히 말하자면 ‘항복’한 게 아니다. 프랑스는 항복한 거지만 이중제국은 혁명이 터진 뒤 들어선 신정부가 평화협상을 한 거고, 영토를 뜯기고 배상금을 물었을지언정 자국을 외국군에게 점령 상태로 내어주지는 않았다. 독일 제국과 미군도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혁명으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 인도 식민령의 미얀마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그쪽으로 무기와 물자가 안 흘러들어가기를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일이겠지.
그러면 접경지대를 점령해버리고 물자가 오가는 걸 막아야 하는데 정글을 헤치고 거기까지 가는 데 또 얼마나 걸리려나.
“못해도 1~2년은 계속 싸워야 할 거다, 항복을 받아내더라도 그 이후로도 게릴라전을 각오해야 할 거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저희 처우도 정해지겠죠?”
“아마도, 그거 물어보러 온 거였나?”
나는 냉정히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쪽의 처우에 대해 어떠한 권한도 없어, 일본의 처우에 대해서도, 나는 그저 내 의무를 수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