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26)
New World Order(1)
유럽 기준으로 제일 신세를 망친 나라는 누가 뭐라 해도 프랑스였다.
준 멸망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몰락했던 프랑스인들에게는 뭔가 책임을 질 이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만만한 유대인, 그리고 집시였다.
“프랑스 내에서 무차별적인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대인과 집시들이 신성로마제국의 첩자로 활동해서 프랑스의 등에 칼을 꽃았다.
배후중상설은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퍼져나갔다.
누군가가 조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에 대해 어떤 조치든 간에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보며, 옌티안 대공은 눈가를 찌푸렸다.
‘뭘 원하는 거냐, 이 양반은.’
물론, 그들쯤 되는 이들이 진상을 모를 리가 없었다.
배후중상설을 처음 퍼트린 건 신성로마제국이었다.
유대인을 차도살인하려는 건 아니고, 프랑스 점령지의 통치를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만만한 희생양을 하나 떨어트려 놓으면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하기도 쉽고, 여차했을 때 족치기도 쉬우니까.
하지만 전혀 의외로 이 배후중상설을 적극 퍼트린 집단이 있었으니….. 유대인들 그 자신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시오니스트 분파의 유대인들이었다.
‘이중제국이 전쟁에서 패해 식민지에 대한 영향력이 흔들리는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시오니스트들은 이중제국이 무너지는 틈을 타서 옛 가나안 땅, 오늘날에는 팔레스타인이라 불리는 땅을 손에 넣고자 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에 무관심하고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이들을 고향에서 쫓아내어 시오니즘의 열성 지지자로 만들고, 단순히 시오니스트들만 동원하면 국가라고 부르기도 우스운 규모였기에 유대인들을 대량으로 정착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원 역사에서 일부 시오니스트들은 바로 그 이유에서 반유대주의를 내세우는 나치와 협력했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이 가해지면 알아서들 팔레스타인으로 올 테니까.
어느 시오니스트 인사는 나치와 협력하면서 ‘이스라엘이 세워지면 모든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데려갈 테니 나치는 유대인 없는 유럽을, 유대인은 자기 나라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한 바 있었다. 결국 나치는 유대인들과 손잡기보다는 그들을 학살하는 걸 택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시오니스트 일부는 동포들이 학살당하는 걸 알면서도 나치와의 협력을 유지했다.
아무튼 유대인에 대한 핍박이 가해지고 있으니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여기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드레퓌스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프랑스의 반유대감정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고 만만한 유대인을 족치는 분위기가 되자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쫓겨나면 이들을 팔레스타인에 정착시켜 이스라엘을 세운다는 장밋빛 몽상에 들뜬 시오니스트들은 되려 이 배후중상설을 적극 퍼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가 수뇌부들쯤 되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그렇기에 옌티안 공작은 FDR의 말에 신경쓰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포석을 이렇게 까나 싶었으니까.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전통적인 특권 중 하나는 제국 내 유대인 보호권이오.”
그 외에도 특권은 여럿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정간섭 하지 말라는 소리를 넌지시 전하는 거지.
“아아, 귀국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박해가 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외지인이니까 그렇지 않소.”
현지에 녹아들기도 거부하고 특유의 정체성만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놈들을 누가 좋아하겠나, 막말로 굴러온 돌인데.
굴러온 돌을 반기는 지역은 전혀 없다. 지역민으로 녹아들려는 노력을 안 하니 차별이 이뤄지고, 차별이 이뤄지니까 더욱 지역에서 유리되고.
“유대인들은 그대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도 없는 이들도 많으니 그렇다치겠소만, 집시는 아예 유랑생활을 하면서 도둑질, 사기, 유괴 등을 업으로 하니 누가 좋아하겠소? 솔직히 말하자면 유대인들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니 정부 입장에서는 모범시민이지만 집시는 아니지, 그저 치안의 불안요소일 뿐이오.”
“이번 회담에서 그 부분에 대해 논의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루즈벨트가 짚은 지도 위의 한 섬을 바라보았다.
“키프로스.”
“그리고 이곳.”
“….. 우간다?”
“이 두 곳에 각각 집시와 유대인들을 정착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두 곳 모두 이중제국의 식민지였던 곳.
“키프로스는 미군이 주둔하는 곳이니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우간다 지역은 본 제국의 전리품이오.”
당연하지만 국가는 자선사업하는 곳이 아니다. 식민지 일부를 내놓으라고 하려면 뭔가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는 손을 대지 않겠으며, 미합중국에 신성로마제국이 진 채무 일부를 유예해드리는 방안 역시 추진해드리겠습니다.”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 지역을 의미하는 말이며, 여기 북쪽에 있는 아덴만을 건너면 예멘, 즉 중동 지역이다. 게다가 인도양으로도 바로 진출이 가능하니 유사시 이중제국이 어떻게든 지켜내는 데 성공한 인도를 살살 긁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성로마제국이 반드시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귀측도 유대인들과 집시들이 국경 내로 밀려드는 문제 때문에 골치를 앓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군인인지라, 좀 툭 까고 물어보겠소, 그러면 귀국은 뭘 얻소? 내가 군인 출신이라지만 내 조부는 아주 유명한 외교관이시고, 나도 외교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오, 그리고 당신의 행동은 외교관으로써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군, 도덕? 아니지, 그렇게 움직이는 건 정치인의 논리가 아니오. 뭐가 문제지? 미국 내 유대인들의 표요? 아니면 정치자금?”
“하하, 제 지지기반을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아주 잘 알고 있지, 그러니까 툭 까놓고 말하란 말이오. 뭘 노리는 거요? 유대인에게 동정적이어서라는 소리는 하지도 마시오, 당신은 반유대주의자잖소. 정치적 포지션은 몰라도 당신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반유대주의적일 텐데?”
“하하.”
정치적 포지션은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면서 개인적으로는 인종차별적 행동을 하고는 했던 모순적인 행동이 지적당하자 루즈벨트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맛좋은 미끼를 내밀어도 나는 안 물면 그만이오, 그게 프랑스나 미국 같은 국가와 우리가 다른 점이지. 그러니 안에 무슨 바늘을 숨겨 놨는지 순순히 부시오.”
“독일 제국의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조만간 한 가지 선언을 할 생각이라서 말입니다.”
민족자결주의. 우드로 윌슨의 14개조 평화 원칙이 유명하지만, 그 시초는 베스트팔렌 조약이나 나폴레옹 시절, 내지는 1848년 혁명까지도 거슬러올라간다.
그리고 FDR은 이 카드를 써먹을 작정이었다.
“물론 이런 선언을 해놓고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한 선언이 되겠지요.”
“그래서 아프리카의 유대인들과 키프로스의 집시들이다? 하.”
FDR이 뭘 노리는지를 바로 눈치챈 공작은 고개를 기울였다.
“듣기는 좋소만, 그것은 우리 신성로마제국의 국익을 정면으로 침해하리라는 건 알고 있으시겠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식민지야 그렇다 치겠소, 하지만 슬라브인들과 이탈리아인들이 문제지.”
애초에 빌헬름 2세나 식민지 좋아하지 독일인 대부분은 식민지에 별반 관심이 없다. 아프리카 식민지도 철저히 유사시 인도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만 가지고 있을 뿐.
문제는 동부에 살고 있는 제국 내 슬라브인들, 그리고 남부에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제국 신민들이다.
“이들이 동요되면 본국도 상당히 귀찮아지겠지, 그걸 감안하면 채무유예는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싼 값으로 보이오만?”
“……….”
FDR의 얼굴에 살짝 쓴웃음이 번졌다. 하긴, 세상 너무 날로 먹으려 하다가는 벌받는 법이다.
“이제 셈을 다시 해야겠구려.”
물론, 공작도 FDR이 모든 걸 다 말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실을 말하되 전부 말하지 않는 것, 너무나도 흔한 수법이다. 분명 FDR이 뭔가 노리는 것이 더 있으리라.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독일은 애초에 식민경쟁에 관심이 없다. 적어도 한 세기 동안은 지금까지 넓힌 영토를 소화시키는 데만 전념해도 모자랄 터.
본토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었다. 애초에 대양에 나가 패권경쟁을 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FDR이 밀어붙이겠다고 밝힌 탈식민주의는 독일에게도 딱히 나쁜 길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국내 소요를 야기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뿐이다.
그리고 둘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탈식민주의야말로 둘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걸.
그러나 이 협업에서 수익을 몇 대 몇으로 나눌지는 중대사항이었다.
***
‘이런 감정은 뭘까요? 그림자가 되어 항상 따라다니면서 지켜주고 싶고, 아무리 찰나의 시간이라고 해도 함께하면 따뜻하고, 호흡 하나, 핏방울 하나, 살점 한 조각, 영혼 한 조각까지도 저만 영원히 독점하고 싶어지고. 지옥의 밑바닥에서라도 당신과 함께하면 행복할 것만 같은 이 기분이 뭔지 아시나요?’
‘제 사랑은 가볍지 않아요. 세상 모든 감정을 합쳐도 이보다 무겁지 않고, 무저갱도 그보다 깊지 않겠죠. 우주의 마지막 별이 다한다고 해도 이 사랑은 마지막까지 빛날 거고, 검은 별이 빛나는 붉은 하늘 아래에서라도, 바람만이 사각대고 가벼운 발자국 하나조차 없는 곳에서도 이 사랑은 이어질 거에요. 그 정도로 사랑해요.’
영 별로다.
“쯧.”
나는 혀를 찼다.
“제법 볼 만은 한데 뭐라 해야 하나…… B급 영화?”
“엄청 감동적인데 어딜 봐서 B급이에요?”
“내가 볼 때는 그렇다 이거지.”
주인공 남녀의 유일한 정표인 조개껍데기를 실에 꿰어 만든 목걸이.
오직 선의로써 시작되었건만 점점 꼬여만 가는 상황. 악역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악역에게 책임을 지게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옳은 것인가? 과연 진짜 악인은 누구인가?
악역조차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여주인공은 과거의 발랄한 성격이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자신의 눈앞에 닥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절규하고. 마침내 진짜 흑막을 찾아낸다.
관객은 세 사람뿐인 영화는 어느새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침내 절망의 끝에 도달한 두 사람이 결투를 벌인다. 승자가 영광을, 패자가 비애를 안는 명예로운 결투가 아니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에 복수라도 하고자 하는 자와, 자신의 목숨은 이미 도외시했지만 다른 이를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구하고자 하는 이의 결투. 그러나 복수를 하고자 하는 쪽은 결국 우위를 점하고도 하늘로 총을 쏴버리는데…….
으음, 내용만 늘어놓으면 꽤나 괜찮은 스토리인데, 뭐라고 해야 하나, 묘하게 마음에 안 드는 요소가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 작품을 바라보는 정치적 시각 때문에? 왜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좋지 않다. 아무튼 그렇다.
“다들 팔자들이 늘어졌어? 집에서 영화도 보고.”
넷X릭스 같은 게 생긴 시대라면 집에서 영화보는 거야 별로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지금은 뭐…. 무성영화나 흑백영화의 시대는 아니다. 아니, 사실 시대적으로 무성은 몰라도 흑백영화 시대는 맞을 텐데 더 빠르게 발전한 기술은 이미 컬러영화를 대중화시켰다. 그렇다고 디지털 장비가 나온 건 아니고 애니메이션이든 영화든 다 필름이지만. 아, 여기서는 애니메이션도 애들 보는 거 취급은 진작 벗어났다. 애초에 CG가 발달한 시대가 아니다보니 세트장이나 스턴트맨 비용이 비싸게 먹힐 만한 작품 찍으려면 애니메이션이 차라리 싸게 먹히거든. 아예 기술적 한계로 인해 스토리를 구현하는 게 불가능해서 애니메이션을 쓰는 경우도 있고.
“그쪽에서 틀어줬지 우리가 샀나요.”
“보자고 한 건 너희들이거든? 하도 보고 싶다 그래서 영화 필름은 내가 구해준 거 모르냐.”
하긴 또 그게 틀린 소리는 아니다. 윗선에서 쓸 일 있으면 쓰라고 영사기랑 스크린, 스피커도 갖다줬으니까. 다만 영화 필름은 말했다시피 내가 구해왔다. 이런 거 보면 완전 무시당하는 건 아닌데….. 대체 윗선은 뭔 생각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