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30)
New World Order(5)
GHQ, 하노이. 베트남.
“이하 피고 28인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탕! 탕! 탕!
망치 소리가 들렸다.
“이걸로 끝입니까?”
“예.”
베트남의 제정은 폐지될 예정이다. 황가는 끌어내려졌고, 전범들은 심판을 받았다.
받았어야 했다.
다만, 건드리지 못한 상대가 있었다.
‘조씨 가문.’
물론 그쪽 가문에서도 기소된 인물이 있었다. 3명뿐이었지만.
심지어 한 명은 자살, 두 명은 병환을 이유로 가석방되었으니 실질적으로 이들은 피해 입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전범기업이라며 재산을 몰수하고 싶어도 죄다 은닉된 탓에 뭐 하나 제대로 손에 넣은 것도 없었던 것은 덤이었다.
“아무래도 신성로마제국 쪽이 수상합니다.”
“어허.”
“젠장, 그 새끼들이 사촌 관계라는 건 비밀도 아니잖습니까.”
조 가문은 대영제국 42대 총리이자 극동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에드워드 젠티안 공작의 사생아를 가문의 시조로 하고 있다.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에서….. 사실상의 찬탈을 벌인 옌티안 대공은 에드워드 젠티안의 친손자가 된다. 브리튼에는 다른 사생아 혈통이 남작 가문으로 존속하고 있고.
실제로 촌수를 따져 보면 사촌지간이 맞다. 공식적으로야 아무런 관계도 없다마는.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을 자우어크라우트들이 혈연을 이용해 이번 건에 개입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없어도 개입을 안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있는 통로 놔두고 없는 길을 만들어 개척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나 해 보게.”
“맥아더 선배님은 퇴역하신답니다. 정계 진출을 생각하시는 모양이에요.”
“정계라.”
“하긴, 선배님은 군인보다는 정치인을 하셨어야 할 분이었지. 공화당인가?”
“당연하죠. 지금 대통령 각하야 전승대통령이니 한동안 정면대결은 어렵겠지만…..”
워싱턴 이래의 전통을 깰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어차피 전승 대통령 프리미엄은 다음 선거에서 써먹을 수도 없다. 이미 재선했으니까.
세계대전이 끝났는데 3선에 도전할 명분은 그 아무리 FDR이라도 짜낼 수 없으리라.
***
“자유가 있다면, 뭘 하고 싶습니까?”
“살고 싶어요.”
그녀는 말했다.
“여왕이 된다 해도, 제게는 한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야겠다는 비전도 없고,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선구안도 없어요. 나라를 위해 죽을 정도로 제 고향을 사랑하지도 않고, 그럴 만한 용기도 줏대도 없어요. 제가 여왕이 된다면 아마 주변 사람들 말에 팔랑팔랑 흩날리는 종이인형에 지나지 않겠죠.”
“그저 밥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침대에 뛰어들어 늘어지게 자고, 그런저런…. 역사적 관점에서는 한없이 무의미하고 그 누구도 기록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하찮은 일이나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역사에 남을 운명도 아니었던 소녀, 역사에 남기를 바라지도 않았던 소녀의 소원이었다.
다모클레스의 검이 두렵다.
두려우니까 거부하고 싶다.
하지만 오직 태어났다는 것이 그녀를 왕좌로 이끌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이해관계 역시.
“도망치고 싶단 생각 안 들어?”
“도망친다면 뭔가 길이 있나요?”
“길은 있고 없고 따지는 게 아니지, 네가 직접 만드는 거야. 뭐, 도망치겠다고 해도 그걸 못 하게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헛소리를 하는 것도 웃기지만. 히미코 양.”
그녀의 새 이름을 불러본다.
사실 이 시대에 일본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대부분의 이들이 연구할 가치를 못 느꼈다. 그야….. 일본인들에게는 어지간한 친프랑스파가 아닌 이상 고등교육의 문호가 개방되지 않았고, 유럽에서 식민지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발전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프랑스는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물이 출토되더라도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면 몰래 암시장에 팔아넘기거나 부숴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었고.
따라서 일본의 역사를 연구하는 건 되려 우리 쪽이 더 상세하다. 그야… 한반도사를 연구하려면 일본이랑 중국 빼놓고 이야기하는 게 애초에 가능하지가 않으니까.
그리고 절대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지만 일본이 스스로 편찬한 역사서 상당수가 19세기에 소실되어서 단편적으로만 전해지기도 하고….. 아무튼 내 잘못은 아닐 거다.
아무튼 그래서 용담대학교의 사학자들은 역사책을 뒤적거리다가 히미코 여왕이란 이름을 찾아냈고, 이게 일본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진구 황후라는 인물과 동일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연대도 겹치고 정작 히미코는 외국 역사서에는 나오는데 일본 내 역사서에는-남아 있는 것 중에서는-없는 희귀 케이스에, 일본 전설 속의 진구 황후와 동시기의 인물이니 히미코를 신격화한 게 진구 황후고, 아마테라스의 원본일 거라는 게 현재 사학계의 결론이다.
관심있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나도 일본 문제 때문에 민중들의 민간신앙에 대해 용담대학교 교수에게 특강듣다가 알았다.
아무튼, 지금 일본 내에는 진구 황후가 그들을 구해주면 지상낙원이자 천년왕국이 세워질 거라는 민간신앙이 성행하고 있다. 우리가 좀 조장한 것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이걸 적극 이용하기는 할 텐데, 그래도 진구 황후라는 민간신앙의 존재 자체가 저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상당히 불쾌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거시기 삼한 정벌 내용이 전설에 있던데…… 우리가 그래도 그 삼한의 국체를 계승하지 않았나? 특히 신라 말이네. 애초에 아우렐리아가 무슨 뜻인가? 황금의 땅, 곧 신라를 의미하는 거 아니었나?’
‘고고학적으로, 사학적으로 전혀 가치 없는 내용입니다. 교차검증도 안 되고, 왕 이름은 어디 200년 뒤 양반 이름을 갖다 써놓는가 하면 중국 기록과도 모순되고, 가족관계도 개족보에 시호도 600년 뒤에나 나타나는 양식입니다. 신경쓰실 거 없어요.’
‘지금 우리가 그걸 이용해야 하는데 만약 진구 황후가 새로 나타나서 정권을 잡고 반한의 기치를 들면?’
‘그….. 지금 상식적으로 일본인들이 우리랑 싸워서 이길 수 있다 봅니까?’
‘없더라도 귀찮게 할 수는 있지, 일본은 이 나라에서 너무 가까이 있네, 저들이 근대화하고 힘을 기르면 과히 위협적이야. 역사서에 한반도가 원래 자기들 땅이었다는 하등 근거 없는 헛소리를 남겨 가면서 침략 야욕을 불태워온 이들의 후손이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하긴 미국과 연합하면 해군이 골치 꽤나 썩긴 하겠지만, 그럴까 봐 안전장치 여럿 채워두지 않았습니까?’
‘머피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지, 어떤 사건으로 그 안전장치가 전부 무력화되는 일이 없다고는 장담 못해.’
‘어차피 터질 반란이면 이름 좀 바꾼다고 안 터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내각의 몇몇 인사들이 진구라는 이름을 쓰는 걸 불쾌해하네. 저놈들이 아직 뜨거운 맛을 덜 봤다는 증거라나 어쩐다나. 차라리 역사적 인물인 히미코로 하세나.’
그 결과 한가을 양은 본인 의사랑은 무관하게 히미코로 개명당했다.
“전 저만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나갈 용기가 없으니까요.”
사실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렇다.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면 결코 돌아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이미 나 있는 길을 따라가려는 이가 많을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길을 가기를 거부하고 완벽한 미지 속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이가 많을 것인가.
후자는 존경받을 만한 존재지만, 후자를 선택하지 못했다고 해서 전자가 겁쟁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그 선택은 존중받을 만한 것이기에.
***
오스트레일리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 아우렐리아 연방 공화국.
“10여 년 전부터 말썽이 심했답니다.”
에뮤, 토끼, 낙타, 앵무새, 잉어, 두꺼비, 고양이, 쥐, 여우.
호주군을 연전연패시킨 온갖 동물들.
그나마 에뮤들은 30년대의 창궐 이후 수가 급속히 줄었다. 40년대에 벌어진 전쟁의 피해를 직격타로 맞았던 탓이다. 낙타도 19세기에 수가 크게 줄어서 거의 절멸 상태.
그러나 토끼와 앵무새, 여우, 쥐와 고양이들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전 국민에게 100마리씩 잡으라고 해도 답이 없을 겁니다.”
잡는 것보다 숫자가 더 빨리 늘어난다.
“약 10억 마리로 추정되긴 합니다. 전체 숫자가요.”
21세기에는 생물학전을 3차례나 거친 끝에 2억까지 줄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다 합친 토끼 개체수가 10억이라는 걸 생각하면 진짜 끔찍한 수준의 머릿수다.
앵무새, 특히 토착종인 큰유황앵무는 건물의 창틀을 부리로 뜯어내고 길거리의 쓰레기봉지를 다 뜯어놓고 쓰레기통을 죄다 엎어놓는 등 날아다니는 비글이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은 깽판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지능이 높다 보니 토끼보다 한 술 더 뜨는, 비둘기 상위호환급의 깽판을 쳐대면서 시민들의 고혈압 증상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고 있었다.
여우는 토끼 잡으려고 들여왔는데 되려 호주의 생태계를 아작내고 있고, 쥐랑 고양이, 들개 등은 링웜, 광견병, 톡소포자충, 흑사병 등을 옮기고 다니기 때문에 보건국이 뒤집어졌다.
동물권이고 나발이고 전염병의 주요 매개체들을 살려둘 정부는 없고, 즉시 가능한 선에서 대대적인 방역을 했다.
그 방역이란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 죽여버리는 것이다. 애초에 광견병 같은 경우는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게 뇌에 대한 조직검사, 그러니까 죽여서 두개골을 열어보는 것 외의 방법은 21세기에도 없다.
그냥 야생에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는 닥치는 대로 쏴죽이고 사방에 쥐약을 깔고 쥐덪을 놓는 등 어떻게든 이들을 하수구 밑으로 밀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건 보건국의 일이지만….
“하지만 저 망할 놈의 토깽이들을 쓸어내는 건 우리 몫이란 말이지.”
풀이라는 풀은 다 쳐먹어서 초원을 거대한 사막으로 만들어대는 토끼들이 초원을 뒤덮자 풀밭인데도 녹색은 안 보일 지경이었다.
“씨발, 포격으로 갈아엎어버리면 안 됩니까? 벌집탄 쓰면 한 번에 만 마리 정도는 잡을 텐데요.”
“지금 농경지 보호하느라 작전하는 건데 되겠냐?”
환장할 규모의 토끼떼를 본 군인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다 잡아다 팔면 고깃값이 폭락하겠는데요?”
“물리지 않게 조심해서 통에만 쓸어담아도 몇 통은 그냥 채우겠구만.”
“그렇게 잡아서 손질은 또 어느 세월에 하게? 뭐 전국의 주부들을 다 소집하면 되긴 하려나.”
전 국민이 인당 10마리씩은 먹으면 다 채워지려나.
아우렐리아 정부에서는 인구압을 해소하기 위해 신도시와 농경지들을 대규모로 개발하는 사업을 기획하고 있는데, 풀을 미친 듯이 먹어치워 토양을 황폐화시키는 토끼떼를 가만히 놔둘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독가스라도 써야 할 지경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지평선을 가득 메운 토끼들을 향해..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빗발치는 탄환들, 한 발만 맞아도 토끼들의 뼈와 살이 분리될 지경으로 위력적이지만 안타깝게도 병사들이 실어나를 수 있는 탄환의 양보다 토끼의 머릿수가 많았다.
“아악!”
“시발 이 새끼들이 뛴다!”
“악! 물렸어!”
“뭡니까! 왜 총을 쐈는데도 안 도망가는 겁니까!”
“몰라! 시발 광견병, 아니, 광토병이라도 걸렸나! 쏴! 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