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31)
공황(1)
1942년 이래 계속해서 실물시장은 종전으로 인해 거대한 소비시장을 상실하고, 그 이래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 실물 지표의 하락과 이에 걸맞지 않는 금융 부문의 대호황은 연방정부 내에서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루즈벨트 이하 미 행정부는 베링 댐 공사를 시작으로 경제 붕괴를 사전차단하고자 했다.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지만, 이는 곧장 문제에 부딪혔다.
우선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돈을 대량으로 쓰다가 전쟁이 끝나니 실물지표가 하락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금방 도로 올라가게 될 겁니다.”
원래 전쟁은 어마어마한 소비를 일으키지만 이로 인한 승수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단지 전쟁에 소비되는 돈이 승수효과가 평시보다 되려 떨어진다는 것쯤은 상쇄하고도 남아 아예 형국을 역전시킬 정도로 많아서 불황 문제는 수습이 가능했을 뿐.
조금 무식하게 계산해서 전시에는 5%의 승수효과가 있다고 하고, 평시에는 50%의 효과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평시에 100의 돈을 쏟아부으면 50의 효과가 난다. 하지만 전시에 소모되어야 하는 돈은 100이 아니라 1,000을 넘어 10,000, 100,000에 육박한다. 그러면 50이 아니라 500, 5000의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즉 이제 전쟁이 끝나고 씀씀이가 줄어들면 주식시장에 약간의 충격은 올 수밖에 없지만 금방 안정화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게다가 전쟁이 끝나자 당장 군용 무기 생산은 중단해야 했고, 전후 재건물자들 역시 이미 과잉생산되어 이미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건하고도 남을 상황, 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군부에서 추가 주문을 단호하게 끊어버리자 곧장 공장들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분간 이미 있는 재고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에 추가 주문이 들어올 리 없고, 의회는 좋다고 전쟁 끝났으니 당장 군비부터 줄이기로 결정했기에 군부가 더 이상 고객이 될 수 없음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당연히 투자를 줄이고 공장 규모를 축소하고 근로자들을 해고하는 건 당연한 수순.
문제가 있다면, 이에 대해 루즈벨트가 딴지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실업률이 급증할까 봐 진지하게 우려한 루즈벨트는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보장을 명시한 연방법 여러 개를 통과시키려 했다.
그리고 의회는 그대로 뒤집어졌다.
“세상에! 파업을 할 권리라고?”
“미쳤군! 미쳤어! 미국의 산업을 쑥밭으로 만들려고 작정했어! 이제 기업들은 다 망하겠군! 근로자가 사업주를 뜯어먹는데 누가 사업을 하겠나!”
“루즈벨트가 본색을 드러냈다! 빨갱이들이 드디어 미국을 적화시키려고 작정했어!”
“다들 제정신입니까? 아니, 당신들 대공황 안 겪어 봤어요?”
“그 대공황도 커티스 대통령이 어찌 해결했잖소! 그런 빨갱이 정책 말고 건전한 방법으로!”
그건 뭐 해보기도 전에 타이밍 좋게 세계대전이 터져서 막대한 경상 수지 흑자를 통해 간신히 수습된 것이었고, 대공황의 규모도 원 역사보다 작았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지만, 정치인들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러분! 루즈벨트가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세상에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조직하고 파업을 할 권리를 준대요! 빨갱이들의 위협에서 미국을 지키는 것은 공화당뿐입니다! 공화당에 한 표를!”
“대통령 각하, 이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이건 실물 경기지표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뉴욕 주식시장이 붕괴할 지경입니다. 노동자들에게 노조 조직을 허가하고 파업권을 주면 기업이란 기업은 죄다 망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만….”
“진짜 다들 너무하는군, 당장 거리에 실업자가 쏟아져나올 판인데 새로 하는 공사들이 제대로 일자리를 창출해낼 때까지만이라도 해고를 유예해 달라는 게 그렇게 싫었나?”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내릴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지금 판사들이 죄다 커티스 시절에 뽑혔잖나. 당연히 공화당 편이겠지.”
루즈벨트는 뉴딜 정책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해버렸다. 당장 경기가 무너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연방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루즈벨트도 이 정도이리라고 예상 못 한 막대한 반발을 불러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쌓이고 쌓이던 폭탄의 심지에 불이 붙었다.
“모든 종류의 원자재 가격이 총체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입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재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출을 크게 늘릴 거라는 정보가 나돌고 있습니다.”
미국을 바짝 경계하기 시작한 신성로마제국의 옌티안 대공은 새로 넓힌 영토에서 약탈한 원자재들을 대량으로 대외수출하기 시작했다.
식량, 석유, 석탄, 철광석 등이 대량으로 시장에 풀리고, 마침 아우렐리아에서도 호주의 대규모 이주에 앞선 사전 정지작업으로 진행한 에뮤, 토끼 등에 대한 학살로 얻은 고기들을 통조림으로 만들어 대량으로 풀어버리자 시장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식량의 소비량은 인구수에 거의 비례한다. 쌀값이 대폭락했다고 해서 한 사람이 일곱 끼씩 먹는가? 그런데 세계대전 동안 전 국민이 전선에 나가고 모든 비료를 화약으로 만드느라 농사를 말아먹은 독일에 팔아먹던 식량은 한순간에 판매처를 잃었다. 전쟁이 끝나고, 동원령이 해제되고 농부들이 다시 쟁기를 쥐었으니까.
즉, 시장은 이미 기존에 떠안은 재고들도 있었는데 열강 국가들이 식량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수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농산물, 수산물, 육류 등 모든 종류의 식량 가격의 폭락이었고, 이 충격은 선물 시장을 강타했다.
그리고 공포는 확산하는 특성이 있고, 충격은 다른 종목에도 전염되었다.
1945년 5월 8일. 원 역사에서 제3제국이 최후를 맞았을 승리의 날은 다른 이름으로 역사서에 남게 되었다.
검은 화요일이라는 이름으로.
물론, 이는 10여 명의 자살자를 발생시켰을 뿐 서민경제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 되려 3개월만인 8월 15일을 기점으로 폭락이 멈추고 다수의 종목이 다소 반등하는 경향까지 보이자 전문가들조차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9월 2일, 아직 나오려면 40년은 있어야 하는 단어인 ‘데드 캣 바운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것으로 끝장났다.
“내가 뭐라 그랬냐!”
이미 예측까지 하고 대책을 세워뒀는데도 의회 내 긴축론자들의 영향력과 여당 내의 반대와 야당의 대대적인 정치공세로 인해 뜻을 꺾어야만 했던 루즈벨트는 9월 2일 2차 대폭락 이후 사실상 전권을 장악하고 공황의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호미로 막을 타이밍을 놓친 경제공황은 가래를 들고 와도 수습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커헉!”
“의사! 의사를 불러와! 각하께서 쓰러지셨다!”
수습될 가망 없는 경제공황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이미 원 역사가 허락한 것을 넘어서까지 살고 있던 수명이 문제였을까.
1946년 7월, 의회 연설대에서 연설문의 첫 줄도 채 읽지 못하고 쓰러진 프랭클린 댈러노 루즈벨트는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
1947년 1월, 뉴욕, 백악관.
“프랭크, 오늘따라 당신이 너무 원망스러운 거 압니까.”
해리 트루먼 미합중국 대통령은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이걸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뉴딜연합은 존재했지만, 이미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였다.
이미 빨갱이몰이에 한 차례 흔들린 뉴딜 연합.
물론 진짜 대공황이 터지자 루즈벨트는 역공을 가해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상대들을 모조리 으스러트리거나 다시 무릎꿇리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덜컥 죽어버렸다.
그렇게 대통령이 덜컥 되어버리고 딱 반년이 지났다.
고통스럽고, 지치고, 포기해버리고만 싶은 반년이었다.
FDR의 칼날에 납작 엎드렸던 이들은 거인이 쓰러지자 다시 눈치를 보면서 각자도생하기 시작했다. 뉴딜 연합을 어떻게든 유지해보려 했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파편화되어 가고 있다.
차가운 비가 백악관의 창문을 두들기고 있을 때, 아직 처리해야 할 서류가 한가득 쌓여 있었지만 트루먼은 잠시 손을 놓았다.
반년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개고생을 했는데 반 시간 정도 서류에서 손을 뗀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대통령 각하, 국무장관이 왔습니다.”
“들여보내게.”
잠시 뒤, 스테티니어스 국무장관이 집무실에 발을 들였다.
비바람이 적지 않았는지 분명 우산을 쓰고 왔을 텐데도 양복은 물에 젖어 있었다.
“어떻게 됐나.”
“아우렐리아와 신성로마제국 모두가 정부가 직접 나서서 막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정쟁, 빌어먹을 공화당, 빌어먹을 배신자들.
분명 여대야소일 텐데 여소야대 정국이 된 것만 같았다. FDR은 무서워도 트루먼은 만만하다 이거였지만, 그래도 정쟁을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지 않은가.
트루먼의 정책은 FDR을 거의 계승했다, 사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된 마당에 그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길들이기라도 하려는지 FDR 살아 있던 시절에는 군소리를 못하던 의회가 뜬금없이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서 법을 통과시켜주지 않거나 증세를 의결해주지를 않으니 트루먼 입장에서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강력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싶어도 돈주머니를 틀어쥔 의회가 뻗대고 있고 연방대법원에서까지 태클을 걸어댄다.
FDR이었더라면 온갖 협잡을 동원해서라도 의회와 연방대법원의 반대를 무력화하고 자신의 목표대로 밀어붙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건 FDR이나 가능했던 거고, 자기가 죽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FDR이 트루먼을 위해 뭔가 뾰족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해두었을 리도 만무.
“아우렐리아는 국채 조기 상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최대한 질질 끌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애초에 지금 돈이 있는 나라가 없을 거다.
금본위제를 포기한다면야 돈을 미친 듯이 찍어낼 수 있겠지만, 아직 열강급 국가 중에서는 금본위제를 포기한 국가가 없다.
“만약 채무 조기 상환을 계속 강요한다면 고 루즈벨트 대통령이 제안한 대로 혼슈와 큐슈를 넘기게 되더라도 빚은 단 한 푼도 갚지 않겠답니다.”
사실 미국에게 있어서는 영토 넓히는 상투적인 수법이기도 했다. (전쟁으로 두들겨놓은)멕시코에서 미국 민간과 정부에게 진 빚을 탕감해주거나 미국 정부가 떠안는 대가로 영토를 뜯어낸 게 미국 영토의 3분의 1 정도는 될 테니까.
그러니 루즈벨트도 아우렐리아가 지고 있는 빚의 담보를 식민지로 처리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해본 것이리라.
문제는 나중이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일본 열도는 계륵에 불과하다는 것.
있어봐야 농토나 광산 정도, 그것도 금은이 대량으로 쏟아져나오면 말이나 안 하겠는데 이와미 광산이고 뭐고 죄다 말랐거나 아니면 민간 회사에 채굴권이 있어서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난리날 게 뻔한 대상들 뿐이다.
공업지대도 아니라서 경제적으로는 거의 도움이 안 되고, 설령 공장이 있더라도 오대호 지역의 공업지대보다 나을 리가 없고, 금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아우렐리아를 바로 견제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그마저도 아우렐리아가 꼼꼼하게 본토로 편입시킨 자잘한 부속도서들을 생각해보면 해군을 투입한다고 해도 항구 밖에 나가는 게 가능은 한지를 진지하게 고찰해야 하는-외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게다가 이런 경제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아우렐리아가 전쟁 내내 미국에게 진 빚은 미국이 낸-절대 공식적이지는 않은-배상금이나 무기 대금 같은 걸로 상계해도 답이 안 나오는 규모였다. 독일은 아예 자릿수가 다르긴 했지만.
애초에 루즈벨트도 전액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 트루먼은 돈이 급했다.
하다못해 이게 미국만 겪는 공황이었으면 재무부가 가지고 있는 외국의 전쟁채권을 내다 팔기라도 했으련만, 전 세계적인 공황 앞에서는 열강의 채권이라도 평가 절하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장관, 만약 아우렐리아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태평양에 있는 큰 섬 두 개는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만약 아우렐리아가 배를 째버리면 미국은 진심으로 골치가 아파지게 된다.
아직 국제법이라는 개념이 애매모호한 관습에 불과하고 명확하게 지정된 적이 없으니 적용할 수가 없고, 미국의 법률을 적용해보자면 담보만 넘기면 이자든 원금이든 단 한 푼도 갚지 않아도 된다.
만약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고 담보로 그 집을 잡았다면 실직을 한다거나 해서 돈이 없어도 집만 넘기면 중간에 집값이 폭락한다거나 해서 경매에 붙여도 원금 회수도 안 된다고 해도 채무자의 다른 재산은 단 한 푼도 건드릴 수 없다는 거다.
실제로 원 역사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은행들이 망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집값은 무조건 승리한다고 확신하고 CDO를 미친 듯이 발행하느라 서브프라임 등급 고객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해줬다. 설령 빚을 못 갚아도 주택을 경매에 부치면 남는 장사라고 확신한 것이다.
그러나 버블이 붕괴하자 채무불이행률이 급증하고, 원래는 채무불이행이 나도 원금보전은 물론이거니와 집값이 높으니 수익도 웬만큼 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은 집값이 대출금보다 못하게 되었으니 손실을 보게 되고, 이게 한둘도 아니고 미국 전역에서 연쇄로 터지자 은행들이 줄줄이 주저앉은 것이다.
그리고 이 법률은 아우렐리아도 완벽하게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담보를 넘겼다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물론 국제 사회가 법대로 돌아가지는 않으므로 어디 만만한 소국이 배째라고 드러누우면 배를 째주겠는데…… 당장 몇 년 전에 쳐들어갔다가 무슨 꼴이 났더라?
그때와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지만 국민들이 과연 납득해줄까? 게다가 애초에 만기가 아직 남은 채권을 좀 헐값을 받더라도 조기상환을 요구하는 상황이니 명분도 제법 딸린다.
“신성로마제국은…..”
“여제 접견은 거부당했고, 외무장관은 일언지하에 거부했습니다.”
‘내 배를 쨀 수 있다면 째 봐라, 니가 그럴 능력이 있다면 말이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이라고 해도 유럽의 최대 패권국과 1대 1로 싸워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새 전쟁에 동의할 리도 없고.
따라서 외국에서 돈을 끌어오는 방법은 전부 기각.
“그래서, 그 빌어먹을 배신자 놈들과 공화당이 뭘 원한다는가?”
“일단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윌스트리트에서도 온 요구입니다.”
“이 상황에서도 기어코?”
당연하지만 그 자유로운 경제활동이라는 말은 고용과 해고의 자유로움, 임금과 대우를 어떻게 하든 간에 정부가 이상한 법 입법해서 빨갱이들 설치라고 판 깔아주지 말라는 뜻이리라.
“이러다가 나도 프랭크처럼 제명에 못 죽겠군.”
트루먼은 한숨을 푹 쉬었다. 대체 그가 뭔 죄를 지었길래 이런 지옥에 집어던져진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눈치없이 프랭크 그 작자의 러닝메이트를 한 게 죄라면 죄였겠지. 1기 임기 끝났을 때 손을 끊었어야 했는데.’
그의 임기는 아직도 3년이나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