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32)
공황(2)
인천항의 물류 부두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발걸음이 뚝 끊겼으니까.
심지어 화물 중에는 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방치되는 화물도 있었다.
그리고 마른 수건도 한 번 쥐어짜는 자린고비의 정신을 가진 아우렐리아 정부에서 이런 장소를 안 써먹을 리가 없었다.
법적으로는 못 건드려도 원래 정보국과 군부는 안 보이는 데서는 법은 길고양이 골골송으로 취급하는 이들.
따라서 이런 버려진 컨테이너들의 내용물을 빼버리고 그 안에 유사시 사용할 온갖 총기부터 심하면 전차까지도 숨겨놓는 건-중전차는 사이즈상 무리였고 탱캣 수준이었지만-정보부가 충분히 생각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목소리가 탁 튀었다.
“취소요?”
“……. 일본을 식민지로 경영하는 걸 포기하고 미국에 팔아치운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니, 잠시만요.”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미국인들, 필리핀도 독립시켜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필리핀 자치령? 그렇지, 지금은 경제위기 중이라서 되려 완전히 주권국가로 독립하는 건 미뤄지고 있기는 하네만.”
만약 미국이 손 털고 나가버리면 당장 필리핀의 경제가 최후를 맞으리라는 공포도 있고, 아무튼 간에 미국에 종속되어 있던 경제권을 가지고 있던 국가가 떨어져나간다? 호황기라도 충격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텐데 이런 시기에는 폭풍이 부는 와중에 배에서 튕겨나간 선원 꼴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한 필리핀 자치정부는 독립을 5년만 늦춰달라고 청원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마침 필리핀의 밀림 깊은 곳에서 공산 게릴라들이 베트남군이 숨겨둔 무기를 가지고 들고일어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필리핀군으로는 답이 없어서 미군이 투입되어 진압하는 와중, 이 상황에서 미군까지 빠져버리면 진짜 10년도 못 가서 빨갱이 정권이 들어설 거라면서 읍소하는 상황.
아무튼 그래서 현재 필리핀은 자치정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늦어도 10년 내에는 독립하겠지만.
그런데 있는 식민지도 손 털고 나가나는 판에 일본을 더 먹는다고?
“직접 경영하는 건 아니고 필리핀처럼 괴뢰국을 세울 예정이라더군, 미국 정부에서는 민주주의를 저들에게 가져다준다고 하는데…….”
“공화국을 세우겠다는 거군요.”
게다가 갖다 세울 놈들 수준도 뻔하지, 프랑스랑 우리 단꿀 빨아마시다가 이제 미국이 실세 같으니 잽싸게 갈아탄 놈들.
민중의 존경? 그 비슷한 것도 못 받을 이들이다.
정말 존경받는 이들은 프랑스인들에게 고문받다가 대부분 죽었거든. 살아 있어도 적잖은 수가 공산주의자인지라 미국이 써줄 리가 없고.
그럼 결국 매국노 전형 70%에 아부 전형 30%쯤 섞어서 인재를 뽑은 뒤 정부를 수립해야 하는데…. 일단 공화국은 일본에 익숙한 체제는 아니잖은가.
오히려 백여 년간의 프랑스 ‘공화국’ 의 지배 하에서 오래 전 행방불명된 천황가의 재림을 믿으면서 신사에 몰래몰래 모여 기도하던 게 일본인들이다. 쟤들에게는 전제군주정이 돌아와도 공화정보다는 더 지지받을걸?
“그럼…..”
“그 아가씨는 아직 가치가 있지. 물론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장기전이 되기는 하겠다마는.”
“무기를 일본에 푸실 생각이군요, 하지만 엉뚱한 놈들이 정권을 잡으면 어쩝니까?”
진짜 빨갱이들이라든가.
물론 여기서는 레닌은 오래전에 잡혀 죽었다. 마르크스는 있긴 하지만 그의 철학이 주류가 되지는 못했었어야 하는데….. 그 뒤에 카우츠키인가 하는 양반이 나타나서 마르크스-카우츠키주의를 완성했다.
그 뒤에 나타났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다시 또 대대적으로 손질을 하긴 했는데 신성로마제국 공안국에 붙잡혀서 총살당했고. 벌써 20년은 됐지?
하지만 소련이 없다 보니 아직 현 공산주의의 주류에 가까운 마르크스-카우츠키-룩셈부르크주의는 아직 아나코-코뮈니스트들과 함께 혁명주의자들의 양대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애초에 우리가 일단 명목상으로는 아나키즘 국가였거든, 물론 그 과정을 온건한 개혁으로 진행하면서 차례차례 적층하다가 마침내 아나키즘 낙원을 구성한다는 거였는데….
하지만 그 사상의 마지막 남은 흔적도 지난번 개헌으로 인해 싹 날아갔고 그냥 이제는 평범한 국가화되긴 했지만, 애초에 아나키즘 혁명은 양반이나 왕족 등 기득권 몰아내고 토지개혁할 때나 명분으로 썼지 공화정 정착됐는데 이제 와서 뭘.
하지만 일단 아나키즘 국가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는 하고 있었으니 어느 정도 세가 남아 있기는 했다. 정작 이 나라는 더 이상 아나키즘 국가가 아니지만. 그렇기에 우리 입장에서는 아나키스트들도, 룩셈부르크주의자들도 다 조져야 할 대상이다.
물론 아나키스트들을 개헌 전이라고 안 조진 적은 없지만.
아무튼 간에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은 밥그릇 싸움이고, 우리와 공산주의자들은 물밑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여야 할 터.
“빨갱이들은 어차피 왕을 옹립할 수 없네.”
그건 자신들의 근본에 대한 부정이니까.
“저들은 사라지게 될 걸세, 사라질 수밖에 없고.”
일본인들은 복잡한 정치 문제는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인종차별적인 소리가 아니다. 식민지라서 문제지.
까놓고 말해서 프랑스인들이 일본인들의 보통교육에 관심을 기울였겠냐?
이 나라의 A-과거급제 정신은 공식적으로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초등학교(6년제) 진학률 99.1%, 중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6년제) 진학률 79%, 문맹률 7.9% 미만이라는 기적을 이뤄내기는 했으나 그건 애초에 국가 단위에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가면서 적극적으로 팍팍 밀어붙인 데 이어 국민들까지 적극 호응하는 등의 일이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거다.
대학교 진학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고, 대학에 진학한다는 건 원 역사 기준 박사학위 따는 수준은 되어야 하는 초 엘리트 전용 코스다. 솔직히 중등학교 졸업만 해도 사회인 대우 받기는 충분하고.
당연하지만 정치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고,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사상적 길을 어설프게라도 제시하는 건 중등학교 졸업자도 한다.
근데 일본은 대학교는 딱 하나, 그것도 프랑스 식민청에서 일본 내 프랑스인들 교육하라고 연 대학이다. 인프라도 죄다 프랑스인 거주지 위주로 투자되었고 좋은 땅은 죄다 프랑스인들이 차지했고…… 농담이 아니라 중학교 학력만 되어도 엘리트다. 인구 90%가 문맹인 상황이 정상은 아니잖아.
아니, 생각해 보니 식민지 평균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일본의 국부 90%는 외국인들의 소유고, 프랑스인들 소수가 토지나 자본을 독점하고 있으니 교육의 기회 자체가 없다.
그래서 당장 자기를 착취하는 게 눈에 보이는 프랑스인들에 대한 반감은 클지언정 우리에 대한 감정은 그냥 그런 수준이라고 알고 있다. 애초에 프랑스와 우리가 자본주의 관계로 긴밀하게 엮여 있든 말든…. 도매업자랑 손님이 마주칠 일 없듯이 우리도 현실적으로 일본인들과 마주칠 일은 크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교육받지 못한 일본인들은 착취자 백인은 싫어하고, 동시에 우리에 대한 감정은 없으면서, 언젠가 찾아오고야 말 독립을 가져다줄 천황가의 귀환을 꿈꾼다. 미신이지만.
그런데 그 와중에 좀 빨간물 든 애들이 와서 ‘세계혁명!’ 외치면서 어떻게 독립을 가져다주면 환호하겠지.
하지만 공산주의자 독립군, 그리고 천황파 독립군, 그리고 미국의 꼭두각시인 공화국 정부. 이 셋이 머리채 잡고 싸우면 민중은 누굴 지지할까?
원래 집단이란 광기를 내포하는 법, 그 광기는 종교나 사상과 결합되면 광신으로 확대되기 쉬우며.. 따라서 사상이나 종교에 심취한 이들은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테니 아무리 잘나 봐야 미국의 자치정부는 남베트남 꼬라지일 거고, 결국 신정국가 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이 싸워야 할 텐데, 문제는 신정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소리는 결국 비슷하게 들릴 거란 소리지.
당사자들에게 말하면 펄쩍 뛰겠지만 복잡한 사상 다 빼고 민중들이 귀 기울일 만한 내용을 생각해 보면 둘 다 토지개혁 주장할 거고… 대도시나 공업지대는 사실상 없으니 전부 농민들이라고 생각해야지.
그런데 이 둘의 주장을 보면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네 어쩌네 뭔가 못 알아들을 소리 하면서 ‘당신이야말로 이 나라의 주인’ 어쩌고 하는 낮선 사상을 전파하고, 신정주의자들은 ‘원래 모든 땅은 신의 것인데 사사로이 소유함이 문제였다. 전쟁이 끝나면 천황께서 싹 모든 토지를 거둬들인 다음 경작권을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주어 너희의 땅을 너희가 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내밀겠지.
결국 받는 건 똑같은데 수천 년간 내려온 민간 신앙 대 코쟁이들 사상….. 으음, 어지간해서는 지지는 않겠는데?
“그런 관계로 이 무기들은 아직 가치가 있다.”
뒤쪽이 높고 앞쪽이 낮은 기울어진 무한궤도와 고정식 포탑을 지닌 돌격포들, 그리고 37mm 포를 단 경전차, 15mm 기관포를 장착한 모노휠 구조의 구형 탱켓. 83.5mm 신형 대공포. 전훈을 반영해 대인저지력을 높이기 위해 한 번 방아쇠를 당기면 두 개의 총열에서 한 발씩 두 발의 탄환이 동시에 발사되는 8발짜리 리볼버 권총, 연장총열과 핸드가드, 개머리판만 달면 바로 카빈으로도 쓸 수 있다.
우리 군에서 운용하기보다는 신생국 등에 이리저리 판매해서 이득을 볼 목적으로 연구한 물건이다. 스페인 내전에도 완벽하게 똑같은 물건들을 무수히 팔아먹기도 했고. 우리 기갑군은 죄다 초중전차 같은 물건만 굴리고 있으니…….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는데.
“총기는 그렇다쳐도 저놈들이 전차를 제대로 굴릴 수 있을까요?”
굴리는 것만으로도 돈을 허공에 퍼붓는 꼴인 초중전차 사단이나 미 육군이 우리 초중전차를 잡겠다고 7.2인치 포를 장착한 AGF 150톤 초중전차, 그리고 다시 그놈을 잡겠다고 기존 초중전차 차대를 기반으로 개발된 175mm짜리에 자동장전장치까지 달아놓은 초중구축전차. 그런 놈들이 아니더라도 원래 기갑은 항공기와 더불어 돈을 허공에 뿌리는 병과인데.
아무리 중형전차까지만 지원한다고 해도 제대로 굴릴 수나 있을까?
“불가능할 건 없다고 보네만, 그 중에서도 시코쿠가 있지 않나. 어차피 거긴 무법지대니 거기서 부품과 연료를 수급하게 하면 못 할 것도 없겠지.”
공식적으로 중화제국령인 시코쿠. 하지만 그 현실은 행정력이 닿지 못하는 사실상의 무법지대고, 현지를 장악한 거대한 범죄 카르텔이 섬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행세하는 꼴이라고 한다. 거길 통해서 보급을 받는다라,
“미 해군이 바닷길을 차단하면…..”
“시코쿠라는 섬 자체가 큐슈나 혼슈에서 그렇게 멀지 않네. 해협을 오가는 선박을 전부 잡아내기는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겠지. 충분히 가능하네.”
하긴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의 경우도 있으니 게릴라가 항공기랑 전차 못 굴린다는 것도 또 고정관념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