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35)
공황(5)
북부에서, 몽골의 사막 지대에서 발원한 모래바람은 흔히 황사라 불린다.
물론 이 시점에서는 미국령이니만큼 미국령 몽골 고원과 고비 사막에서 발생한다고 말해야 할 터. 이 먼지구름이 편서풍을 타고 황해를 거쳐 한반도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사실 황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까 중국이 공업화하기 이전에는 지력이 유지되고, 플랑크톤에게 철분을 공급하게 해주는 등의 순기능도 많았다. 하지만 중국의 공업화는 처참하게 실패했으므로 앞으로 당분간은 황사가 매연, 화학물질, 산성비 등과 합성될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 연원은 삼국사기에도 흙비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만큼 오래되어 왔고, 딱히 신경 쓸 필요도 없었을 터였다.
거기에 오염물질이 없는 황사는 알칼리성인지라 오랜 기간 지속된 농업으로 인해 땅이 산성화되는 것도 웬만큼 막아주는 순기능도 있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사를 굳이 막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최소 30년에 걸쳐 일어나게 될 재앙을 예측하지 못했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불어닥쳤다. 언제나 있던 일이었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제일 먼저 횡액을 당한 곳은 미국령 화북 지역이었다. 맹렬하게 들이닥친 모래폭풍은 북경을 모래먼지로 뒤덮었고, 가뭄에 더해 군정청에 의해 장려된 미국식 농업을 위해 대량의 농업용수를 끌어다 쓰기까지 한 황하는 말라붙어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말았다.
농사가 망하자 중국인들은 언제나 하던 대로 하기 시작했다. 농지를 버리고 유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쪽으로, 혹은 바다 건너 미국 본토로.
공장에서 막노동자로 취업이라도 하거나, 아니면 아직 모래폭풍이 덮치지 않은 남으로 가거나. 황하가 말랐기에 국경을 넘는 건 손쉬웠다.
황하 남쪽의 중화제국 정부는 자국의 유일한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급하게 녹지화를 시작했지만 애초에 녹지화라는 것은 석유, 석탄, 가스, 전기 등의 대체연료가 보급되어야만 가능한 것, 중화제국의 경제력과 발전 수준으로는 언감생심이었다.
결국 그 모든 시도는 막대한 부채만 남기고 실패로 돌아갔다. 한때 동아시아 문명의 요람이라 불렸던 황하는 유량이 말라붙어 그 흔적마저 모래 아래 어딘가로 사라졌고, 문명의 흔적은 사라졌다. 그리고 함께 밀어닥친 가뭄에 장강은 토막토막 끊기다가 결국 바싹 말라붙었다. 그동안 안전지대라 여겨지던 장강 이남에도 모래가 쌓였다.
물론 모든 기후변화가 그렇듯 완벽하게 부정적인 면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30여 년의 세월에 걸쳐 한반도는 과거의 사계절은 사라졌지만 연교차도 크게 줄어들어서 비가 1년 내내 많이 오는 것 외에는 그럭저럭 살기 좋은 기후인, 굳이 비유하자면 과거의 런던과 비슷한 기후를 나타내어서 그나마 나았다.
물론 아우렐리아가 운 좋게 이득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세계적으로 베링 댐 프로젝트가 입힌 피해가 컸다. 이베리아 반도 남부지역과 북이탈리아 지역은 베링 해협의 차단이 불러일으킨 것으로 추측되는 여름장마와 무더위, 겨울의 한파와 가뭄을 겪으면서 20여 년간 급변한 기후에 적응 못 한 노약자들의 사망과 생태계의 초토화를 겪어야 했고, 일본 열도는 이상저온을 맞다가 시베리아 기단의 남하로 사시사철 냉해를 입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비가역적이었다. 1980년대에 유빙과의 누적된 충돌로 FDR 댐이 피로파괴를 일으키고도 한참이 지난 1990년대에야 기후 변화의 구체적인 원인이 밝혀지니까.
그 시점에는 당사자들이 다 늙어죽은 지도 오래였기에 항의할 상대도 없었다.
가뜩이나 연속적인 경제위기로 국가 부채가 도무지 감당 못할 정도로 불어난 중화제국에 한 국가가 손을 뻗어 주었다. 세계대전의 결과로 시베리아의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어 국경을 맞대게 된 국가이자 동시에 중국의 최대 채권자, 미합중국은 사막화된 영토를 넘기면 중국의 빚을 그만큼 탕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가지고 있어 봐야 경제적 가치는 0, 산업화 시도 초기부터 국가 경제가 주저앉아 버려 1차 산업국으로 남아 있던 중국에게 농업의 쇠락은 치명타였고, 결국 아무것도 산출되지 않고 가지고 있어도 활용할 방법은 전무한 모래사막을 넘겼고, 미국은 계속 중국에 돈을 빌려주었다.
미국인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중화제국이 돈을 갚을 방법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단지 채무를 지워서, 돈으로 목줄을 걸어 중국 대륙을 마음대로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게 목적이었을 뿐. 말도 안 되는 헐값에 손에 넣는 영토들은 단순한 부수입에 불과했다.
미국이 그 영토들을 손에 넣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미국인들의 정체성 그 자체인 프런티어 정신이, 명백한 운명이 그렇게 하라고 속삭이고 있으니까,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미국에 붙어 있으니까.
그리하여 마침내 1970년대에는 아우렐리아와 미국만이 공동으로 관할하는 상황이 된 공사관 도시가 전 세계적 금융위기 앞에 단 1천만 달러의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파산을 선언하자 상하이 협정으로 상하이를 아우렐리아의 특별행정구로 편입하는 대신 모든 공사관 도시의 영토를 미합중국에 편입함으로써 중화 대륙의 통일을 완수하기에 이르는 것이었다.
애초에 미국인들은 이 상황을 서부개척시대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태평양을 자신들의 호수로 만들고 영토를 끝없이 넓히는 것은 미국인들의 자명한 운명, 마침 시베리아 지역에서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이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자 막대한 규모의 광산들이 세워졌고, 중원 사막지대에서도 막대한 양의 석탄이 발견되는 등 미국인들이 군침을 삼킬 만한 이유가 계속 생겨난 탓이었다.
여기에서 조금 신경쓰이는 게 아우렐리아와 일본이었는데, 명백히 열강 중 하나인 아우렐리아와 남의 나라 본토를 걸고 정면대결을 벌이는 건 당장 대전쟁 당시 어퍼컷과 스트레이트를 연타로 쳐맞고 진짜 나라가 뒤집어질 뻔한 쓰라린 경험상 무리였다. 그 정도로 미국이 분노조절을 못 했으면 지난 세기에 캐나다를 침공했을 테니까.
일본 역시 괴뢰국으로 만드는 선에서 멈추기로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직접 관리하기도 빡세고, 결코 나약한 상대가 아닌 아우렐리아의 발작버튼을 눌러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주효했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기후의 변화와 미중 간의 영토변화, 그 끝에 마침내 끝없는 빚의 수렁 속에서 땅을 팔고, 팔고, 또 판 중화제국의 위정자들이 국토를 포기해버리고 시코쿠로 떠날 때까지는 40여 년이, 그리고 이 기후변화가 굳어지기까지는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30년에서 50년 뒤의 미래든, 현재든,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태평양에 도달해서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영토를, 뉴 프런티어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자명한 운명’이었으니까.
그것이 아무리 제국주의자의 논리를 듣기 좋게 포장한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미국인들은 확장을 원하고 있었다.
***
“유럽에 좀 다녀오게.”
“왜요?”
“………… 이놈이 별을 달더니 미쳤나.”
그래, 그래, 원래 꼴랑(?) 투스타 달았다고 연방원수급 대우를 받는 헌법수호국 국장 김창암 각하께 개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근데 난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사정이 있다고.
“저 핵무기 핵심 연구진….. 은 아니어도 아무튼 핵 관련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요?”
당연하지만 이런 인력은 어지간해서는 출국 허가 자체를 안 내준다. 외국 나갔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서 과학자들도 다 군 계급이 부여된 것 아닌가.
“그래서 갔다 오라는 거다. 비공식 사절로.”
“……….”
“지난 전쟁에서, 우리가 미국을 이긴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어…….. 해군항공?”
“그것도 맞기는 하다만, 더 본질적인 건 미국이 양면전선 상태였다는 거지.”
“그럼……”
“다만 프랑스와 이중제국은 골골거리게 되었고 독일은 상태가 영 좋지 않으니…… 미국을 같이 견제할 적절한 동맹을 찾기는 어렵게 되었지.”
이중제국이 동맹 상대로 고려되지 않는 건 우리가 통수쳐서 그런 것도 있지 않나…… 싶기는 한데 걍 닥치고 있자.
아 급이 안 맞는다니까요.
“우리가 공산주의자들과 동맹할 수는 없는 일이고, 현 정부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도 불명확한 상황에서 독일과의 동맹을 섣부르게 추진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럼…….. 프랑스 안 되고, 이중제국 안 되고, 독일 안 되고, 비잔틴과 스페인은 자국 내부터 안정화해야 할 거고, 소거법으로……”
“그럴 일이 없으면 정말 좋겠지만, 만약 미국이 우리의 주권을 침해했을 때 상대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수 있는 국가여야 하네, 그런 면에서 비잔틴과 로마니, 아일랜드는 말할 것도 없이 탈락이지.”
비잔틴은 잠재력은 있는데 일단 대서양으로 나가고 이야기해야 하고, 로마니 공화국은 전 유럽에서 학살을 막기 위해 추방된 집시들이 전후 처리 과정에서 키프로스에 강제이주됨으로써 생긴 국가인데, 사실 아직 국채도 제대로 안 정해졌다. 왕은 할 만한 놈이 없으니 공화국이 되리라고 판단하고 있을 뿐.
“스칸다나비아 연방.”
“너무 약하지 않나요.”
아일랜드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강국인가 하면 그건 아니기는 하다.
물론 위치상 북대서양 항로를 통제해버릴 수 있는 위치이기는 하지만 주력함은 단 한 척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순양함이 최대 전력이고 주력은 잠수함과 중소형 함정들.
항공력은 그래도 전쟁 말기에 이중제국과 한 판 붙었을 때 싸운 걸 보면 전혀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지상전력은 뭐…… 음…….. 자국 내에서 지형 끼고 싸우면 외부 침략군을 좌절시키거나 지더라도 꽤 잘 싸웠다 소리는 들을 수 있겠지만 공세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기대하면 안 될 판이다. 당장 중전차를 한 대도 보유하지 않은 상태니.
아, 그래서 가는 건가?
“항공기, 전차, 야포, 판매할 물건은 많다. 그리고 역시 최대의 매물은…….”
“핵무기도 팝니까?”
“공동연구 정도의 조건이지, 특히 그 ‘핵융합 병기’를 연구하려면 예산이 얼마나 더 깨질지 나도 모르겠네.”
음, 나도 수소폭탄 구조는 사실 아는 게 없다. 텔러-울람 설계에 대해서는 들어봤는데 세부 구조 따위는 기억 못 하고, 이름만 알거든.
그리고 내가 알기로 스웨덴은 원 역사에서 핵개발 성공 직전까지 갔다가 정치적 문제로 핵무장을 포기했는데 그러면 자체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인력 풀이 있으리라는 건 명백하다.
“스칸다나비아 연방과 교섭하되 타 국가들과의 협력안도 배제하지는 말게, 유럽에서 싸울 거면 유럽에서 싸우라고 해, 우리는 우리의 영토만 지키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영토를 넘볼 여지가 있는 상대는 이중제국이 해양 패권을 상실한 이 시점에는 소거법으로 단 하나.
미합중국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