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36)
격동(1)
혼슈 북부, 일본.
“습격이다! 습격이다!”
고함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렸다.
일본어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토굴을 향해 총탄이 빗발치고, 적들이 대항하고, 결국 침입자들 중 몇몇이 수류탄을 토굴에 까넣어 적들을 침묵시켰다.
“빌어먹을, 아우렐리아 놈들은 대체 뭔 놈의 통치를 했다는 거지? 무슨 게릴라들이 대공포를 가졌어?”
“아우렐리아는 서류상으로만 소유했고, 차라리 프랑스 놈들에게 욕을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대대장님, 대대 전체가 사방팔방에 흩어졌습니다!”
산지에 낙하산으로 공수강하를 하면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는 했다.
“이지 중대에서 보고! 게릴라들이 전차를 보유하고 있답니다! 중대가 고립되었습니다!”
“전차라고?”
2대대장 리처드 윈터스 중령은 급히 지도를 보았다.
“제기랄, 우리 전차는 어디 있지?”
101공수사단 506보병연대는 이번 작전을 위해 신형 경전차를 지급받았다.
장갑은 소총탄이나 간신히 막고 무게는 7톤에 불과하지만 경기관총 2정에 무반동포를 4문이나 달아서 이리저리 피해다니면서 적 전차를 상대하라고 만들어진, 전차보다는 대전차자주포에 한참 가까운 물건이었지만 그들과 같은 공수부대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전차를 상대하기보다는 게릴라들의 기관총 진지 따위를 상대하기 위해 동원되긴 했지만, 현재 총류탄 정도를 제외하면 공수부대가 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문제는, 지금 그 전차들이 어디로 쳐박혔는지 대대에서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만.
“이지 중대가 전차 한 대에 고립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중대 병력을 집결시키던 도중 전차가 나타났는데, 별다른 우회로가 없답니다!”
***
“웹스터!”
“예, 중대장님.”
“아까 보급품에서 대전차총류탄 있었나?”
“있긴 합니다만 저걸로 잡을 수 있을까요.”
-텅텅텅텅텅텅텅텅텅!
고폭탄이 펑펑 터지면서 다시 한 번 그들을 압박했다.
15mm 기관포를 장착한 적 경전차가 중대의 측면에서 적 소대급 병력과 함께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막 병력을 집결시키고 보급품을 회수하고 있던 이지 중대는 적잖은 피해를 입어야 했다.
초반 교전에서는 적 기관총 진지를 무력화하고 초소를 폭파시키기까지 하면서도 단 두 명만이 전사했는데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적 20여 명과 불과 10여 미터 앞에서 마주치고 단 30초 만에 최소한으로 쳐도 한 개 소대의 절반이 전사했다.
단 한 번에 입은 손실로는 수송기가 격추되는 바람에 중대장 소블 대위를 비롯해 수송기 탑승자 전원이 전사한 아일랜드 상륙작전 당일 이후로는 중대 최대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기관포로 고폭탄을 쏴대면서 파편과 폭압으로 엄폐하고 있는 중대원들을 노리는 것은 절대 상대가 초짜가 아니라는 걸 능히 짐작하게 해 주고 있었다.
잠시 뒤, 총성이 울렸다.
-펑!
M9A1 대전차고폭탄이 전차의 장갑 위에서 터졌지만 입사각이 나빴는지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총류탄은 많았다. 여러 발이 연신 장갑을 두들기자 마침내 제대로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져나왔다.
-콰아아아앙!
탄약고가 유폭하기라도 한 듯 이지 중대를 압박하던 전차는 그대로 오렌지빛 화염에 휩싸여 격파되었다.
***
그레이트브리튼-러시아 연방공화국, 런던.
1차 혁명은 끝났지만, 2차 혁명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왕실은 몰아냈고, 대부분의 기득권층도 무너졌지만 이제 혁명 세력은 둘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브리튼 섬에서는 일단 승패가 확실히 갈렸다고 봐도 좋다.
열강들도 왕정복고는 포기하더라도 타협이 가능한 자유주의적 세력이 집권하기를 바라지 완전한 시뻘갱이들이 집권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병력을 파병하거나 대량의 무기를 뿌리면서 적군에게 공세를 퍼부었고, 결국 공산주의자들은 대륙으로 떠나 항전을 이어가야 했다.
애초에 왕정을 몰아내고 전쟁을 끝내는 것을 주도한 것은 극좌 세력이었지만, 사람들은 본래 극단적인 쪽으로는 잘 가려고 들지 않는 법.
그레이트브리튼-러시아 인민공화국 주석 니콜라이 부하린은 여전히 우랄에서 항전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민병대 수준이라 해도 수십만에 달하는 백군 앞에 브리튼 섬의 적군은 단숨에 섬멸당했고, 열강들의 무기와 고문단을 받아들여 정예화된 백군은 독일이 내준 철도와 미국이 지원한 해군을 통해 러시아에서도 밀고 당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입국해도 당장 총에 맞을 염려는 안 해도 좋았다. 백군은 천천히 사태를 수습해가고 있었고 치안은 회복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런던은 사라져 있었다.
“맙소사.”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진 곳이 런던이었다.
빅 벤은 붕괴했고 화마에 휩싸인 차르 종은 녹아서 사라졌다.
웨스트민스터, 런던 지하철, 킹스 크로스, 기타등등.
런던을 상징하는 것 중 남아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런던은 드디어 평등해졌군.”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 내뱉었다.
그 빌어먹을 화이트채플부터 버킹엄 궁전까지 사이좋게 다 불타서 한 줌의 재가 되었으니 평등해진 거 맞지 않나.
단 한 가지 내게 위안을 주는 것이 있다면 템스 강에서 연어들이 노닐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점점 썩어갔어야 할 템스 강은 내가 주도한 상하수도 시설의 총체적 정비를 통해 그나마 맑아졌다.
거기에 결정적인 지원을 해준 건 다름아닌 이번 전쟁이었다, 폭격으로 공업지대가 박살나고, 아예 내전, 그리고 화재로 런던이 소멸해버린 데다 남은 기계들은 배상금으로 뜯기기까지 하자 오염원은 사라졌고, 끝이 없을 것만 같던 화재를 꺼트린 장대비는 오염물질을 전부 바다로 밀어냈다.
‘내가 사람들을 위해서 했노라고 가장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전염병 예방과 템스 강의 정화, 그리고 빈민구제였다.’
빈민구제의 상징이었던 화이트채플은 잿더미가 되었지만, 자연만큼은 내가 한 일을 헛되다고 말하지 않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나와 플로렌스의 무덤은…… 모르겠다. 거기도 폭격당해서 박살났다는 건 둘째쳐도 보게 된다면 마음이 틀림없이 심란해지겠지.
그래, 나는 나 자신의 무덤을 마주할 용기가 아직 없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나는 한때 런던 브리지가 있던 그 자리에서 중얼거렸다.
‘내가 총리가 아니라 다행이야.’
조금 걷자 어린아이들이 와르르 달라붙었다.
사실 전생에서도 뒷골목을 돌아다니면 집시들이 이렇게 달라붙어서 지갑이고 뭐고 다 털어버리려고 온갖 수작질을 다 부렸는데, 지금은 없다. 내전기의 흉흉한 상황에서 집시들이 영업하려고 했다가는 총 맞기 딱 좋았겠지.
그보다는 유럽 각국이 골칫덩어리 집시들을 자신들이 만들어낸 짬통, 키프로스의 로마니 공화국으로 추방한 게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마는.
하지만 이들은…….
‘영국인들이군.’
그것도 고아들.
그때, 저만치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깁 미 초콜릿!”
“……….”
미군의 지프차를 뒤쫓아가면서 아이들 여럿이 외치자, 뒷좌석의 미군 하나가 뭔가를 휙 집어던져서 뿌렸다.
내 주변에 몰려 있던 아이들도 그걸 줍느라 혈안이 되어 그쪽으로 몰려갔고, 이내 주먹다짐까지 벌어졌다.
나는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계속해서 강가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적십자가 걸린 구호캠프 앞에 도착한 나는 그 앞에서 조용히 템스 강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 남자가 다가왔다.
“당신인가?”
“그렇습니다.”
대도시라면 그리 눈에 띄지 않는 복장, 아마 뉴욕 같은 곳이었으면 한 번 눈을 떼는 것만으로도 다시 찾기 어려울 모습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남루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눈에 크게 띄었다.
아마 저 양반도 런던이 이 정도로 피폐해졌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왔을지도 모르겠네.
“뭐라고 부르면 되나?”
“미스터 양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동양계인가?”
그런 거 치고는 외모는 전형적인 백인인데.
“제 집안 내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네, 난 미스터 킴이면 되겠군. 그보다 자네의 위치를 알고 싶은데.”
“위치라 하심은?”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는지, 자네가 받아온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등등. 물어볼 만한 내용 아닌가?”
“아, 상호 간의 최소한의 신용을 위해 그 정도는 해야겠죠. 원하신다면 총리님의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위임장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좀 다른 곳으로 가야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어디로?”
“바스입니다. 틀림없이 마음에 드시겠죠. 이번 내전에서도 그 참화를 거의 입지 않았기에 지내실 만 할 겁니다.”
***
바스 시는 온천과 유적지들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도 있었다.
바스의 어원이 된 시설이자 고대 로마가 지었고, 중세시대에 재건되었으며 18세기에 재개발된 스파 시설인 로만 바스에서 상당히 큰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경매?”
“예, 이번 전쟁과 내전기에 영국의 귀족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덕분에 오갈 데가 없어진 권리나 재산들이 제법 있죠. 이 재산들을 여러 은행들의 주관으로 각지에서 조금씩 나누어 경매를 벌이고 있습니다.”
미스터 양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를 구경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박스석에 몸을 기댔다.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이 곧장 들어왔다.
‘라일라가 생각나네.’
그녀의 무덤이라도 돌아가기 전에 찾아볼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전쟁통에 그녀가 묻힌 땅이 안전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녀의 후손들이 남작가로써 그냥저냥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좀 들었지만. 후손들이 잘 돌봤기를 바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 복장이 영……… 내가 아는 메이드복보다 좀 많이 불건전해졌는데? 왜 치마가 허벅지가 보이지?
아니, 시대가 달라지…..긴 개뿔이, 이건 그냥 대놓고 눈요기용으로 만든 것 같은데.
그런 뉘앙스로 운을 떼자 미스터 양도 바로 동의했다. 역시 내가 꼰대인 건 아니었구만.
“당장 당신이 단돈 1원이라도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소매를 잡아끌면 바로 따라올 겁니다. 런던에서는 여자가 초콜릿 바 하나에 몸을 파는 판이고, 담배 한 보루를 주면 귀족 영애라도 침대에 자빠트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것 치고는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당하는 사람들은 서민이죠. 재앙이 닥쳤을 때 정말 부유한 이들은 되려 재산을 늘리기도 합니다.”
미스터 양은 혀를 찼다.
“지금 브리튼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식량 공급이 원활해진 건 또 아니거든요, 기뢰 제거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식량 가격은 아직 충분히 내리지 않았는데 적십자사의 구호물품은 상당수가 범죄조직에게 빼돌려지는 판입니다, 비누와 더운 물을 사용할 수 없어서 미국 정부에게 애걸해서 DDT를 대량으로 공수하는 걸로 수습했습니다.”
제가 공산주의자는 아닙니다만, 이런 걸 볼 때마다 왜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지지하는지는 이해가 가더군요.
그렇게 말을 맺은 그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이미 많은 것들이 사고 팔리는 상태였다.
“다음은 땅과 그 위에 있는 구조물들입니다. 솔즈베리 평원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권리입니다! 본래 안트로부스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지만 전쟁 도중 유일한 후계자가 최전선에서 전사함으로써 이 경매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랜드마크로는…. 딱히 돈이 되지는 않지만 유명한 거석 유적인 스톤헨지가 있겠군요.”
응?
***
– 그래서?
“7천 파운드(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21세기 한국 기준 7억 5천만 원 정도) 불러서 샀습니다만.”
– 그런데?
“그…… 이거 나중에 관광객들 잔뜩 찾아오게 될 텐데, 뭣하면 아예 해체해서 본국으로 옮겨버리면 많은 관광수익을 기대할 수 있…..”
– 회담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혹시 이거 영수증 끊어가면 공금 처리 가능한지…….”
-야.
“예?”
– 넌 출장지에서 기념품 사오면 그거 국가에 헌납한다고 해도 공금처리해주냐?
“그….. 스톤헨지가 단순한 기념품은 아니지 말임다?”
– 아니면 뭔데? 일에 관련있나?
“………”
– 니 사비로 알아서 처리해, 국가에 헌납하고 나발이고 할 것도 없어, 니가 니 돈 주고 산 거고 국가는 거기에 대한 권리도 의무도 없다. 그럼 끊는다. 나도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