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41)
끝의 시작(2)
미합중국이라는 국가에는 고질병이 있었다.
그 질병은 다민족, 다인종 국가라면 아마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너와 다르다.
너는, 나와. 다르다.
문화, 언어, 피부색, 종교, 관념, 그 무엇이든.
지금까지 미합중국에는 일종의 피라미드가 있었다.
제일 꼭대기에는 WASP가 있다.
그 다음에는 금융권을 꽉 틀어쥔 유대인들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다시 백인이 있을 것이고……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는 유색인종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것은 공고했다.
딕시크랫, 혹은 레드넥이라 불리는 남부 세력들은 아직 건재했다. 아니, 도리어 더욱 커졌다.
이질적인 문화권에 있는 이들이 섞이게 된다면 반발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법.
낮선 것을 경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심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아니, 도리어 권장되는 문제지만 그 경계가 접근해오는 것을 모조리 적대함으로써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옳을 것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모조리 죽여버린다면, 결국 온 세상을 적으로 돌려버리니까.
결국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굴어야 한다, 이주민이라면 스스로 허리를 낮춰서 원주민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문화에 맞추고, 그들이 불쾌해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원주민들이 자신들에게 맞추라는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게 싫다면 총칼을 들고 전쟁을 해서 원주민들을 몰아내면 된다. 이 땅에 오래전에 온 백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러했듯이. 그럴 힘이 없는데 맞추기도 싫으면 집에 가면 된다.
마찬가지로 토착민들도 과하게 외지인들을 적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미합중국에서는 이 두 가지 원칙이 모조리 어겨졌다.
“저 쿨리들이 우리 일자릴 뺏는다!”
“정부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비슷한 능력을 가진 백인 노동자의 반만 받고 두 배는 오래 노동시킬 수 있는 쿨리들은 미국의 강도 귀족들에게는 이상적인 노동자였다.
“요즘 노동자들이 머리가 굵어져서 노조를 만든다 어쩐다 하면서 빨갱이놀음을 하던데, 쿨리들은 안 그래서 참 좋단 말이지.”
정확히는 언제까지나 외지인이자 굴러온 돌인 그들으로써는 그럴 능력이 없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게 무엇이 중요하랴.
임금 올려달라, 파업하겠다 짖어대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본가들은 만족스러웠다. 이를 위해 연방정부를 압박해서 중국의 땅을 사들이기도 하고 불법이민을 눈감아주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닌가.
물론 투표권은 1인 1표니만큼 정치인들은 열심히 쿨리들의 추가 이민을 막겠노라 공약하고, 정식 이민의 길은 해가 갈수록 그 담장을 높여나갔다.
하지만 정식 이민의 담장의 꼭대기에 가시 박힌 철조망을 달고 열 배로 그 높이를 높이면 뭐하는가, 불법 이민이라는 땅굴은 모두가 보면서도 못 본 채 하고 있었는데.
“불법 이민을 막으려면 예산이 더……”
“응 아니야.”
되려 국경순찰대의 예산은 가면 갈수록 삭감되었다. 언제나처럼, 국민들은 연방정부가 예산 쓰는 걸 참 싫어했다.
그리고 쿨리들의 공급이 끊기지 않기를 바랐던 자본가들도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잖소? 국경수비를 강화하면 싼값에 노동할 노동인력이 부족합니다. 죽은 루즈벨트가 벌여놓은 빨갱이놀음 때문에 기업들이 다 망하게 생겼어요! 이런 거라도 안 봐주면 미국 경제는 박살납니다. 그걸 바라는 건 아니시죠?”
정식 이민자가 아닌 불법체류자들이기에 노조를 결성할 수도 없고, 노동법을 어겨도 고소당할 리 없으며 억울해도 어디 호소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생지옥인 중국보다는 낫기에 수많은 이들은 알아서들 자발적으로 열심히 넘어와주고 있었으니, 미국의 재계는 이 선순환을 굳이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문턱을 높이고 경계는 허술하게 하니 불법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불법 이민자들은 싼값에 부려먹고 학대해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니 좋은 노동력이고, 이로 인해 실직한 백인들은 분노해서 문턱을 더 높이라고 외칠 거고, 그러면 불법 이민자는 늘어난다.
최소 투자를 통한 최대 이윤의 실현이 아니면 이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과소평가한 게 있다면, 이질적인 문화들 간의 충돌이었다.
워낙 문화가 이질적인 만큼, 불법 이민자들은 자신들만의 꽌시를 이룩해 차이나타운을 만들어 그 안에서만 살았다. 물론 중국인만 있는 건 아니고 일본 등에서 이주해온 이들도 있었지만 절대다수는 중국계였다. 1950년대가 지나기 전, 미국의 대도시란 대도시에는 모두 차이나타운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은 백인들에게 있어 눈에 보이는 분노의 대상이었다.
“저놈들이 오지만 않았어도 내가 실직하지는 않았을 텐데!”
“저놈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다 뺏어간다!”
미국의 헌법은 미국인들이 무장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렇기에, 아주 사소한 계기만으로도 폭발할 수 있었다.
1950년대를 기점으로 몇 년에 한 번 꼴로, 미합중국의 모든 주요 대도시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조장한 백인으로 구성된 상류층이 아니라, 이들에게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WASP와 유대계 자본들이 아니라.
서로 고통당하는 것은 똑같은, 소득수준도 비슷비슷한 이들을 목표로 한 수평폭력이 이루어졌다.
1950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백인 소녀가 차이나타운에서 강간살해당했다는 출처불명의 소문이 퍼져 폭동으로 확대되었다.
총기를 소지한 백인 민병대가 쿨리들을 학살하자 쿨리들도 총기로 대항했고, 민병대가 격퇴되자 일부 쿨리들이 분노해서 역으로 백인들의 거주지에 화염병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했다.
다급히 출동한 경찰들은 백인 민병대들은 간단한 조사만 하고 풀어주었고 중국인들 가운데 23명을 체포해 심문 한 번 없이 유치장에 가뒀다.
분노한 중국인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항의했으나 전원이 백인인 경찰들은 불법체류자들의 말들을 개 짖는 소리로 듣고, 다같이 추방당하고 싶냐며 역으로 윽박질러 가면서 ‘폭동 주동자’들을 체포했다.
그 결과 분노한 중국인들이 경찰서로 쳐들어가 체포된 청년들을 구출하는 사건으로 확대되었고, 주방위군이 출동해 무차별 발포를 한 끝에야 간신히 잠잠해졌다.
1952년에는 디트로이트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 이 역시 주방위군의 투입으로 진압되었다.
무력 충돌은 상대를 완전히 말살해버리지 않는 한 평화적인 해결 가능성을 줄이고,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든다.
그 가운데,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일어나라! 모든 차별받는 이들아!”
“미국의 모든 주에서, 모든 대도시에서 저들은 우리를 적대하고 있다. 우리가 공존과 타협을 외치는 것은 백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무고해도 경찰은 우리의 항변을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저들은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유색인종과 백인종은 같이 살 수 없다! 흑백의 통합은 불가능하다. 헛된 꿈을 포기하라! 저들은 우리를 이용할 뿐,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인정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엑스! 엑스! 엑스! 엑스!”
“저들은 우리와의 공존도 거부한다, 대화도 거부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은 길은 무엇인가! 실력행사다!”
“우리는 단 한 차례도 폭력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폭력을 제외한 어떤 방법을 써 봐도 저들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원했는가! 과도한 것을 원했는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우리가 원한 것은 단 하나! 우리를 사람으로써, 신이 창조한 같은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봐 달라고, 우리를 당신들이 서로 그러하는 것과 같이 형제로써 봐 달라고 요구한 것 뿐이다! 저들이 우리의 피부색을 이유로 백인들의 절반으로 고정한 봉급을 똑같이 달라고 요구했다! 저들이 우리를 가둔 게토에서 나오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저들이 하는 것과 같이 1인 1표를, 민주주의의 대원칙에 따라 만민에게 베풀어져야 할 의무를 행하고 권리를 누리게 해 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저들은 협상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대화를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에게 날아온 건 총알, 총알, 총알뿐이다!”
“형제들이여! 이곳에 모인 모든 유색인종이여! 아시아에서 왔든, 아프리카에서 왔든 간에 똑같이 차별받고 고통받는 노예들이여! 우리는 이제 외치고자 한다! 더 이상 우리는 부당하게 채찍질당하지 않으리라!”
“말콤 엑스! 말콤 엑스! 말콤 엑스!”
“유색인종들이여! 일어나라!”
수많은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충돌, 보통 백인 쪽의 선공으로 시작되어 유색인종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정의라고는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저열한 충돌들을 지켜본 말콤 X의 사상은 원 역사보다도 훨씬 과격해졌다.
3차 미국 내전을 일으켜서라도 유색인종과 백인들을 분리하겠다. 모든 백인들은 악마나 다름없고, 그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니 우리도 폭력으로 맞서겠다.
완전한 승리 전까지 백인과의 타협은 없다. 우리는 타협하고자 했지만 저들은 어떤 종류의 대화도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저들의 타협은 기만일 뿐이다.
이러한 사상 아래 흑인뿐 아니라 쿨리들로 대표되는 유색인종들, 똑같이 백인들 아래에서 고생하고 있던 구 멕시코 지역에 살던 히스패닉들까지도 규합해낸 말콤 X는 그 사상의 과격성만큼이나 원 역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에 경악을 금치 못한 후버는 말콤 X를 2차 미국 내전을 일으켰던 존 리드 이후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결론내린 후 최악의 악수를 두었다. FBI의 요원들에게 기관단총을 들려서 그의 집을 습격해 탄환을 퍼붓고 불을 지른 것이었다.
말콤 X와 그 일가족이 오밤중에 몰살당하고 집에 화재가 발생했으며, 시체에는 총상이 가득했고 바닥에 탄피가 굴러다니고 있었으며, 경찰이 다급하게 사건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태도에 FBI의 개입을 확신한 유색인종들은 분노했다.
게다가 말콤 X의 주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작전으로 사실상 수뇌부를 잃어버린 흑인 민권 운동 세력은 흐지부지된 듯 싶었고, 미 행정부와 FBI의 후버 등은 3차 내전만큼은 막았다면서 축배를 들어올렸다.
황제가 죽으면 그의 지배는 끝난다.
그러나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지배가 시작된다.
그리고 유색인종에게 말콤 X는 명백히 순교자였다.
그리고, 그의 유지를 이을 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안타깝게도, 미국이라는 국가를 이끄는 엘리트층들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
혁명가가 있어서 혁명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혁명을 필요로 하는 암울한 현실이 혁명가를 태어나게 하는 것임을.
그 현실이 변하지 않는 한, 혁명가의 죽음은 또 다른 혁명가를 위한 거름이 되어 또 다른 싹을 틔운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