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47)
소련(4)
스톡홀름, 스칸다나비아 연방.
“자명한 결과지.”
“응?”
“솔직히 말하지, 난 민주주의가 싫어.”
옌티안 대공은 어린 아들이 노는 모습을 창문 밖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권력을 어떤 방식으로 분배하느냐의 문제, 뭐 이상적으로야 좋지, 그런데 그거 알아? 선출된 정치인들은 ‘우민’들을 ‘현명한’ 자신들이 ‘계도’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같은 인간이라면서, 하. 민중들의 의견이 있지만 ‘아직 계몽되지 않았으니까’ 내가 더 옳고 내가 더 정확하지,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전부 민중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지. 지금이 딱 그 모습이잖아?”
차라리 전제군주는 문제가 잘못되면 단두대에 오른다. 민주정치의 정치인들이 단두대에 오르던가? 아, 저 극동에서 이번 세기 초까지 단두대에 올라간 정치인이 있긴 했지?
“특권의식을 지니면서 평등을 외치는 그 위선이 싫어.”
“………”
“특권의식을 가질 거면 신분을 긍정하든가. 난 그러잖아? 백성이 자기 앞가림을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믿으면 민주주의 같은 소리를 하지를 말든가. 백성이 스스로의 앞가림을 할 줄 안다고 믿으면 그들에게 진짜로 권력을 주든가, 선거철에만 굽신거리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거짓말과 변명으로 그때만 넘기려고 하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인류는 아직 제대로 된 민주공화정을 만들어낼 만큼 진보하지 못했어.”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자를 자칭하는 이들은 공화적이지만 민주적이지 않다.
권력을 여럿이서 나눠먹는다. 투표로 뽑는다. 하지만 선택지는 전부 권력에 굶주린 그놈이 그놈이다. 두 마리의 늑대와 양 한 마리가 저녁식사에서 뭘 먹을지를 투표로 결정하는 꼴이다.
미국? 미국을 이끄는 건 1%의 엘리트지 99%의 멍청이들이 아니다. 그게 어딜 봐서 민주적인가? 민주주의를 자칭하려면 그 99%의 멍청이들이 하자는 대로 다 해줘야지. 그래서 나라가 갈가리 찢기고 멸망한다? 그들의 선택이지.
“그나마 최근에는 조금 민주적이 되긴 했더군, 백인 남성에 한한 민주적이지만.”
“무슨… 아 그 인종 분리 정책?”
“그래, 그 99%가 제일 목소리 높여 외친 거잖아?”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자국의 선택’ 아닌가?
프랑스 공화국? 일당독재 멍청이들. 그들이 물러나고 집권한 그로스도이칠란트? 민주집중제라는 이름의 과두정 독재세력 아니었나? 이중공화국? 그놈들도 과두독재정이긴 마찬가지였고, 비잔티움? 그놈들 거의 신정국가잖아.
그나마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한 아우렐리아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국민투표나 주민투표를 벌여대야 했지만 아무튼 간에 그나마 민주주의적 요소를 보존하고 있다.
“공화국은 왕이 여럿인 왕국에 불과해, 차라리 중세의 봉건제가 훨씬 민주적이었겠지, 모든 사람이 왕? 웃기는 소리지.”
왕은 국민 전체에 비해 소수다. 소수여야 하고, 소수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한계가 그렇다. 아우렐리아에서도 한 달에 한 번씩 투표를 벌이느라 얼마나 많은 행정소요를 지출하던가? 게다가 그 투표는 그 조그만 반도에서, 시민권자들만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
“이 시대에, 민주주의는 달콤한 기만에 불과하다. 농노들이 자기가 착취당하는 게 아니라 진정 자신의 것만을 쌓고 있다고 자부해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요소에 불과하지, 결국 사회는 자신이 나눠준 것처럼 보이는 것 이상을 농노에서 착취하는데 농노는 자기가 주인이 되었다면서 몸에 두른 천 한 장조차 털리고 자랑스러워하는 꼴이야.”
“……..”
“비겁한 놈들이야.”
기만으로 권력의 단물을 빨아보니 그리 좋더냐? 필연적으로 수렴하는 증오를 회피하고 단꿀만 빨아먹으니, 의무는 방폐하고 권리만 행사하니 좋더냐?
그러나 이제 그것도 끝이다.
“폐하,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시종장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오? 알 것 같긴 하지만 확실히 듣고 싶구려.”
“역도들이 프랑스 정부, 그리고 폴란드와 타협하고 전쟁을 끝내기로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부전선의 군대가 역대 최악의 패배를 겪으며 궤멸하고, 요새선을 고스란히 헌납한 뒤 라인란트로 진격해오는 프랑스군, 그리고 뒤늦게 동부전선으로 진격해 스칸다나비아와 호응하려 했지만 혜성처럼 나타나 아직 오합지졸에 불과한 폴란드군을 조련해 독일군의 턱을 돌려버린 명장, 브와디슬라프 시코르스키 원수의 집단군을 막을 병력도 없어질 지경이었으니까.
“조건이 있을 텐데.”
“폴란드에게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을 제외한 엘베 강 이동의 모든 영토를 넘겼고, 이탈리아인 거주지역을 비잔티움에 넘겼고, 북프랑스를 프랑스에 반환했으며 로타르 공화국의 성립을 인정했습니다.”
“로타링기아?”
머리를 더듬다가 그것이 거의 천여 년 전 중프랑크 왕국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깨달은 대공은 헛웃음을 지었다.
“로타르 공화국은 10년 후에 프랑스와 통일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한다는 조건입니다.”
“그 빌어먹을 괴뢰국의 영토는 어떻게 되나?”
“알자스-로트링겐 전역, 저지대 전역, 라인 강 서쪽 지역 전체입니다.”
“하.”
프랑스가 오랜 기간 동안 영유권을 주장해 왔지만, 나폴레옹 시기 이후로 라인란트에까지 침을 흘린 적은 없다. 알자스-로렌은 대전쟁 이전만 해도 프랑스 땅이었으니 뭐 할 말은 없고, 저지대는 논란의 여지는 없지만 라인란트까지 내주었다고? 지금이 루이 14세 시절이던가.
“웃기는군, 그리고 그놈들은 그걸 그대로 받았단 말이지. 빨갱이들에게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다마는, 나라를 말아먹는 솜씨는 참 대단해, 그러지 않나? 빨갱이가 권력을 잡은 나라마다 형체가 남는 나라가 없으니,”
“그리고 신민들이 이 조약이 발표되자마자 분노하여 들고일어났다 합니다. 그들이 사절을 보내어 이르기를, 부디 여제 폐하께서 귀국하시어 주시면 좋겠다고……”
“내 하나만 더 묻지, 그래서 그 빨갱이들은 어디로 도망간다던가?”
그는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얌전히 국민들에게 맞아죽어줄 빨갱이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는 데에 내기도 걸 수 있었다.
“아프리카 연방으로 자기들에게 아직 충성하는 이들을 끌고 도망쳤다 합니다. 아프리카 연방 총독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이들을 받아주고 독일국을 선언했다는군요.”
“하이드리히.”
잠시 그 이름을 생각한 대공은 피식 웃었다.
“더 신경쓸 건 없겠군, 알겠네.”
대공은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뿐, 지금쯤 됐으면 도망자 가운데 생존자는 단 한 사람도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
버뮤다 미 해군기지 인근 해상.
U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단 한 척만 존재하는 10만톤급 전함. 역사상 제작된 가장 큰 주포를 2연장으로 4기나 장착하고 있는 초중전함이며, 범블비 사업을 통해 강력한 방공관제레이더를 장착하기까지 했다.
버뮤다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이 함선의 임무는 이 ‘수상기 타격함대’의 기함으로써 5척의 수상기 모함과 1척의 보급함이 적의 공격을 받지 않게 보호하는 것.
수상함이라면 포격으로 맞서싸울 것이고, 공습이라면 아군 항공기를 부르는 한편 적극적으로 응전하면서 탱킹을 할 것이다. 잠수함은 전함이 싸울 상대가 아니고.
그러나 이런 상황은, 아마 그의 예상에 없었을 것이다.
“함장님!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
CVE-105 커먼스먼트 베이에서 함상반란이 일어났다.
요구사항은 없었다. 아직은.
“탈출에 성공한 메이슨 일등상사의 증언에 따르면 해리슨 중사(Sergeant First Class)가 깜둥이(Black)이라고 수병 중 한 명을 모욕한 직후 총성이 울렸다고 합니다.”
제독도, 함장도 마음이 복잡했다.
인종차별 문제가 제일 덜한 곳이 군이지만, 동시에 워낙 인생이 개차반인 이들이 굴러들어오는 곳이 군이다 보니 별별 인간군상들이 다 있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닌 셈.
그렇기에 군은 인종간 갈등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껴안고 있는 곳이었다. 육군은 보다못해 장교를 제외한 전원이 유색인종들로만 구성된 유색인종 사단 수십 개를 창설해 남미에 파병했을 정도다. 적어도 훈련받은 장교는 최소한 일을 만들어서 치지는 않을 거라 믿으며.
물론 그 장교들 중 프래깅으로 인해 남미의 밀림 어딘가에서 백골이 되었을 이의 수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나 해군에서는 그런 조치가 불가능했다. 백인들로만 구성하자니 인력부족으로 인해 배가 돌아가지도 않을 판이라 유색인종들도 다수 받아들였건만,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선상생활이 보통 고생이 많다 보니 미운 정이라도 들어서 섞이는 경우도 많고, 일단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어지간해서는 잘 깨지지 않기에 그런 쪽을 장교들도 장려해왔건만, 이런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단순히 모욕 한 번에 반란이 터질 리는 없다.
깜둥이(Black)이라는 단어는 명백한 모욕이 맞다. 물론 그게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되느냐는 차치하고 해군 내에서도 가급적 흑인(Nigger, 혹은 Nigro, 1970년대 이전에는 Black은 인종차별적 단어로 현재의 Nigger와 같은 위상을 지녔다. 반대로 Nigger, Nigro, Negro는 중립적으로 흑인을 지칭하는 단어로 널리 사용되었다)이라는 단어를 쓰거나 그냥 그런 단어를 사용할 일을 만들지 말라는 식으로 지침을 세운 지 오래였다.
그리고 모욕당한 이들 중에 정말 그날따라 화가 나서 총으로 상대를 쏴버렸다. 그럴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근데, 모욕을 당해서 총을 쐈는데, 당황하거나 총을 쏜 자를 붙잡는 게 아니라, 수병들이 우르르 들고일어나서 함내를 휩쓸고 다니면서 백인은 다 쏴죽여버린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 명백히 뭔가 있다.
‘조직적인 반란이거나, 아니면 그만큼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몰아붙여져 있던 건지.’
전자면 함대 내에서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는데 몰랐다는 거고, 아니면 함선 내에서 그만한 문제가 곪아가고 있었는데 전혀 몰랐다는 거다.
제독 자격이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제독님.”
“일단 내가 직접 건너가서 대화를 해보겠네.”
“제독님, 위험합니다.”
그러나, 시도는 이뤄질 수도 없었다. 어쩌다가 커먼스먼트 베이에 바짝 접근했던 단정을 향해 중기관총 사격이 퍼부어진 것이었다.
간신히 사격을 피해 도주하는 데 성공한 단정이 기함으로 돌아오는 걸 본 제독은 이를 악물었다.
“대화의 의지가 없군.”
일반 함선이라면 이 정도로 걱정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수상기 타격 함대는 본디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진 함대, 당연히 ‘그것’ 역시 이곳에 실려 있었다.
그러니 발포는 최대한 피하고 싶은 선택지일 수밖에 없었다. 탄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전부 죽는 셈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누가 이판사판이라면서 자폭이라도 한다면? 미 해군의 수상기 타격 함대의 연혁을 기록한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힐 것이다.
‘버뮤다 해상에서 핵폭발에 휘말려 전멸, 생존자 전무.’라고.
그때, 바짝 긴장하고 있던 함장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기중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매달린 검은색의 물체는…….!
“발포!”
너무 뜬금없는 명령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저놈들이 수상기를 띄우려고 하잖아! 발포해!”
그들이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버뮤다를 빼면 650마일 거리에 있는 노퍽 미 해군기지, 그리고 750마일 거리에는….. 미합중국의 수도이자 최대도시, 뉴욕이 있었다.
P6M의 전투행동반경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위치지만 최대항속거리는 전투행동반경의 두 배를 훌쩍 넘으니, 자폭을 각오하면 뉴욕에 핵을 충분히 던져버릴 수 있으며, 최대속도를 고려하면 일단 출격하면 여유시간은 고작 1시간 내외에 불과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뉴욕과의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 현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했으니, 수천 명의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수상기를 띄우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전함이 일제사격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