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53)
덴노(2)
“장관님, 지금 저랑 장난하잔 겁니까?”
의전서열상, 4성장군은 장관의 아래고 차관보다 위다.
그러니까 외무장관보다 내가 의전서열이 낮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지금 중요한가?
-내….. 자네 지금 기분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네만.
“왕녀고 뭐고 20년 전, 지난 대전 당시 일입니다. 애 둘 엄마고요! 현수랑 현정이 백일잔치 때 선물 보내시고 돌잔치는 직접 와서 보시기까지 하셨잖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요? 예?”
-……………….
“할 거면!”
나는 악을 썼다.
“할 거면 20년, 아니, 10년 전에라도 하셨어야죠! 적어도…. 적어도! 아니, 김구, 김구 국장님께선 뭐라 하셨습니까? 올해를 마지막으로 퇴역하신다고 해도 그분이랑은 상의도 안 한 겁니까? 아니면 설마 그분도 동의하셨습니까?”
-좀 끝까지 듣게, 일단 우리는 답을 주지 않았어.
“일언지하에 거절하지 않으셨단 거군요.”
-자네 기분 충분히 이해해, 자네가 내 앞에 있었다면 내 면전에 소금을 뒤집어씌웠어도 이해했을 걸세.
“아시는 분이 이러십니까? 아우렐리아 헌법 제…..”
-국가는, 어떤 이유에서든 개인이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할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 헌법의 조문은 나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네.
“알고 있으시면 됐군요. 전화 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제 얼굴 보실 생각 하지 마십시오.”
쾅 소리와 함께 수화기를 내리쳤다.
“……….”
그때, 어께에 손이 얹어졌다.
“진정해, 당신답지 않아.”
“…………”
성질 같았으면 ‘나다운 게 뭔데?’ 같은 소리나 쏘아붙여 봤겠지만 내 어께에 손을 얹은 상대가 상대였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히미코는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날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그러니까 전화하지 말랬잖나, 공연히 욕만 얻어먹고, 쯧.”
“오늘날의 쇼인주의에서 천황은 당의 정통성 그 자체와 불가분한 관계입니다.”
죽은 요시다 쇼인이 알았다면 무덤에서 뛰어나올 정도의 말이었지만, 민간 신앙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한 일본의 공산주의의 현실이 그러했다.
“따라서 일본공산당에게는 두 가지가 있죠.”
시스템 전체를 갈아엎거나, 아니면 우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그리고 우리가 예방전쟁을 강행할 의사가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으면 결정이 차라리 쉬웠겠군.”
예방전쟁을 통해 일본이 아우렐리아를 위협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고 하지만, 일본이 스스로 머리를 숙이는 상황에서까지 예방전쟁을 강행할 필요는 없다.
“전쟁을 해서 얻어내려 한 걸 전쟁을 하지 않고 얻어낼 수 있다면, 예, 확실한 이득이죠.”
일본 사절단은 그들에게 풀어 줄 선물보따리를 충분히 가져왔다.
아우렐리아의 일본 내 자산의 보장, 큐슈의 비무장지대화. 일본인민군의 군비제한.
물론 일본공산당도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 건 아니다. 협상이 타결된다면 군비를 제한한 만큼, 그리고 일본 내에 이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아우렐리아는 일본을 군사적으로 어느 정도 보호해줄 수밖에 없다.
아우렐리아와 무한한 군비경쟁을, 그것도 한참 뒤쳐진 위치에서 시작했을 때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에 대해 주판을 튕겨 본 후에 내린 결정이었고, 아우렐리아의 외교관들도 이를 알았다.
하지만 함부로 거절할 수도 없다. 일단 이걸 받는 순간 최소한 일본은 아우렐리아의 아시아 패권에 복종하며 종속된다는 의미이며, 가상적국과 너무 가까운 곳에 국토가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안보불안 역시 급속히 해소될 터. 따지고 보면 안 받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소요는 있겠지만, 그 소요는 결국 패권국이 되기를 원하는 국가에게는 사실상 고정지출이나 다름없으니까. 무장한 일본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 일본을 경계하는 것보다 쉬운 건 당연한 게 아닌가.
“하지만 본인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건 위헌이고… 무엇보다 전략군 사령관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향후 10년 내에는 없습니다.”
“왜놈들이 얼마나 양보하겠다고 하던가?”
“왜놈이라뇨……”
“어쨌든.”
“저희 측에서 총 병력규모 3만 명으로 제한, 핵무기, 독가스 등 대량살상무기, 로켓, 항공기, 기갑차량, 군함, 20mm 이상의 화포, 자동 및 반자동화기 보유 금지를 제시해봤습니다. 군수공장도 한 곳으로 제한하고요.”
원래 외교선상에서는 기선 제압이나 일단 크게 질러놓고 본다는 식으로의 요구를 하고, 다시 협상을 하면서 그 격차를 좁혀나가는 경우가 많다. 국력이 대등하다면 중간 어드메에서, 그리고 국력에 차이가 많이 난다면 그 중간지점에서 좌우로 많이 치우칠 터.
하지만 그걸 여기서 말한다는 건……
“설마 받아들였나?”
“예. 천황가만 반환해주면 그렇게 하겠답니다.”
“그 정도로 저들에게 이 상황이 절실한가?”
“……….”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우리가 받아도 문제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이걸 받아내면 그야말로 대대손손 엄청난 외교적 승리로 선전할 수 있을 정도의 일방적인 수혜나 다름없다.
하지만 상대도 바보가 아닐 텐데, 도대체 왜? 어째서?
“핵기술…….”
“일 리는 없습니다. 핵무기 개발 금지도 명확한 데다 핵무기는 우리도 겪었듯 하루이틀, 한두 푼 쏟아부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 도대체 뭘 노리는 거지?”
***
“돌겠군.”
“동지.”
“아우렐리아 놈들, 우리가 간도 쓸개도 다 빼줄 요량이 있다는데도 왜 저러는 거지? 왜?”
너무 협조적으로 나와서 되려 의심한다니. 제기랄.
“적어도 군수공장은 우리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이 싸움은 결국 누가 민중들에게 설득력이 있냐의 문제야, 총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그리고 야마구치 그 개자식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겠지.”
19세기에 세르게이 모신이라는 툴라 조병창의 책임자가 있었다. 그는 네덜란드의 한 형제가 내놓은 탄창을 자신이 설계한 소총과 결합시켜 이중제국의 제식소총으로 채용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그 우직한 신뢰성은 사냥꾼이나 혹한지에서 작전해야 하는 러시아군에게 호평을 받았고, 준 제식으로 운용되었다.
실전에서 사용된 후, 니콜라이 홀로도프스키 중장은 신기술인 프리플로팅 배럴을 도입하고 부품을 알루미늄 등을 사용해 개선하고 실전에서 지적된 높은 방아쇠압, 장전손잡이와 방아쇠 간 간격이 너무 긴 문제, 볼트 구조 문제 등을 개선한 신형 소총을 만들었으나 역시 채용되지 않았다. 그걸 사용할 바에는 리-엔필드를 쓰는 게 나았으니까.
그리고 야마구치 덴 해군장관은 이중제국에서 채용에 실패된 뒤 잊혀진 제작설비들과 총기, 탄약 등을 일본 내로 밀수해 와 1호 군수공장을 차리는 데 성공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성과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내에서 신식 총기를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거기에서 끝났다면 위기감까진 느끼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해군장관이 계속해서 육군에 손을 뻗고, 군 내에 영향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북부동맹이 붕괴된 뒤, 야마구치는 노획한 구식 복엽기들을 보며 앞으로는 항공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하며 대량생산을 건의했다.
대부분의 이들이 비웃었다.
‘우리가 기름이 어디서 나서 항공기를 운용하나?’
그러나, 해냈다. 그 방식도 기가 막혔다. 미분탄 제트 버너와 2행정 엔진 등을 이용해 석탄 가루를 연료로 사용하는 증기기관 복엽기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띄워올린 것이었다.
물론 제트기가 상용화된 외국에서 보면 웃다가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허술한 물건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야마구치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파벌을 마구잡이로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건보트 몇 척만 끌고다니는 해군만이 아니라 육군에도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당에서는 불안감을 느꼈다. 야마구치가 새로운 정이대장군이 되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그리고 술자리에서 야마구치가 경솔하게 내뱉은 결정적인 발언을 입수한 당에서는 야마구치를 당의 최대 위협으로 규정지었다.
그럼에도 당장 숙청해버리는 것은 전면적인 반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에, 이런 식으로 힘을 깎아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결국 덴노를 모셔오는 것도, 그리고 군축을 이뤄내는 것도. 총리 입장에서는 꽃놀이패였다. 군축을 성공시키면 덴의 팔다리가 잘려나갈 것이고, 덴노를 모셔오면 그것 역시 자신들의 공이 될 것임이 틀림없으니까.
‘처음부터 우리의 패를 전부 보여준 게 실수였나…….’
문제는 조급한 나머지 큰 약점을 보여주고 말았다는 것.
군축은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지, 교환패가 아니라는 것이 노출되었을 수 있다는 게 최대의 문제였다.
“야마구치 그 놈은 완전히 미친놈이야, 뭐? 쓰시마를 비롯해서 일본의 작은 섬들을 전부 조선에게 돌려받고 사죄도 받아내야 한다고? 미친놈.”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헛소리를, 아무리 사석에서 벌어진 술자리였다지만 장교들이 가득한 곳에서 멋대로 혓바닥을 놀렸다.
그걸 들은 젊은 장교들이 또 뭐라고 생각하겠나?
“조선과 싸우면 우린 파멸해, 야마토 민족 전체가 지구상에서 지워질 거다. 저놈들은 핵도, 독가스도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한가득 가졌고 국력에서도 비교가 안 되네, 우리가 살려면 어떻게든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현명한 외교를 벌여야 하는데 저놈들은……!”
이미 빨갱이라는 것만으로도 비호감 스택을 대량으로 적립했을 게 뻔하다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은 딱히 세계혁명론을 믿는 부류도 아니었고, 현실의 강고한 벽에 수십 년간 머리를 들이박아오다가 행운에 행운이 겹친 끝에 승리한 이들이었다. 사회 체제가 그들 생각보다 견고하고, 제국주의자들의 연대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적어도 인민의 궁극적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여기면 반드시 개입해올 터.
그런 만큼 모두가 합쳐서 빨갱이를 두들겨패거나 한 놈이 죽도록 패는 걸 묵인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무해한 척을 하면서 제국주의자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도록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혓바닥을 놀려서 상대의 경계를 올릴 일을 만들고, 거기에 젊은 장교들을 이상한 방식으로 충동질한 죄까지 포함하면 숙청의 명분으로는 차고 넘쳤다.
‘그냥 죽이면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겠지만, 덴노를 모셔와서 조적에 대한 치벌을 내리게 하거나, 그렇게 거창하게 하지 않더라도 덴노에 대한 불경죄 명목 등으로 처리하면 그나마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
머리에 피도 덜 마른 것들이 짖어댄다고 해도 ‘어심이 그러하다’는 말만으로도 그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차고도 넘칠 테니까.
덴노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덴노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