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56)
쿠데타(1)
일본 공산당 측에서 제시한 타협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먼저 아우렐리아는 일본의 군비 제한을 통해 안보 불안을 해소하며, 천황령에 병력을 주둔시킴으로써 일본 내에 개입할 여지를 남긴다.
일본 공산당은 이를 통해 국방 문제를 웬만큼 해결할 수 있으며 군비감축을 통해 군부를 억제하고 겸사겸사 군비를 줄여 국가 재건을 위한 자금도 확보할 수 있다.
나는 천황령에 주둔하는 아우렐리아군의 지휘관 자격으로 같은 곳에 머물 테니 가족이 흩어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들 은근히 바라지 않습니까.”
혈연.
사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연줄 중 하나가 혈연이라는 건 반구대 수박도에도 굳이 기록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이 나라는 소수민족 문제를 무력화하고 이들을 말살하는 데 적극적인 동화를 중시한다. 조선민족이 1억이니 써먹을 수 있는 전략, 이를 위해 강제결혼까지도 불사한다.
‘조선민족이라.’
한(韓)민족이라는 단어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첫 번째 문제는 중국의 한(漢)족과 발음이 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는 거고, 두 번째는 한은 중국 전국시대의 전국칠웅 중 하나인 한나라를 지칭하기도 한다는 것. 뭐 사전 뒤져보면 나오기는 하겠지만.
따라서 이 반도에서 살아가온, 순혈 한민족을 지칭하는 학술적 단어로는 고조선 이래로 유서깊은 조선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누구는 환(桓)민족이라는 단어를 주장했는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연방정부에서 무시했다지?
아우렐리아라는 이름을 딱히 바꾸지 않은 것도 한국에서 파생된 국명은 거의 존재감이 없고, 조선 어쩌고 하는 국명을 짓자니 과거의 그 전제적 봉건왕조 어쩌고가 생각나니까 영 좋지 않다고 하고.
아무튼 그 인구가 1억에 가깝고, 외부 유입 인구쯤은 순식간에 와작와작 씹어먹어서 동화시킬 수 있는 머릿수다.
타이완은 인구가 너무 많아서 남미로 추방된 인구가 제법 되지만 류큐 등은 이미 압도적인 머릿수 앞에 순식간에 그 형체를 잃어버린 상황, 이미 이주 정책을 통해 머릿수에서 백인들을 압도하게 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인구수가 깡패니만큼 먹고 흡수시켜 동화해버릴 수 있을 터.
그리고.
“제 아들과 손자가 대대로 일왕이 되면 일본 전체는 어려워도 천황령만큼은 계속 묶어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십니까?”
“……..”
살짝 눈을 피하는 이들이 보였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니, 틀리지 않았네.”
그 말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대통령 각하.”
“자네 말이 전부 맞네, 우유부단하게 행동한 것도 우리 정부고, 가볍게 생각한 것도 우리 행정부고, 결국 자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도 본 행정부지.”
“………..”
“전부 우리의 책임이야.”
“하.”
쌍욕을 시원하게 해주려다가도 이런 식으로 나오니 맥이 빠진다.
“그래서, 제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조국을 위해서, 한 번만 더 고생해주게.”
대통령의 손에는 연방원수 계급장이 들려 있었다.
***
나가사키, 일본인민공화국 해군성.
“이 개자식들!”
집기란 집기를 모조리 때려부수다시피 한 남자의 분노에 그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그야 그는 이곳에서 가장 높은 이였으니까.
그 광란이 잦아든 직후, 살기를 가득 띈 남자, 야마구치 제독은 입을 열었다.
물론 지휘할 군함이라고는 건보트 몇 척밖에 없는 제독이지만, 그의 영향력은 단지 제독이라는 직함 하나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다.
“나카무라!”
“예, 총장 동지.”
자신의 심복을 노려본 야마구치는 입을 열었다.
“그 개자식들이 기어코 조선군을 끌고 오겠다는가?”
“예.”
“빌어먹을 조선놈들, 그놈들이야말로 진정한 적인데!”
신국이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훼방을 놓고, 일본을 착취한 놈들이 누구인가? 바로 조선놈들이다.
“신, 신이라, 하, 칠백 년 전이나 신이지, 조선놈들에게 끌려갔다가 되려 흘레붙어서 새끼까지 친 년을 신으로 섬기라고?”
“제거를 시도하면……”
“제거를 시도해? 아우렐리아와 전면전을 벌이자는 건가?”
으드득 이를 간 야마구치는 입 안에 얼음을 털어넣었다.
“당, 항상 뭣도 모르는 당의 놈들이 문제였어.”
“그렇다면…….”
“나카마사 놈도 지금 조선에 있지.”
“놈의 부하들은 전부 오사카에 있습니다. 제독 동지.”
“상관 없다. 나카마사 그놈의 통솔력이 없으면 내무군 놈들은 이빨 빠진 개새끼보다 못한 오합지졸이야. 게다가 나카마사 놈이 있다고 해도 일단 전차를 동원하기만 하면 이긴다.”
북부동맹과의 싸움에서 그들은 다수의 전차를 노획했다. 그리고 북부동맹에서 투항한 전차병들은 그들에게 전차의 운용법을 가르쳤다.
현재 일본의 수도는 오사카, 야마구치도 그것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어하는 바였다.
오사카, 천하인이었던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을 결의한 장소.
“조선은 그 위치만으로도 도저히 좌시할 수 없는 위협이다.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했어, 태합이 옳았건만.”
그 저주받을 메구라부네를 끌고 다니던 이순신은 분로쿠의 마지막 싸움에서 죽었다.
그러면 다시 군세를 일으켰어야 할 것 아닌가. 20만으로 부족했으면 50만을, 100만을 밀어넣었으면 어떻게든 조선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기에 우리가 노예 민족으로 백 년을 살아온 것이다.”
만일 조금 더 일찍이 근대화를 했다면.
멍청한 도쿠가와 놈들이 더 빠르게 문호를 열었다면.
그랬으면 제대로 개화하지도 못한 조선놈들을 역으로 식민지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이미 끝났다. 이번 싸움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이미 수백 년간 일본을 통치한 천황과 쇼군과 다이묘, 그리고 공산당 놈들까지, 그 놈들이 이미 우리 모두를 끝장냈어, 일본이라는 이름이 남을지 몰라도, 마지막 일본인이 최후를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일본은 결코 열강의 일좌를 차지하고 당당하게 자주를 외칠 수 없게 되었다. 만세일계가 이어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노예의 삶 속에서. 이제 일본은 정녕 위대한 대동아공영를 위한 길을 영영 걸을 수 없을 터인데.”
결국 일본은 무사에 의해 세워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인 놈들에 의해 망하는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주군인 대일본의 복수를 행하는 추신구라의 사무라이들과 다르지 않다.
“핵무기.”
야마구치는 나직이 말했다.
“핵무기가 필요하다.”
핵무기를 손에 넣어야만 한다.
열강과 식민지라는 단어는 핵무기 보유국 미보유국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터.
핵무기를 손에 넣는 것만이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리라.
“핵무기를 들고 있는 조선과 맞서기 위해서는 같은 무기가 필요하다.”
그 외의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
“야마구치는 해군 제독입니다만, 육전에서도 잔뼈가 굵습니다. 애초에 해군이 하는 일이라는 게…..”
“육상 작전 지원에 가까웠겠지.”
“주 활동 무대도 강이고, 바다나 수로를 이용해 병력을 기습적으로 이동시키는 데에는 도가 텄습니다. 특히 육전대가 우수합니다.”
나카마사는 일본 공안지원국장라고 스스로를 밝혔다. 공안지원국이라고 하면 뭔가 경찰의 보조전력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방첩기관의 수장이다.
그리고 쿠데타를 막을 임무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강력한 군대를 통해 외국을 지배해 온 세상의 물산을 열도로 돌려야만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죠. 하시바가 일으킨 분로쿠의 역(임진왜란)이 실패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이번 일이 끝나면 확실히 군을 손보기는 해야겠네.”
“어쩔 심산이십니까?”
“조선과 약속한 대로 군을 대폭 감축할 겁니다. 그리고 군을 보완하기 위해 군에서 퇴역시킬 장비들을 모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나카마사 군,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장비를 넘긴다니?”
“교황청에도 스위스 근위대가 있는데 천황께서 직속부대를 거느리시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천황 근위헌병대를 창설시켜서 지휘권을 장군께 넘겨드리겠습니다. 인원도 다수 전속시켜 드리고요.”
“………….”
그러니까 천황령에 군대를 다 떠넘기고 우리 군축했어요~ 할 생각이라 이거지? 이 새끼들이? 천황령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니까 조약을 지켰다 눈 가리고 아웅이냐?
라고 할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일단 넘어오는 군대는 다 내가 장악할 수 있는 거잖아? 게다가 천황령이 무장해봤자 한계가 있는 건 뻔하고.
‘최소한을 제외하고는 싹 해외에 팔아버려야지.’
순식간에 생각이 딱딱 채워졌다.
‘뒷세계든 군벌이든 간에 돈 잘 쳐주는 데다 탱크고 항공기고 싹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관광산업을 육성하라고 해야겠군, 마침 괜찮은 모델도 있겠다.’
어차피 일본이 시뻘개진 이상 빡빡한 통제는 일상다반사일 터, 그런데 법이 다르게 적용되니 전혀 관련없는 ‘외국’이 눈앞에 있어서 아주 신나게 놀고 돌아갈 수 있다면?
‘일본인들 주머니를 아주 싹 털어주마.’
개같이 일해서 나고야에서 쓰고 돌아가라, 이놈들아.
“전혀 걱정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원래 쿠데타란 게 한 개 소대만 적절한 위치에 정확한 지시를 내려도 바로 틀어막아지는 거니까. 게다가 자네 말대로라면 천황만 제때 내세워도 부하들이 말을 안 들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조칙이 내려왔다고 하면 꼼짝 못 할 겁니다. 윗선과 현장에서 구르는 병사들은 다르니 말입니다. 게다가 제 부하들도 이미 나고야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반군의 기갑부대들이 걱정이군요. 만에 하나라도 말이 먹히지 않으면 보병으로는 힘듭니다.”
“판저……. 아니, 기갑주먹은? 없어?”
“있긴 합니다만 순수히 그것만으로 전차에 대항하기는 어렵죠, 전쟁 내내 느낀 겁니다만 역시 전차는 전차로 맞서야 합니다. 물론 폐하께서 전면에 나서신다면 모르겠지만 위험을 감수할 순 없으니….”
히미코와 나스탸, 그리고 아이들은 전부 본국에 있다. 나스탸도 히미코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고, 신생 천황령에서 궁내부장을 맡기로 하고 귀국을 택했다.
“대신 이놈들을 대량으로 동원했는데……”
“무선전차들은 제몫을 할 거요.”
사실 진짜로 제대로 싸울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렇게 믿어야지 뭐.
지켜야 할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 현실을 자각한 연방정부는 군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약속하면서 모병을 지속할 뿐 아니라 무인 병기에 눈독을 들였다.
그리하여 대전쟁 전부터 연구를 시작한 무선전차 부대들는 이제 와서 실전에 투입해볼 만한 성능을 어느 정도 갖추었고, 연방정부는 실전에 투입해보라고 내보냈다.
“전차라기에는 모양새가 좀 빠지지만.”
SMG-10이라는 이름의 10mm 기관단총 두 정이 무장의 전부에 외발자전거 비슷한 모노휠, 외발자전거와 다르게 바퀴의 폭이 넓어서 어지간해서는 좌우로 자빠지지는 않겠다마는.
“자이로스코프가 맛이 가지 않는 한은 절데 안 넘어집니다. 걱정 마십시오.”
기술자 하나가 그에 답했다. 처음 보고 양손에 기관단총을 들고, 두 팔에는 방패를 달아놓고 몸에도 두꺼운 철갑을 두른 인간이 외발자전거를 탄 걸 위아래에서 꽉 눌러 압축한 것처럼 생겼다고 누가 그랬는데, 진짜 보다 보니까 좀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초기형은 진공관을 써서 영 성능이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 집적 회로를 쓰니 어지간하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어때,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그만이지.
“어차피 대부분의 전투는 시가전으로 벌어질 테니 말이오.”
오사카는 나고야와 더불어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다. 에도와 교토 등은 오래전에 작살났으니까.
도선사에 의해 외교관용 쾌속선이 완전히 부두에 정박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