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61)
로타르(2)
암스테르담 국제공항을 향해 자동차가 달리고 있었다.
세계대전 후 군에서 방출된 폭격기나 수송기를 민간에서 개조하여 시작된 여객기 사업이 시작된 지 꽤 됐고, 비용은 갈수록 싸졌다.
그리고 그 여객기들의 정점은 보잉 사에서 개발한 B-2707, 그리고 이에 맞서 록히드 사가 개발한 L-2000 ‘초음속’ 여객기들이었다.
B-2707은 마하 2.5에 달하는 속도를 가지고 있으며 230명까지 탑승이 가능하고, 그보다 한술 더 뜬 L-2000은 순항속도가 최고 ‘마하 3’에 이르며, 승객은 250명까지 탑승시킬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항공기들은 폭격기를 기반으로 개발되어 대륙간 항공 여객 운송을 도맡았다. 물론 그만큼 비쌌지만 외교관들이 언제 자기 돈 내고 타던가.
물론 지금 미국 내전이 터지는 바람에 생산이 중단되고, 일부 기체들은 개조를 거쳐 폭격기로 전용되기까지 했지만 이미 각 항공사에 인도된 기체들은 그대로 사용중이다.
“올 때는 L-2000을 탔으니 갈 때는 보잉기를 타볼 생각입니다.”
유럽에서도 이 여객기들이 취항하는 공항은 극히 제한적이다. 수도공항 외의 공항에 이 항공기들이 착륙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아시아에서는 아우렐리아 노선에만 이 항공기들이 취항한다. 다른 나라로 가려면 다른 항공기로 갈아타야 하고.
“2707은 다른 건 몰라도 제공되는 샴페인이 참 괜찮습니다. 2000은 승객에 대한 좀 세심한 배려가 다소 부족하달까……”
이것저것 다 타본 외교관들답게 대륙 간 항공기에 대해서 이리저리 떠들었다.
‘콩코드는…. 여기서는 못 태어나겠지, 아쉽군.’
그간 프랑스가 그런 거 개발할 국가적 상황도 아니기는 했다만, 이번 시위도 결국 프랑스 국내의 만성적인 경기침체를 극복하려고 로타르를 뜯어먹은 것에 대한 반감이 폭발한 거 아닌가.
“다만……..”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저 멀리에서 막 착륙하던 델타익의 대형기가 폭발을 일으키며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직후 공항 청사도 폭발을 일으켰다.
“뭐, 뭐야!”
독일 국방참사관인가 뭔가 하던 직함을 가지고 있던 독일 장교가 비명을 질렀다.
“공습입니다!”
“공습이라니? 갑자기?”
둘 다 비스무리하게 생겨먹어서 방금 추락한 게 뭔지는 몰라도 대륙간 초음속 여객기인 건 확실하다. 저 꼬라지니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도 희박해 보이고.
그러나 뇌가 눈으로 본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몇 초 뒤, 나는 똑똑히 보았다.
프랑스 국적표지를 단 제트전투기 여러 대가 하늘을 스쳐지나가는 걸.
“프랑스…….”
“젠장, 개구리 놈들이 할 법한 생각이 그러면 그렇지! 유럽의 지나 놈들!”
유럽의 짱깨가 짱깨했다. 국민투표 분위기가 안 좋으니 탱크로 깔아뭉갠다, 명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짓이지만 정말 저질렀다.
-콰콰콰쾅!
미사일을 맞은 관제탑이 불타면서 붕괴한다. 이제는 진짜 뛰어야 한다.
“세워! 내려! 내리라고!”
외교관들이 탄 차량이지만 민간 여객기도 쏴서 추락시키는 놈들이 그런 걸 신경쓸까? 아니, 저 하늘에서 보이기나 할까?
“내려서 도랑으로 굴러! 당장!”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폭음이 울렸다.
-콰콰콰콰쾅!
조금 전까지 타고 있던 차가 전투기에서 발사된 기관포탄에 벌집이 되어 파괴되는 걸 본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 개새끼들이 진짜……”
“여제 폐하께서 절대 가만있지 않으실 겁니다. 전면 참전은 아니더라도 로타르를 전폭 지원하시겠죠. 젠장, 몇 년만 뒤였더라면…..”
“반대로 지금이라서 공습을 했을지도 모르지.”
나는 중얼거렸다.
“예?”
“그, 군터 소령이랬나? 생각해보게, 우리가 최상층 호텔 스위트룸에서 노닌 지가 며칠쯤 됐나?”
“좀 됐죠.”
“로타르 정부도 우리가 모였다는 걸 알겠지, 게다가 우리는 진짜 여권으로 입국한 데다 거기에 내가 있었어.”
아우렐리아 전략군 사령관. 핵무기, 독가스, 생물무기 등에 관계된 모든 사항, 특히 핵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내 결재를 거쳐야 한다.
“어쩌면.”
프랑스 정보부가 이를 파악하고 독일이 핵무장하기 전에 로타르의 병합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침공을 개시했다면?
“우리 때문이란 겁니까?”
“아니, 저놈들 때문이지, 침공을 결정한 건 저놈들이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다만 놈들도 세부적인 정보를 얻지는 못한 모양이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오.”
스칸다나비아 특명전권대사가 끙 소리를 냈다. 젊지 않은 나이에 바닥을 구르다 보니 제법 아픈 모양이었다.
“이게 군부의 독단인지, 선전포고가 제대로 전달되긴 했는지 등도 중요한 게 아니오,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여길 빠져나가야 한단 거지.”
“맞는 말씀입니다만, 항공기를 이용하면 집중공격을 받을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외교관이라고 해도 헬기 같은 거 타고 빠져나가려고 하면 일선 병사들이 적기로 오인하고 대공미사일을 쏴버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고정익기는 활주로가 멀쩡할지부터 생각해봐야겠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건 역시 외교 공관일까?”
“민항기까지 격추하는 거 보면 공관이라고 폭탄 안 떨구리라고 생각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로타르 정부가 사력을 다해 보호하고 우선 탈출시켜 주긴 하겠죠.”
프랑스 정부도 최소한 형식상으로나마 외교관은 보호하긴 할 거다. 현장의 군인들은 잘 모르겠다마는.
“로타르가 버틸까요?”
“일주일 내에 무너지지 않으면 잘 싸운 거라고 해줄 수 있겠죠. 제기랄.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되기도 전에 항복해버리지는 말아야 하는데.”
그제서야 로타르군도 정신을 차렸는지 사격을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대공포가 연신 불을 뿜어대는 소음이 이곳까지 들려왔다.
“일단 차량부터 구해야겠군요.”
***
바르샤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수도였던 곳이자 동유럽의 파리라 불리는 화려한 도시.
그 도시의 가장 화려한 건물 중 하나라고 평받는 외무부 청사에서는 지옥 같은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열이 머리 끝까지 받으면 오히려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폴란드 공화국의 외무장관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는 묵묵히 안경을 고쳐 쓰며 눈앞의 인물을 노려보았다.
“대사, 왜 이런 일을 우리와 상의조차 하지 않고 저지르는 거요? 내 이유나 들어 봅시다.”
“……….”
그래, 군부의 영향력이 프랑스에서 절대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군부의 수장이 좌파를 혐오해서 좌익 세력을 모조리 총칼로 때려잡고 확고한 우익 독재정권을 구축한 것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동맹국에게 전쟁을 할지 말지를 알려주는 건 상식 아닌가?
“저 역시….. 본국에서…… 어떠한 훈령도……”
“하.”
그러니까 지금 최중요 동맹국에 파견된 특명전권대사가 이번 기습공격에 대한 연락을 미처 받지 못했다는 소리를 믿으란 말인가?
그가 이를 눈곱만큼이라도 신뢰하는 것은, 이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이 너무 병신 같아서였다.
적어도 자기가 오래 봐 온 대사가 병신이라고 믿기보다는 그냥 프랑스 정부가 자만이 지나쳐서 자신들 없이 전쟁을 치르기로 결심했다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귀국은 본국의 지원 없이 전쟁을 치르기로 결심한 거요?”
“그건……”
“설령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소.”
폴란드는 전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우렐리아에서 막대한 양의 전차, 자주포, 전투기, 헬기, 소총 등등을 구매하기로 결정했고 선금까지 납부했지만 아직 전차와 자주포는 몇 개 대대분밖에, 항공기는 한 개 비행단 규모로밖에 받지 못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었다. 설령 아우렐리아가 제때제때 물자를 생산해준다 한들 지구 반대편에서 물자들을 그렇게 많이 날라주는 게 어디 쉽겠는가. 지금 받은 것도 아우렐리아가 납기를 맞추기 위해 자국군 현역 장비에서 빼서 준지라 생각보다 빨리 받은 거였지 어지간해서는 어림도 없었다. 빨리 받으려고 일부 대금을 선납까지 했기에 그만큼 빨리 받았을 뿐.
그렇지만 아우렐리아가 진짜 무슨 모래와 솔방울로 전차와 자주포를 빚어내고 축지법이라도 써줘서 물건이 전부 폴란드 땅에 있었더라도 전쟁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지금 폴란드군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폴란드의 군비증강은 군을 재건하는 단계가 아니라 군을 2배로 증강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하지만 ‘폴란드’는 참여할 수 없었다.
“독재 정권 물러가라!”
“군인들은 부대로 돌아가라!”
“국가는 국민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위대의 함성이 밖에서 들려왔다.
최루탄조차 꼭 필요한 지역에서만 사용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고, 발포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때는 진짜 모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장성들을 모두 매달아버릴 테니까.
폴란드는 그 시작을 군부 독재정권으로 장식했고, 이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무능을 드러냈다. 하다못해 옆의 독일보다도 밀렸으며,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사실 경제가 아작난 건 프랑스도 마찬가지였고, 전쟁의 승자들은 굶주리는데 패배한 독일은 군살을 다 떼어버리고 두 나라의 총생산을 가볍게 추월해버리자 세 살배기 어린애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미국에서 3차 미국 내전이 발발하자 반군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시위대가 주요 지방도시들을 점거해 중앙정부가 주요 도시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는 지경까지 갔었다.
진지하게 시위대가 다 때려부수고 대통령궁을 점거하는 게 아닌지 우려해야 할 상황까지 일시적으로 발생했었고, 지금은 그 정도 위기까지는 아니었음에도 군사정권 붕괴를 원하는 시위대가 끝도 없이 몰려나오는 상황인 건 변하지 않았다.
‘최루탄 사용을 최대한 줄였는데도 탄약이 바닥나기 직전이다.’
아우렐리아에서 무기를 사 온 이유 중 하나도 폴란드 내 군수공장이 죄다 파업하는 와중에 생산 재개가 언제쯤 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은 어불성설이다.
“폴란드는 참전은 물론, 어떤 지원도 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오, 그리고 귀국도 우리에게 어떠한 언질도 주지 않았으니, 알아서 잘 해 보시오.”
***
사이렌 소리가 미친 듯이 울렸다.
어찌어찌 로타르 군인들에게 신분을 밝히고 얻어탄 차는 암스테르담 시가지 한복판에 떨어진 폭탄에 뒤집어졌고, 프랑스 외인부대가 난장판 한복판으로 낙하산을 타고 강하하는 게 보였다.
“쯧.”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은 주머니에 넣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호신용 소구경 권총 한 자루뿐. 중요한 물건은 어제 죄다 본국에 보냈으니 상관없지만 내 몸 지키는 게 문제였다.
권총보다는 되려 바닥에 굴러다니길래 주워온 수류탄 한 발이 눈에 더 띌 정도였다.
탄창에 총알 아홉 발이 꽉 차 있는 걸 확인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공사관까지 갈 수 있으려나.”
공사관 직원들이야 내 얼굴 알겠지만 로타르의 군인들이나 공수부대와 마주치면 총 맞을 수도 있다.
‘안 맞으려면 먼저 쏴야지 뭐.’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나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일행들? 다 흩어졌다. 원래 목적지인 공사관에서 만날 수 있기를 빌어야지.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