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64)
권력(2)
산책로처럼 만들어져 있는 길을 천천히 걸어오른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한창 공사 중인 여해시가 내려다보인다.
“완성되면 보기 괜찮겠지. 지금은 골조들만 있어서 제법 흉하지만.”
내 뒤를 따르는 두 소녀들을 바라본 나는 잠시 눈을 돌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외로웠다.
아무데나 맡겨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둘을 굳이 수양딸 삼아서 들인 건 그 때문일지 모른다. 집안도 좀 사람 사는 것 같아졌고.
무엇보다 내 말을 들어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귀중해졌다.
왜 그 유명한 영화에서 주인공이 배구공에다가 이름을 붙였는지 알 것 같다, 물론 저 둘이 윌슨이란 건 아니지만.
‘가족이 보고 싶을 나이지.’
사실 히미코랑 나스타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 애들이랑 같이 지내게 할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찾아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보국인지 뭔지 뭐 같은 걸 떠맡아서 말이지.
지금 등산은 사실 근무 시간에 짼 거다. 꼬우면 해고하라지.
사실 근무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게 있어서 그렇다.
마치 생선의 가시처럼 신경쓰이는 문제.
‘어린애들인데.’
스물이 넘어도 가족을 한순간에 잃는 충격은 쉽지 않을 거다.
외무성 직원들도 많이 걱정했지만, 로타르에서 죽다 살아온 사람들 중 애들을 데리고 있을 만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고 한 곳에 오래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내가 맡았었지.
외무성 직원들은 그 특성상 해외를 떠돌아다녀야 하기에 자기 집안도 간수하기 힘든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세상에 정의는 없다. 옳은 것도 없다. 내가 무지개에 닿을 수 없다면, 지평선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상대 역시 닿지 못하게 끌어내려야만 한다.
초자연적인 무엇인가는 믿게 되었지만,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게 된 지도 꽤 되었다.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제멋대로 심판한다면, 악을 행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도 없게 만들어놓고 인간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낸다면, 나는 그것을 신이 아니라 악마라 부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신을 부정하면서도 아이들만큼은 진실과 정의와 사랑을 믿기를 바라는 건 어른들의 바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멍청한 어른이다. 하여튼.
***
프랑스의 패색은 명백했다.
프랑스의 대공세는 6주 만에 한계에 부딪혔고, 얼마 가지 못해 로타르-독일의 반격에 위기에 처했다.
국가연합을 정식으로 선언한 로타르-독일 연합은 맹공을 가했고, 파리가 처절한 시가전 끝에 함락당하는 굴욕을 맛보았다.
도저히 군을 수습할 수가 없었기에 대담하게 개전한 프랑스 정부는 피레네 산맥 이남으로 도망쳤고, 로타르-독일 연합의 기세는 농담이 아니라 카롤루스 대제의 강역을 20세기에 재현하겠다는 듯이 프랑스군을 밀어붙였다.
프랑스의 패색에 화룡점정을 찍어준 것은 지브롤터 댐의 붕괴였다. 미디 운하를 상실한 프랑스군은 대서양의 함대를 지중해에 증원하기 위해 지브롤터 댐을 자신들의 손으로 폭파시키려 했다.
이를 파악한 독일군이 특수부대를 보내 지브롤터 댐을 점거하고 폭파를 저지하자 결국 프랑스군은 항공력까지 동원해서 댐을 대대적으로 폭격하고서야 댐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입은 막대한 피해는 덤이었다. 지브롤터 댐 내에서 아직 저항하고 있던 프랑스군은 아군의 폭격에 쓸려나갔고, 공습에 동원된 항공기들 상당수는 루프트바페에게 잃었으니까.
“즉, 제국의 승리는 이제 확실하단 겁니다.”
“뭐, 그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나는 의자에 몸을 쭉 기댔다.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오?”
“세상을 말 위에서 얻을 수는 있지만, 세상을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는 법이죠.”
“하.”
“단언컨대, 독일의 과학기술은 세게 최강입니다.”
“………”
뭐,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새끼들은 1940년대에 레일건을 개발한 미친놈들이야.
다만 실용화는 못 했다. 대공포로 쓰겠다고 개발했는데 하나 쓰는 데 발전소를 몇 개씩 날아놔야 할 지경이라서.
그러나 그 자료는 여전히 남아서 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 개발에 쓰이고 있다. 지상에서 레일건을 쏴서 날아오는 ICBM을 저격하겠다는 구상이라던데.
“본국은 귀국의 신무기 개발을 돕고, 귀국 역시 본국과 협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독일 제국 국가보안본부장, 하인리히 뮐러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 공동의 적이 있지 않습니까.”
“………..”
사실이다.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1급 경계대상이다. 이유는 하나, 언제 우리에게 땅을 뜯어내려고 전쟁을 걸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당장 아우렐리아 본토의 인종적 문제가 컸다.
연방은 타이완에서는 중국 본토와 남미로 주민들을 추방하고 그 자리를 연방 출신자들로 채웠다. 그 수가 천만을 넘었다. 싱가포르에서도 인도네시아로 추방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류큐와 호주, 뉴질랜드, 하와이 등지에서는 인구교환이 이루어졌다. 넓디 넓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걷잡기 어렵고, 추방할 가까운 육지도 없으니까.
그리하여 현지인들을 본토로 강제이주시키고, 본토 주민들에게 토지와 재산을 분배해준다는 명분으로 오세아니아와 류큐 등에 이주를 독려했다. 높은 물가와 폭주하는 부동산 가격 등으로 인해 고생하던 국민들 상당수가 이주를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지역에 한해서는, 그것도 공동화 현상을 심하게 앓고 있던 지방 지역에서는 인구비가 역전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북부였다.
본래 평양 이북 지역은 아우렐리아에서 가장 융성한 지역이었다. 수많은 공장이 들어섰었고 광산촌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인구가 극도로 늘어났고, 평균소득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였다. 그야말로 아우렐리아의 심장, 특히 신의주는 경제수도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수도를 남으로 옮길 때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성장에 한계가 있는 해주를 아득바득 붙들고 있었던 것도 북부 지역 거주자들이었다.
하지만 수도가 끝내 옮겨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북부는 그 성장동력이 바닥났다.
대부분의 대규모 광산들은 죄다 바닥을 드러냈다. 아직 캐고 있는 광산들도 있고, 광맥도 남아 있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은 아예 광맥이 마르든가, 채산성 부족으로 버려졌다. 공장들도 산지 근처라는 이득이 사라지자 상당수가 물류가 편한 남쪽으로 이전되었다. 게다가 임금의 전체적인 상승도 문제가 되었다.
조금 막말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연방의 경제성장을 주도했지만, 그 와중에 단물이란 단물은 죄다 빨려나간 게 평양 이북이었다. 디트로이트…는 여기서는 핵이 터져서 러스트벨트 공업지대가 전부 날아갔으니 적절한 비유는 아니고, 석탄과 철강 산업이 쇠락하면서 골로 가버린 클리블랜드 꼴이다. 정말로.
결국 20세기 들어 경제적으로 낙후되기 시작한 북부보다는 남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국가적으로는 과거 만주로 진격해 완충지대를 만들자는 주장의 핵심이었던 개전 초기의 국가적으로 궤멸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범죄율의 급증과 주요 공공시설의 노후화 등으로 인해 북부 지역은 미래가 사라져간다는 평가를 피할 수가 없었다.
괜히 인구 드물다고 핵개발도 북부에서 진행한 게 아니었다. 다 진작 이사갔으니까.
하지만 이제 백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이상, 미국인들이 오래 전 텍사스에서 그러했듯 껄떡대지나 않을까를 염려해야 했다. 호주인들이 대부분이고, 미국인들은 호주인들처럼 앵글로색슨계가 아닌가?
거주하는 호주인들을 명분으로 미국인들이 ‘정당한 미국의 강역’이라고 지랄을 하기 시작하면 아우렐리아와 미국 간에 전쟁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와이는 원래 미국 땅인 걸 아우렐리아가 은근슬쩍 점령했으니 그걸 가지고 항의하는 건 납득이나 하지 그들이 살아온 땅 한반도에까지 야욕을 드러내는 건 납득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뭐, 애초에 근본 자체가 인디언 땅 뺏어서 살아가는 도적놈들이긴 해도.
아무리 그래도 핵보유국을 상대로 그 지랄을 할까 싶기는 했지만. 핵은 미국도 있는 데다 장기적으로 보면 핵전력은 반드시 역전될 터였다.
이에 맞서기 위해 SSBN들을 건조하고 SLBM들을 개발해나가고 있었지만, 상호확증파괴는 무리였다. 아직 핵탄두의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상호확증파괴……’
폰 노이만이 상호확증파괴라는 개념을 처음 제창하기는 했지만, 나는 원 역사의 그보다 더 먼저 이를 공식 서류에 남겼다.
상호확증파괴 전략, 핵무기에 우리가 두들겨맞아도 살아남은 핵무기를 통해 상대 역시 확실하게 멸망시킬 수 있다면, 즉 핵무기를 이용해 완벽한 기습을 성공시키더라도 자국의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야말로 자국의 완벽한 국방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이론.
전략군은 초대 사령관인 내가 전수한 그 이론을 신봉하여 핵무기의 생존성과 조기탐지체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초수평선 레이더를 개발하고, 철도 및 차량 이동형 ICBM과 SLBM을 실용화하고, 동굴 활주로를 만들어 초음속 폭격기가 이륙하게 한다는 구상을 하고, 해상 함대에서 핵무장한 스텔스기들로 하여금 핵투하를 수행하게 하고.
당장 말벌 프로젝트에 제한적으로나마 스텔스 성능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전략군이었다.
독일은 이에 맞서 12,8cm 구경의 레일건을 개발해 낙하하는 핵탄두를 격추한다는 구상을 했지만, 레일건의 효율이 떨어지는 건 둘째쳐도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만한 조준 성능을 가진 컴퓨터를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차라리 컴퓨터 분야에서는 우리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아직 상호확증파괴를 완벽하게 할 만한 핵 투사 체계를 보유하지 못했다. SSBN을 대규모로 건조한 뒤에야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할 터.
수소폭탄의 설계를 개선해 성능을 올리는 프로젝트도 별개로 진행 중이지만, 확실히 독일과 손잡으면 그 진척도가 빨라질 터였다.
“우선 말벌 프로젝트부터 시작하지요, 우리 독일 제국은 귀국이 이미 보유한 것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전파흡수도료를 개발했습니다.”
나는 미미하게 얼굴을 구겼다. 말벌 프로젝트의 존재와 그 목적이 딱히 기밀은 아니지만, ROC가 맘대로 다른 나라에 유출된다는 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그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마는.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아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
애초에 기밀에 해당하더라도 은폐가 의미없는 내용도 있는 법이다. 징병제 국가가 군부대 위치를 숨겨서 의미가 있던가? 제대자 수천 수만 명이 알고 있을 텐데? 그들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다.
‘그래도 기강 한 번 잡아야겠군.’
혀를 찬 나는 입을 열었다.
“서로 협력할 부분에 대해서 협력하자는 건 동의합니다. 독일 제국과 본 연방은 국익이 거의 겹치지 않으니 괜찮은 파트너가 될 수 있기는 하죠. 물론 내각 승인은 있어야 합니다만.”
확실히 독일의 개별 기술은 우리보다 낫다. 아니, ‘훨씬’ 낫다.
문제는 그 기술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무기체계를 만들 능력이 모자라다는 것.
그 기술을 어떻게 알맹이만 쏙 빼먹을 수 있을지는 이제부터 열심히 대가리를 굴려 봐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