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67)
요동치는 세계(3)
우주개발은 공군의 몫이다.
애초에 탄도미사일을 다루는 전략군과 합병되기도 했거니와, 나사 같은 역할을 할 민간기구가 없으니 어쩌나? 우리가 해야지.
그리고 인공위성은 그 자체만으로 우주 개발에 대한 명분은 된다.
‘우주 공간에서 지상을 사진찍는, 조금 거창한 영구적인 정찰기, 이걸 어케 참냐고.’
탄도미사일 시험도 할 겸, 그리고 인공위성으로 할 수 있는 일 수백 수천 가지를 강력하게 주장한 결과 우리는 우주개발에 대한 예산을 타낼 수 있었다.
“또 내가 딱 적합한 위치기도 하지.”
내가 또 정보국 수장이기도 하잖나.
한 사람이 정보국의 수장과 위성 쏘아올리는 총책임자를 동시에 맡고 있으면 그게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리하여 원 역사보다 한참 늦은 1970년 11월 1일, 태평양의 공해상에서 탄도미사일을 간단히 개조해 만든 로켓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앙부일구’를 우주에 쏘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왜 앙부일구냐고? 딱 그렇게 생겼으니까.
우리가 느릿느릿 움직였는데도 세계 최초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다른 나라들은 올림픽마냥 전쟁을 벌여대느라 우주개발 같은 거에 신경쓸 여지가 없었던 것이 컸을 거다.
하지만 3개월도 안 지나서 미국인들이 한 발 쏘려다 실패하고, 6개월 만에 독일인들이 두 번째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데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우주 시대의 막이 올랐다.
물론 정확히 한 달 만에 우리는 원숭이를 우주에 보내고, 생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 차례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일환 소위.”
“예!”
“굳이 거짓말은 하지 않겠네. 많은 문제가 있을 거야. 우주선에 타고 있으면 우주에 나가는 것 자체의 문제는 없겠지만, 이륙 과정, 그리고 귀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시체도 못 건져.”
“알고 있습니다.”
갓 임관한 소위. 사관학교에서의 성적은 우수했고, 세계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공고에 지원해 내 앞까지 왔다.
“모든 조종은 본부에서 하네, 자네는 승객이야,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시스템이 있고, 계속해서 훈련도 하겠지만 비행 시간 대부분 동안 귀관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걸세. 사실 자체 조종 시스템을 사용할 수준의 문제가 발생하면 귀관의 생존 확률은 그 시점에서 1할에도 미치지 못할 거네.”
나는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할 건가?”
“예!”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구인 광고를 냈다.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혹한, 몇 달간 완전한 어둠, 끊임없는 위험, 무사귀환 불확실, 성공 시 명예와 영광.
이 날것 그대로의 광고를 본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원하여 19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행운을 비네, 대위.”
나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대위 계급장을 내밀었다.
***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세계 최초의 유인우주선인 미르(용) 로켓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여러 번의 로켓 발사가 있었지만, 큰 규모의 실패는 없었지, 하지만 그건 오직 행운의 연속이어서 가능했던 것일지도.”
이번 성공이 다음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당장 아폴로 11호와 12호, 13호에서 동일한 시스템 결함이 있었는데 13호 전까지는 아무도 그걸 모르지 않았나. 11호와 12호가 행운에 행운이 겹친 끝에 모두 성공해버려서.
“다음 미션은 우주유영, 그리고 복수의 우주선 간의 근접 비행 및 도킹.”
그리고 궁극적으로 달 탐사.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제군들, 저 용감한 청년이 가족들의 품에 안길 때까지 긴장을 놓지 말도록.”
“물론입니다.”
나는 천천히 프로젝트 청사진을 바라보았다.
유인 우주 비행은 ICBM을 개조한 물건으로 계속 진행하지만, 달 탐사는 그 정도로는 안 된다. 훨씬 강한 대형 발사체의 개발이 필요했다.
그 발사체, 가칭 동아줄은 일단 달 탐사에 사용되고, 동아줄은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에서 우주왕복선을 업고 발사하는 역할 역시 맡게 될 것이다. 소련의 부란과 에네르기아처럼.
그래, 코드네임 동아줄은 전래동화 햇님달님의 그 동아줄이다. 그래, 내가 이름 지었다. 왜, 뭐. 뭐.
우주왕복선은 바닥부터 개발해야 하는 셈이고….. 발키리 폭격기 한 대를 대기권 중 비행 시에 대한 기술실증용으로 개조해서 띄워보고 있기는 한데, 사람들을 죽어라 갈면 한 10년 걸리려나.
물론 이 시대의 기술은 벌써 원 역사의 90년대에 육박하고 있고, 몇몇 분야에서는 이미 21세기에 도달했으니 생각보다 쉬울 거라고는 생각한다. 일단 최소한 슈퍼컴퓨터는 있으니 아폴로 계획 시절마냥 일일이 수기 계산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달 기지.’
달은 막말로 금광이나 다름없다. 핵융합 발전 재료로 사용되는 헬륨-3, 리튬 등등, 온갖 자원의 보고인데 이걸 캐내지 않는 게 이상하지.
우선 모듈을 착륙시키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건설한다. 얼음으로 건물을 만들고, 박테리아를 돔 안쪽에 코팅, 그리고 균사체… 까놓고 말해 버섯을 제일 안쪽에 심는다.
방사선은 얼음을 녹이고, 박테리아는 물을 흡수해 광합성을 하고, 광합성을 한 박테리아는 영양분째로 균사체에 먹히고, 균사체는 성장해서 단단해지고, 그 위에다 우주방사선을 막아줄 월면토와 월석을 바르면 끝. 균사체는 폐수에서 미네랄을 추출해내는 물 여과장치로도 쓸 수 있다.
많은 기술력이 필요하지는 않은 놈인 관계로 기술실증은 끝났다. 그걸 어떻게 달까지 가져가는지가 문제지.
“우리는 전 세계에서 우주 진출에 대해서는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우위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네.”
수많은 과학자들이 불철주야로 일하고 있지만, 인구수가 훨씬 많거나 기술이 발전한 나라는 많다. 독일이라든가, 지금 빌빌대고는 있지만 미국이라든가.
물론 미국은 자존심 때문에 ICBM 발사체를 재활용해 한 방 쏜 것 외에는 뭘 하지를 못하고 있고, 독일도 비슷한 상황이다. 독일은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지만 명목상으로는 전쟁 중이고, 미국도 전쟁의 상처를 수습하고 있는 상황. 진지하게 우리를 추격해 온다고 하면 그나마 사회가 안정된 강국에 해당하는 소련이나 비잔티움 제국이 훨씬 더 가능성이 높겠지.
그쪽이라고 딱히 안정된 건 아니다만. 최소한 전쟁 중은 아니다.
***
“멕시코군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민병대가 있습니다.”
전선 면적이 넓으면 곤란한건 미군만이 아니다. 멕시코도 광대한 평원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이기 위해서 대규모 기갑부대의 보유는 필수인 셈.
문제는 멕시코가 그럴 돈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군국주의, 그걸 넘어서 병영국가화 되더라도 돈이 없는 건 없는 거다.
그런 관계로 멕시코군은 해공군은 소련의 지원을 받고, 육군, 그 중에서도 기갑군단에게만 예산을 몰빵해 정규군으로 편성한다.
그런데 전쟁을 전차로만 하나? 전차를 보조해 줄 보병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 보병 전력은 민병대나 용병으로 충당한다.
다시 말해서, 국가 차원에서 애초에 정규군에서 보병은 육성하지도 않고 친정부 민병대에만 의존한다는 거다. 군대를 반쯤은 민영화한 꼴.
“이는 평시에 예산 아끼기는 좋습니다. 전쟁이 터져도 민병대가 미국 상대로라면 죽기살기로 싸우기는 하겠죠.”
다만, 내전이 터지면 이야기가 좀 많이 달라진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인종간 학살, 제노사이드가 빈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정부는 이를 진압할 힘이 없고요.”
반군 진압에 전차만 있고 보병이 없다면 벌어질 일은 뻔하다. 당연히 친정부 민병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미국과 싸울 때와는 다르게 이들은 자기 구역을 벗어나기를 꺼려한다.
“계투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K2?”
“계투입니다. 항쟁이라고도 하죠. 마을마다 무기를 들고 죽도록 서로 싸우는 건데, 당연히 민병대가 앞장섭니다. 전쟁 중에는 중단하겠지만 이런 내전 상황에서는 전투와 계투가 구분이 안 가죠, 친정부 마을끼리도 계투가 벌어지고, 반군끼리도 계투를 하긴 합니다만, 만약 민병대 주력이 빠진 상태에서 계투가 벌어지면 감당이 안 됩니다.”
AK-47을 개량한 대장간제 AKM, 주력 중화기 판저파우스트, 구식 반자동소총, RPD, IED, 드물게 AR-15, 유럽제 전투소총, 구식 기관단총, 박격포 등으로 무장한 민병대는 물론이고, 민병대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도 활과 화살, 폴암, 도끼, 각종 대도, 구닥다리 머스킷, 활과 화살까지 동원된다.
계투의 결과도 참혹하다. 패배자들은 학살당하는 건 기본이고……
“인신매매 조직들과 어느 정도 커넥션이 있어서, 인신매매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특히 여자들은 해외의 사창가에 팔려나간다더군요, 인터폴에서 근절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미국의 대형 갱단들이 여기에 손을 뻗어뒀고, 소련의 범죄 카르텔도 소련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아직 존속하고 있습니다. 이놈들의 돈벌이 수단이 이런 마약과 인신매매죠.”
아직 유럽에서도 제대로 된 사회 인식의 변화가 있지는 않은 시점, 이탈리아의 벤데타, 알바니아의 카눈 등 복수의 관습이나 명예살인조차 현재진행형이다.
원 역사에서도 68운동이 터진 뒤에야 서유럽에서 인식 개선이 시작되었고, 그 전, 예를 들어 2차대전 때는 전쟁 중 강제로 순결을 잃었다는 이유로 자살하거나 자살을 강요받은 여성들이 독일에서조차 수두룩했다.
문제는 계투는 스케일이 좀 커서 거의 내전급이라는 거지.
아우렐리아에서는 조선시대에서도 중앙집권화 때문에 복수 관습이 약했고 근대화, 그리고 혁명 과정에서 혁명 이전의 관습 대부분이 쓸려나간 관계로 거의 없고, 이중공화국, 프랑스 인민 공화국 등 공산국가에서는 혁명 과정에서 정부가 칼부림을 마구잡이로 벌여서 거의 사라졌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원인이 나무스였지.”
나무스는 파투슌족의 명예 비스무리한 것으로, 자기들 여성들이 타지 남성들과 관계를 맺으면 자기들 명예가 손상된 것이라 여긴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영국 군인들이 가정부로 고용된 현지 여성들과 눈이 맞자 나무스가 손상되었다면서 봉기를 일으켜 영국 남성을 살해하고 여성을 겁탈하는 일을 일으켰고, 빡친 영국은 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아프가니스탄을 쑥밭으로 만들고 보호국으로 만들었다가 아예 합병해버렸다.
지금이야 이중제국이 그간 거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등 현지 거주민 자체를 쓸어버리고 이주민으로 그 자리를 채웠을 뿐 아니라 혁명정부가 수용소까지 만들어서 그간의 ‘구태’를 벗지 못하는 이들은 죄다 수용소에 쳐박아버리거나 처형해댔으니 사라졌다고 봐도 되겠지만.
“물론 그런 문화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법이 제대로 돌아가는 국가면 전부 강력하게 처벌합니다.”
복수 문화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중앙정부의 법관이면 그럴 수밖에 없다. 복수법이 존재하면 중앙정부와 법 질서의 존재 의의 자체가 무력화되니까. 아예 닥치고 사형으로 다스리는 국가들도 여럿이다.
문제가 있다면 지금 중화 멕시코에서는 그런 법 체계도 진작 무력화되었다는 것.
“마을들은 전부 계투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요새화되었고, 화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난공불락 수준이랍니다. 적어도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들은요.”
흑인들은 클랜, 멕시코인들과 지나인들은 마을 단위로 똘똘 뭉쳐서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마당.
이런 상황에서 민병대들이 정부군 돕겠다고 뛰어나올 이유가 없다. 자기 집부터 지켜야지.
“유엔의 협조가 필요하겠군.”
설립된 이래 단 한 번도 밥값을 하지 못한 놈들, 국제연합.
이제 좀 밥값 비슷한 건 해 봐야지.
핵개발금지조약
싱가포르, UN본부.
원래 유엔 본부는 뉴욕에 있었다.
하지만 미국 내전 발발과 동시에 뉴욕의 유엔 본부와 사무총장, 그 외 주요 요인들 등이 방사능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고, 그런고로 재건된 국제연합은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아우렐리아와 교섭을 시작했다.
‘싱가포르에 유엔 본부를 재건하고 싶다. 유엔 본부와 그 인근 지역에 대해 국제연합 전용의 치외법권을 인정해달라.’
‘딱히 상관은 없는데…..’
‘그리고 국제연합 직할로 무장 경비인력을……’
‘그건 선 넘지.’
‘그래도 경호업무가 필요하긴 하다.’
‘우리 경찰들이 배치될 테니 상관없지 않나?’
‘경찰들이 배치되면 치외법권이 무슨 의미인가? 정 그렇다면 보안업체를 고용하겠다.’
‘그 보안업체는 우리 정부가 주선한 업체가 우선 협상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확실하게 하면 동의하겠음.’
그렇게 싱가포르 국제연합 직할령이 탄생했다.
모든 치안은 PMC들이 담당하고, 법률은 유엔 규정이 우선 적용되고 유엔 규정에서 지정되지 않은 부분은 아우렐리아 법률이 적용된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있었다.
물론 직할령이네 뭐네 해도 딱히 여권 검사해서 잡고 그러지는 않는다. 시민들도 별 생각 없이 월경해서 다니고, 직할령 안과 밖의 경계에 위치한 건물들도 수두룩한 판. 애초에 유엔 본부와 사무동, 사무국 법률, 국제사법재판소, 기타 각종 기구, 관사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공간과 그 사이사이의 도로 등을 유엔 직할령으로 인정해준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국제기구들이 계속 엉덩이 붙이면 점점 넓어지기는 하겠다마는.’
어찌 보면 멀지 않은 미래에 이곳이야말로 세계의 중심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망상을 잠시 한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하나.
연설이 예정되어 있어서니까.
“장군님, 거 여기에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마음을 잠시 가다듬었다.
외교는 부하 갈굴 때처럼 조인트를 까면서 하는 게 아니다.
저 국제어로 떠드는 외교관들을 상대로 인상을 구기면 지는 거다.
그리고 느긋하게 걸어온 남자, 딱히 수행원은 없었지만 눈에 익었다.
“오늘은 혼자시군요, 아내분들은 안 오셨습니까?”
“아내가 아니라 내 수양딸들이오. 아무래도 이도의 어휘가 조금 어렵지요?”
이도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언어를 목표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니 대가리가 병신이라서 아직도 외교관씩이나 됐으면서 이도도 모르냐는 욕이다.
물론 수양딸이랍시고 한참 어린 여자 둘이랑 한집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말이 많다는 건 안다. 뭐, 권력 있는 노인네가 한참 어린 새아내를 맞는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하지만 마음이 쓰이는 걸 어떻게 하나. 저 나잇대면 친구들과 수다로 밤을 새워야 할 나이에 구석에서 입만 꾹 다물고 있는 걸.
“선지자 무함마드께서도 53세가 되시는 해에 세 번째 아내이신 아부 바크르의 딸 아이샤를 6세에 맞아들이고 9세에 관계하였으니, 나이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법 아닙니까.”
속을 더 긁어보려는 생각인 게 뻔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는 맞지만 식민 지배 기간 동안 늘어난 기독교 인구도 많다. 불교도들도 있고, 힌두교는 있던가.
그렇지만 제법 세속주의적이고, 저들의 지도자 수카르노,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수하르토는 인도네시아에서 종교색을 없애는 작업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슬람의 조혼 풍습은 아예 금지됐고 일부다처는 첫 아내 이후로 맞는 결혼에 결혼세를 무겁게 매기는 방법으로 없애려 노력하는 중.
그러니까 이건 어디 인도네시아 시골 촌구석이면 모를까 외교관이 한 건 욕하려는 의도가 맞다.
물론 이런 식으로 으르렁댄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남의 땅으로 생색은 아주 잘 낸다?’
‘언제부터 싱가포르가 니들 땅이었냐?’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지,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식민지.
누구에게 지배받았냐는 문제는 두 식민지의 운명을 갈랐다. 싱가포르는 대전쟁 이후 자연스럽게 아우렐리아에 편입되었으니까.
당연하지만 자기들에게 붙어 있는 이 싱가포르 섬은 인도네시아에게 있어 수복해야 할 고토로 간주된다.
그런데 유엔에다가 싱가포르를, 전체도 아니고 일부를 넘겨준 것만으로 대단한 생색을 내니 그게 고깝단 거겠지.
‘수하르토가 조장한 것도 있지만.’
인도네시아는, 정확히는 대 인도네시아는 한 민족의 국가가 아니다. 말레이시아, 뉴기니, 파푸아뉴기니, 원 역사의 미얀마와 태국 영토 일부 등 많은 영토가 합쳐진 것이고, 다시 말해 여러 민족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
이들의 갈등을 억누르고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려면 피바다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하나의 공통된 적이 필요하다. 강력한 외적은 언제나 민족성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코앞의 필리핀? 영토분쟁, 영해분쟁이 자주 붙는 상대기는 해도 미국 내전 이후로는 너무 약해졌다. 베트남은 만만해 보이지만, 문제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이중공화국에 맞선 동맹관계라서 시비를 걸기 곤란하다는 점.
그러니까 자기들 영토 한가운데에 떡하니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에게 제국주의의 잔재, 식민지배 운운하면서 식민지배의 피해자인 자신들에게 돌려달라고 떠드는 건데…. 우리 입장에선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는 소리밖에 안 나오지, 싱가포르를 가지고 있어서 얻는 경제적, 군사적 효과가 얼만데. 니들이라면 말라카 해협 통제를 포기하겠냐?
물론 저쪽도 진짜 우리랑 전쟁하고 싶어서 저렇게 짖어대는 건 아닐 거고, 국내 정치용일 거다. 우리 입장에서는 너네 국내 소수민족이나 독립시키라는 반응밖에 안 나오지만.
하지만 국내 정치용으로 외국에 시비를 걸었다면 그 대가를 감내해야 하는 법,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침략 야욕에 응답해 싱가포르 주둔군을 증강하는 한편 경제제재를 걸어버렸고, 그 뒤로 계속 양국 간의 관계는 살얼음판이 되었다. 석유가 나오면 뭐하는가? 그걸 베트남 외의 외국에 팔아먹지를 못하는데.
싱가포르에 유엔 본부가 들어서는 것을 동의한 것도 ‘유엔에 빌려줬지만 싱가포르는 우리 땅’이라는 걸 과시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이렇게 서로 사석에서조차 날 선 모욕을 던지는 건 이제 일상에 불과하다. 서로 정치적 이유에서 시작된 분쟁이 양측의 감정까지 건드린 격이다.
‘물론 완전히 인도네시아 수뇌부가 미쳐버리지 않는 한 싱가포르를 공격해서 병탄하려는 시도를 하진 않겠지.’
명분에서도 불리하고, 핵 미보유국이 핵보유국에게 선빵을 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도 하고. 재래식 군사력이나 경제력도 상대가 안 되고.
기껏해야 개발도상국이 태평양 패권을 논하는 열강에게 기어오른다는 게 말이 안 되니, 몇몇 이들은 대놓고 ‘인도네시아가 우리와 적대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자신들이 우리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고 분석을 빙자한 비웃음을 날렸다.
아무튼 간에 연방에서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인도네시아만 관심이 많은 셈이었다. 그게 짝사랑의 감정과는 정반대라는 게 문제지만.
“혹시 단어장이라는 것 아십니까? 어린아이들 교육하는 데 참 좋은 도구인데, 단어장 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외우면 외국 어휘를 익히는 데에 좋답니다. 아, 저희 나라에는 뱁새가 황새 따라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도 있으니 쉬엄쉬엄 하시지요. 대국은 소국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지만 소국은 무릇 대국의 언어를 배우는 법 아니겠습니까.”
니들은 소국이고 우리는 대국이다. 꼽니?
아, 당연하지만 여기서는 지나어도 그 ‘소국’의 언어다. 한자? 그게 뭐죠?
***
“지난 여러 차례의 전쟁 속에 원자력을 이용한 무기는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유엔의 연설장에서 나는 말을 이었다.
“무수한 이들의 피가 지상에 흘렀습니다.”
딱히 무고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죽긴 했지.
“몇몇 이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관총은 왜 금지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사실 전쟁터를 돌아보면 핵무기에 희생되는 이들보다 기관총과 소총탄, 야포에 희생되는 이들이 더 많으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전장에 있는 이들만 살육합니다. 하지만 핵무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방사선을 퍼트려 대지와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현장에서 죽지 않은 이들도 병들어 죽게 합니다.”
세계 최초의 방사선 피폭 사망자 중 하나가 무려 미국 대통령이었기에 피폭에 대한 연구는 빠르게 진전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무기들에 대한 제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조약의 의의는 곧 세계 평화로 가는 초석이며, 국제연합의 존재 의의와도 직결되는 것입니다. 핵무기를 이미 보유한 국가들은 누구에게도 핵무기를 양도하지 않으며,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은 결코 핵을 개발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하여 국제연합 차원에서의 핵 사찰이 이루어질 것이며, 핵을 기존에 보유한 국가들도 단계적으로 이 무기를 폐기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맨 마지막은 립서비스다. 애초에 NPT의 6항에도 ‘핵 보유국은 되도록 빨리 핵무기 경쟁 중지 및 군비 축소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 말 안 붙이면 ‘우리는 핵 가졌지만 니들은 가지지 마’ 이 소리밖에 안 되기도 하고, 근데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원래 외교라는 게 웃으며 상대방 따귀 연속치기니.
그리고, 어차피 저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유엔 총회의 결정이 언제부터 중요했다고, 진짜는 유엔 상임이사국이고, 아우렐리아는 상임이사국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상임이사국들은 핵무기를 자기들끼리만 나눠가지고 다른 놈들에게는 국물도 주지 말자는 제안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동맹 따위 핵무기 앞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동맹이 중요하다는 건 본인이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는 의미지만, 적어도 동맹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져야 할 정도로 약한 국력을 가진 국가는 국제연합 상임이사국이 될 수 없다.
되려 자신은 핵무기를 가지고, 동맹들은 핵무기가 없다면 동맹은 핵보복의 약속, 즉 핵우산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대가리를 박을 테니 뭐 어떤가.
이에 가장 격렬히 반발한 건 역시 애매하게 국력이 있는 국가들, 즉 인도네시아, 베트남, 이중공화국, 프랑스 인민 공화국, 자유 프랑스, 이스라엘 등등이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핵무기보다 내일 먹을 밥이 어떻게 될지를 고민하거나 내년에 국가가 살아 있을지를 의심해야 하는 처지였다.
게다가 핵무기 자체가 한두 푼도 아니었고, 아무리 먼저 걸어가는 것보다 뒤를 밟는 게 쉽다고 하지만 그 기밀을 알아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알아낸다고 해도 국민들을 다 굶겨죽일 정도의 광기가 없으면 쉽게 하기 어려운 것이 핵개발이니, 차라리 저 강대국에게 찍히지 않고 싸게 팔아주기로 약속한 전기나 사다 쓰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핵개발금지조약(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TPNW)가 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