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72)
냉전(1)
“……….”
현재까지 거르고 걸러서 우주비행사 후보에 올라온 게 80명이다.
그리고 그 80명 중 미인 자매가 있다는 건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괴상한 가족이다. 아버지와 두 딸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셋 다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아니고, 혈연도 없다.
“3~4차 시험에서 탈락할 줄 알았는데.”
회의장의 상석에 앉은 내 기분이 영 좋지 않음을 다들 눈치챘는지 서로 시선을 피하기 급급하다.
오늘 아침에 나온 언론 기사의 문제였다.
“그….. 황색언론 하는 소리가 다 그렇잖습니까.”
“일일이 대응하면 기정사실로 만드는 셈입니다. 사령관님, 못 본 걸로….”
“사실 그런 사례가 없지는 않다 보니까 더 그렇…. 아악!”
눈치없이 입을 열었던 엔지니어가 누군가에게 발이라도 밟혔는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런 사례?”
“사실 아직도 시골에서는 수양딸이라고 들인 여성을 며느리로 삼는 경우가 은근히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이 워낙 잦다 보니 조혼 풍습이 시골에선 남아 있죠.”
“그건 나도 알아.”
“그리고 수양딸로 들였던 애가 안주인이 죽자 며느리가 아니라 아예 가장의 후처로 들어가는 경우도 간간이 있습니다.”
“그거 불법 아닌가?”
“위법은 아닙니다. 시선이 좋지는 않습니다만. 그걸 아니까 저놈들이 딱 간당간당한 선에서 떠드는 거죠.”
누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기사를 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닐 경우 100% 형사 고발 대상이다.
그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채택한 아우렐리아의 법률에 따르면 황색언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지간한 중소 규모 언론사를 도산시키기 충분할 정도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게다가 그 경우 소송전에서 언론사가 이길 가능성은 소수점 대로 떨어진다.
하지만 불법이 아닌 행동을 했다고 하면 형사소송 대상은 아니고 민사소송 대상이다. 게다가 받아낼 수 있는 배상금도 그리 크지 않고, 정정보도를 시키기야 하겠지만 전자의 경우처럼 정간이나 일이 심각할 경우 폐간까지 당하는 경우는 사건이 어지간히 커지는 경우가 아니면 없다고 봐도 된다.
그리고 황색언론들 중 선 넘은 몇몇 언론사들이 사법부의 정의봉을 맞고 대가리가 깨져나가면서 얻은 피의 교훈을 따라 황색언론들은 선을 넘을랑 말랑 하는 선에서 깐족대고 있었다.
“하아.”
정보국 권한을 남용해서 그 기레기들을 담가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역시 첼로메이의 말이 맞다.
“저놈들은 그냥 웃음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사령관. 가만히 놔두면 어련히 잊혀질 텐데 괜히 힘 빼지 마시고 맛있는 거라도 잡숫고 쉬시죠.”
나는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노려보다가 얼굴을 감쌌다.
“신형 컴퓨터 개발은 어떻게 됐어?”
“용담대학교 연구진이 실용화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안정적이라고 장담은 못 합니다.”
“이번 달 탐사 프로젝트에 쓸 건 아니니까 안정성은 천천히 검증하도록 하지. 아직은 시간이 있어.”
나는 다른 자료를 꺼냈다.
“이번에 소련이 남극 도시 계획을 발표했다는군.”
정확히는 지저 도시 계획이다.
남극의 땅을 파고들어가서 그 지하에 수십만 명이 거주 가능한 대도시를 만들겠다는 패기있는 계획인데, 어쩌려나. 외부랑은 어떻게 항공기와 선박으로 연결한다지만.
‘뭔가 최후의 대대 음모론이라도 된 것 같은데.’
소련은 남극의 땅 밑을 파고들어가서-땅을 파고들어갈수록 보온에는 좋으니 나쁜 선택은 아니다-도시를 세우겠다고 설치고 있고, 우리는 수상-해저 겸용 도시를 세우고 이제는 달에도 기지를 세우려고 하고, 나치라는 집단이 역사에서 지워진 것만 빼면 음모론 총집합인데.
제3제국은 현존한다만 퓌러가 나오는 게 아니라 제정인 데다 우주 진출은 관심도 없는 모양새다. 최근에야 핵실험이랑 탄도미사일 연구를 좀 시작한 듯 싶다마는. 되려 폴란드보다 늦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뭔가! 회의중에 누가 이렇게 벌컥벌컥….”
“죄송합니다. 급한 보고라….”
“뭔가?”
그러자 장교는 즉시 작은 쪽지를 내게 넘겨주었다.
“………”
파인 갭 핵시설에서 폭발 발생, 원인 미상, 시설 총체적 붕괴, 방사선의 외부 유출은 없는 것으로 추측됨>
***
“폭발의 시발점은 지하입니다.”
“지하?”“예. 다행히 내부를 향해 무너져내리듯이 무너져서 최하층에 있는 연구용 방사성 물질들이 외부로 유출되지는 않았습니다.”
“피해 규모는?”
“설비들은 죄다 오염되어서 전부 폐기해야 합니다. 잔해들도 겉부분의 잔해들은 상대적으로 괜찮지만 잠재적으로 방사선 오염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인근 지역의 흙들도 전부 긁어내서 폐기해야 합니다.”
“사람은?”
“연구진은 무사합니다. 다행히 얼마 전에 전부 신무기 연구에 관련해서 본국으로 귀국해 용담대학교 쪽에 있어서 연구동은 완전 폐쇄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군 소속 관리자와 경비대는 대부분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발견된 시체에 총상이 있습니다.”
“…………”
내 표정이 다른 이들도 알 만큼 굳어졌다.
“특수부대?”
파인 갭 시설의 노출은 오래전부터 각오한 바다. 핵실험을 여기서 몇 차례나 진행했는데 정보 책임자들이 모르면 그게 등신이지. 그래서 근무 인원수도 줄이고 설비도 분산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특수부대가 이만한 규모의 폭약을 들고 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노려보았다.
“특수부대가 위치를 확인하고 공습을 유도, 폭격해서 내부 시설을 파괴했다면?”
“그러면 폭발이 외부에서 일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공병대에서는 내부에서 터진 게 분명하다고….”
“벙커버스터.”
나는 방공사령관을 노려보았다.
“조기경보를 왜 못 한 거요?”
“지상용 레이더들은 저공비행하는 적 항공기를 잡아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니.”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당일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주의 모든 레이더 기록을 가져와, 필터 뺀 걸로.”
한 가지 짐작가는 게 있다.
***
“스텔스 폭격기란 말입니까?”
“정보국에서 미 공군이 테스트 중인 F-117, 나이트호크라는 코드명을 가진 특수 항공기에 대한 정보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교차검증되지는 않은 정보입니다만.”
“설명해주십시오.”
“미 공군의 고고도 고속 정찰기나, 우리 군이 운용하는 말벌 전투기처럼 특수한 도료나 설계를 통해 항공기의 RCS를 줄인다는 개념은 1차대전기부터 시작되었던 제법 오래된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는 대공 레이더에 혼란을 주는 정도나, 공대공미사일의 교란 등이 주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트호크는 다릅니다. 보고서 21페이지를 봐 주십시오.”
내각회의장 한가운데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나이트호크의 프로토타입 해브블루는 록히드 마틴이 개발했다고 합니다. 다만 프로토타입 이후의 정보는 굉장히 드문드문 확인되었습니다. 기존 항공기의 부품들 상당수를 재활용해서 항공공학적인 면에서는 그렇게 큰 특이점은 없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건 껍데기라고 합니다.”
“껍데기요?”
“예, 그 특유의 정밀하게 설계된 형태와 외부에 부착된 도료가 레이더 추적을 막는다고 합니다. 현재로써는 기술적으로 뾰족한 추적 수단이 없습니다. 적외선 추적 장비나 육안, 소음 등을 이용한 추적기술을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제가 받은 보고에 따르면 프로토타입 때의 RCS는 벌 한 마리 수준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더 떨어졌겠죠.”
“잠깐, 잠깐, 그러면 우리는 그걸 못 찾는다고요?”
“공군 자체 시험 결과에 따르면 우리 측이 보유한 탄도미사일 방어용 레이더로는 제한적인 탐지가 가능합니다. 물론 완전히 제한적이라서 위치오차가 막대하게 발생합니다.”
“비유드리자면 제가 불을 다 꺼버리면 위원분들은 제가 내는 소리를 듣고 제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지만 제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귀가 어지간히 예민하신 분들이 아니면 모르겠죠. 비슷한 원리입니다. 그리고 호주 남부는 인구밀도가 워낙 낮은 곳인 데다 발전소가 한 개 전담으로 붙어야 할 정도로 전력 소모가 극심한 탄도미사일 방어용 레이더는 설치되지 않았고, 일반 방공레이더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령관, 만일 미국과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우리는 앉아서 맞아야 한다는 거요?”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는 지대공미사일에는 전자전 상황에 대비해 자체 레이더를 사용할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한 EOTS나 적외선 탐색 장치, 레이저 거리 측정 장치들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일단 접근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면 격추는 가능합니다. 레이더에 안 잡힌다고 눈에도 안 보이는 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파인 갭 시설은 연방의 핵심 핵개발 시설이 아닙니까? 지금까지의 방어 태세로 부족했던 겁니까?”
“더 이상은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파인 갭의 주요 기능들은 기밀로 처리된 외부 시설들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의 핵실험으로 인해 파인 갭의 기능과 위치가 모두 외부에 노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파괴 직전까지 파인 갭에 남아 있던 기능은 핵실험 통제와 원자로 연구, 일부 화학무기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청문회 아닌 청문회가 끝나자 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도록 하죠.”
아니 시발 이미 앉았는데 물어보는 거 어딨어.
“말씀해주십시오.”
“미국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도발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있습니까?”
“그건…….”
내 머릿속에서도 수많은 시나리오가 지나갔다.
뭔가 반드시 파괴해야 하는 것, 내지는 확보해야 할 정보? 그런데 그럴 만한 게 거기 남아 있었나?
“확신할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
“성공했습니다. 동지. 북방 부르주아 돼지들이 당과 동지의 예상대로 움직였습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소소한 자축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파인 갭 폭격작전의 성공을 자축하고 있는 CIA가 알면 기겁하겠지만, 중화 멕시코 인민 공화국, 최근에는 중화 아즈텍 인민 공화국으로 바꿀지를 논의하고 있는 이 국가가 바로 파인 갭 폭격의 배후였다.
“조선 놈들이 소비에트의 핵개발을 돕는다,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지.”
아우렐리아가 미국과 너무 가까워질 수도, 반대로 너무 멀어질 수도 없는 특수한 관계이기에 가능한 모략. 즉 아우렐리아가 40여 명의 소련 과학자들을 받아들였으며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 시설 수출을 모의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이들이 CIA에 흘렸고, CIA는 그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아우렐리아 헌법수호국은 이 공습의 배후에 CIA가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챘을 터. 둘의 관계는 이전 같아질 수가 없었다.
이들의 최후 목표는 미국의 영원한 멸망이며, 이를 위해서 미국의 팔다리를 잘라내야만 했다. 유사시 우방이 되어 줄 수 있는 동맹국도 없애야 한다.
다행히도, 그들의 업보 탓에 미국은 확고한 동맹국이랄 만한 존재가 없으니.
“모든 것은 인민을 위하여.”
멕시코 공산당은 내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축배를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