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76)
몰락(2)
낙하산이 활짝 펴지더니, 속도를 줄인 항공기가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채신머리없게 낄낄 웃어댈 리야 없지만, 그래도 저걸 보니 기분은 나아졌다.
SR-71,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
또 저것뿐인가?
F-117이 여러 대 주기되어 있다. 이 비행장의 격납고는 이미 다 차버린 지 오래다.
“미 공군과 해군이 통째로 망명이라니.”
진짜 어마어마한 횡재다. 지금 미국 정부를 장악한 정신병자들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뻔한 결론이었겠지만.
“……….”
물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저기에서 뽑아낼 게 얼마나 있겠나.
군대만 왔냐? 엔지니어들에 심지어 개발진인 켈리 존슨을 비롯한 스컹크 웍스의 기술진 대부분이 망명해왔다. 존재 자체가 1급 기밀인 각종 실험기들도 파일럿 끼워서 획득!
물론 통째라는 말에는 다소 과장이 있을지언정, 결코 적지 않은 수가 망명해온 게 사실이었다.
당장 인근 해안가에는 미 해군의 군함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전대, 내지는 단함으로 귀순해온 군함들이다.
“약속은 지켜주시리라 믿겠습니다.”
“가족의 안전은 지켜줄 것이고, 정착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지원해줄 거요, 아, 당연히 감가상각 다 쳐서 가져온 무기의 비용도 머릿수대로 나눠주겠고. 기술자들은 새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거요. 지원은 정보국 요원들이 소총 살 돈도 없어서 요 다트총만 쓰게 되더라도 미국에서 받던 것보다 낫게 해주겠다고 약속드리지.”
나는 다트총을 빙빙 돌렸다.
“위험합니다.”
“장전 안 했어.”
요 단발 다트총은 원래 CIA에서 만든 건데, 맞은 사람도 맞은 걸 못 느끼다가 좀 나중에 아프다. 그리고 독극물이 퍼지면서 죽는 거지. 우리가 샘플을 고스란히 복제해냈고, 이제 특수요원들에게는 한 자루씩은 준다.
“존슨 박사, 박사가 해줄 일이 막중하오.”
UAV부터 스텔스기까지, 스컹크 웍스가 공군에 해줄 일이 참 많다.
‘특히 UAV.’
육군이든 해군이든 공군이든, 최근 트렌드는 소수화, 무인화다.
못 믿을 놈들도 생각보다 많아서 지킬 영토에 비해서 적은 병력, 영해에 비해서는 어마어마하게 적은 병력으로 적을 막기 위해서는 자동화와 무인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당장 우리 군도 경항공구축함을 만들었는데 별로 못 써먹잖나.
경항공구축함이라는 게 농담이 아니다. 구축함과 경항공모함을 합친다는 컨셉으로 대충 능동 대공미사일과 VLS, 155mm 함포를 장착하고, 삼동선 형태로 양옆에 활주로를 장착해 헬기와 UAV를 운용하는 경항공모함의 역할을 합쳐놓은 신형 스텔스함들을 16척이나 계획하고, 4척을 건조했거든.
스텔스성을 위해 함포랑 오리콘 대공포는 아예 수납식으로 장착되었고, 근데 정작 UAV가 목표 성능 달성에 실패해서 골치아픈 참이었다.
‘덕분에 취역한 4척 중 3척을 잃었지, 제기랄.’
미군 전체가 망명한 건 아니었고, 충성파와 망명파가 전투를 벌일 때 우리 해군이 망명파를 도와 끼어들었다.
그때 우리 해군이 UAV만 있었어도 손실 없이 이겼을 걸 UAV로 아웃레인지 전술을 벌여야지 위험 범위 안쪽에서 투닥거리라고 설계되지 않은 군함이 무리하게 위험 지역까지 진입해야 했고, 결국 미 해군의 대함미사일에 피격당해 격침된 군함들이 발생했다.
그 대가로 미 해군은 피해 없이 망명에 성공했으니……. 우리도 승조원의 3배수로 갖춰져 있던 탈출수단 덕에 군함 한 척에서는 아예 사상자가 나지 않았고, 다른 두 척에서도 합쳐서 76명의 전사자로 그쳤다.
하지만 전사자가 수십 단위로 나온 것 자체가 문제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우러 온 우리에게 모든 위협을 다 떠넘기고 줄행랑친 미군 탓에 아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불평도 있었다.
국방군이 무수한 사상자를 내는 동안 미군은 전사자 22명 포함 27명의 사상자로 끝나기도 했으니, 불만이 없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미 공군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저기 오는군요.”
저물어가는 석양의 빛을 사선으로 받으며 가오리 모양의 폭격기가 천천히 내려앉더니, 조종석에서 한 여자가 내렸다.
여자…..?
“웬디 바커 소령, 콜사인 너트크래커. 신고드립니다.”
금발의 여성은 내게 경례를 붙였다. 이제 전부 한국군 소속이니 내가 상관이다.
경례를 받아준 나는 입을 열었다.
“스텔스 폭격기도 탈출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뭐 싫은 건 아닙니다만 우리 정부가 저 아가씨에게 지불할 충분한 예산이 있을지 궁금하군요.”
“핵까지 들고 왔으면 어떤 반응이셨을지 궁금한데요?”
“…….?”
미 해군 제독이 첨언했다.
“저 아가씨가 수소폭탄을 미치광이들의 마왕성에 투하하고 왔소이다.”
“마왕성이면….. 설마 포트 녹스입니까?”
“그렇소, 포트 녹스는 완파됐고, 그 금고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대통령벙커도 붕괴했을 걸세. 저 아가씨가 정확한 위치에 떨구기만 했다면 말이오.”
“확실히 관통해서 폭발했습니다. 영상을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 한번 보고 싶군. 혹시 조종석을 구경시켜줄 수 있나?”
시발, 내가 생전 스피릿을 만지작거리게 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해 봤겠냐.
“물론입니다.”
나와 다른 둘이 스피릿을 향해 다가가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불편한 시선을 받았다.
“원망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요.”
“저희 정부는 이번 건에 대해 책임을 묻진 않을 겁니다. 아마도요.”
“그렇다 해도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건 변하지 않소이다,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지, 민간인들을 가득 태웠다고 해도 우리를 도우러 온 이들을 그렇게 버리고 도망에 전념하는 건 하면 안 되는 일이었소.”
자책의 목소리에 난 쓴웃음을 지었다.
“뭐, 어떻게든 될 겁니다. 이제 다 같은 전우가 되어야 하니 말입니다.”
병력과 장비들은 전부 해군과 공군에 편입될 예정이다.
물론 적지 않은 수가 예편을 택할 것으로 보이지만, 간부급들은 바로 예편이 불가능하다. 좀 우리를 학습시켜주고 퇴역해야지.
“아즈텍 이야기나 좀 해 보십시오.”
“아즈텍? 아, 멕시코 이야기군.”
끌끌 웃은 미 해군 제독은 답했다.
“없소.”
“예?”
“더 이상 중화 아즈텍 인민공화국인지 뭔지, 다 사라졌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그놈들의 수뇌부가 누군지 아시오?”
“모릅니다.”
“프랑스 출신자들이오. 앙드레 브르통이라는 작자가 지금 권력을 잡았지.”
“…….”
“참고로 예술가 출신이오, 그 미친 작자는 지금쯤 지반 아래에 매몰되어 있을 미치광이들보다 한술 더 떴어.”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쉽게 말해, 저들은 기존 정치권, 철학, 인간 이성, 그 모든 것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태어난 악마들이오. 부하들이 설명을 해 줬는데 나도 그 반의 반도 이해를 못 하겠더군, 망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환자가 시작한 정신나간 사상, 논리와 이성 자체의 부정. 거기에 미래주의나 파리 코뮌을 계승한다 자칭하는 공산주의 사상에 히피들까지 결합했소.”
“간단히 말하자면?”
“멋진 신세계란 책, 아시오?”
“읽어 봤네, 사실 인상이 깊어서 여러 번 읽었지.”
“거기에서 우수한 과학기술과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계급, 유리관 속에서 태어나는 아기들과 세뇌교육을 빼고, 소마를 아편으로 치환해보게나.”
“….. 젠장. 농담이지?”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전생의 중국은 1984였는데, 아메리카 대륙으로 올라가니 멋진 신세계냐? 저놈들은 디스토피아 사회를 안 만들면 죽는 병이 있나?
“물론 단순히.. 단순히 헉슬리의 저작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기는 어렵네. 그러니까, U-2 정찰기가 찍어온 사진을 자네가 봤어야 해, 도저히 내 입으로 설명하기가 어렵군, 떠올리자니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아.”
***
연방은 자유주의적이다. 아니, 자유지상주의적이다.
‘인간의 권리는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단, 그것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유교의 옛 질서는 사라졌다. 사회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면서 수직적인 관계는 격동기에 철저히 파괴되어 사라졌다.
그래서, 내가 21세기에서 가장 낫다고 생각한 국가들의 사회상과 이 나라의 사회는 제법 닮아갔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의 실질적 건국자 중 하나로써 박수갈채를 받을 일이다. 내 이상이 성공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 여파가 너무 컸다.
“자유지상주의라는 말도 부족하지.”
“저건 미래주의의 일종이오, 파스타 놈들이 수십 년 전에 만들어낸 케케묵은 모더니즘 사조지. 사모트라케의 여신상보다 달리는 기차가 더욱 아름답다는 말 아시오?”
“어느 예술가가 했다던 말 같은데.”
“전통과 과거를 부정하는 거요. 사실 이 나라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없지는 않겠지.”
“그건 연방 초기의 일이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파괴한 것은,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구태가 도리어 우리의 발목을 잡았을 터이니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소, 구시대적 신분 질서라든가 같은 구태들을 도태시킨 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소.”
간단히 말해 문화대혁명이다. 모가놈도 죽었는데 중국인들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는 건 역사적 필연인가?
그런데 그 혁명의 방식이 제정신이 아니다.
“저들 가운데에는 더 이상 언어들의 구분조차 무의미하다며 타파한다는 미치광이들까지 있네, 문법이라든가 그런 것도 다 구시대의 잔재라 이거지. 아니, 현실이라는 개념조차 부정하더군, 1+1이 2라는 걸 ‘구시대적 논리’라고 탄압한다면 이해하겠나.”
“뭐, 조금 이해하기 쉽게 설명드리자면 저들의 기본 사상은 전체주의입니다. 모든 개념이 부정되어도 국가는 존재하며,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한다. 즉 개인은 국가의 부품에 불과하다. 대충 그런 식으로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다만 그 구현 방식이 제정신이 아닌 거죠.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수준의 초극단적 전체주의입니다.”
쉽게 말하면 국가가 인간을 하이브 마인드가 군체 조종하는 식으로 취급한다는 건가. 어? 근데 전생에서도 그 비슷한 짓거리 하지 않았나? 결국 돌고 돌아 회귀구만.
다행히 방법론적으로 미쳤다는 건 그만큼의 비효율이 있다는 것, 이는 다시 말해 체제의 붕괴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전 국민들을 기계처럼 움직이려고 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편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모순 그 자체죠.”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들에게 국가 발전이나, 기술 개발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걸세, 저들의 진짜 목적은.”
애초에 전체주의 자체가 내부의 장기적 역량을 축적하는 데 있어 상극에 가까운 상황이다.
“사실 태동하기도 쉬운 사상이었지, 미국에게 공격당한다고 선전하고, 반대파는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고, 국가를 실제로 위기에 집어던졌으니 모두가 미친 듯이 따를 거야.”
“그러나 저들은 그저 자신들이 천년만년 집권할 수 있으면 자국 내의 모든 인구가 아사해도 개의치 않을 거야, 모두가 아편에 취해 벌거벗고 길바닥을 뒹굴고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겠지.”
그리고 나는 그런 사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