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77)
우주 위기(1)
문간에서 인기척이 난다.
거의 맡아본 적 없던 알코올 냄새를 맡았는지, 문간에 들어온 두 사람이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내가 이만큼 폭음을 한 적은 없을 테니까.
“실례합니다.”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공군의 바커 소령입니다.”
“좋아요, 바커 소령, 여기는 우리 집이고, 왜 당신이 여기 있는지 설명을 들어야겠는데요, 그리고 장군님이 왜 저 모양인지도요.”
“내가 설명하겠네.”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본관은 전 미 해군 원자력국장, 하이먼 리코버 제독이네.”
“반갑습니다. 제독님. 말씀은 들었습니다.”
“나야말로 세계 최초로 전인미답을 개척한 선구자를 만나 기쁘군.”
나는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우선 바커 소령과 나는 현재 미 해군과 공군의 망명자들의 대표로 장군과 회담을 하고자 했네, 하지만 뭐…. 제대로 된 건 못 했지, 미국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갑자기 장군이 폭음을 하기 시작했거든. 그나저나 아버지를 장군님이라 부르나?”
“정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뢰할 수가 없군요, 장군님께서는 절대 폭음을 하지 않으십니다. 마시더라도 절대 취할 만큼 드시지 않으셨죠, 미식가셔서 좋은 술을 좋아하긴 하시지만 평생 한 번에 세 잔 이상의 술을 드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네, 킴 장군의 미식가적 성격은 루쿨루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 있으니까.”
“많은 양의 식사를 하지는 않으시고, 대신 그만큼 질에 신경을 쓰신다는 정도가 정답입니다. 루쿨루스를 위한 루쿨루스의 만찬(사치스러운 식사를 의미하는 관용어구, 매일같이 연회를 열던 루쿨루스가 어느 날 연회를 열지 않아서 혼자 밥을 먹게 되어 하인이 간소한 음식을 준비하자 하인에게 ‘오늘 루쿨루스가 루쿨루스를 위한 연회를 연다는 것을 몰랐느냐!’라고 질책했다는 일화가 있다.)을 여실 만큼 사치스럽지도 않으시고요.”
“외국에서 더 유명하네, 킴 장군은 프랑스의 최고 와인 감별사를 와인의 원산지 맞추기 대결에서 이겨버린 적이 있거든. 그래서 미식가로 유명해졌지. 자네들은 모르나?”
“본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일화죠. 저희에게는 그냥 운이 좋아서 가능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아무튼 간에 혼자 퍼마시고 기절했다는 건 사실이네, 덕분에 하려고 했던 말은 한 마디도 못 했군.”
리코버 제독의 말이 끝나자, 익숙한 손길이 나를 부축하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길래 이렇게 드셨어요.”
“으으……”
“쉿, 쉬세요.”
“어후, 혹시 손님방이 어딘지 알 수 있나? 안전가옥 같은 곳이 없어서 며칠간 여기 머물기로 했거든.”
“내려가셔서 왼쪽입니다.”
목소리가 발걸음 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천천히 부축되어 가면서, 나는 간신히 언어를 만들어냈다.
“리비.”
“깨셨어요?”
“난…. 대체 뭘 만들어낸 걸까.”
“아버지?”
“……..”
그래서, 네가 원한 게 이런 거였어?
“하하하…..”
이름이 달라지고, 가진 국력도 차원이 달라진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파나마에서부터 캘리포니아까지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전체주의 국가가 인류의 미래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지.
‘중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위협.’
아무리 그 체제가 모순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해도 그러한 모순과 비효율은 언젠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광기어린 사상에 세뇌된 이들은…….. 세계를 얼마나 위험에 빠트리겠는가.
“난…… 나는……”
정신이 몽롱하다.
내가, 뭘 해야 하지?
“쉬세요.”
따뜻한 손길이 내 피부 위를 쓸어내렸다.
“멀리 볼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책임질 필요는 없어요.”
아냐, 내게는 책임이 있어.
이 지옥을 만들어낸 건 나야.
내 손으로…..
“자신의 한 일을 책임지지 않는 이들은 이미 세상에 넘쳐난답니다.”
그렇다 해도 그런 이들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 내가 뿌린 씨앗은, 내가 거두어야만 한다.
“그런가요.”
그 목소리를 끝으로 난 잠들어버렸던 것 같다.
“당신의 결심이 그렇다면, 당신의 뜻대로.”
***
모두의 예상대로, 냉전은 우주에까지 확대되었다.
우리는 대규모의 달 기지를 건설, 확장해나가면서 달에서 막대한 양의 희귀자원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티타늄, 희토류, 헬륨-3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훨씬 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자원이 있다.
뭐냐고?
금.
반짝반짝하고, 노란색이고, 모든 인간의 탐욕의 대상인 금.
그리고 금본위제.
여기서는 브레턴우즈 체제나, 그 유사한 체제는 없다. 변동환율제가 없는 건 당연하고.
덕분에 전 세계 경제는 강제적인 디플레이션을 당해야 하고 있고. 툭하면 세계 각국에서 유동성 위기가 터진다.
변동환율제? 원 역사의 닉슨 쇼크 이후의 변동환율제 체제는 기축통화국이자 초강대국인 미국이 전환해서 가능했지, 전 세계가 합의해서 바꾸는 것도 아니고 혼자 바꾸면 몰락하고 싶다는 애원이나 다름없다.
전 세계의 금 중 적지 않은 부분은 각종 원자재로 쓰이고, 경제 상승은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자로 등극한 것이 바로 우주였다.
‘금 매장량이 모자라서 돈을 못 찍어내서 디플레이션이 자꾸 와? 그러면 우주에서 금을 캐 오면 되는 게 아닐까?’
물론 기본적으로 소행성이 가진 금의 비율이 특별히 높지는 않지만, 금과 같은 중원소가 대부분 내핵으로 가라앉아서 도저히 캐낼 방법이 없는 지구와는 다르게-지구 내핵에 가라앉은 금을 다 꺼내면 지구 표면을 무릎 높이로 뒤덮고도 남고, 백금까지 꺼내서 지구 표면에 최대한 고르게 뿌리면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파묻힐 거다-중력이 약한 소행성의 표면에는 대량의 금과 백금들이 가득가득 차 있다.
진짜 금 함량이 높은 소행성을 찾아서 한 번 채굴하면 인류가 지금까지 얻은 모든 금보다 많은 금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우주왕복선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거리 내에 있는 소행성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라그랑주점에서 발견된 소행성에서 진행된 세 번의 채굴만으로 우리가 세계 1위의 금 보유국으로 부상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우리는 지구 인근을 돌아다니는 소행성만 채굴했지만,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거대 소행성대까지 단 한 번만 다녀와도 우리 정부가 가진 금 보유량을 5배로 늘릴 수 있습니다. 시간과 자원을 더 들이면 아예 달 궤도에 소행성을 가져다놓은 뒤 달 기지에서 해체, 정련하는 방법도 구상 중입니다.”
당연하지만 단순한 국위선양용이 아니라 국가 경제학과 외교 등에 대한 현실정치의 문제로 넘어오자 우주 개발에 대한 투자는 대폭 늘었다. 당연하지만 정치인들은 열심히 자신들의 선견지명을 자화자찬했고, 나는 연방원수 자리를 받았다.
아니, 우리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소행성 표면을 몇 번 ‘긁어온’ 것만으로도 세계 최대의 금 보유국이 되자 각국은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부어가면서 우주로 로켓을 쏴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날려먹은 생목숨은 또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결국 이는 무력충돌로 발전했다.
***
“반복한다, 본함은 ROASS(Republic of Aurelia Space Shuttle) 장보고다. 접근 중인 미확인 우주선은 즉시 통신에 응답하라.”
“본선은 폴란드 우주군 소속 바사 호다. 우리의 행보를 가로막지 말라.”
“즉시 방향을 돌려라, 귀측은 본함의 임무 수행을 방해하고 있다.”
“거절한다.”
“당장 회항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본함은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우주왕복선에 장착된 초전도 미사일은 우주전을 대비해 장착되었지만, 엔지니어들은 이를 개조해 광산 업무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소행성을 발파해 금광석을 채굴하는 데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어왔다.
하지만 우주 공간에서 적대 우주선을 향해 발사해 적함을 콩가루로 만들어버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사실, 정해진 일이었다.
우선 지구의 라그랑주점에 있는 트로이 소행성을 찾아서 캐는데, 이것도 몇 개 없었다. 가장 큰 게 300m짜리였으니까.
연방은 달의 크레이터 하나를 마개조해 거대한 망원경으로 만들어 소행성을 추적하고, 충분히 가까운 소행성이 발견되면 소행성에 태양 돛을 달아서 우주왕복선으로 유도, 달 궤도에 가져다놓고 우주왕복선을 이용해 해체작업을 한 다음 용암동굴 내에 만들어져 있는 대규모 시설에서 정제한 후 이를 왕복선에 실어서 본국으로 보내는 시퀸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달을 선점한 연방이 아닌 다른 국가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우선 지구접근천체나 지구의 트로이 소행성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21세기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연방은 지상과 우주 모두에서 관측해대는지라 좀 사정이 낫지만 타국은 지구에만 눈이 있다.
게다가 지구접근천체가 생각보다 흔한 것도 아니고, 가져와 보니 생각보다 가치가 별로 없는 경우도 왕왕 있다.
게다가 일단 발견한다 해도 상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선점을 해대는지라 노리고 우주선을 발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먼저 손을 댄다고 해도 지구 궤도로 가져오기에는 여러모로 달보다 훨씬 빡세다. 해체 작업 같은 것도 쉽지 않고.
어떻게 한다 쳐도 자칫해서 지구 표면으로 추락시키기라도 하면? 궤도 바깥으로 튕겨나가면 돈 날리고 끝나는 거지만 지구 표면에 추락해 사상자라도 발생시키면 대참사다.
농담이 아니라 이 우주판 대항해시대에서 우주 사략선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핵전쟁 위험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지경이었다. 세계 각국도 금본위제 아래에서 금의 부족으로 고통받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비슷하게 금 보유량 부족으로 고통받던 국가들은 소행성 금 좀 같이 캐자고 요구했다. 우주의 것은 엄밀히 말해 어느 국가의 것도 아니니만큼 채광된 금은 채광된 국가의 것은 맞지만 무주지에 존재하는 광산에 타국의 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논리였다.
물론 이 주장을 들은 연방은 일단 소행성을 달 궤도까지 가져온 시점에서 자국 소유라며 무시했지만. 그 국가들 중 하나였던 폴란드의 경우는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비밀리에 발사한 우주선을 동원해서 달 궤도에서의 대치 상황을 유발한 것이었다.
***
“폴란드 정부가 즉시 우주상에서의 해적 행위를 중단하고 우주선들을 철수시키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본국의 우주선들은 본국의 이익을 지키기 충분한 장비들을 보유하고 있다.”
채광장비로 더 자주 쓰이기는 하지만 초전도 미사일의 위력은 어지간한 전술핵 수준은 된다.
당연히 교전이 발생하면 핵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닌 폴란드 우주선은 우주 공간의 먼지가 되어버릴 터.
하지만 폴란드 정부도 강경했다, 게다가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아우렐리아 연방이 간만에 황금의 국가라는 이름값을 하면서 꿀빠는 걸 보면서 배가 아팠던 건 폴란드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폴란드의 주장이 옳다. 우주의 자원은 인류 모두의 것이지 한 나라가 독점하는 건 옳지 않다.”
“야, 유럽놈들, 니들은 식민지에서 금광 안 캤냐? 왜 니들은 대항해시대에 포토시 은광을 전 인류랑 안 나눴냐? 지금 장난해?”
“아 몰라! 우리도 금광 필요해! 금광 내놔! 금광!”
“당장 안 꺼지면 금광이 아니라 핵샤워 시켜버린다?”
“쏴봐! 쏴봐!”
“오냐 쏘라면 못 쏠 줄 아냐?”
“폴란드에 핵 쏘면 독일 제국도 개입한다?”
“니들은 폴란드랑 언제부터 동맹이었냐!”
“오늘부터.”
“그냥 좀 좋게좋게 나누자. 달 기지 한구석 빌려주는 거랑 광산 지분 나눠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와 이 새끼들 완전 강도떼네, 오냐, 칼은 어디 강도만 드냐? 아주 전 세계에 핵을 뿌려주마! 누가 못할 줄 알고?”
“아니 지금 싸우자고 모인 겁니까? 다들 좀 진정하십시오!”
싱가포르의 유엔 본부에서 열린 총회 한가운데에서 아우렐리아 대사가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박차고 나가려 들자 이대로 나가면 100% 핵전쟁이라 확신한 사무총장과 몇몇 국가의 대사들이 급하게 문을 막고 자리에 앉아달라고 애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아마 이들이 기대한 건 외교적 고립에 직면한 아우렐리아가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었겠지만, 아우렐리아 정부는 단 한 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자국의 과학기술과 자금을 무진장 퍼부어서 얻은 금광에 아귀떼처럼 수저를 들고 ‘한입만!’을 외치면서 달려드는 놈들에게 양보했다가는 분노한 국민들에게 목이 매달릴 판이었다.
“스페인이 언제 신대륙 금광 은광 타국이랑 나눠먹더냐? 우리가 대항해시대 스페인보다 만만해 보여? 핵 맛 좀 볼래?”
당연히 여기서 핵전쟁으로 인류 문명 전체가 사이좋게 망하는 건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무력만 써서는 안 되고, 각종 이권으로 살살 달래야만 했다.
“기술자도 우리가 보내고 정제도 우리 돈으로 하고….. 달 기지에 우리 구역 할당해주고 9대 1, 귀측이 9, 우리가 1로 채굴권만 보장해주면 독일 제국은 아우렐리아의 모든 상품에 99년간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습니다. 아우렐리아가 우리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희 비잔틴 제국 측은 발칸 지역의 복구를 독점적으로 아우렐리아의 기업에 맡기겠습니다. 적어도 수백조에 달하는 순수익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저희 스칸다나비아 연방은 북해에서의 석유 독점 채굴권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우주비행사들의 피가 말라가고, 발사 심도로 부상한 SSBN들의 함장이 바싹 마른 입술을 핥으며 이미 꽃혀 있는 사일로 키를 노려보고. 뉴스를 보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드릴 때, UN의 타협안이 마침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