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78)
우주 위기(2)
금에 대한 탐욕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이 금광이라는 것에서 이는 증명된다.
전 세계에서 금광이란 금광은 모조리 파헤쳐지고 있고, 금맥이 정부 청사 지하에 묻혀 있어서 정부청사를 허물어버리고 수도 한가운데에서 금을 캔 나라도 있을 정도로 금의 가치는 높았다.
모든 열강은 단 1g의 금이라도 국고에 더 집어넣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전쟁을 통해 타국의 금을 빼앗는다거나, 영토를 빼앗아 그 영토에서 금광을 찾는다거나.
금의 전 세계적인 부족은 기술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우렐리아가 기존 컴퓨터의 성능 개선을 때려치우고 확률컴퓨터를 개발한 것도 금의 절대적 부족이 원인이었다. 금 없이 집적 회로를 만들려니 전력 효율, 가공 난이도, 안정성 등등의 문제에서 온갖 문제가 튀어나와서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연구에 매진해 성과를 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컴퓨터공학자들이 기존의 전자기적 저장 방식 대신 인간의 뇌세포를 연구해 기억을 저장하는 데 사용하는 전기화학적 기법을 응용한 전혀 다른 형식의 기록 매체인 젤 메모리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인류는 휴대 가능한 저장장치는 꿈도 꾸지 못했다.
당연히 금의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스마트폰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판.
그러니 원자재로도 막대한 수요가 있고 화폐의 가치를 보증하기 위해서 필요한 금을 줄 수 있는 거대한 산지가 나오니, 이것이 전쟁 위기로까지 비화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부에서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달 기지는 우리의 것입니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자금과 시간이 들었는지는 원수 각하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저놈들이 우리가 안 물러난다고 포기할 것 같나?”
물론 우리 역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들이 억지로라도 손에 넣으려 한다면 우리는 전 세계를 핵의 불꽃에 밀어넣겠다.’
“우리 정부가 가장 좋아하는 방안은 역시 우리의 원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거겠지.”
일종의 브레턴우즈 체제.
즉 우리 정부만이 독점적으로 금 태환을 실시하는 것.
원 역사에서 미국이 전 세계 금의 70%를 보유했다면, 우리는 계속된 소행성 채굴을 통해 금 보유 비중을 90% 이상으로 늘려버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과 다르게 해군력으로 전 세계의 해상무역로를 보호하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을 외국에 개방할 능력이 없다. 그런 시장과 해군력이 있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기축통화국은 필연적으로 안정적인 세계 경제망의 유지를 위해 무역수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데, 지속적인 금 유출과 무역 수지 적자를 감당할 만큼 연방의 경제가 튼튼한가?
‘그랬으면 우리가 국뽕을 위해서 미친 듯이 우주에 집착하지도 않았지.’
금본위제 자체의 완벽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신용화폐 체제로 나가기에는 각국의 신용도 자체가 문제였다.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올림픽마냥 터져대니까. 원 역사처럼 강대국이 만만한 약소국 쥐어패거나 약소국끼리만 싸우는 게 아니라 강대국과 강대국, 중견국과 강대국, 중견국과 중견국의 싸움도 치열하고, 벌어질 때마다 세계 경제가 출렁인다.
이 상황에서 금본위제를 버리라는 건 무리다. 게다가 원 역사처럼 압도적인 1위 국가가 없는, 난립하는 강대국과 강소국들로 인한 혼란 상황에서 신용도가 얼마나 돌아갈지도 의문이다.
“그런 문제점들이 있는 이상 우리를 중심으로 한 독점적 금태환 체제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크네.”
설령 하더라도 가랑이가 쫙 찢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 기지에서 아무나 채광할 수 있게 해주면 이는 국익의 손실입니다. 국민들 중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금을 빨아먹으면? 수십 년 내에 현실화될 부분으로, 만약 우리가 세계 금의 95%를 독식하고 나머지 전부를 다 합쳐서 5%라면?”
물론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세계대전이 터질 가능성이 극도로 높다.
“현재 본국은 압도적인 선발 주자로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네. 다른 국가가 본국의 위치까지 오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거고, 본국은 그동안 이미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했을 걸세.”
운동을 하려 한다 뭐 그런 식의 목적 없이 산 정상까지 간다는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케이블카가 있는데 그걸 못 타게 하고 걸어올라가는 건 비합리적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케이블카를 놓은 입장에서는 상대가 무임승차를 하려 든다는 것이 굉장히 괘씸할 것이다.
그런데 그 걸어올라가려 하는 사람들은 세계의 국가 수만큼 있고, 케이블카 주인은 한 명뿐이다. 그 경우, 과거였다면 케이블카 주인을 머릿수로 패죽이고 나서 케이블카를 자기 혼자 손에 넣기 위해서 피의 싸움이 시작되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핵무기가 있다. 세계와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적어도 폭탄 조끼를 격발시켜 케이블카 탑승을 요구하는 모든 인간을 자신과 함께 죽여버릴 능력은 있는 셈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이들이 이 상황을 제로섬 게임으로 여기고 있어.”
그러니 우리도 벼랑 끝 전술을 쓰고 있고, 상대들도 그렇다.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말 아나?”
게임 이론 가운데 하나다.
정해진 양의 돈이 있고, A는 그걸 어떻게 나눌지 정하며 B는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정할 수 있다. 만약 B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A와 B 모두 한 푼도 가질 수 없다.
“이 경우 상식적으로 B는 100대 0만 아니면 그냥 받는 게 이득이야. 왜? B 입장에서는 어차피 공돈이거든.”
“우리가 A군요.”
“그래. B가 받아들이지 않는 건 곧 전쟁을 의미하며, 전쟁은 곧장 상호확증파괴로 이어질 터. A와 B 모두가 공멸하는 길인데, 보통 B가 원하는 건 50대 50이지, A는 최대한 많이 가지고 있기를 원할 거고. 그런데 보통 80대 20의 선을 넘어가면 B는 20을 받는 걸 거부하고 판을 엎어버리는 걸 택한다더군. 여해시의 주민과 저 밀림의 원주민들 모두.”
“우리가 꼭 A라고 봐야 합니까? 제안과 선택은 이쪽과 저쪽 모두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후통첩 게임은 그 돈이 A에게도 공돈이지만 이건 우리 국민들이 뼈빠지게 일해 번 세금을 성실하게 투자한 결과입니다. 절대 같은 선상에서 놓을 수 없죠.”
우리가 해외에 금을 팔아주면 안 되냐는 의문이 나올 법한데, 금은 결제수단이다. 석유가 고갈된 상황에서 우리가 유전을 독점한 상황이면 그냥 사갈 생각이나 하지, 금은 결제수단이고, 금이 고갈되어가는 국가의 화폐로 금을 사겠다는 건 그냥 헛소리다. 금태환 화폐는 금 없으면 종이쪼가리인데 결국 합리적인 거래를 하면 금을 같은 양의 금으로 바꾼다는 소리니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금을 대가를 받고 해외로 유출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금(이나 금태환 화폐)으로 외국의 물건을 사주는 형태가 되어야만 하는데, 각국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금과 맞먹는 가치의 물건을 소비할 시장이 우리에게는 없다. 미국이 닉슨 쇼크 이전까지 그걸 질질 끌어가는 게 가능했던 건 그게 가능할 만큼의 초거대 시장과 경제시스템이 받쳐줬으니까 가능한 거고. 우리가 그 정도 체급이 되려면…. 지금 경제규모의 10배는 되어야지?
즉 시장 논리에 의한 거래가 불가능하다. 강제로 써야 하는 돈이 한가득 쌓여있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하루에 열두 끼씩 먹나? 우리 국민들에게 강제로 벤츠….가 여기서는 딱히 고급 모델은 아니지, 아무튼 전 국민이 외제 리무진을 타고, 외국인 가정부들-돈이 국외로 나가야 하니-을 고용해서 뭐 가사노동이든 뭐든 시키고, 기타 등등 할 이유가 있나? 모든 국민이 조종사 딸린 자가용 제트기를 굴리는 게 현실적으로 따져서 말이 되냐는 말이다.
물론, 물론 진짜 각오하면 그런 지출을 할 수는 있다. 물론 국민 단위의 지출을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는 정치적인 이유는?
예를 들어 알파 센타우리까지 가는 핵추진 세대 우주선을 우리가 주도해서 만든다고 치자. 지금 기술로도 제작이 가능하긴 하다. 근데 대번 ‘그런데 그런 건 왜 만듭니까?’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우주선 한 대에 우리 30년치 GDP를 쏟아부어야 한다면 말이다.
아무리 마르지 않는 금광이 있어도 그런 비용지출은 그만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명분은 찾기도 어렵고 찾더라도 지속성 있게 추진되기도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거대 인플레이션까지.’
포토시 은광이 에스파냐의 경제를 조진 것처럼, 우리 경제도 그렇게 조져질 거다.
‘하, 시발.’
그래, 내가 책임질 수도 없는 문제 말고, 우리가 붙잡은 이권이 침해되지 않고, 동시에 우리 경제랑 전 세계 경제를 조져버림에 따라 대공황이 오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에 적절하게 금이 풀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근데 그런 게 있긴 한가?
***
“유엔 헌장의 수정과 유엔 상임이사국 시스템의 개편을 제안합니다.”
나는 한 가지 안을 제시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기존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현재 거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것에 대부분의 국가가 동의하실 겁니다. 덕분에 유엔도 상당히 유명무실해졌죠.”
현재 유엔 상임이사국은 3개국이다. 우리, 독일, 미국.
그런데 지금 미국이 내란으로 인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고, 원래 상임이사국 자리에 앉아 있던 여러 국가들도 이런저런 혼란상 속에서 그 자격 자체를 상실해버리는 사건들도 일어나고 있었다.
난세다. 정말로.
“그러니 어차피 상임이사국들이 제대로 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곧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유명무실화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엔 자체에 대해서도 그리 공정하지 못한 시스템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 역시 이곳에 모인 대사분들께서 인지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본인의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폐지하고, 그 자리에 유엔 의장국이라는 이름의 단 하나의 국가가 차지할 수 있는 자리를 신설하는 겁니다. 임기는 20년. 연임은 무제한 가능, 기존에 안보리가 가지고 있던 권한은 의장국과 총회에 골고루 분배됩니다. 당연히 이 의장국은 총회에 의해 선출됩니다.”
“그리고 초대 의장국은 귀국이 하겠다는 거군?”
“그쯤은 되어야 적절한 보상이지 않겠습니까. 우주 개발을 위해 본국이 투자한 비용이 얼만데 말입니다.”
‘내가 곧 안보리다!’ 음, 이건 좀 아닌가. 아무튼 거기에 거의 준하는 권한을 연방에 부여하라는 것이다.
현재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하나가 우리고, 미국도 빠진 상태니 독일이 동의하느냐가 근본적인 문제겠지.
“우리의 기술력과 자본으로 개발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 정도는 해주셔야 우리도 그에 맞는 대가를 돌려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공은 독일 제국으로 넘어갔다.
“선택하십시오,”
상임이사국 자리를 포기하고 금을 같이 가질지, 아니면 교착 상태를 이어갈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