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61)
내란(3)
시각과 청각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공감각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직결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후각이다.
향기는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리고 마차 안으로 스며들어온 향기가 내게 불러일으킨 감정은, 지독한 경멸이었다.
“비겁한 쥐새끼들.”
들리지 않게 내뱉은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 손에는 편지가 들려 있었다.
-여러 차례 공사의 요청을 받았으며, 해당 공작은 내각의 주시를 받는, 외교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본 함대를 비롯한 대영제국의 극동 주둔병력 전체는 도저히 여력이 없다. 현재 협상이 상당히 진행된 것과는 별개로 곳곳에서 영국군, 러시아군, 조선군과 청 민병대 및 정규군과의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인력의 손실은 크지 않지만 장비의 소모는 극심하며, 이로 인해 예비장비의 보유가 필수적이다.
-그와는 별개로 공작을 몇 개월 가량 연기할 수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다. 수개월 내에 청과의 협상은 종결될 것이며, 협상 결과 얻어낸 조차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늦어도 올해 안에 청조 전체에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다. 그 이후라면 공사의 공작을 지원하기도 훨씬 수월할 것이며, 그 전까지만이라도 공사의 공작에 배정되어 있는 각종 화기를 극동함대가 유용할 수 있도록……..
나는 편지를 품에 챙겨넣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뭐, 원정군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온 꼴이 된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오히려 청군보다도 더 위협적인 민병대들을 상대하려면 내가 공작에 써야 한다면서 틀어쥐고 있는 소총과 볼리 건, 야포들이 필요하기는 할 거다.
정작 나도 편지 보내서 ‘청에서 노획한 물건이랑 아무튼 영국제 아닌 물건들 좀 모아서 보내주세요’ 하고 요구하고 있는 판이긴 한데.
진지하게 따져 보면 지금 진행하고 있는 전쟁 쪽이 뒷구멍으로 무기 보내서 반프랑스 봉기 선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중요하기는 하다. 일단 이미 있는 물건만 넘겨주고, 키리시탄들에게 좀 기다려 달라고 해야겠지. 반막부파와 접촉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막부를 밀어주는 것도 생각은 해 봤지만, 아무리 봐도 막부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지를 생각하면 프랑스가 토막파를 밀어줬다가는 답이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기왕이면 이기는 쪽을 밀어줘야지.
토막파가 지금 시기에는 양이 여론이 강하다지만 어차피 상관없다. 나는 그 양이를 밀어주러 온 거니까. 어차피 일본은 우리가 잡으면 안 되는 고기니까 아무도 못 잡게 하거나, 아니면 수지타산이 안 맞게 만들어버리는 거다.
‘조슈, 사쓰마, 토사, 미토였나?’
앞의 둘은 확실한데 뒤의 둘이 기억이 애매하다. 아무튼 간에 찾으면 금방 나오겠지.
“공사님, 다 왔습니다.”
마부의 말에 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그래.”
문이 열리고, 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나가사키 내의 급하게 지은 예배당에 들어간 나는 신부들을 만났다.
“어디 있습니까?”
“이 안쪽입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남녀가 여럿 섞인 일본인들이 보였다.
겉보기에는 단지 구경온 일본인들 같았지만, 이들은……..
“당신들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합니까?”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신앙의 형제를 이 먼 곳에서 만나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내 어머니가 가톨릭 신자니 구라는 아니다. 음, 그거면 됐지.
“오오……”
나는 손뼉을 가볍게 쳐 주의를 환기했다.
“신부님들, 잠시 이분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형제님.”
신부들이 물러가자, 나는 예배당 내의 밀실에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과 같은 이들이 얼마나 더 있습니까?”
“많습니다. 저희 마을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 퍼져 있습니다. 저희는 잊지 않기 위해서 가끔씩 몰래 만납니다.”
완벽하다.
“교황께서 보낸 고해신부가 이곳에 왔고, 적어도 이 조계지 내에서는 자유롭게 고해성사를 할 수 있지만 아직 이곳 밖에서는 위험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당신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나는 품 속에 있던 권총을 꺼내 내밀었다.
“오는 길이 멀고 험해 대규모의 군대를 보내기에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막부의 군대와 싸워도 반드시 이길 만한 무기를 주겠습니다. 외교적으로 압력도 넣어드리겠습니다. 막부를 무너트리시고, 신앙의 자유를 손에 넣으십시오, 당신들의 전설대로 매주 고해성사를 하고, 어디서나 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길에서 외교인을 만나면 상대가 길을 양보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런 날이 오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안타깝게도 저희의 군대는 지금 중국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기에 이곳에 보낼 병사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남는 무기들을 당신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막부가 사용하는 것보다 강력한 조총, 훨씬 강력한 대포, 창, 칼, 원하는 대로 주겠습니다. 금과 은도 당신들에게 필요한 만큼 주겠습니다. 낭인들을 고용하고 훈련하여 무장을 갖추십시오, 막부의 토벌대가 오더라도 충분히 쫓아내고, 더 나아가 에도까지 나아가 키리시탄 막부를 새롭게 세우십시오.”
내가 일본 여행을 갔을 때 기억을 되살려보면 카쿠레키리시탄들의 마을들은 죄다 산이나 낙도 등의 외진 곳에 있다. 군사훈련을 하더라도 한동안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당신들에게 지금 선택하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돌아가서 마을 내에서, 그리고 마을들 간에 회의를 하십시오, 그래서 당신들의 뜻이 모아지면 그때 신부에게 와서 저를 찾으십시오, 당신들의 마을까지 무기와 화약을 날라드리겠습니다. 다만 제가 조금 늦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계속 막부에 반대하는 다이묘들과 접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도록 하죠.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당신들 편입니다. 정 상황이 안 좋아지면 조계지로 어떻게든 도망치십시오, 조계지에 들어오기만 하면 막부든 번사들이든 당신들을 쫓아오지 못할 겁니다.”
그냥 키리시탄임을 들켜서 도망오는 경우면 서구 열강들의 지지를 받아서 버틸 수 있다. 조계지에서 기독교도라는 이유로 일본 정부에게 박해당하는 신자들을 보호해줬다고 하면 유럽에서는 칭찬을 하면 하지 책임을 추궁할 나라는 19세기에 없으니까. 프랑스나 그런 나라들이면 되려 본국 차원에서 군대를 보내서 당장 선교의 자유를 허용하라고 윽박지르고도 남을 거다.
반역 혐의라면 조금 어렵겠지만, 일단 신자임을 주장하고 있으니만큼 단순히 종교박해 때문인지 반역 혐의가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보내주겠다고 한 뒤 몰래 외국으로 탈출시킨 후에 단체로 탈주를 시도해서 다 쏘아죽였다고 우겨야지 뭐, 아니면 시체 달라는 소리도 못하게 콜레라가 돌아서 격리하던 도중 죄다 죽었고, 시체는 다 태워버렸다고 우길까.
일본 관헌에 기독교도들을 넘기는 게 오히려 비난을 받을 일이기도 하고, 이거 때문에 일본의 양이 사상이 심화된다고 해도 본전치기다.
오히려 문제는 여기까지 못 도망치고 살아서 잡힌 인원들이 내가 사주했다고 실토할 경우인데…… 일본 반응이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 반응이 문제지.
그걸 대비해서 내가 막부랑도 접촉해놓고, 각기병 치료법도 알려주긴 한 건데 어떠려나. 게다가 막부는 내가 가톨릭교도가 아니라 영국 성공회라고 알고 있다.
당연하지만 이 시대 일본도 네덜란드 등과 접촉한 바 있어서 구교와 신교의 차이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심지어 여기 카쿠레키리시탄들도 안다, 그러니 막부에서는 프랑스 공사나 그런 인물이 나를 사칭했다고 여길 가능성이 큰 데다 내가 쇼군에게 준 선물도 있으니, 증언 하나쯤 뭉개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 거다. 누가 날 사칭한 거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애초에 난 이름도 안 밝혔다.
만에 하나 생존자들을 탈출시키는 것도 ‘기독교도들을 넘기면 내 본국에서의 입지가 큰 위협을 받는다, 아예 해외로 내보내 돌아오지 못하도록 처리할 테니 지난번 선물의 답례인 셈 치고 눈감아달라’고 요청하면서 막부랑 번에 뇌물 좀 찔러주면 조용히 처리될 것 같긴 한데 흠.
어차피 나가사키가 어느 한 국가의 조계지도 아니고 다같이 쓰는 조계지인 만큼 나 혼자만 구르는 게 아니라 각 공사들도 이래저래 알아서 뛰겠지. 물론 그 공사들 가운데 언론 타는 순간 당장 국가원수 명의로 소환명령이 날아올 게 뻔한 키리시탄 송환에 동의할 인간은 없을 거다. 자기 권한이 닿는 한 함대고 군대고 있는 대로 끌고 와서 연합군 결성하고 에도에 대고 무력시위를 하면 했지….
성당을 나오면서, 나는 보좌관에게 살짝 물었다.
“무기들은 어디 있지?”
“영국 국기를 게양한 수송선에 뒀습니다.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어떤 국가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당연하지, 프랑스나 기타 열강이라고 해도 해외에서 똑같은 열강, 그것도 대영제국의 배에 실린 화물이 뭔지 확인하겠다고 깽판을 칠 수는 없다. 그리고 막부든 번이든 그럴 배짱이 있을까? 프랑스 해군에게 힘의 격차를 한 번 확인한 놈들이?
“좋아, 저쪽에서 확답을 받는 즉시 전달한다, 그런데 훈련은…….”
“이번에는 군사고문단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공사관 수비대에서 교관을 차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젠장, 지원 줄어든 게 확실히 느껴진다. 그리고 일본 땅에는 정글이 없다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큰 문제다.
베트남에서는 머리가 많다고는 해도 그럭저럭 규합된 수천 규모는 되는 반군 조직과, 그들이 훈련할 만한 정글이나 중앙정부의 통치권이 안 닿는 지역이 많았지만, 일본에는 어디 훗카이도라도 가지 않는 이상 그런 데가 없잖아?
베트남에서는 총포를 막 쏴대면서 장기간 훈련해도 괜찮았는데…… 어디 바다 한가운데로라도 데려가서 훈련시켜야 하나? 무기도 야음을 타서 쪽배 같은 걸로 날라야 하고……
게다가 본국의 기대치는 프랑스 원정군을 전멸시키고 몸값을 요구하며 프랑스에게 대망신을 주기까지 하면서 높아져도 한참 높아졌을 텐데, 사정은 더 나쁘고 지원은 쪼그라들었으니, 돌겠네.
“조속하게 조슈 번을 비롯해 막부에 불만이 많은 다이묘들과 접촉하게, 저들만 믿을 수는 없어.”
애초에 일본 민간에서도 사교도 소리 듣는 게 기독교다. 전국시대나 그 이후 에도 막부 초기까지만 해도 제법 세력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싹 토벌당해서 내가 접촉한 이들 말고는 거의 씨가 말랐으니, 이들이 도움은 되겠지만 이들만으로 정권을 엎어버릴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역시, 제대로 된 다이묘들을 규합해야 했다. 키리시탄들은….. 막부 말기에 유신 세력이 막부의 위신 실추시킨다고 이런저런 테러를 벌인 것처럼 그런 데나 써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