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64)
내란(6)
김좌근이 부랴부랴 찾아온 건 다음날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진심으로 헌종이 안쓰러워졌다.
‘나름 최선을 다해 보안을 강화했을 텐데 어떻게 하루도 안 되어 들키냐.’
그와 동시에, 헌종은 역시 똥패라는 판단이 더욱 강해진 건 덤이었다.
“조만간 베트남으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인수인계를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입니다.”
런던에 ‘나 죽어! 진짜로 나 죽는다고!’로 요약될 수 있는 마음의 편지를 여러 통 보낸 끝에야 이 망할 작자들이 일본 영사와 베트남 영사를 임명해줬다.
근데 기존에 하던 대일본 공작이랑 베트남 공작은 또 그대로 수행하고, 내 후임자들도 내 지시를 받아서 일해야 하고, 거기에 아무튼 간에 직무 수행은 해야 하니 걔들에게 인수인계도 내가 준비해야 하고…… 이거 맞아? 왜 일이 더 늘어났지?
베트남과 일본의 외교관 파견 직급은 종전보다 떨어진 셈이지만, 이건 프랑스의 베트남과 일본에 대한 종주권, 그러니까 런던 협약과 비엔나 협약을 존중한다는 의미표시이기도 하다고 한다.
우리야 그 협약 씹고 온갖 공작을 벌이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귀국의 법률과 체계에 대해서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그 입헌군주제라 하였던가요?”
“동양은 군주는 무치(無恥)라 하죠, 하지만 대영제국에서는 국왕 폐하도 한 명의 인간으로써 법률을 지키셔야 합니다. 물론 여러 특권들을 가지고 계시지만요.”
영국의 경우, 국왕 대권이 있다.
명예혁명 이후로 사법부의 권한은 군주가 침해할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법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법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를 해석하는 것은 순수히 사법부의 권한으로 확정되었다. 국왕 특권과 현행법이 충돌할 경우 법령이 우선하며, 특권은 법령의 내용을 변경할 수 없다. 그리고 특권은 공정성과 이성의 관습법적 의무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남용도 막혀 있다.
군주는 사법과 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국왕의 대권 행위에 대해 사법심사를 청할 수 없다. 권리장전에 명시된 제한사한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조칙도 내릴 수 있으며, 국법상 중대한 범죄를 방지하는 걸 제외하고는 칙령에 의해 새로운 범죄를 창설할 수 없다.
그 외 재가와 거부권, 불기소권과 사면권이 있다. 모든 법률은 국왕의 이름으로 행사되기에 당연히 국왕을 재판할 수는 없다. 외교권, 훈장/작위 수여권, 국교회 성직자 임명권 등도 존재한다.
영국 국왕은 권리가 없는 게 아니다, 대헌장과 권리장전을 뺀 모든 국왕의 권한은 사용되지 않는 것일 뿐,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은 김좌근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영길리에서는 국가에게 중요하나 국왕의 사유 재산인 어떠한… 중요한 것을 군주의 의지로 처분할 때, 이는 조정에서 논의해 처리합니까?”
“여왕 폐하께서 하고 싶으시면 자유롭게 할 수는 있습니다만, 의회에서 논의를 거친 뒤에 진행해야만 후에 군말이 안 나오겠죠. 그러나 이것이 타국에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국가에는 각자에게 맞는 법이 있는 거니까요. 조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가가례라고 하던가요.”
그 이야기를 들은 김좌근은 살짝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번 일에 내가 가급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의미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근데 기본적으로 타국 정부 내의 파워 게임에서 외국 공사가 맘대로 개입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란 생각은 안 하나? 앞뒤가 바뀌었잖아. 보통 주재국이 내정간섭 안 당하려고 발버둥치고 공사가 개입해야 하는데 저놈들은 날 끌어들이려고 하고 내가 생각 없다고 손 내젓게 만드네 거 참.
그냥 날 욕받이로 쓰려는 게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는 하다. ‘아이고 우리는 정말 그러기 싫었는데 저 공사놈이 아이고………’ 음, 가능성 높아 보이는데.
***
“키리시탄들의 무장은 이제 충분합니다. 현재 낭인 무사들과 불만 세력들을 합쳐 제법 대규모 잇키 정도는 일으킬 수 있을 겁니다.”
“좋아.”
나는 펜을 들었다.
“조슈 번은 덴노가 명분을 만들어주면 움직이겠다는 걸 명확히 했다, 즉 덴노의 조칙을 받아내야 하는데.”
차기라면 모를까 현 덴노가 그리 변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여러 정황상 짐작이 가능하다. 나이도 적지 않으니까.
“따라서 덴노를 손에 넣어야 한다. 모리 가에서는 그걸 우리가 맡아주면 좋겠다더군.”
가장 골치아픈 일을 떠맡긴 셈이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조슈 번이 먼저 움직인다면, 그리고 그 결과 실패한다면 영락없는 반역이다.
하지만 영국 측의 사주를 받은 사교 집단인 카구레키리시탄이 움직이면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발을 빼기가 좋다.
“그리고 우리도 여차하면 발을 빼야지.”
쉽게 말해 안전빵이다.
게다가 훈련받은 지 얼마 안 된 조슈 번의 병사들이 교토를 치고 빠지는 걸 잘 할 리도 없고. 덴노의 몸에 손을 대야 할 수도 있는데 이를 불경이라 여길 여지도 크다.
가톨릭교도들인 카쿠레키리시탄이야 그런 제한에서 자유로우니, 확실히 이런 데 써먹을 만하긴 하다. 설령 생포되는 일이 있더라도 저들은 이걸 순교라 여길 테니까 고문을 해도 어지간해서는 견디겠지.
“무기와 인원은 우리 배에 실어서 개항장인 오사카까지 간다, 오사카에 정박한 후 야밤을 틈타서 요도 강을 돌파, 요도 강이 셋으로 갈라지기 직전 지점까지 우리 배로 인원을 나른 뒤 바로 빠진다.”
만일 중간에 막부 측이 검문을 시도한다면 탑승은 거부하고, 목적은 수심 측정이라고 둘러댄다. 어차피 일본 내에서도 영사재판권과 치외법권은 유효하니 배째라로 나가도 된다.
“거기서 내리면 수송선은 즉시 철수, 키리시탄들은 산으로 들어가서 고쇼를 습격, 천황을 납치한다.”
이를 위해서 야포까지 지급되어 있다. 막부와 덴노 휘하 경비대가 반격해오면 격파하고서라도 끌고 나오는 거다.
그리고 제일 어려운 대목, 히에이 산으로 숨어든 뒤 산길로 45km를 주파해 들어온 것과 반대 방향의 해안까지 덴노를 끌고 탈출한다. 비와 호가 바다로 이어져 있어서 배가 쉽게 드나들 수 있다면 누워서 떡 먹기였겠지만….. 나고야나 오사카로 가는 건 자살행위고 말이다.
해안에는 영국 상선이 대기하고 있고, 탈출자들을 태워서 조슈까지 실어다 보낸다.
덴노를 어르고 달래는 역할은 조슈가 할 일이다.
단 한 단계라도 잘못되면 우리든 조슈든 바로 발을 빼야 한다. 그러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지.
‘물론 그런다고 막부와 조슈가 충돌을 안 벌이지는 않겠지만. 명분이란 게 있고, 또 시간도 없으니까.’
주먹구구식으로 벌여야 하는 데다 지원도 마땅찮으면 군대를 근대화할 시간이라도 넉넉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 시간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쥐어짜내야지.
“개항장에서 공사의 허가증을 든 영국 상선을 입검하려 할 배짱이 있을 막부 관리는 없을 거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걸 봤다고 해도 끽해야 밀수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마지막이 문제다. 직선거리 25~30마일 가량을 추격을 당하면서 산악 지형에서 강행군해야 하는데, 내가 장담하건데 문제가 생긴다면 이 단계일 거다.
“영국인들은 단 한 명도 붙여줄 수 없다. 만에 하나 잡히거나 죽어서 시체가 발견되기라도 하면 매우 곤란해지니까. 즉 키리시탄과 조슈 번의 사무라이 10명으로만 수행해야 하는데…. 괜찮으려나.”
차라리 군대를 끌고 정면으로 교토를 공략하는 게 쉽겠다. 이게 뭐하는 짓인데. 젠장.
나는 금고를 열어서 내용물들을 꺼냈다.
어떤 서명도 없는 여러 계획서들은 모조리 벽난로에 쳐넣어졌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4시간 뒤이자 작전을 개시하기 5시간 전, 나는 공식적으로 인수인계를 마치고 조선으로 떠날 걸세, 막부에도 그렇게 통보했고, 당분간 공사관은 직무대행 체제로 돌아간다.”
물론 공식적으로 내 후임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지만 내 이임 일자가 됐기 때문에 칼퇴…. 아니, 칼전근 가는 거고, 실제로는 동해상서 키리시탄 생존자들을 회수해 갈 상선을 타고 대기하겠지.
당연히 일이 잘못되었을 때 꼬리를 자르기 위해서다. 네? 영국 공사가 관련되었다고요? 젠티안 자작은 이임식 다 끝내고 출국했는데요? 신임 공사는 아직 도착 안 했고요, 사칭 아닙니까? 아 아무튼 사칭임, 그 배후가 외국이 관련되었다고 하면 막부가 꼬리 내릴 것 같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우리가 무슨 얻어먹을 게 있다고 교토를 습격해요? 우리가 교토 공격하고 싶었으면 정규군 동원해서 쳤지 뭐하러 잇키를 일으킵니까?
대충 이런 식으로 잘라버려야지. 근데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 어차피 후임 공사 아니면 공사 대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 내 알 바는 아무튼 아닌 듯 하다.
그래도 대충 예상 질문이랑 적절한 답변 뽑아 놨으니까 직원들이 달달 외우게는 해 둬야지.
“알겠습니다.”
“그 꼬맹이는 어디다 뒀지?”
“아, 요시다 말입니까? 그 녀석은…….”
“미리 치워둬, 조선의 영국 공사관에 두도록.”
“아, 네, 알겠습니다. 다음 연락선편으로 보내겠습니다.”
여러 모로 고민했지만, 역시 결론은 하나였다.
감시하면서 최대한 내 의도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세뇌해보고, 상황이 나빠지면 아예 귀국시키지 않거나 제거한다. 성공적으로 내 손에 넣는다면 저 녀석을 매개로 일본의 유신 세력들을 통으로 조종할 수 있는 매개체로 쓴다.
요시다 쇼인이라는 인물이 원 역사의 메이지 유신의 주요 인물들에게 가지고 있었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수준, 그들 모두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입장이었으니까.
물론 요시다 쇼인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내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역량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머리에 뭘 좀 넣게 해야지. 그러면 역시 영국 본토에 보내야겠다. 베트남에서 보내겠다던 유학생들에 묶어서 보낼까… 아니, 보내는 김에 조선에서도 유학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게 좋겠군.’
일단 받아서 외무성에 토스하면 그런 거 잘 하는 담당자들이 알아서 할 거라는 약간은 무책임한 생각이었지만,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을 것 같은데?
“기밀 서류들은 전부 소각하고, 나가사키로 보낸 배들은 도착했나?”
“시간상 도착했을 시간입니다.”
“좋아.”
나는 회중시계를 한 번 확인했다. 작전 시작까지 29시간. 준비는 다 마쳤고, 이제 이 공사관 바깥을 나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시작된다. 동시에 내 일본에서의 외교관 생활은 끝나겠지. 24시간 후에는 내 공식적인 공사 임기도 종료니까. 설마 일본에 두 번 보낼 리는 없지 않겠나.
“작전명 크리스탈 엠파이어를 개시한다.”
그래, 내 작명 솜씨 구리다. 뭐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