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65)
내란(7)
교토, 일본국.
에도 시절부터 일본은 화재에 취약한 국가였다.
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일본의 건축물은 90% 이상이 목재였으며, 에도 시대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돌이나 기타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옥보다 나무로 만들어진 가옥이 훨씬 지진에 안전한 것이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화재에 취약해졌지만, 일본인들도 바보가 아니다. 일본에서 의용소방대의 역사는 수백 년에 달했고, 방화에 대한 처벌이 역사적으로 가장 강했다고 평가받는 국가와 지역이 바로 방화는 최저 형량이 화형이었던 에도 시대의 일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57년에 이틀간 에도의 70%가 불타고 확인된 사망자만 10만 명 이상인 메이레키 대화재를 비롯해 수많은 대화재를 겪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의용소방대 등은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불….. 불을 꺼야 하지 않겠나?”
사무라이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신분상으로도, 직책상으로도 위였지만 사무라이는 도저히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기세에서 밀린 것이었다.
“뭐하러?”
도리어 포수가 반문했다.
“…………”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야, 치고 도망가야지, 불바다가 되면 막부나 번의 군대도 불부터 끄려고 할 거고,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발이 묶일걸? 게다가 우리가 불을 끄다가 붙잡히면?”
지금 이 순간에도 총알이 날아다니고 있다. 의용소방대도 불을 끄는 게 아니라 날벼락처럼 떨어지는 포탄과 탄환을 피해 도망가야 했다.
물론, 순수히 임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휘자 역할을 맡기 위해서 참모 삼아 따라온 조슈 번의 사무라이들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차마 불을 끄자고도, 교토 수비군에 맞서 포를 쏘지 말자고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화재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명백히 감정에 기인하고 있었다.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 뒤를 이은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막부에게 사교로 몰려 탄압당한 지 수백 년, 이들은 그 탄압 속에서도 배교하지 않을 정도의 광신자였다.
에도 막부와 일본 각지의 영주들은 이들을 배교하게 하려고 별별 수를 썼다. 잡히는 대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화형시키고, 끓는 유황 온천에 집어넣어 고문하고, 핍박에 못 이겨서 대대적으로 반란도 일으켰다가 패배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극히 일부는 신앙을 유지했고, 그들은 광신도였다.
아니, 광신도가 아니면 수백 년의 탄압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외세는 광신도일수록 이용하고 버리기 편하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같은 기독교 국가로써 써먹기 좋다는 이유로 이들을 지원했지만, 이들의 원한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들은 일본 전체를 불태울 반역의 불길의 선두에서 초개처럼 몸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탄압한 막부의 국교인 신토는 그들에게 있어 적그리스도와 같았고, 이곳 교토는 사탄이 지배하는 거대한 도시이자 대탕녀 바빌론이었다.
마땅히 불로 정화해야 했다.
10명에 불과한 그들의 수 탓에 키리시탄들에 반발했다가는 등에 칼을 맞을까 두렵고, 적어도 그들이 하는 말, 즉 덴노를 확보하기도 급한데 불에 신경쓸 시간 없다는 주장이 틀리지만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을 저지하지 않은 사무라이들의 침묵 속에서, 교토는 불타고 있었다.
키리시탄 유격대는 덴노의 납치보다 교토를 불태우는 걸 더 우선시하는 듯 했고, 교토 수비대는 어소까지 모조리 태워버릴 기세로 번져나가는 화마를 막아야 할지 지금 날아오는 포탄에 맞서 공격을 가해야 할지도 의견이 갈려 혼란에 빠졌기에 훨씬 적은 유격대에게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황거가 공격당하기 시작했다.
***
공사가 처음 요구한 사항은 간단했다.
덴노의 납치, 그리고 가능해보이면 덴노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들도 같이 가져올 것.
즉, 교토를 불태우라는 말은 한 적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덴노를 죽이는 게 목표가 아니었으므로 무차별적인 대량살상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어소에서는 피바다가 벌어졌다.
“악마에게 빌붙은 창부 같으니!”
“꺄아악!”
궁녀 하나가 눈이 뒤집힌 병사의 칼에 맞아 쓰러지며 목숨을 잃었다.
텟포 몇 정으로 저항하려던 적들은 유럽제 무기로 중무장한 침입자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때 베트남에서 프랑스군의 손에 들려 있었던 연발 권총을 양손에 든 장교가 명령을 내렸다.
“이 사탄의 요새를 꼼꼼히 정화해라!”
물론 그 정화는 약탈과 방화였다.
이들에게 어소는 악마들의 요새였고, 조금 조악한 비유로는 마왕성이나 다름없었다.
철저히 파괴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말아야 했다.
이는 정당한 응징이었다.
일단 적어도 그들 생각에는 그랬다는 거다.
후원자의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덴노를 찾아라!”
물론, 덴노는 살아있어야 그 가치가 있었기에, 산 채로 잡혀오기는 할 것이다. 이는 후원자가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이었다.
덴노‘는’ 그럴 터였다.
***
고메이 덴노는 평생 동안 상상도 못 해 본 일에 얼어버렸다.
일본인이, 그에게 칼을 겨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간 일본의 세계관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불경한 자가!”
공경 하나가 이 무례에 격분해 칼을 뽑았지만, 한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총에 맞아 쓰러졌다.
권총을 내린 남자는 고메이 덴노에게 차갑게 물었다.
“따라와라.”
“네놈들은 누구냐.”
“따라와라, 죽여버리기 전에, 아, 그리고 삼종의 신기는 어디 있나?”
일본 최고의 보물, 야타노카가미(거울),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검), 그리고 야사카니노마가타마(곡옥)의 소재가 입에 오르자, 고메이 덴노도 결국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네놈들 따위에게 신물을 넘겨줄 것 같으냐!”
“뭐, 맘대로 해라, 우리는 이 주변을 통째로 태워버리고 대충 비슷하게 새로 만들면 그만이거든, 누가 대놓고 검증하자고 하겠나?”
그 말을 들은 고메이 덴노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까지 다 죽일 셈이냐?”
“뭐 죽든 말든 우리 알 바는 아니라 이거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저들에게, 아니, 후원자의 요구가 아니었으면 당장 보자마자 찢어죽였을 적그리스도로 취급하는 상대에게 덴노의 권위고 뭐고 먹힐 리가 없었다.
“다 태워죽이기 전에 말해라, 어디 있나? 다른 곳에 있다고 둘러댈 생각도 마라, 식년천궁(20년에 한 번씩 건물을 다시 짓고 신체를 옮기는 의식) 시기가 다가오고, 국내 상황이 불안한 탓에 이세 신궁에 있던 야타노카가미가 황거로 옮겨진 것, 그리고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도 나고야가 개항하면서 외국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아츠타 신궁에서 황거로 옮겼다는 것, 다 알고 왔다.”
“….. 알았다. 내가 안내해주겠다. 대신 다른 이들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아, 한 가지 더, 검과 거울은 모조품이 하나씩 있다고 했다. 그것도 가져와라.”
“대체 누가 너희들을 보낸 것이냐?”
황궁의 내밀한 사정까지 전부 알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그 둘이 황거로 옮겨졌다는 걸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막부의 고위급 인사나, 아니면 공가, 혹은….. 정말 천황가 내에 내통자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신께서!”
그들은 성전사였다, 일본에 복음을 전파할 십자군이었다, 신께서 그들을 지켜주신다.
그들은 그야말로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상태였고, 당당하게 신을 외쳤다.
“……….”
물론 현인신으로 섬겨져 오던 고메이 덴노에게는 광인의 광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신궁에서 덴노 본인의 손으로 삼종의 신기가 끄집어내져 키리시탄들에게 넘어갔고, 그 와중에도 다른 이들은 잽싸게 황거의 보물전을 약탈했다. 이 역시 후원자가 요구한 바였다.
돈은 마음대로 챙겨도 되지만, 뭐가 또 필요해질지 모르니 황거의 유물을 싹 긁어와 달라는 요구는 이들에게도 싫을 이유가 없는 요구였다.
***
“이런 제기랄!”
나는 전서구의 발목에 묶인 메시지를 집어던졌다.
이틀.
탈출자들이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이자, 교토의 대화재가 진압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아니, 진압이라고 해야 할까.
단 두 개의 작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교토는 모조리 불타버렸다. 고쇼는 아예 한 줌의 재가 되었고 21세기까지 남아 있어야 했을 유명한 절들, 그리고 헤이안 신궁을 비롯해 유명 신사들도 불타버렸다.
금각사의 금칠된 누각 하나와 민가 한 채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불타버렸다.
뭐, 교토가 잿더미가 된 거야 그렇다 칠 수 있다.
문제는 그 와중에 황가의 인물들도 살해당했고, 덴노는 사실상 납치되다시피 해서 질질 끌려왔으며, 그 와중에 교토는 대대적으로 약탈당했다는 것이다.
“아주 그냥 X됐군.”
나는 미간을 꽈악 눌렀다.
누가 교토를 습격해서 불태우고 약탈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쫙 퍼졌다. 그리고 그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나는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선장, 전속력으로 남쪽으로, 조슈 번에 기항하게.”
“예?”
“당장!”
“아, 알겠습니다.”
“다 탄 거 맞지? 조슈 번에서 나온 사무라이는 몇 명 귀환했나?”
“2명뿐입니다. 나머지는 다 전투 중 전사했답니다.”
“그 둘에게 나 좀 보자고 해. 선미 갑판에서.”
“아, 알겠습니다.”
“물건은?”
“잘 챙겼습니다.”
“챙겨둬.”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어차피 조슈 번에서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거다. 조슈는 여기에서 멀고, 전신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면, 최소한 내 손에서 폭탄이 터지는 건 막을 수 있다.
‘어떤 의미로는 성공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보고를 좀 직접 듣고 싶어서 불렀네, 삼종신기는 찾았고, 덴노는 모셨나?”
“예, 둘 다 성공했습니다만…….”
성공하긴 했으니 거짓말은 아니겠지.
“잘했군.”
저들의 표정을 보니, 내가 아직 소식을 못 들은 줄 아나 보다.
하지만 내가 너희들에게만 소식을 의존할 줄 알았냐?
“골칫거리가 하나 줄었어.”
의식적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는 척 등을 보이면서, 품 속에서 쌍열 권총을 빼들고, 그대로 발포한다.
-타앙! 탕!
한 발에 한 명씩, 탄환이 목표한 사무라이들을 꿰뚫었다.
손이 조금 떨렸지만, 가슴에 한 방씩 맞은 사무라이들은 배의 갑판에 쓰러져서 당혹과 고통이 뒤섞인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부하들을 잘 통제했어야지.”
이 빌어먹을 것들아.
나는 총성을 듣고 나온 선원들에게 짧게 명령했다.
“던져버려.”
키리시탄들은 상관없다. 덴노도 상관없다.
하지만 저 둘은 조슈로 돌아가면 안 된다.
“조슈로 가서, 덴노와 키리시탄들을 번에 넘긴다. 그리고 바로 일본 근해를 빠져나가 조선으로 간다.”
일본에는 전신이나 그런 게 없다. 조슈도 사태 파악은 아직 못 했겠지, 화재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들어갔을지 모르지만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을 거다. 막부도 그건 아직 못 했겠지.
‘조선으로 가는 즉시 모든 자료를 파기한다. 아니, 싱가포르에도 내가 직접 가야겠군.’
영국이 털끝만큼이라도 관계되었다는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된다.
황거와 공가들이 불타고 삼종신기가 약탈당한 초유의 사태다.
적어도 이 시대의 일본에게 있어서 이는 문자 그대로 신성모독 그 자체다. 비유하자면 조선에서 종묘와 사직단, 경복궁을 고의적으로 불태우고 왕릉을 도굴한 것과 거의 맞먹는 스캔들이지.
‘내가 오페르트도 아니고, 제기랄.’
조슈 번도 이걸 알면 당장에 손을 떼려 들 테니, 알기 전에 혼자 떠안고 침몰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건은 어쩌시겠습니까?”
“갑판 하부, 다른 짐들 사이에 숨겨두도록, 조선에 도착하면 그때 배에서 내린다.”
당장 바다에 던져버려도 깔끔하겠지만, 혹여나 꼬리가 잡힐 경우 몰래 이 물건들을 프랑스 측에 떠넘긴다. 조슈 놈들이 발악하면서 영국이 한 짓이라고 폭로해버릴지 모르지만, 삼종신기가 프랑스 공관에서 발견되면 어떨까?
‘프랑스인들이 영국인을 사칭해서 일을 저질렀다고 몰아버린다.’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맞은 물건이 다른 사람의 방에서 나왔다면 방 주인이 의심받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프랑스 공관으로 반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지.
물론 이 이후로 일본에서의 공작은 거의 불가능해지겠지만.
“제기랄,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였지.”
최악의 경우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성공했는데도 저놈들이 폭주하는 바람에 엿을 먹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이다.
내가 한숨을 쉰 순간, 총에 맞아 숨이 끊어진 사무라이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무라이 한 명씩의 다리에 납 추를 묶은 선원들이 바다 한가운데에 둘을 던져넣는 게 보였다.